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3화
83화. 많이 배웠습니다
샤디엔 스트라우스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건 인간의 정신력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9서클이 한계인 건, 오로지 마력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력뿐만 아니라 정신력의 힘까지 사용한다면 9서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샤디엔이 생각하기에 인간의 정신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정신력의 힘을 마법에 반영할 수 있다면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터.
편의상 10서클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클의 숫자에 구애받지 않는 무한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샤디엔은 줄곧 정신력을 수련했다.
다른 마법사들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실험을 하지도 않았다.
어떤 악독한 마법사들은 인체 실험도 한다고 하지만, 샤디엔은 그런 건 절대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고 실험을 진행했을 뿐이다.
절벽 위의 별장에서 홀로 바다를 응시하면서, 자신의 정신력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기 위해 분투했다.
이것은 일종의 구도(求道)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샤디엔은 원하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정신의 영역에 진입하지 못하고, 9서클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초조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수명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정갈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백 살이 넘어서도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샤디엔은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저 구도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한 다음에 죽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혼자서 노력해 왔다.
지금 샤디엔이 펼치는 마법은, 그 노력의 부산물이었다.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투창(投槍)을 창조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창이었다. 심지어 마력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형성 과정에서 마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마력이 없다.
이것은 정신력의 창이다.
정신력을 끌어 올리는 수련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게 된 마법이었다.
직접 사람에게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사람 한 명을 폐인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상대방의 정신에 직접 충격을 주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게 만약 시리우스에게 명중한다면 시리우스의 정신은 산산이 부서져 버릴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샤디엔은 이런 기술을 사용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시리우스가 가르침을 청했기 때문이다.
줄곧 정신력을 단련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력을 다해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샤디엔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확인이다.
그동안 자신이 마법사로서 노력해 온 것들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라는, 마법을 초월한 힘을 쓰는 젊은이를 상대로.
샤디엔은 일생일대의 전력 공격을 펼친 것이다.
“…….”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반투명한 창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샤디엔의 의지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샤디엔이 사용한 마법의 정체도 간파했다.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구성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창.
시리우스는 무림에서 저런 기술을 뭐라 부르는지 알고 있다.
심검(心劍).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에서 비롯된 검이다.
이것은 소위 무형검(無形劍)이라 부르는 것하고는 다르다.
무형검은 내공을 검처럼 만들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검 없이 검기를 펼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심검은 내공이 아니라 마음…… 정확히 말하자면 의념(意念)의 힘을 사용한다.
무림에서 말하길, 심검을 쓰는 무인은 그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천랑무제 백무랑도 죽을 때까지 심검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 시리우스에게 날아오는 반투명한 창도, 심검처럼 의념의 힘을 사용한 공격이었다.
샤디엔이라는 대마도사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선인처럼 속세를 떠나 있으면서 홀로 자신만의 진리를 추구한 끝에 의념의 영역에 한 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심검에는 못 미친다.
본래 진정한 심검이라면 마음먹은 시점에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
소위 심즉살(心卽殺)이 성립해야 진정한 심검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날아오고 있는 정신력의 창은 눈으로 보이는 속도였다.
샤디엔은 정신력의 힘을 끌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막상 정신력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샤디엔은 강해지기 위해서 정신력을 수련한 게 아니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는 우화등선을 하기 위해 수련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샤디엔이니까,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철저하게 최적화된 마법을 펼치지는 못한다.
만약 샤디엔이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심즉살의 원리에 의해 시리우스는 창에 꿰뚫린 상태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 공격도 매우 멋진 마법이다.
비록 심즉살의 심검은 아니라고 하나, 제대로 의념이 담긴 마법이다.
무공에 의념을 담는 건 천랑무제 백무랑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는 샤디엔의 마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
그 배움에 보답하기 위해, 시리우스는 뇌기를 증폭시켰다.
천랑신공의 세 번째 단계인 ‘창뢰’는 관통력이 첫 번째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속도다. 뇌기를 사용해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공격을 펼치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뇌기로 창을 만들었다.
지난번에 환왕의 환영 마법 속에서 사용했던 뇌창(雷槍)이다.
하지만 속도는 그때보다 더 빠를 것이다.
콰르릉!
다가오는 정신력의 창을 향해, 뇌창이 사출된다.
아주 빠르고, 정교하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뇌전의 창이 정신력의 창을 관통했다.
정신력의 창은 실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충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뇌전의 창이 정신력의 창을 관통한 순간, 창 전체에 균열이 생기면서 폭발해 버렸다.
이것은 샤디엔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정신력의 힘을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도 물리 세계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뇌창은…… 그대로 샤디엔을 향해 날아왔다.
“허억……!”
지붕 위에서 관전하던 환왕이 비명을 질렀다.
이미 환영 공간에서 시리우스의 뇌창을 경험해 본 환왕이다.
방어 마법 하나 전개하지 않은 샤디엔이 저 뇌창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목숨을 건지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뇌창이 샤디엔에게 꽂히는 일은 없었다.
샤디엔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가, 저 멀리 넓은 바다 위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
환왕이 안도하고 지붕 위에 다시 주저앉았다.
서로 목숨 걸고 공격을 주고받은 건 샤디엔과 시리우스였는데, 가장 긴장하고 땀을 흘린 건 정작 환왕이었다.
“…….”
“…….”
샤디엔은 아무 말 없이 시리우스를 응시했다.
시리우스도 특별히 말을 하지 않고 샤디엔을 쳐다봤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서로 입을 열었다.
“많은 걸 배웠네.”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이 공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 굳이 의견을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은 각각의 영역에서 그만큼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으니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게 마지막 대결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샤디엔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시리우스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 언젠가.”
고개를 숙이면서 시리우스는 샤디엔을 뒤로했다.
별장을 떠나는 시리우스를 환왕이 다급히 쫓아왔다.
“이봐!”
환왕이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시리우스는 그만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설명해 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치사한 놈……!”
“직접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셨지 않습니까. 날로 먹으려 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환왕은 이미 많은 것을 느꼈다.
그걸 속으로 음미하면서 고찰하기보다는, 직접 따지고 드는 걸 선호하는 성격이라 이러고 있을 뿐이다.
“좋다, 그러면 내기를 하자.”
“내기 말입니까?”
“이제 서부 지역으로 간다면서?”
서부 지역.
동부 지역의 반대편에 있는 땅.
동서남북 중에서 가장 거친 분위기를 지닌 지역이기도 하다.
“배를 타고 갈 거지?”
“네, 강을 따라 이동할 생각입니다. 선착장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동부에서 남부로 올 때도 강을 타고 왔다.
그 강을 따라 서쪽으로 더 가면 서부 지역에 도달할 수 있다.
혼자 가는 거라면 경공을 사용해 서쪽으로 직행하면 되지만 함께 갈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선착장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승부하자.”
“…….”
경공과 비행 마법의 대결.
지난번에는 시리우스가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환왕은 재도전을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내가 이기면 샤디엔과의 공방에 대해 자세히 해설해 다오.”
“제가 이기면요?”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뭐든지 괜찮습니까?”
“서로 균형이 맞으면.”
“알겠습니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기면…… 독왕에 대해서 알려 주시죠.”
“뭣……!”
독왕.
환왕과 마찬가지로 연맹의 상위 간부 중 한 명으로, 베르디안의 스승.
그러면서…… 환왕이 마음속으로 집착하고 있던 여자.
“이봐, 그건…….”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쿵!
시리우스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환왕이 기겁하면서 비행 마법을 사용했지만 이미 시작부터 뒤처졌다.
“이 자식……!”
소리를 지르면서 환왕이 쫓아왔지만 승부를 취소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태도에 미소를 지으며 시리우스는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 * *
“생각해 보니 우리의 능력으로 선착장까지 단번에 가는 건 불가능했군요.”
“젠장, 분위기에 휩쓸려서 바보 같은 짓을…….”
야산 위에서 주저앉아 시리우스와 환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샤디엔의 별장은 남부 지역에서도 남쪽 끝.
반면 목적지인 선착장은 남부 지역 안에서 북쪽 끝에 가깝다.
쉬지도 않고 남부 지역을 종단한다는 건 시리우스의 힘으로도 불가능했고, 환왕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바보 같은 제안을 하셨군요.”
“자네도 받아들였을 텐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배가 고프군요. 저쪽에 마을이 있는 것 같으니 식사나 하고 다시 출발합시다.”
“쯧…….”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환왕도 시리우스를 따라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냐.”
“비행 마법은 기본적으로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것 같던데.”
시리우스는 환왕과 대결하면서 줄곧 비행 마법을 관찰했다.
경공의 경지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비행 마법도 연구 대상이었다.
“바람을 조작하여 전방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발생시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건 원리가 뭡니까?”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아래에서 위로 부는 바람, 즉, 상승 기류를 발생시킨다면 이것에 저항하여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발생시켜서 공중에 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 녀석이…… 내가 물어보는 건 하나도 대답 안 해 주면서, 네가 궁금한 건 물어보는 거냐?”
“그러면 하나 물어보십시오. 대답해 드릴 테니.”
“서로 교환하자고?”
“그러면 공평하지 않습니까?”
“…….”
환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력(揚力)이라는 게 있다.”
“양력?”
“날아다니는 새들도 이 원리를 활용하고 있지.”
그렇게 말하며 환왕이 손을 폈다.
그리고 손등을 위로 해서 수평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손이 공기를 가르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러면 공기가 위아래로 나뉘면서 손등 위와 손바닥 아래로 갈라진다. 손등과 손바닥의 모양 차이 때문에 공기가 흐르는 속도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압력이 발생한다. 만약 손바닥을 미는 압력이 손등을 미는 압력보다 강하다면 위로 밀어 올리는 힘이 발생하는 거지.”
“…….”
“이 원리를 활용하면 비행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뭐, 공중에 멈춰 있거나 할 때는 결국 다른 힘으로 중력을 상쇄해야 하지만 말이다.”
시리우스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무림에서는 이런 학설을 들어 본 적이 없기에 상당히 신선했다.
“그러면 비행 마법을 사용할 때 몸을 감싸고 있던 마력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양력을 발생시키는 형태를 취하기 위한 겁니까?”
“바로 이해했군. 사람의 몸은 양력을 발생시키는 형태가 아니니까 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의미도 있다.”
“흠…….”
이걸 경공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건 결국 다리의 힘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양력이라는 걸 활용한다면 공중에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유사적인 능공허도(凌空虛道)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막 같은 보호막으로 몸을 감싸서 양력을 발생시키는 형태를 취하면 될까?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정말 흥미로운 얘기군요. 바람이나 공기의 성질을 깊게 연구한 사람이 알아낸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애초에…….”
“그런데 말입니다.”
“이봐, 내가 말하는 중인데 왜 끊어?”
환왕이 짜증을 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창뢰의 공력을 실어 비수를 날렸다.
파앙!
번개처럼 날아간 비수가 공기를 갈랐다.
그러고 보니 비수는 양력이 작용하는 형태일까?
“컥!”
나무 위에서 은신하고 있던 놈이 추락했다.
환왕이 눈을 크게 떴고, 시리우스는 뇌전의 힘으로 비수를 다시 회수했다.
“어떻게 된 거야?”
“중간부터 계속 저희를 미행…… 아니,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놈들은 공중으로 날아가는 시리우스와 환왕을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접근하여 포위했다.
“환왕, 연맹에 당신의 비행 마법을 쫓아올 수 있는 놈들이 얼마나 됩니까?”
“뭐?”
“6서클 정도여도 당신을 추격할 수 있는 놈들이 있습니까?”
시리우스가 그렇게 질문한 순간.
숲속에서 다가오고 있던 살수(殺手)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격렬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환왕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풍왕(風王)의 수하들이다, 빌어먹을!”
“식사는 나중에 해야 할 것 같군요.”
시리우스의 검에서 푸른 번개가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