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89화 (8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89화

89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선착장에 끌고 간 흑회 잔당들은 알레이온에게 맡겼다.

알레이온도 흑회 소속이었다가 시리우스 밑으로 들어온 녀석이라, 흑회 출신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제대로 정신 교육을 한 뒤, 쓸 만해 보이는 놈들은 천랑검단에 편입하여 전력으로 삼을 것이다.

“결혼식 때는 저희 남편이 병석에 누워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티타니아 님.”

시리우스는 티타니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티타니아는 유스티아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티타니아 앞에서는 최대한 예의를 차릴 생각이었다.

“그동안 소식은 많이 들었어요. 위기에 처해 있던 리겔 가문을 구해 주고, 동부와 남부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고…….”

“여러 사람들이 힘을 보태 줬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유스티아의 남편은 학문 연구에만 관심이 있는 학자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세상이 어지러운 터라, 학문 연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훌륭한 마음가짐이에요.”

티타니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저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군요.”

“티타니아 님…….”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시리우스.”

“아닙니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부터 리겔 가문에 계속 지원금을 보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리겔 가문이 버틸 수 있었던 건, 티타니아 님이 금전적 지원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별로 대단치 않은 금액이었어요. 그란츠 가문의 재산을 제가 함부로 쓸 수는 없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쪼개서 보낸 거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스티아도 티타니아 님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우스가 오기 전, 리겔 가문은 유테루스 가문에게 착취당하고 있었다.

티타니아가 보내 준 지원금이 없었다면 리겔 가문은 아예 파산했을 거라고 한다.

“언니, 지난번에도 편지로 말씀드렸지만…… 리겔 가문은 이제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어요.”

옆에 앉아 있던 유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저희가 언니를 도와드릴 차례예요. 그러니 도와드릴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유스티아, 그럴 필요는 없어. 너희들이나…….”

난처한 표정을 짓는 티타니아를 보면서, 시리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티타니아 님, 오늘 제가 살펴봤는데, 그란츠 가문은 이 일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흑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팔라미아 주변은 그란츠 가문의 세력권이다.

하지만 흑회의 말단 조직원이었던 갈레트조차 그란츠 가문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제가 듣기로, 그란츠 가문은 재산은 많으나 그에 비해 무력이 부족하다더군요.”

“그건…….”

“강력한 힘을 지닌 흑회들 사이에서 매번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그란츠 가문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용병단 등에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용병단이라고 해 봤자 결국 흑회의 일종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티타니아 님, 저는 팔라미아를 시작으로 이 일대를 정리하려 합니다. 근방에 자리잡은 흑회 조직을 모두 해체하고, 저희가 데려온 병력으로 치안 유지 활동을 개시할 생각입니다.”

“……!”

“그러니 그란츠 가문도 다른 세력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가문 전체를 재정비하는 겁니다.”

숨을 삼키는 티타니아 앞에서,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 * *

“고마워요, 시리우스.”

티타니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스티아가 시리우스한테 감사를 표했다.

“당신이 티타니아 언니에게 그 정도로 진지한 태도를 취해 줄 거라고는 예상 못 했어요.”

“너무하는군. 내가 당신 언니를 함부로 대할 거라 생각했나?”

“레티시아 언니한테는 건성으로 대했잖아요.”

“당신도 마찬가지였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요.”

작은언니인 레티시아는 자녀 계획은 어떻게 할 거냐는 둥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우스도, 유스티아도 레티시아의 잔소리를 견디느라 고생했었다.

“어쨌든…… 당신이 티타니아 언니한테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 줘서 마음이 놓였어요. 아무래도 저한테 티타니아 언니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라.”

“…….”

“솔직히 말해서, 조금 기뻤어요.”

그렇게 말한 뒤, 유스티아가 헛기침을 했다.

“죄송해요. 너무 솔직하게 말해 버렸네요.”

“아니……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 어쨌든.”

유스티아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시리우스, 그러면 앞으로는 팔라미아를 중심으로 활동할 거죠?”

“그래야지.”

남부처럼 이곳저곳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다.

시리우스가 멀리 떠나 있는 사이, 흑철맹이나 연맹에서 습격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일단 팔라미아를 거점으로 삼아서, 서부 흑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릴 생각이야.”

“그렇군요. 마침 잘됐어요.”

유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란츠 가문과 협력해서 팔라미아에 천랑표국의 지부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래?”

“네, 현지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그편이 낫겠더라고요. 선착장도 수리하고 창고나 점포도 새로 지으면서, 팔라미아를 중심으로 천랑표국의 영향력을 키워 나갈 생각이에요.”

그렇게 말한 뒤 유스티아가 시리우스를 힐끔 쳐다봤다.

“남편이 인력을 많이 데려와 준 덕분에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호흡이 잘 맞는군.”

“그러게 말이에요.”

방침은 정해졌다.

팔라미아를 거점으로 삼아 이 일대를 평정한 뒤, 흑철맹이나 연맹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이제는 시리우스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놈들이 먼저 달려들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란츠 가문을 시작으로 서부의 여러 가문을 규합하여…… 시리우스가 만드는 새로운 맹(盟)에 참가시키는 것이다.

“슬슬 이름을 정해야겠군.”

“네?”

“아니, 혼잣말이야.”

이 세계에서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다.

어떤 이름을 내세워야 할지 시리우스는 계속 고민 중이었다.

“시리우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있어요.”

“가장 큰 문제?”

“형부…… 리알드 님의 건강 문제죠.”

유스티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우리 결혼식 때도 몸이 안 좋아져서 참석하지 못하셨잖아요.”

“…….”

“요새는 좀 괜찮아졌다고 들었는데…… 방금 전에 얘기를 들어 보니 오늘도 몸 상태가 안 좋으신 모양이에요.”

리알드 그란츠.

그란츠 가문의 가주로서, 티타니아의 남편.

원래 그는 매우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란츠 가문이 지금처럼 많은 재산을 갖게 된 것도, 리알드가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인 리알드는 리겔 가문의 장녀인 티타니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가문의 격까지 끌어 올리려 했다.

속으로는 티타니아를 리겔 가문의 차기 가주로 만드는 것까지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병에 걸리신 이후부터는 매우 소극적이 되셨다고 해요. 우리 계획에 찬동해 주실지 모르겠네요.”

* * *

수하들에게 뒷일을 맡긴 뒤,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는 그란츠 가문으로 향했다.

그란츠 가문의 성관(城館)은 팔라미아에서 마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성관이 꽤 크고 웅장하군.”

“그러게요. 역시 그란츠 가문이에요.”

리알드가 가주 자리에 오른 이래, 그란츠 가문은 상업(商業)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쉴 새 없이 짐마차가 드나들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환영 파티를 열려고 했어요. 남편도 두 사람을 만나는 걸 무척 기대했었거든요.”

시리우스와 유스티아를 안내하면서 티타니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증상이 심해지더라고요.”

티타니아가 안내해 준 곳은, 성관 안쪽에 위치한 침실이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피부색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도 넓었지만, 얼굴색이 안 좋았다.

“으음…… 오셨습니까.”

남자가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스티아, 시리우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침대에서 응대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리알드 님.”

이 남자가 바로 그란츠 가문의 가주인 리알드였다.

옛날에는 건강했는데,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온몸 곳곳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예고 없이 갑자기 통증이 발생해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 같았다.

심지어 특정 부위가 아픈 것도 아니고 매번 부위가 바뀐다는 듯했다.

“요새는 상태가 좋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러는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많이 힘드시겠네요. 치료는 받고 계신가요?”

“약도 먹어 보고, 용하다는 의사도 초빙해 보고 했는데…… 영 듣지 않습니다. 돈도 많이 썼지요.”

티타니아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리알드의 손을 붙잡았다.

남편의 병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불치병인 모양입니다. 이제는 거의 포기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리알드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듣는 사람조차 우울한 기분이 들게 하는 한숨 소리였다.

최고 책임자인 리알드가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그란츠 가문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리알드 말고 딱히 가문을 이끌 만한 사람도 없으니…….

“음, 그쪽 분이 시리우스이군요.”

유스티아와 인사를 나누던 리알드의 시선이 시리우스에게로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동안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

“서부에서도 뭔가 일을 하려고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몸이 영 이래서…… 윽!”

리알드가 말을 하다 말고 신음 소리를 냈다.

몸을 웅크리는 남편을 티타니아가 다급히 부축했다.

“당신,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티타니아, 이 정도는 익숙…….”

바로 그때.

입을 다물고 계속 리알드를 관찰하던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리알드 님.”

옆에 있던 유스티아가 흠칫 놀라며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진찰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네……?”

리알드와 티타니아가 허를 찔린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진찰을…… 하겠다고요?”

리알드가 당혹스러워 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대답하지 않고 리알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리알드의 손목을 잡았다.

“제 생각이 맞다면.”

뚝, 뚝.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팽팽한 맥(脈).

그것을 느끼면서 시리우스는 입을 열었다.

“제가 치료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리우스의 차분한 목소리에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어 왔던 두 부부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