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91화
91화. 식사 도중에 사람을 건드리면
“역시 돈 계산은 너한테 부탁하는 게 가장 좋구나. 고마워, 유스티아.”
“리알드 님이 아직 완벽히 회복하지 못하셨으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언니.”
티타니아가 보여 준 청구서를 훑어보면서, 유스티아가 말했다.
“가르투스 용병단이라고 했나요? 청구액이 너무 과도해요. 이래서는 도적들한테 직접 돈을 바치는 게 나을 거예요.”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가장 힘이 강한 조직이야. 우리로서는 그쪽과 최대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현재 그란츠 가문은 가르투스 용병단이라는 조직에 호위 업무를 부탁하고 있다.
가르투스 용병단이 지켜 주지 않으면 자꾸 습격을 당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언니, 리겔 가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유스티아…….”
“유테루스 가문과 잘 지내지 않으면 가문을 존속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죠.”
유스티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생각을 바꿔 준 게 시리우스였어요.”
“…….”
“조금만 기다리세요, 언니.”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유스티아가 말했다.
“시리우스가 모든 것을 바꿔 줄 테니까.”
“…….”
티타니아는 유스티아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티아는 남편을 무척 신뢰하고 있는 것 같구나. 역시 부부 사이에는 그런 게 있어야지.”
“어, 언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유스티아가 얼굴을 붉히며 부정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시리우스의 능력을 믿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시리우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줄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이죠.”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것 아니니? 배우자한테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건…….”
“신뢰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난 것만으로도 결혼은 성공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
티타니아의 말에 유스티아는 입을 다물었다.
유스티아와 시리우스는 표면적으로만 부부일 뿐이다.
실제로는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그냥 업무상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존재다.
남녀 사이의 애정 같은 건 없다. 파트너로서의 신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티타니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아닐까.
“유스티아, 만약 네 남편이 시리우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떨 것 같으니?”
“그건…….”
“시리우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남편으로 삼을 수 있다면 바꾸고 싶어?”
유스티아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티타니아가 미소 지었다.
“시리우스를 만나서 다행이네, 유스티아.”
“…….”
시리우스를 만나서 다행이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서, 유스티아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 * *
결국 그란츠 가문은 시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리알드는 동부 및 남부의 여러 가문과 마찬가지로 동맹에 참가하여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그란츠 가문은 무력이 부족해서 병력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
그 대신 금전적인 면에서 지원해 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동안 용병단 등의 흑회 조직들에 뜯기던 걸 생각하면 그다지 손해는 아니다.
오히려 서부의 치안이 좋아지면 더 이득을 볼 수도 있다.
또한 천랑표국과 전면적으로 협력하여, 팔라미아를 중심으로 물류 개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부 지역의 출입구라 할 수 있는 팔라미아부터 뜯어고친 뒤, 점차 서부 전체를 바꿔 나가는 계획이었다.
그란츠 가문은 서부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이고, 천랑표국도 충분한 자금력을 지녔다.
흑회들로 인한 혼란만 진정된다면 서부 전체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부적인 논의는 유스티아가 그란츠 가문에 남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유스티아가 복잡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사이, 시리우스는 팔라미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서부 전체를 정리해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너는 여기서 리알드 님의 치료약을 만들어 주면 돼.”
“알겠습니다, 시리우스 님.”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였던 건물의 3층.
본래 더스텐 일파가 창고로 쓰던 방에서, 베르디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을 소통시켜 주는 약재는 이미 여러 개 확보한 상태니까 그것들을 조합해 볼게요.”
“그래, 영약 연구와 함께 진행해 줘.”
현재 이곳은 베르디안의 연구실로 개장된 상태였다.
약장도 설치되었고, 다양한 약재들도 구비되었다.
이제부터 베르디안은 이곳에서 영약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나도 팔라미아에 있을 때는 여기에 머무를 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네, 알겠어요.”
시리우스는 더스텐 일파의 본거지를 팔라미아에서의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위치가 딱 좋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더스텐 일파는 현재 선착장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이 건물도 돌려줄 생각이었다.
“어이, 시리우스.”
환왕이 하품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이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쪽 길을 통해 접근하는 집단이 있군.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어떤 놈들이죠?”
“글쎄, 그냥 용병들 같아 보이는데.”
그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큰일이군요.”
“아니, 왜?”
“식사를 시켜 놔서 말입니다.”
“…….”
“일단 1층으로 내려갑시다.”
시리우스는 환왕과 베르디안을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서는 갈레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테이블 위에 음식 그릇을 올려놓고 있었다.
“벌써 다녀왔나?”
“하하, 지름길을 알거든요.”
갈레트는 여기서 계속 머물면서 잡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원수였던 루시아나를 해치워 준 시리우스에게 감복한 모양이었다.
“식겠습니다. 어서 드시죠.”
“너도 앉아서 먹어.”
“앗, 감사합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서부 음식은 일반적으로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데, 향신료를 많이 사용해서 느끼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갈레트라고 했나? 내가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아, 네, 어르신.”
“서부는 왜 음식을 배달하거나 포장해서 먹는 문화가 발달한 거지? 식당에서 바로 먹는 게 낫지 않나?”
“서부는 흑회들이 워낙 많지 않습니까? 식당에서 밥 먹고 있다가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흠, 그런 사정이 있었군.”
환왕과 갈레트의 대화를 들으면서, 시리우스는 무림에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원래 무림인들은 객잔에서 자주 싸움을 벌인다.
어떨 때는 동네 흑도 나부랭이끼리, 어떨 때는 쟁쟁한 절정 고수끼리…… 남들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든 말든 싸움박질을 한다.
그럴 때마다 점소이가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옆에서 그냥 밥을 먹고 있던 일반인들이 더 불쌍하다.
자칫하면 몇 숟갈 먹지도 못하고 도망쳐 나와야 하니까.
그런 걱정이 없도록, 무림에서도 배달이나 포장 문화가 발달하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리우스, 자네 표정이 상당히 심각하군.”
환왕이 식사를 중단하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혹시 지금 오고 있는 놈들, 위험한 놈들인가? 자네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그게 정말인가요?”
“헉…….”
베르디안과 갈레트도 심각한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다른 곳에서도 배달이나 포장 장사를 하면 전망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
“…….”
“…….”
세 사람이 할 말을 잃고 시리우스를 쳐다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남자를 선두로, 십여 명의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갈레트가 숨을 삼켰다.
“저, 저 사람들은……!”
“아는 얼굴이냐?”
“가르투스 용병단 사람들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연맹 서부 지부하고 인맥이 있다고…….”
가르투스 용병단.
그란츠 가문에서도 들었던 이름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병력을 보유한 곳으로, 그란츠 가문도 가르투스 용병단의 병력을 빌리고 있다.
워낙 힘이 강해서, 팔라미아의 중소 흑회들도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가르투스 용병단의 힘을 빌리는 때가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팔라미아의 중소 흑회들을 쓸어버린 시리우스를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리우스가 누구지?”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이 가까이 와서 묻자 시리우스는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식사 중이니 기다려라.”
“너냐?”
시리우스의 말을 무시하고,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루시아나를 죽였다면서? 그 밖에도 여러 흑회들을 손봐 줬다던데.”
“…….”
“루시아나는 우리 용병단이 뒤를 봐주고 있던 여자야. 다른 흑회들 중에도 우리 용병단에 돈을 내던 놈들이 많았지.”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위협적인 목소리를 냈다.
“시리우스, 네놈이 남부나 동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서부에는 서부의 규칙이 있다. 외지인이 서부에 오자마자 이런 일을 벌이면 곤란한데.”
시리우스는 대꾸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갈레트가 여유 있게 음식을 사 와서 아직 절반 정도 남은 상태였다.
“이것 참, 서부 놈들은 겁이 없군.”
바로 그때 환왕이 코웃음을 쳤다.
“서부에도 시리우스 녀석의 소문이 퍼졌을 텐데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아니면 서부 놈들은 센 척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뭐라고?”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그냥 얌전히 기다려라. 그러면 이 녀석도 대화로 상대해 줄…….”
쿵!
험상궂은 남자가 탁자를 걷어찼다.
탁자가 뒤집히며 음식이 쏟아졌고, 순식간에 주위가 지저분해졌다.
“죽고 싶나?”
그가 환왕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시야가 좁은 거겠죠. 서부 사람들에게는 서부가 세상의 전부예요. 그러니 남부나 동부의 소문을 들어도 제대로 실감을 못 하는 거죠.”
“우물 안 개구리들인 거군.”
“이놈들이 뭘 여유롭게……!”
베르디안은 고개를 돌려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시리우스 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후우…….”
시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포장을 해서 먹어도…… 이런 놈들이 직접 찾아와서 깽판을 치면 어쩔 수 없구나.”
이번 일은 시리우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식당에서 먹느냐, 배달해서 먹느냐, 포장해서 먹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남들이 식사하고 있을 때는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 그런 예절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한 것이지.”
이걸 보다 일찍 깨달았으면 무림맹에 있을 때 강호에 널리 알렸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강호의 객잔이 매번 박살 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시비가 붙어도 ‘식사 다하고 싸웁시다.’, ‘그게 옳지요.’하고 객잔 바깥으로 나가서, 조용히 지들끼리 싸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리우스는 멱살을 잡힌 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환왕에게 말했다.
“놈들 처분은 큰형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누가 큰형님이냐.”
그 직후.
멱살을 잡고 있던 험상궂은 남자를 비롯해, 가르투스 용병단에서 나온 놈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모두 눈을 뒤집은 채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환왕이 환영 마법으로 무서운 꿈이라도 꾸게 만든 모양이다.
“이것들만 정리하고, 가르투스 용병단한테 갑시다.”
안 그래도 놈들은 그란츠 가문을 줄곧 착취해 왔기 때문에 직접 방문해서 한마디 해 줘야 했다.
게다가 가르투스 용병단이 루시아나의 배후에 있었다면…… 루시아나가 검제의 영향을 받은 검술을 쓰던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찾아가서, 예절 교육을 해 주도록 하죠.”
식사 도중에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 예절부터 가르친 뒤,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