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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88화 (88/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8화

88화.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시리우스는 갈레트를 데리고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더스텐 일파는 더스텐의 애인까지 포함해서 선착장에서 일하도록 만들었지만…… 갈레트는 예외였다.

“왜, 왜 나만 데려가는 거요?”

“말이 많아서.”

“…….”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이 갈레트라는 남자는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버릇이 있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갈레트에게 물어보면 알아서 잘 설명해 줄 것이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흑회 생활을 오래 했나?”

“음…… 5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일했었소. 식재료 도매상에서 물건 나르는 일을 했지.”

“시장에서 일하던 놈이 왜 시장 사람들의 돈을 뺏는 놈이 된 건지 궁금하군.”

“사정이 있었소.”

갈레트가 한숨을 내쉬며 떠들어 댔다.

“루시아나 길드라고, 다른 도매상의 뒤를 봐주던 조직이 있었소. 그곳에서 내가 일하던 도매상에 불을 질렀소.”

“…….”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지. 내가 존경하던 주인어른도 그때 불타 죽었소. 그 이후로 다른 일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해도 일이 손에 안 잡히더군.”

갈레트의 착잡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루시아나 길드에 복수하고 싶었소. 그래서…… 당시 루시아나 길드와 적대 관계였던 더스텐 형님 밑으로 들어간 거요.”

“그래서, 복수는 했나?”

“못했소. 몇 달 뒤에 더스텐 형님이 루시아나 길드하고 화해를 하더군.”

“…….”

“그냥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소. 한번 흑회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고…… 그냥 더스텐 일파에서 수금이나 하는 인생이 된 거지.”

그렇게 말한 뒤 갈레트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내 인생이 한심하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어쩌란 말이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데.”

“그렇지 않다, 갈레트.”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요?”

“사람 사는 세상은 그러면 안 된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쟁 업체에 불을 지르는 것도, 복수를 위해 흑회에 투신하는 것도, 어영부영 상인들에게 돈을 뜯으며 사는 것도…… 본래 세상에서는 없어야 하는 일이다.”

“…….”

“원래 그런 거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니까.”

몇 시간 전, 갈레트는 시리우스한테 ‘서부는 원래 그런 곳이다.’라면서 상납금을 뜯고 다니는 걸 정당화했다.

시리우스는 그런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세상이 잘못된 거라면, 뜯어고쳐야지.”

“…….”

할 말을 잃고 쳐다보는 갈레트를 데리고, 시리우스는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로 걸어갔다.

“갈레트, 흑철맹에서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다던데, 어떤 놈들이 오는 거지?”

“흑철맹에서 이쪽 일대를 관리하는 간부가 있소. 그 사람의 부하가 정기적으로 와서 팔라미아의 현황을 점검하고 상납금을 받아 가고 있소.”

“혹시 오늘 오는 건가?”

“평소대로라면 내일이나 모레쯤에 올 거요. 오늘 올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을 듯한데…….”

“이상하군.”

시리우스는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4층 건물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 너희 본거지에 들이닥친 놈들은 뭐지?”

“뭐, 뭐요?”

시리우스는 당황하는 갈레트를 데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자 1층 공간에 모여 있는 집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숫자는 십여 명이었는데, 다들 검을 차고 있었다.

“루, 루시아나……!”

그들의 중심에 있는 중년 여성의 얼굴을 보고 갈레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전에 갈레트가 언급했던 루시아나 길드가,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에 들이닥친 것이다.

“이거, 정보가 확실한 것 같군.”

루시아나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더스텐 일파가 모조리 제압당해 노예로 팔려 갔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놈들 아지트가 이렇게 텅텅 비어 있는 걸 보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

숨을 삼키는 갈레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루시아나가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네가 더스텐 일파를 끌고 간 장본인인 것 같군. 못 보던 얼굴인데, 대체 어디서 왔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오해?”

“더스텐 일파는 노예가 되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대답을 듣고 루시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착장으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쇠몽둥이에 두들겨 맞으면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나?”

“음…….”

시리우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갈레트가 시리우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들, 노예가 되었던 거요?”

“그건 아니다.”

지금이야 강제로 노동을 시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앞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갱생할 수 있기에 강제로 끌고 가서 일을 시키는 건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한테 나쁜 상황은 아니군.”

루시아나가 미소를 지었다.

“더스텐 자식이 흑철맹과 인맥을 만드는 바람에 그동안 우리 길드가 손해를 봤지. 이제는 우리가 더스텐 일파를 대신해 팔라미아를 장악할 수 있겠군.”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나가 눈짓을 하자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부하들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네놈의 목을 바치면 흑철맹에서도 우리를 인정해 주겠지.”

“루, 루시아나!”

그때 갈레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허튼짓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이 사람은 사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라고?”

“아, 알고 있었소?”

“선착장에 천랑표국의 선단이 도착해 있더군. 그러니 당연히 시리우스겠지.”

루시아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를 죽이면 내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겠지. 그러니…… 여기서 죽어라, 시리우스.”

그 순간, 루시아나의 부하들이 달려들었다.

움직임이 제법 훌륭했다. 제대로 검술을 배우고, 연계 훈련도 소홀히 하지 않은 놈들이었다.

시리우스의 명성을 들었으면서도 이렇게 덤벼드는 건, 그만큼 자기들 실력에 자신 있는 놈들이라는 얘기다.

“누구 맘대로?”

하지만 그 직후.

천둥소리와 함께 검사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시리우스가 창뢰의 공력을 전개한 뇌권(雷拳)으로 놈들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부하들의 그림자 뒤에 숨어 시리우스를 기습하려던 루시아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으윽……!”

루시아나가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채 시리우스한테 달려들었다.

마력이 전개된 칼날이 시리우스의 목덜미를 노렸지만 시리우스는 뇌기가 실린 손바닥으로 칼을 튕겨 냈다.

“이놈……!”

그래도 루시아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빠르고 강맹한 공격을 펼치며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루시아나, 검술을 어디서 배웠지?”

“뭐라고?!”

루시아나의 칼날을 튕겨 내면서,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동부 어딘가에서 이것과 유사한 검술을 본 적이 있는데.”

예전에 벨리드와 함께 토벌했던 도적 떼의 수장이 이것과 비슷한 검술을 펼쳤다.

그는 커다란 대검으로 육중한 검술을 펼쳤고, 루시아나는 비교적 속도를 중시한 검술을 펼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 비슷한 요소가 있었다.

“연맹의 검제(劍帝)가 만든 검술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군. 연맹 관계자와 친분이 있나?”

“윽……!”

“맞는 모양이군.”

서부에서는 흑철맹의 세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연맹 서부 지부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도 서부의 패권을 잡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시리우스는 흑철맹도 제압해야 하고, 연맹 서부 지부도 토벌해야 한다.

“루시아나, 내가 더스텐을 살려 준 이유를 알려 줄까?”

“뭐, 뭐라고?”

루시아나의 검술은 이미 충분히 확인했다.

그러니 굳이 더 이상 싸움을 길게 이어 갈 필요가 없었다.

“나한테 칼을 들이대는 일 없이, 순순히 굴복했기 때문이지.”

콰직!

시리우스의 우장(右掌)이 루시아나의 옆머리를 강타했다.

루시아나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 아아…….”

모든 것을 지켜본 갈레트가 털썩 주저앉았다.

5년 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루시아나가 죽었다.

그 사실에 갈레트는 그동안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갈레트.”

그런 갈레트를 향해,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일하던 도매상이 불탔을 때 복수를 위해 더스텐 일파에 들어간 건 네 잘못이 아니다.”

“……!”

“더스텐 일파에 들어가는 것밖에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했던……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혈혈단신 루시아나를 죽이러 나서는 협의(俠義)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당시 갈레트가 복수하려면 다른 흑회에 투신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바꾸는 게 내 목표다, 갈레트.”

“……!”

시리우스가 새롭게 만들어 나갈 무림맹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진상을 조사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힘없는 개인이 복수하기 어려운 상대여도, 무림맹이 나서면 제대로 벌을 내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힘없는 개인들의 억울함을 제대로 구제해 준다면…… 갈레트처럼 잘못된 길로 빠지는 사람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갈레트, 일단 루시아나 길드로 안내해라.”

“지, 지금 말입니까?”

“그래, 팔라미아 시내의 자잘한 흑회 조직들은 그냥 오늘 안에 다 정리해 둬야겠다.”

어느새 말투가 달라진 갈레트를 향해,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팔라미아부터 시작해서, 서부 전체를 싹 청소할 거니까.”

* * *

“정말 죄송해요.”

유스티아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지금 유스티아 앞에는 어른스러운 외모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유스티아와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녔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성숙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제가 붙잡아 놓고 있어야 했는데,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라져 버렸어요.”

“괜찮단다, 유스티아.”

유스티아의 사과에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소문으로 들었어. 그러니 이해한단다.”

“티타니아 언니…….”

티타니아 리겔.

막냇동생 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팔라미아로 찾아온, 리겔 가문의 장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보살펴 준 사람이라, 유스티아는 티타니아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유스티아…… 조금 걱정되는구나.”

“걱정되다니요?”

“도착하자마자 더스텐 일파를 건드리다니…… 한동안 팔라미아가 혼란스러워질 거야.”

지금 더스텐과 부하들은 선착장에서 열심히 화물을 옮기고 있다.

옆에서 혼자 삼재검법을 수련하는 벨리드를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팔라미아는 중소 흑회 조직 여러 개가 서로 견제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도시야. 그렇기에 흑철맹과 연맹도 항상 주시하고 있었지.”

“…….”

“더스텐 일파가 저렇게 되었으니 다른 조직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다들 이번 기회에 팔라미아를 장악하겠다고 칼을 뽑아 들 테고, 그렇게 되면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바로 그때.

바깥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글쎄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유스티아는 큰언니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목격하게 되었다.

“……!”

시리우스가 백여 명의 건달들을 이끌고 선착장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스티아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 대체 뭐 하는 거죠?”

“일할 사람을 데려왔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은 필요 없어요!”

“그러면 선착장 보수 공사를 시키지. 너무 낡아서 위험해 보였어.”

그렇게 말하던 시리우스가 유스티아 곁에 있던 티타니아를 확인했다.

“티타니아 님이시군요. 유스티아의 남편인 시리우스라고 합니다.”

“그, 그래요. 만나서 반갑네요…….”

티타니아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시리우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팔라미아의 흑회 조직들을 정리하고 왔습니다.”

“네?”

“빠르게 정리해야 혼란이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티타니아가 말없이 눈만 깜박였다.

온화한 성격의 티타니아로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큰언니를 보면서 유스티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죄송해요. 제 남편…… 이런 사람이에요.”

“…….”

대체 어쩌다가 이런 사람하고 결혼한 거니?

그렇게 묻는 눈빛으로 티타니아가 막냇동생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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