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92화
92화. 서부 흑회는
“연맹 서부 지부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별로 없다.”
뒷정리를 맡긴 뒤, 시리우스는 환왕과 함께 가르투스 용병단으로 향했다.
용병단의 본거지는 말을 타고 한나절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었지만, 경공과 비행 마법을 사용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서부 지역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서 지부장이 몇 번 교체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새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군.”
“베르디안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가르투스 용병단은 연맹 서부 지부와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가르투스 용병단이 뒤를 봐주고 있던 루시아나는 검제의 영향을 받은 검술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르투스 용병단은 검제 파벌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시리우스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저기인 것 같군.”
가르투스 용병단의 본거지는 오래된 요새였다.
옛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가 버려진 요새를 장악하고 본거지로 삼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겠나?”
“굳이 정문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시리우스는 성벽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위치에 착지하자 요새 안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던 놈들이 쳐다봤다.
“뭐야? 어디서 나타났어?”
“…….”
잠시 고민한 뒤, 시리우스는 그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오늘 시리우스는 식사 도중에 시비를 걸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예절을 가르쳐 주러 찾아온 건데, 지금 저놈들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안 들리냐? 어디서 왔냐니까?”
놈들이 시리우스한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환왕의 환영 마법에 걸려든 것이다.
“저 녀석들도 밥 먹는 중이었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나중에 깨서 다시 먹겠지.”
과연 그럴까.
시리우스가 슬쩍 쳐다보니 고기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저쪽인 것 같군, 가자.”
“알겠습니다.”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니 넓은 식당이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중년 남자가 수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천천히 올 걸 그랬군.”
“그러게 말입니다.”
애꾸눈의 남자에게서는 꽤 많은 마력이 느껴졌다.
7서클을 거뜬히 넘어서는 것으로 보였다.
“……?”
식사 중이던 놈들이 고개를 들고 시리우스와 환왕을 쳐다봤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해라.”
“그래, 너희는 제대로 먹어야지.”
“……?”
정체불명의 2인조가 갑자기 나타나서, 팔짱을 낀 채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 편히 식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놈들이군.”
애꾸눈의 남자…… 가르투스가 입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용건이냐?”
“식사하는 데 방해하면 안 된다는 예절을 가르쳐 주러 왔지.”
“방금 너희들이 방해를 했다만.”
“신경 쓰지 말고 먹으라고 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나?”
“식탁을 뒤집어엎은 것도 아니고, 먹으려면 먹을 수도 있지.”
“…….”
“너희는 우리가 먹던 식탁을 뒤집어엎어 놓더군.”
가르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 설마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냐?”
주위의 수하들이 흠칫 놀랐다.
“네가 왜 여기에…….”
“왜긴 왜야. 너희가 우리 식사를 방해했으니 그걸 항의하러 온 거지.”
“어떻게 벌써 온 거지? 말을 달려도 팔라미아에서 여기까지는 한나절은 걸릴 텐데.”
“빨리 오는 방법이 있지.”
“…….”
가르투스가 한쪽 눈으로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비행 마법이군. 그걸 사용해서 요새 안으로 숨어들어온 건가.”
절반은 맞췄다.
시리우스는 경공을 썼지만 환왕은 비행 마법을 사용했으니까.
“시리우스, 이렇게 다짜고짜 우리 본거지로 쳐들어오는 건 비상식적인 일 같은데.”
“우리들의 거처에 찾아와서 식탁을 뒤집어엎은 건 상식적인가?”
“…….”
가르투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부하들이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린 모양이군. 사과하지.”
“사과한다고?”
“그래, 수장으로서 부하들 간수를 제대로 못 한 내 책임도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환왕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우두머리는 좀 낫군. 부하들은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돌대가리들뿐이었는데 말이다.”
“당신은 누구지?”
“몰라도 된다.”
“…….”
가르투스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눈치챘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시리우스.”
가르투스는 다시 시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봤으면 좋겠군. 나도 자네하고 적대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고?”
“그래, 애초에 자네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보낸 거였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르투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 부하들이 무례하게 굴었던 것, 거듭 사과하지. 하지만 그런 일로 우리가 서로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되도록 대화를 통해 양호한 관계를…….”
“개소리를 하는군, 가르투스.”
갑자기 시리우스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왜 그러는가?”
“대화를 통해 양호한 관계를 맺고 싶었으면 부하들한테 제대로 명령을 내렸어야지.”
시리우스는 가르투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 부하들은 모두 완전 무장을 한 채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내가 루시아나를 죽인 걸 따지면서 서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윽박질렀지. 그것조차 네 부하들이 혈기 왕성해서 멋대로 저지른 일이냐?
“…….”
“너는 기선 제압을 하고 싶었을 거다. 그게 안 되더라도 적어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겠지. 내 대응 방식을 보면서 앞으로의 방침을 정할 생각 아니었나?”
가르투스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기도 전에 내가 여기까지 쳐들어왔지. 그래서 너는 다급히 방침을 정한 거다. 일단 사과부터 하면서 대화로 해결해야겠다고.”
“…….”
아까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사과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실제로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였다.
시리우스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으니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러니 가르투스, 내 방침을 말하겠다.”
“시리우스…….”
“오늘부로 가르투스 용병단은 해체한다.”
“……!”
시리우스의 선언에 가르투스가 눈을 크게 떴다.
“너희는 그란츠 가문을 비롯한 여러 가문에게 지나치게 많은 호위비를 받고 있더군. 계약을 해지하려고 하면 협박까지 한다면서?”
“그건…….”
“게다가 주위 도적 떼들과 유착 관계라는 의혹도 있더군. 내가 보기에 거의 확실한 것 같았다.”
도적들에서 지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호위비를 뜯어낸다.
그리고 그 돈은 도적들과 나눠 갖는다.
흔한 수법이었다.
“너희는 내 직속 부대인 천랑검단에 맡기겠다. 쓸 만한 놈들은 그대로 천랑검단의 일원이 될 거고, 영 아니다 싶은 놈들은 팔라미아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될 거다.”
“…….”
“이게 내 방침이다, 가르투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가르투스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르투스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반응했다.
“이런 건방진……!”
근처에 앉아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우리 용병단이 팔라미아의 고만고만한 조직들과 같은 수준이라 생각하는 거냐? 우리 뒤에는 연맹 서부 지부가 있다! 그런 협박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한 놈!”
그때 가르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는 동부 지부와 남부 지부를 연달아 괴멸시킨 남자다. 서부 지부를 들먹인다고 겁먹을 것 같나?”
“앗……!”
“속 터지게 만들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그렇게 쏘아붙인 뒤, 가르투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 보다시피 서부의 흑회 놈들은 대부분 머리가 나쁘다. 혈기가 넘치고, 센 척하는 걸 좋아하지.”
“그런 것 같더군.”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는 놈이 태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굴복시켜도 다른 놈들이 계속 덤벼들 거다.”
“가르투스, 이곳이 그런 지역이라는 건 이미 파악했다.”
시리우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네가 걱정해 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군…….”
가르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른손을 옆으로 치켜들자 근처에 있던 부하가 황급히 일어나서 커다란 물건을 건네줬다.
그것은 육중한 대검(大劍)이었다.
“시리우스, 나는 서부 흑회들 중에서도 나름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남아 큰 조직을 이룰 수 있었지.”
“…….”
“하지만 여기서 아무런 저항도 안 하고 자네한테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나한테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대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가르투스가 눈을 번뜩였다.
“내가 온갖 수모를 견뎌 내며 만들어 낸 가르투스 용병단을 그대로 넘겨줄 수는 없다. 빼앗아 가고 싶다면 나를 죽이고 빼앗아 가라.”
“알겠다, 가르투스.”
시리우스도 요철검을 뽑았다.
상대가 저렇게 정정당당하게 승부에 나선다면 그것에 응해 주는 것이 옳다.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그렇게 소리치면서 가르투스가 뛰어올랐다.
그 여파로 식탁이 흔들렸고, 바닥에 떨어진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흐읍!”
쿠쿵!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대검이 떨어져 내렸다.
일격에 시리우스를 두 조각 내려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천둥 치는 소리를 발생시킨 건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윽……!”
콰쾅!
창뢰의 공력이 실린 요철검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가르투스보다 늦게 움직였지만 검을 움직이는 속도는 가르투스보다 훨씬 빨랐다.
육중한 대검을 튕겨 낸 뒤, 시리우스는 그대로 가르투스의 배후로 파고들었다.
“윽……!”
가르투스의 등줄기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도 가르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합을 지르면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7서클의 마력을 최대한 뽑아내서 극강의 마법검을 만들었다.
“하압……!”
그 순간, 시리우스의 칼날에서 변화가 있었다.
푸른색 뇌기가 사라지고, 새하얀 냉기가 깃들었다.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의 공력.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극음의 기운이 공기를 갈랐다.
콰직!
검과 검이 부딪혔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커다란 대검에 전개되어 있던 마력이 얼어붙었다.
가르투스가 경악했지만 상황을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시리우스의 날카로운 움직임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깨를 노린 일격을 막아내기 위해 가르투스가 대검을 치켜든 순간.
퍼걱!
가르투스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소리와 함께, 대검이 부러졌다.
아니, 깨져 나갔다.
시리우스가 펼친 차가운 기운은 가르투스의 마력뿐만 아니라 칼날까지 얼려 버렸다.
그 상태에서 시리우스가 강한 충격을 줬으니 깨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윽!”
촤악!
시리우스의 검이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피는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차디찬 냉기가 상처를 바로 얼려 버렸으니까.
하지만 가르투스는 검을 놓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헉, 헉…….”
가쁘게 숨을 내쉬는 가르투스.
그가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어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시리우스는 말없이 가르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는…… 부하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가르투스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시리우스…… 님.”
가르투스는 제대로 무릎을 꿇은 뒤,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가르투스 용병단을 해체하고 시리우스 님에게 투항하겠습니다. 제 목숨은 거둬들이셔도 좋으니 부하들 목숨만큼은 살려 주십시오.”
그것은 완패를 인정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일어나라, 가르투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가르투스의 검술은 동부에서 만났던 골고트의 검술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가르투스는 검제의 제자에게 검술을 배운 것이다.
“치료를 마치면 함께 식사를 마무리하자. 서로 식사를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으니.”
“……!”
“얘기는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가 요철검을 검집에 거둬들이자 가르투스는 다시 한번 머리를 깊게 숙였다.
“관대한 조치,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다른 부하들도 허둥지둥 뛰쳐나와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서부 흑회는 이런 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