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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93화 (93/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93화

93화. 나를 중독시키고 싶다면

“서부 지부장이 얼마 전에 바뀐 게 맞습니다.”

상체에 붕대를 감은 가르투스가 물을 마시며 말했다.

“예전 지부장은…… 연맹의 ‘검제’에게서 검술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한테서 조금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걸 또 부하들이나 지인들한테도 전수해 준 건가?”

“네, 원래 저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남들한테도 가르쳐 주는 성격이라서 말입니다.”

가르투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봐, 예전 지부장은 어떻게 됐지?”

환왕이 가르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흑철맹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고 교체된 건가?”

“그런 게 아닙니다.”

“뭐야? 그러면 흑철맹과 싸우다가 죽기라도 했나?”

“그것도 아닙니다.”

가르투스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흑철맹에 투항했습니다. 자기 심복들을 데리고 말입니다.”

“…….”

환왕이 입을 떡 벌렸다.

그 대신 시리우스가 물었다.

“가르투스, 그게 사실인가?”

“네, 시리우스 님. 서부 지부 사람한테 들은 거라 확실합니다.”

“어쩌다가 흑철맹으로 넘어간 거지?”

“모르겠습니다. 나름 야망이 있지 않았을까요?”

“야망이라…….”

“소문에 의하면 흑철맹에서 2인자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환왕을 쳐다봤다.

“그 지부장, 연맹에 있을 때는 서열이 어느 정도 됐을까요?”

“10위 안에도 못 들어가지. 아니, 20위 안에도 못 들어갈 거다.”

환왕이 팔짱을 끼면서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흑철맹 2인자 자리가 더 좋지는 않을 텐데…….”

“저기, 이분은 누구시길래 연맹 내부 사정을 이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가르투스가 묻자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궁금해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그, 그렇습니까?”

“하여간, 그러면 지금 서부 지부는 누가 맡고 있지? 새 지부장이 왔을 텐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연락이 없다고?”

“네, 그래서 서부 지부의 영향하에 있던 흑회들은 다들 당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번 기회에 흑철맹으로 넘어가려는 조직도 많은 것 같더군요.”

“…….”

“연맹이 서부를 아예 포기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시리우스는 환왕과 얼굴을 마주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르겠군.”

환왕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리우스, 자네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연맹 본부는 딱히 각 지부를 그렇게 소중히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 것 같더군요.”

“서부를 아예 포기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하지만 지부장이었던 놈이 배신하고 다른 조직에 가담했는데…… 그냥 조용히 물러서지는 않을 거야.”

실제로 연맹은 환왕의 배신이 확인되자 바로 풍왕 직속의 암살자를 보냈다.

흑철맹으로 넘어간 지부장을 가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저기…… 시리우스 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여기서도 연맹을 상대로 싸우실 겁니까? 그러면 흑철맹하고 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르투스가 그렇게 말하자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가르투스, 나는 딱히 연맹을 쓰러뜨리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네?”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거지. 그동안 연맹과 싸워 온 건 놈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철맹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라면 내가 쓰러뜨릴 대상이다.”

“……!”

가르투스가 숨을 삼켰다.

연맹도, 흑철맹도 전부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발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가르투스, 너희는 크게 신경 안 써도 된다.”

흑철맹이나 연맹과의 싸움에 이 녀석들을 동원할 생각은 없다.

가르투스 정도면 충분히 전력이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굳이 필요 없다.

“천랑검단의 일원으로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것만 생각하면 돼.”

“아…….”

“그동안 줄곧 흑회 생활을 했으니 어색할 수도 있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

이건 알레이온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알레이온이 알아서 잘 적응시켜 줄 것이다.

“일단 지금은 여러 가문들이나 상인들과 맺어 왔던 호위 계약을 재설정하는 것부터 우선해야겠군.”

“아, 알겠습니다.”

“지금 그란츠 가문에 천랑표국의 대표자가 있다. 네가 직접 그 사람을 찾아가서 얘기해.”

“천랑표국……?”

“들어 본 적 없나?”

“아, 들어 봤습니다. 부인께서 이끄는 단체라고…….”

가르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편이 어떤 지역을 뒤집어엎어 놓으면, 부인이 그 지역의 산업을 싹쓸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콤비라고…… 얼마 전에 남부에서 온 상인한테 들었습니다.”

“…….”

틀린 말은 아닌데…… 어째 기분이 나빴다.

* * *

향후의 일을 지시한 뒤, 시리우스와 환왕은 가르투스 용병단의 요새를 뒤로했다.

올 때는 경공과 비행 마법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냥 둘이서 걷고 있었다.

의견 교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검제가 직접 움직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렇게 엉덩이가 가벼운 놈이 아니다. 게다가 제자가 배신했다고 해서 격노할 성격도 아니고.”

“초연한 성격인가 보군요.”

“하지만 부하들은 생각이 다르겠지. 배신자를 척살하기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환왕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새로운 지부장은 검제하고는 관계가 없는 인물이겠지.”

“서부 지부를 검제 파벌이 맡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터졌으니, 그 자리는 자연스레 다른 파벌에 돌아가는 거군요.”

“그래, 뇌제 파벌과 염제 파벌도 동부와 남부를 잃었으니 가능성이 낮아.”

“그러면 대체 어느 파벌에서 새 지부장을 보낼 것 같습니까?”

“…….”

시리우스의 질문에 환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리우스, 연맹에는 세 명의 제(帝)와 다섯 명의 왕(王)이 있었다. 물론, 내가 빠졌으니 이제 왕은 네 명이지만.”

“…….”

“검제, 염제, 뇌제…… 이 세 파벌을 제외하면 네 개의 파벌이 남지.”

환왕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독왕, 풍왕, 빙왕(氷王), 사왕(死王)…… 이렇게 네 명의 왕을 따르는 놈들이 있다. 그들 중에서 새 지부장이 나오겠지.”

독왕, 풍왕, 빙왕, 사왕.

그들이 환왕과 동급인 연맹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런데 빙왕은 이미 북부 지역을 담당하고 있고, 사왕은 지부 일에 관심이 없으니…… 독왕과 풍왕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시리우스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독왕이나 풍왕 중 한 명이 이곳에 직접 나타날 가능성은 없습니까?”

“뭐라고?”

“당신도 예전에는 남부 지부장을 직접 맡고 있었을 텐데요, 환왕.”

“그건…….”

환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그건 내가 따로 부하들이 없었기 때문이지. 부하들도 많은 독왕이나 풍왕이 직접 서부 지역으로 올 리가…….”

환왕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앞쪽에서 짐마차의 행렬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행렬과 충돌하지 않도록 환왕이 길을 비켜 줬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선두에서 마차를 몰고 있던 마부가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했다.

환왕은 됐으니까 어서 지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바로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컥!”

쐐애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비수가 마부의 목에 꽂혔다.

그 모습을 보고 환왕이 눈을 치켜떴다.

“미친놈아, 갑자기 무슨…….”

하지만 환왕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짐마차에 실려 있던 화물 사이에서 흑의인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풍왕의 암살자들입니다.”

“이런 젠장……!”

욕설을 내뱉으면서 환왕이 뒤로 물러섰다.

환왕이 분신을 만드는 사이, 시리우스는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콰쾅!

뇌기가 실린 검이 작렬하자 암살자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시리우스의 움직임은 신속하면서 망설임이 없었다.

“환왕, 잔챙이들은 맡기겠습니다.”

“뭐라고?”

시리우스는 암살자들을 돌파하면서 짐마차 위로 뛰었다.

행렬의 꼬리 부분에서 가장 강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곳에 있는 놈이 진짜다.

그렇게 확신하고 달려들고 있었을 때.

“……!”

야릇한 냄새가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즉각 몸을 비틀었다.

경공을 사용해 억지로 짐마차에서 거리를 벌렸다.

퍼엉!

순간, 짐마차가 폭발했다.

불길이 치솟지는 않았다. 단지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을 뿐이다.

“이건……!”

주위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연기의 정체를 알아채고 환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 독이다!”

환왕이 다급히 마법으로 바람을 만들어 독을 날려 버리려 했다.

하지만 풍왕의 암살자들은 질풍 마법을 전개하면서 환왕을 방해했다.

“크윽……!”

“환왕, 일단 물러나십시오.”

“아, 알겠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환왕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시리우스는 연기 속에 숨은 암살자들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

“커헉!”

시리우스는 검풍으로 연기를 몰아내면서 종횡무진 움직였다.

암살자 한 명이 측면으로 접근하자 뇌기가 실린 좌장(左掌)으로 놈의 복면을 뜯어 버린 뒤 연기 속으로 날려 버렸다.

놈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아무래도 복면이 독을 막아 주는 모양이군.”

풍왕의 암살자들이 독을 사용했다.

게다가 독을 막아 주는 방독면까지 장비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풍왕과 독왕이 손을 잡은 건가?”

쿠쿵!

마지막 짐마차에서 인영(人影)이 튀어나왔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저놈들……!”

후방에서 환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로크와 발라리아! 풍왕과 독왕의 심복이다!”

펄럭이는 옷을 늘어뜨린, 주름살 가득한 노인.

붉은색 옷을 입고 부채를 든, 젊은 여인.

두 사람의 시선이 환왕에게 향했다.

“오랜만이군요, 환왕 전하.”

“건강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어째서 네놈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지? 풍왕과 독왕이 손을 잡은 거냐?”

둘은 환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시로크의 시선이 시리우스에게로 향했다.

“연맹 본부에서 요새 자네 이름이 많이 언급되고 있네. 어떻게 대처할까 여러 의견이 나왔지.”

“그래서 풍왕 파벌과 독왕 파벌이 함께 대처하기로 한 건가?”

“그런 것이지. 운이 나빴군.”

“원래 두 파벌이 친한가 보지?”

“그렇지는 않네.”

시로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풍왕 전하가 서부 지부를 맡게 되셨지. 독왕 전하에게도 지분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즉석에서 동맹이 성립된 것이지.”

“뭐, 뭐라고?”

환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풍왕이 서부 지부를 맡게 되었다고? 서부로 직접 온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환왕 전하.”

풍왕이 서부로 온다.

그것은 풍왕의 암살자들뿐만 아니라 풍왕 직속의 심복들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풍왕 본인과 충돌할 수도 있다.

“서부가 워낙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갑자기 지부장이 배신하지 않나, 흑철맹이라는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까불지 않나…… 환왕 전하와 시리우스 카니스루트도 서부로 왔으니, 풍왕 전하가 직접 챙기기로 하신 것이죠.”

“큭……!”

“뭐, 풍왕 전하가 번거롭지 않으시도록 저희들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로크가 고개를 돌렸다.

“발라리아, 아직 멀었나?”

“이제 다 끝났습니다, 시로크.”

발라리아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붉은색 옷도 그렇고, 부채도 그렇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베르디안의 자매뻘 되는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리우스, 베르디안이 당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베르디안과 가까운 사이인가 보지?”

“가깝다? 글쎄요, 독왕 전하의 총애를 얻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를 과연 가깝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발라리아가 부채를 접었다.

“당신을 죽인 뒤, 제가 직접 베르디안을 처리하러 갈 생각입니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후후…… 시리우스.”

발라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이미 중독된 상태랍니다.”

배후에서 환왕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를 최대한 들이마시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움직이던데…… 사실 연기는 그냥 눈속임이었답니다. 물론 독성은 강하지만 말이죠.”

“…….”

“진짜 독은 아까부터 바람의 흐름을 따라 당신에게 살살 흘려보냈던……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지연성 맹독이죠.”

발라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시리우스에게 다가갔다.

“뿌연 연기를 들이마시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 사이, 당신의 코와 입을 통해 지연성 맹독이 침투하고 있었답니다. 슬슬 효과가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지요?”

바로 앞까지 접근한 발라리아가 부채로 시리우스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베르디안보다 몇 배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고통 없이 죽는 독약이니까. 약간 무섭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발라리아라고 했나?”

“네?”

“미안하게 됐군.”

뚜둑!

목이 꺾인 발라리아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발라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뿌연 연기와는 별개로 묘한 냄새가 날아오고 있다는 건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발라리아는 무색무취의 독이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지만, 시리우스의 감각이면 아주 미약한 냄새까지 구분할 수 있다.

“그 정도 독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발라리아.”

내공으로 해독이 가능한 시리우스를 죽일 수 있는 건…… 전생에서 천랑무제 백무랑을 중독시킨 무형지독 정도다.

“나를 중독시키고 싶다면 적어도 독왕 본인을 데려왔어야지.”

“……!”

조금도 중독되지 않은 모습으로 발라리아를 해치운 시리우스.

그 모습을 보면서 시로크가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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