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94화 (94/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94화

94화. 준비가 필요합니다

“…….”

시로크가 땅에 쓰러진 발라리아의 상태를 살펴봤다.

완전히 숨이 끊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걸 확인하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독왕의 애완견을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군.”

독왕의 애완견.

이 노인이 발라리아를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발언이었다.

“독왕의 독이라는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저런 애송이 하나 죽이지 못하다니…….”

시로크가 혀를 차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시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나이를 헛먹었군, 노인네.”

“…….”

무례한 발언에 시로크가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지금 뭐라고 했나?”

“방금까지 저 여자의 독에 기대하고 있었던 주제에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추하지 않은가?

시로크는 발라리아의 독이 효과를 발휘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효과가 없으니 저런 말을 하는 건…… 꼴사나운 일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원래 그렇게 건방진 성격인가? 지부장 한두 명 죽였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이군.”

시로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리우스,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지부장은 딱히 실력 있는 놈들이 아니다.”

“그런가?”

“지부장들의 역할은 금전과 물자를 확보하는 거다. 실력보다는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을 평가받은 놈들이지.”

그 소리를 듣고,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려 환왕을 쳐다봤다.

“환왕, 당신도 그런 능력을 평가받았던 겁니까? 영 아닌 것 같은데.”

“이 자식이 못 하는 말이 없군…….”

얼굴을 소매로 가린 채 환왕이 투덜거렸다.

이 주변에는 아직도 독이 퍼져 있었기에, 그는 아직 함부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하긴, 조직 관리 능력이 뛰어났으면 계속 남부 지부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겠죠.”

“이 자식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어서 환왕도 반박하지 못했다.

“하여간, 시로크.”

시리우스는 다시 시로크를 쳐다봤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본인 실력이 지부장들보다 뛰어나다고?”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나?”

“솔직한 심정을 밝히시지, 시로크.”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시로크를 향해, 시리우스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풍왕 파벌의 실력자인 본인을 존중해 주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다고 말이야. 어떻게든 존중받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추하군.”

“하하……!”

시로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건방진 놈이구나……!”

시리우스의 도발에 분노하면서 시로크가 날아올랐다.

그러자 주위에 돌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환왕, 주위에 독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물러나 있으십시오.”

“흠, 그렇게 하지. 다음부터는 해독제를 준비해야겠군.”

환왕을 후퇴시킨 뒤, 시리우스는 홀로 시로크와 대치했다.

시로크는 돌풍을 휘감은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근접전에 능한 것 같지만…… 너는 나한테 접근조차 못 할 것이다.”

콰콰콰!

격렬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차가 나뒹굴었고, 마차에 묶여 있던 말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게다가 흙먼지가 날려 앞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시리우스는 기를 뻗어 시로크의 위치를 확인한 뒤, 창뢰의 기운을 실어 비수를 날렸다.

“소용없다!”

콰아아!

비수가 격렬한 바람에 휘말렸다.

결국 비수는 시로크에게 닿지 못한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제법이군.”

“아직도 여유가 있나?”

쿵!

마차가 하늘로 떠올랐다.

심지어 마차를 끌고 있던 말까지.

시로크는 바람의 힘을 활용해 그것들을 시리우스에게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이건 좀 그렇군.”

시리우스는 혀를 차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돌풍 속에서 몸부림치는 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뒤늦게 자유로워진 말들은 다급히 도망쳤다.

“그러고 보니 말들은 독을 들이마셔도 멀쩡했군. 인간한테만 작용하는 독이었나?”

“아직도 여유가 있나……!”

쿠쿵!

여러 대의 마차가 연달아 시리우스를 덮쳤다.

시리우스는 검을 휘둘러 마차를 박살 냈지만, 이번에는 마차 파편을 날려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만천화우(滿天花雨) 같군.”

암기를 비처럼 뿌리는 사천당문의 암기술을 떠올랐다.

부러진 나무 막대나 쇠 막대 등이 돌풍 속에서 잔뜩 날아들고 있어, 조금만 방심해도 몸에 구멍이 뚫릴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천당문의 만천화우보다 대응하기 어려웠다.

마차의 파편들이 워낙 불규칙하게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파편이 날아올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무공으로 이 정도 기술을 펼치려면 몇 갑자의 내공이 필요할까?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역시 마법은 흥미로워.”

“여유로운 척 허세를 부리는구나……!”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치명적인 돌풍 속에서 시리우스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창뢰의 공력을 요철검에 가득 불어넣었다.

시로크가 펼치는 바람의 마법은 확실히 대단하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압……!”

콰릉!

푸른 뇌기(雷氣)가 가득 담긴 요철검이 뻗어 나갔다.

한 줄기 번개가 된 검이 돌풍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방금 전, 시리우스가 날린 비수는 바람에 휩쓸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손바닥 길이 정도밖에 안 되는 비수다.

그렇게 작은 칼날에는 공력을 많이 담고 싶어도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이건 충분한 크기가 있는 장검이다.

게다가 이그레트식 공법으로 가공까지 되어 있다.

창뢰의 공력을 가득 싣는다면 바람을 뚫고 하늘 높이 뻗어 나갈 수 있다.

“아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 솟아오르는 번개.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시로크가 경악했다.

만약 시로크가 미리 대비했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리우스의 검은 어디까지나 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로크는 하늘 위에서 시리우스를 몰아세우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게다가 돌풍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상황을 너무 늦게 파악했다.

“크억……!”

푸욱!

시리우스의 검이 시로크의 복부를 관통했다.

시로크 주위에 전개되어 있던 돌풍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또한 시로크 본인도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시로크를 향해, 시리우스가 도약했다.

“……!”

뇌기를 실은 우장(右掌)을 뻗었다.

복부를 관통당한 채 추락하는 도중이었지만 시로크도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바람의 칼날이 시리우스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오른손에서 분출된 뇌기가 바람의 칼날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시리우스의 오른손이 시로크의 얼굴을 붙잡았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

시리우스는 뇌기를 주입하면서 시로크와 함께 추락했다.

시로크가 발버둥 쳤지만 이미 늦었다.

쿵!

바닥에 추락한 시로크 위에서 시리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시로크는 이미 완전히 숨이 끊어져서 축 늘어져 있었다.

시리우스는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완전히 박살을 냈군.”

환왕이 휘파람을 불면서 다가왔다.

시로크가 발생시킨 돌풍 덕분에 발라리아의 독도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어쨌든,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풍왕과 독왕의 부하들뿐만 아니라 풍왕 본인도 여기로 올 테니까.”

“풍왕은 어느 정도 강합니까?”

“그거야 나도 알 수 없지. 그 녀석과 직접 싸워 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환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쨌든 그 녀석도 9서클의 대마도사다. 줄곧 힘을 갈고닦았을 테니 만만치 않을 거다.”

“…….”

시리우스는 지금까지 두 명의 9서클 대마도사와 싸웠다.

하지만 환왕하고는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게 아니었고, 샤디엔과는 고작 한 수씩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풍왕과의 싸움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독왕의 부하들도 있지만…… 뭐, 자네한테는 문제가 안 되겠군.”

웬만한 독은 시리우스한테 통하지 않는다.

독왕 본인이 온다면 몰라도, 베르디안이나 발라리아 수준이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습니다.”

“뭐라고?”

“저는 괜찮아도 주위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아……!”

환왕조차 독을 피해 물러서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건을 주워 들었다.

그 돌풍 속에서도 멀쩡히 남아 있던…… 발라리아의 부채였다.

* * *

“그렇군요. 발라리아가…….”

시리우스에게서 발라리아의 부채를 받아 들고, 베르디안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친했나?”

“글쎄요. 독왕 전하의 총애를 얻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를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발라리아도 비슷한 말을 하더군.”

“…….”

베르디안이 입을 다문 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발라리아는 베르디안을 죽이려고 했지만…… 베르디안은 발라리아를 친자매처럼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베르디안, 영약 개발과는 별도로 급히 해 줘야 하는 일이 있다.”

“해독제와 내독제를 준비하는 것 말이군요.”

해독제는 이미 독에 중독된 것을 치료하는 약이고, 내독제는 독에 중독되는 것 자체를 막아 주는 약이다.

“가능할까?”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베르디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독왕 전하한테서 직접 독을 전수받은 사람이에요. 웬만한 독은 완벽하게 무효화시킬 수 있어요.”

“믿음직스럽군.”

“그동안 새로운 독약이 개발되었을 수도 있지만 발라리아의 부채에 남아 있는 약물을 분석하면 대처할 수 있을 거예요.”

시리우스가 발라리아의 부채를 주워 왔던 것도 이걸 위해서였다.

“그런데 베르디안, 한 가지 더 있다.”

“또 뭘 시킬 생각이시죠?”

베르디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영약도 만들고, 해독제와 내독제도 만들고, 리알드 님의 치료 약도 만들고……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닌가요?”

“미안하군.”

시리우스가 생각하기에도 일이 너무 많다.

조수를 붙여 주고 싶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일이 아니다.”

“네?”

“굳이 말하자면 교육이라 할 수 있지.”

내공이란 무엇인가.

영약이란 무엇인가.

그런 기본적인 개념은 이미 베르디안에게 알려 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직 시작조차 안 했다.

“베르디안, 운기조식을 하는 방법과…… 내공 심법(心法)을 가르쳐 주겠다.”

“……!”

시리우스는 이 세계에 무공을 보급시킬 생각이다.

치안을 유지하고 악인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무공이 꼭 필요하니까.

그렇기 위해서는 마력이 아니라 내공을 다루는 무인을 육성해야 한다.

베르디안은 그 첫 번째 인물이 될 것이다.

“너는 이미 독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지. 그 상태에서 무공을 익힌다면 상당히 위협적일 거다.”

시리우스는 이미 베르디안을 어떤 식으로 육성할지 생각해 뒀다.

정파 백도 중에서도 독공(毒功)으로 유명했던 사천당문.

만천화우 같은 뛰어난 절기도 보유했던 그들처럼 만들어 주면 된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사천당문의 쟁쟁한 고수들보다 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지식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네 자매들이 너를 습격해도, 자력으로 격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마.”

독왕의 주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무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을 인도해 줄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