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7화
87화.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중년 남자의 이름은 갈레트라 했다.
더스텐 일파의 말단 조직원으로, 평소에는 상인들을 상대로 수금을 한다고 한다.
“상인들한테 수금을 왜 해?”
“그야 당연히 보호비를…… 악!”
시리우스가 머리를 쥐어박자 갈레트가 비명을 질렀다.
길 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뭐에서 보호해 준다고 너희가 돈을 받지?”
“그야, 행패를 부리는 건달들이라든가…….”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군. 건달은 너희 아닌가?”
“…….”
갈레트가 입을 다물었다.
식당에서는 그토록 수다스러웠는데, 몇 대 쥐어박으니 꽤 과묵해졌다.
“아까 식당에서 네가 더스텐 일파라는 걸 밝히니 사람들이 겁을 먹더군.”
“…….”
“너희가 정말로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왔다면 다들 너희를 반가워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오히려 겁을 먹고 눈을 피하더군.”
이것 무슨 뜻인가.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놈들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을 핍박하는 놈들이란 뜻이다.
“그, 그래도 우리는 좀 양심적인 편이오.”
갈레트가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 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심하게 쥐어짰으면 그란츠 가문에서도 우리를 가만 안 뒀을 거요. 아니, 상인들이 먼저 외부 세력을 불러들여서 우리들을 제거하려 했을 거요.”
“상인들이 외부 세력을 불러들인다고?”
“돈을 모아서 암살자를 고용할 수도 있고, 다른 흑회 조직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서부는 원래 그렇게 거친 지역이오.”
“…….”
“당신이 앞으로 서부에서 활동하려면 이런 서부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오. 내가 말했듯이 서부는 호락호락하지 않…… 아윽!”
시리우스가 한 번 더 쥐어박자 갈레트가 입을 다물었다.
“자랑이다, 자랑이야.”
“윽…….”
“상인들이 암살자를 고용하고 다른 흑회들을 불러들이고…… 그게 정상이냐?”
“…….”
“상인들은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그러지 못하는 게 서부 분위기라면 그 분위기를 뜯어고쳐야지.”
아무 말도 못 하는 갈레트를 데리고, 시리우스는 길거리를 걸었다.
“저기 있는 4층짜리 건물이냐?”
“……!”
갈레트가 흠칫 놀랐다.
시리우스가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를 정확히 가리켰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은 시리우스가 팔라미아 시내를 둘러보면서 마력을 느꼈던 곳이었다.
시내에서 가장 큰 5서클 마력이 느껴졌다.
“앞장서라.”
“…….”
시리우스에게 떠밀려 갈레트가 앞장섰다.
건물 1층으로 다가가자 입구에서 건들거리던 놈들이 갈레트를 알아봤다.
“갈레트 형, 수금은 다 했어?”
“손님이 왔다. 비켜.”
“손님?”
놈들이 시리우스의 옷차림을 훑어봤다.
“서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얘기는 내가 이미 했으니까 빨리 비키라고!”
갈레트는 억지로 놈들을 밀치고 건물로 들어갔다.
시리우스는 입을 다문 채 그 뒤를 따랐다.
“형님들, 갈레트입니다.”
4층까지 올라가니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들이 모여 앉아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사람이 더스텐 형님을 뵙고 싶다고…….”
“누군데?”
“그게…….”
갈레트가 설명하기도 전에 시리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더스텐은 안쪽에 있나?”
“뭐 하는 놈인데 더스텐 형님을 찾아?”
“저쪽 방인가 보군.”
시리우스가 성큼성큼 걸어가려고 하자 한 남자가 일어나서 시리우스를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 직후.
“억……!”
쿵!
공중을 날아간 남자가 벽에 처박혔다.
시리우스가 손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다 큰 남자가 날아가서 기절해 버렸다.
“이 자식이……!”
“뭐 하는 놈이야!”
다들 우르르 일어나서 시리우스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중 실제로 시리우스를 건드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리우스가 한 번 더 손을 휘젓자 차가운 기운이 방출되어 그들의 전신을 얼려 버렸기 때문이다.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의 공력을 사용한 기파(氣波)였다.
“……!”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린 조직 간부들을 보고 갈레트가 숨을 삼켰다.
지금 이곳에서 무사한 사람은 문턱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갈레트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쪽 방문이 열리고, 웃통을 벗고 있는 뚱뚱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문 너머 침대 위에는 알몸의 여자가 있었다.
한낮부터 여자와 뒹굴고 있던 모양이었다.
“헉……!”
남자가 부하들이 얼어붙은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금방 녹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다.”
“…….”
“네가 더스텐이냐?”
더스텐이 머뭇거렸다.
다시 뒷걸음쳐서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문 닫고 이리 와라.”
“…….”
결국, 더스텐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어디서 나오셨소? 흑철맹? 그란츠 가문? 아니면 연맹 서부 지부?”
“더스텐.”
시리우스는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이 조직의 주된 수입원이 뭐냐?”
“수, 수입원?”
“상인 등에게서 뜯어내는 보호비 말고, 또 어디서 돈을 벌지?”
“…….”
더스텐이 인상을 찡그리며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직후.
“커헉!”
쫘악!
시리우스가 더스텐의 싸대기를 후려쳤다.
더스텐의 입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또 어디서 돈을 벌지?”
“사, 상인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면서 수고비를 받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 온 놈한테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면서 중개비를 받기도 하고…… 그래도 보호비 명목으로 받는 돈이 가장 많소.”
고개를 돌려 갈레트를 쳐다보니 그게 맞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남들을 등쳐 먹으면서 살고 있다는 얘기군.”
“마,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우리도 나름대로…… 악!”
쫘악!
다시 한번 싸대기를 얻어맞고 더스텐이 몸을 웅크렸다.
“대체 뭐가 심하지? 어쨌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먹으면서 사는 건 사실 아닌가?”
“으윽…….”
“그런데 대낮부터 너희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
시리우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쏘아붙였다.
“간부들은 술을 처마시며 빈둥대고 있고, 우두머리는 여자를 끼고 뒹굴 대고 있군. 정말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
“너희들이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바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너희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고 다니지.”
더스텐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느끼는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내 말이 틀렸나?”
“틀린 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앗, 틀리지 않소. 다 맞는 말이오.”
더스텐은 완전히 주눅 든 상태였다.
5서클 마법사로서 이 일대를 주름잡고 있던 더스텐이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더스텐이 보기에 시리우스는 최소 7서클 이상의 마도사였다.
간부들을 순식간에 얼려 버린 것만 봐도, 더스텐이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싸대기를 때리지 않았는가.
만약 시리우스의 손에 검이 들려 있었다면 더스텐의 목은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부터 더스텐 일파는 누구에게서도 보호비를 받지 않는다.”
“보, 보호비를 받지 않는다고……?”
“중개비고 뭐고, 앞으로는 일절 없다.”
“아, 아니 그러면 우리는 뭘 먹고 살라고…….”
“그것도 몰라?”
시리우스는 더스텐을 쏘아보며 말했다.
“모르겠으면 가르쳐 주지. 다 같이 나와라.”
“다 같이……?”
“건물 안에 있는 조직원들, 다 나오라고 해.”
“…….”
더스텐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여자는 뭐지? 혹시 어디서 억지로 끌고 온 여자는 아니겠지?”
“그, 그런 건 아니오.”
“그럼 뭔데?”
“그냥…… 내 애인이오.”
“직업이 뭐지?”
“딱히 정해진 직업은 없고, 가끔 술집 여자들 관리를…….”
“그러면 그 여자도 끌고 나와. 옷은 입혀서.”
이건 말도 안 되는 폭거다.
하지만 더스텐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갈레트가 ‘제발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라는 눈빛으로 호소하고 있기도 했고…… 더스텐 본인도, 여기서 대들었다간 자기 목이 날아간다고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해야 했다.
“저기 말이오.”
“뭐지?”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남부에서 오셨소?”
시리우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름이…… 시리우스?”
“용케 알아맞혔군.”
“…….”
더스텐은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재수 없게 시리우스의 표적으로 선정된 운명을 원망하면서,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갔다.
* * *
팔라미아 선착장.
그곳에 도착한 천랑표국의 선단은 화물을 내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대체 뭔가요?”
선착장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던 유스티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시리우스가 수십 명을 거느린 채 선착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인력을 구해 왔어.”
“네?”
시리우스가 데려온 건 더스텐 일파의 조직원들이었다.
더스텐을 비롯한 간부들이 전부 시리우스한테 당했기 때문에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화물 내릴 때 투입해.”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요?”
“필요 없어?”
“아뇨, 일손은 많을수록 좋죠.”
더스텐 일파의 몰골을 확인하고, 유스티아는 이미 대략 무슨 사정인지 눈치챘다.
이렇게 시리우스가 데려오는 건 갱생의 필요성이 있는 불한당들이다.
그러니 유스티아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대한 부려 먹으면 되는 것이다.
“저, 저기 말이오.”
그때 더스텐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뭘 어떻게 돼. 선착장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집단 더스텐 일파가 되는 거지.”
“…….”
“보호비를 받지 않고는 먹고살지 못한다면서? 그러니 밥 벌어 먹고사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다.”
더스텐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뭐라 항의할 수는 없었다.
“수습 기간만 끝나면 천랑표국에서 표준 임금을 지급할 테니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불만이 있으면 얘기해 봐.”
시리우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 상황에서 대체 누가 불만을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스텐이 다른 얘기를 꺼냈다.
“시, 시리우스.”
“뭐지?”
“조만간 흑철맹에서 사람이 올 거요. 누군가 응대를 해야 하는데, 전부 다 여기서 일하고 있으면 응대할 사람이…….”
“그래?”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응대하지.”
“뭐, 뭐라고?”
“내가 너희 본거지에 가서 흑철맹 사람을 응대하겠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겠지.”
“아무 문제 없을 리가…….”
더스텐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시리우스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벨리드.”
“오만칠천…… 왜?”
갑판 위에 있던 벨리드가 가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 녀석들, 네가 책임지고 감시해.”
“뭘 감시해?”
“일 똑바로 하는지 말이야. 알브라임 가문에서 많이 해 봤지?”
“앗…….”
벨리드가 머리를 긁적였다.
일 똑바로 하라고 시리우스의 뒤통수를 때렸던 걸 떠올린 것이다.
“다들 들어라.”
시리우스는 더스텐 일파를 향해 말했다.
“저기서 쇠몽둥이를 들고 있는 놈이 너희를 감시할 거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저 쇠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미친놈이다.”
“……!”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지만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거다.”
벨리드가 갑판 위에서 뛰어내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 삼재검법을 펼치는 모습에 다들 침을 삼켰다.
“참고로 나도 예전에 저 녀석한테 맞은 적이 있다.”
“……!”
시리우스가 저 남자한테 맞았다고?
다들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벨리드를 쳐다봤다.
“잘해라.”
“아, 알겠습니다!”
더스텐 일파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