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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95화 (95/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95화

95화. 진정한 스승이었다

“베르디안, 내가 너한테 가르쳐 줄 심법은 유운심법(流雲心法)이라 한다.”

천랑신공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베르디안이 배우기에는 너무 어렵다.

시리우스가 가르쳐 줄 수 있는 심법 중에서는 유운심법이 가장 적합했다.

“이 심법은 매우 부드러운 성질을 지녔다.”

“부드러운…….”

“부드럽다는 건 물렁물렁하다는 뜻이 아니다. 쓸데없는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지.”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에게 천천히 설명을 해 줬다.

“유운심법을 익히면 유운진기(流雲眞氣)를 몸에 두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육체를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더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

“베르디안, 너는 마력을 사지에 흐르게 하여 육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몸이었다. 유운진기를 사용하면 마력을 쓸 때보다 더 몸놀림이 좋아질 거다.”

베르디안이 그런 몸을 갖고 있는 건, 독왕이 베르디안의 육체에 손을 써 놨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의 그런 체질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유운심법은 제대로 이해한다면 매우 빠르게 터득할 수 있다. 너라면 금방 입문할 수 있을 거다.”

그동안 베르디안과 함께 영약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베르디안이 무척 똑똑한 녀석이라는 것이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 베르디안이 딱 그런 녀석이었다.

하긴, 그렇게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독왕 밑에서 살아남은 거겠지만.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겠다. 잘 익혀 봐라.”

“네, 시리우스 님.”

이미 베르디안은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스승을 대하는 태도로 경청하는 베르디안에게, 시리우스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 * *

오늘의 교육을 마무리한 뒤, 시리우스는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늦은 밤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리우스.”

그때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리우스가 고개를 들자 환왕이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안을 소홀히 하는군. 내가 다 엿듣지 않았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동안 베르디안한테 내공의 개념을 알려 줄 때도 환왕이 엿듣고 있었지만, 시리우스는 개의치 않았다.

“흐음.”

환왕이 옥상에서 내려왔다.

“역시 자네가 쓰는 힘은 평범한 마법이 아니었군. 무공이라…… 대체 어떤 고서적에서 그런 걸 배웠는지.”

“…….”

“오늘 베르디안한테 가르쳐 준 유운심법이라는 것, 나도 익혀도 되겠나?”

환왕의 질문에 시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겁니다.”

“그렇겠지…….”

베르디안은 서클을 잃은 상태다.

그렇기에 단전에 내공을 쌓을 때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환왕은 무려 9서클의 마력을 지녔다.

가슴에 존재하는 9개의 서클이 내공 운용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공을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서클을 파괴하는 게 가장 빠를 겁니다.”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제자로 받아들여서 내공 심법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쯧, 말도 안 되는 소리.”

환왕이 혀를 찼다.

“제자가 되는 것도 싫고, 서클을 파괴하는 건 더 싫다.”

“그러면 별수 없지요.”

서클을 유지한 상태에서 내공을 획득하는 방법이 있을까?

이건 시리우스도 확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시간을 들여 연구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다른 걸 우선해야 한다.

“한번 스스로 고민해 보십시오.”

“내가 고민하라고?”

“네, 지금의 몸으로 무공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입니다.”

“…….”

환왕은 9서클의 대마도사다.

서클이나 마력의 지식은 시리우스하고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이런 연구는 환왕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봐, 시리우스.”

환왕이 시리우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만약 내가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어쩔 생각인가? 자네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기쁜 일이지요.”

“뭐?”

시리우스의 말에 환왕이 눈을 깜박였다.

“자네보다 더 강해지는 게 기쁜 일이라고? 자네, 생각보다…….”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당신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면 저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죠.”

“…….”

환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쯧, 내가 착각했군. 내가 강해지는 걸 자네가 순수하게 축하해 줄 리 없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시리우스는 천랑무제 백무랑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환왕이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내면 거기서도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열심히 연구해 보십시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되나?”

“베르디안처럼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겁니다. 제자도 아니니까요.”

“쯧, 얄미운 녀석…….”

환왕이 혀를 찼다.

“반드시 무공을 터득해서 자네를 꺾어 주지.”

“건투를 빌겠습니다, 환왕.”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과연 환왕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그런데 시리우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일단 알레이온과 벨리드를 만나서 며칠 검술을 봐줄 생각입니다.”

알레이온은 얼마 전에 5서클에 도달했다.

시리우스가 가르쳐 주는 무림의 검술에 5서클의 마법검을 조합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

벨리드도 오만 번의 삼재검법 수련을 마치고 나름 무인다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서클을 유지한 채 무림의 검술을 배운 그들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할지, 시리우스는 계속해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을 부탁한 뒤, 팔라미아를 떠날 예정입니다.”

그란츠 가문을 아군으로 만들었고, 가르투스 용병단도 제압했다.

이제 팔라미아 일대는 천랑검단의 힘만으로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팔라미아를 떠나겠다고?”

환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풍왕이나 독왕의 부하들이 팔라미아를 습격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뭐?”

“제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요.”

시로크와 발라리아가 쓰러졌으니 놈들도 시리우스를 죽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해했을 것이다.

모든 전력을 시리우스에게 집중시키는 편이 낫다.

“제가 어디로 가는지 드러내면서 움직이면 놈들은 저를 쫓아올 겁니다.”

“그래도 베르디안을 노릴 텐데?”

“베르디안도 데리고 다녀야죠.”

“뭐? 약을 조제하게 한다며?”

“베르디안의 능력이면 리알드 님의 치료약과 해독제, 내독제는 며칠 안에 다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베르디안은 매우 우수하다.

팔라미아를 떠나기 전에 다 만들어 줄 것이다.

“문제는 영약인데, 어차피 지금 당장은 완성할 수 없습니다. 재료가 부족하거든요.”

“재료?”

“유스티아를 통해 적염초를 보내 준 레스파다 가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가주님이 약초 전문가라고 하니 방문해서 약재를 얻어 볼 생각입니다.”

잘하면 적염초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흐음, 베르디안을 데리고 다니면서 영약의 재료를 확보하겠다는 건가.”

“내공심법도 가르치면서 말입니다.”

“그런 거면 나도 함께 가는 수밖에 없겠군.”

지금 연맹의 표적은 시리우스와 베르디안, 환왕이다.

함께 몰려다녀야 놈들을 유인하기도 더 쉬워질 것이다.

“영약의 재료를 확보하면 어떻게 할 건가?”

“흑철맹을 쳐야죠.”

서부의 질서를 확립하려면 서부 최대의 세력인 흑철맹을 반드시 쓰러뜨려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에른스트 가문도 방문하고 싶습니다.”

“…….”

에른스트 가문.

그 이름을 듣고 환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에른스트 가문 말이군.”

“네, 거기도 9서클의 대마도사가 있죠. 하지만…… 서부 지역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부 연합의 스트라우스 가문보다 못하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 활동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봉문(封門)’ 상태였다.

“그러니 에른스트 가문을 찾아가서 그 진의를 물어볼 생각입니다.”

“흠, 재미있겠군.”

환왕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에른스트 가문의 가주 놈을 만나 보고 싶었다. 그 녀석도 10서클을 노리고 있을 텐데 어떤 힘을 가졌을지 궁금하군.”

* * *

팔라미아를 떠나는 날.

시리우스는 알레이온과 벨리드에게 대련을 시켰다.

“그만.”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시리우스는 대련을 중지시켰다.

“두 사람 다, 잘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실력 격차가 컸다.

그럼에도 대련이 30분이나 이어진 건, 벨리드가 방어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알레이온, 네가 벨리드를 압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벨리드의 방어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알레이온이 분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는데, 너무 탄탄했습니다.”

“그래, 삼재검법은 세 가지 동작밖에 없지만 제대로 수련하면 충분히 실전성이 있지.”

“네, 예전보다 훨씬 실력이 늘었습니다. 성장이 매우 빠릅니다.”

이어서 시리우스는 벨리드에게 시선을 향했다.

“벨리드, 이게 만약 실전이었다면 네가 30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벨리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이게 대련이었기 때문이야.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으면 당해 낼 수 없었을걸.”

“그래, 마법검 실력도 알레이온이 더 뛰어나니까.”

“맞는 말이야. 나는 아직 더 수련이 필요해.”

알레이온도 벨리드도 냉정하게 이번 대련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동안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시리우스는 만족감을 느꼈다.

“좋아. 그러면 나도 안심하고 팔라미아를 떠날 수 있겠군.”

“아,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지?”

“그래, 그러니 너희들이 팔라미아를 책임지고 지켜.”

“흠, 천랑검단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뭐.”

벨리드가 태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알레이온이 입을 열었다.

“단주님, 벨리드도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시리우스도, 벨리드도 알레이온을 쳐다봤다.

“벨리드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실전 경험이 부족합니다.”

“…….”

“팔라미아에 머물러 봤자 잔챙이들 상대밖에 못합니다. 차라리 단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목숨을 건 싸움을 경험하게 해 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

벨리드가 입을 벌린 채 알레이온을 쳐다봤다.

원래 알레이온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벨리드를 자주 구박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아랫사람 취급하면서 벨리드의 자존심을 긁어 댔다.

그렇기에 설마 알레이온이 이런 말을 해 줄 거라고는 예상 못했던 것이다.

“팔라미아는 저와 천랑검단에 맡겨 주십시오. 이런 녀석 없어도, 제가 책임지고 지켜 내겠습니다.”

“…….”

시리우스는 말없이 알레이온을 쳐다봤다.

그리고 알레이온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알레이온은 칼슈타인 검단의 6석으로서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만 복종하고 있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알레이온은 명백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내가 너를 거둬들이길 잘했군, 알레이온.”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알레이온이 미소를 지었다.

“알겠다. 벨리드는 내가 데려가지.”

“감사합니다, 단주님.”

벨리드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벨리드를 내버려 둔 채 시리우스는 알레이온에게 말을 건넸다.

“알레이온,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를 단주라고 부르지 마라.”

“네?”

천랑검단이 창설된 이래, 알레이온은 시리우스를 계속 단주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부르면 안 될 것이다.

“정식으로 천랑검단의 지휘권을 맡기겠다. 이제부터 천랑검단의 단주는 너다.”

“……!”

알레이온이 눈을 크게 떴다.

“다, 단주님, 그게 무슨…….”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천랑검단주.”

“……!”

천랑검단의 단주.

그것이 알레이온의 새로운 직책이었다.

“알레이온, 너는 더 이상 희생당할 뿐인 6등이 아니다. 많은 사람을 이끄는, 한 집단의 수장이다.”

시리우스는 알레이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라.”

“윽…….”

알레이온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원래 알레이온은 칼슈타인 검단에 이용만 당하다가 개죽음을 당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를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윗사람의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원대한 이상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전 스승이었던 칼슈타인처럼 검단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알레이온은 칼슈타인처럼 행동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동안 시리우스를 보면서 배운 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깊은 감사를 담아, 알레이온은 고개를 숙였다.

시리우스야말로 알레이온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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