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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103화 (103/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03화

103화. 미인계가 통하지 않은 건

서남부의 대표적인 대도시, 로스본.

그곳에 도착한 시리우스 일행은 유흥가에서 가장 커다란 주점인 ‘로스본 클럽’을 방문했다.

말이 주점이지, 실제로는 도박장이나 투기장 등과 결합된 복합 유흥 시설이었다.

“역시 서부는 유흥업이 발달했나 보네.”

요란한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는지 벨리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흑회 세력이 강한 거랑 관계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환왕이 술병을 손으로 따면서 말했다.

“흑철맹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런 유흥업이 더 발전했다고 하더군. 아무래도 흑철맹은 기존 흑회 조직들이 장사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걸 중시하는 모양이야.”

“장사하는 방식을……?”

“지난번에 통행료를 받던 산적들도 뭔가 달랐잖아? 말단 조직들까지 철저히 관리하면서, 이렇게 해서 돈을 벌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는 거지.”

연맹의 남부 지부도 중소 조직들을 철저히 관리했다.

하지만 계단식 구조를 통해 지배력을 확보하려 했을 뿐, 각 조직들의 영업 방침까지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세력을 넓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발전시킨다…… 자네들 부부 같군. 안 그런가?”

“그런 측면도 있긴 하군요.”

시리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흑철맹의 방식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어째서지?”

“지하 경제에 치중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동안 서부를 돌아다니면서 살펴보니 흑철맹은 철저히 흑회들을 통해 돈을 벌어들였다.

유스티아가 천랑표국을 운영하면서 건전한 상공업 거래로 돈을 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유흥업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술집이나 도박장에서 너무 돈을 많이 쓰게 되면 결국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줍니다.”

“흐음…….”

“유흥업뿐만이 아닙니다. 상인들에게서 보호비를 체계적으로 뜯어낸다고 사회가 발전합니까? 행인들에게서 통행료를 체계적으로 뜯어낸다고 사회가 발전합니까? 결국 흑철맹은 흑회들만 배부르게 할 뿐입니다.”

흑철맹은 흑회 조직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줬다.

중소 조직 사이의 다툼도 없어졌기 때문에 서부의 흑회 조직원들은 역대 최고로 등 따습고 배부른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일반인들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에 전혀 기여를 못 하는 거군.”

“아니, 흑회가 사회에 기여하는 게 이상한 일일 텐데.”

벨리드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리자 환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봐, 흑철맹도 결국 흑회야. 흑회한테 사회 공헌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흑철맹은 대륙 전체를 지배하겠다고 떠들어 대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흑철맹은 단순히 서부 지역의 흑회들을 통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부 전체의 지배자가 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놈들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면서 대륙 전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이 들게 만들어 줘야죠.”

“흠…… 그렇군.”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갑자기 주위에서 함성이 터졌다.

주점 한가운데에 마련된 육각형의 링 위에서 베르디안이 채찍을 거둬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변,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3연승을 거뒀던 수수께끼의 채찍녀가 무패(無敗)의 검투사 칼루스한테도 압승을 거뒀습니다!”

사회자의 호들갑대로, 베르디안은 대전 상대를 채찍으로 제압한 상태였다.

이 로스본 클럽에서는 매일같이 이런 경기가 열린다.

물론 평범한 경기가 아니라 돈이 걸린 도박이다.

주로 전문 검투사들이 싸움을 벌이지만 일반인도 링 위에 오를 수 있다.

“역시 내가 기대한 대로였군, 수수께끼의 채찍녀.”

“큭큭, 승리 축하한다, 수수께끼의 채찍녀.”

“잘 싸웠어, 수수께끼의 채찍녀!”

“다들 입 닥쳐 줄래요?”

자리로 돌아온 베르디안이 얼굴을 붉혔다.

본명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익명으로 참가했더니 이상한 별명이 붙어 버렸다.

“어때, 여유롭게 이겼지?”

“네, 조금 양심에 찔리지만요.”

이번에 베르디안은 내공을 사용하면서 싸웠다.

그렇기에 근육이 울퉁불퉁한 전문 검투사들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래도 경기장이 좁아서 채찍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그래, 오늘 경험을 잊지 마라.”

이번에 시리우스가 베르디안을 경기에 참가시킨 건, 베르디안한테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베르디안은 무공을 사용해서 싸워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오늘 같은 훈련도 필요하다.

“좋아, 그러면 나도 출전해 볼까?”

벨리드가 팔을 걷어붙이면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베르디안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마법 없이는 쉽지 않을걸요. 다들 실력이 좋았어요.”

“나를 얕보지 말라고, 수수께끼의 채찍녀.”

“누가 수수께끼의 채찍녀인가요.”

베르디안의 지적대로, 마법을 못 쓰면 벨리드의 전투력은 상당히 저하된다.

그동안 벨리드가 삼재검법을 열심히 수련했다고 해도, 전문 검투사들 상대로는 쉽게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다.

흠씬 두들겨 맞고 나면 벨리드도 그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녀와라. 나는 상대편에게 돈을 걸도록 하지.”

“큰형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누가 큰형님이야.”

환왕의 배웅을 받으면서 벨리드가 출전 접수를 하러 떠났다.

남은 사람들끼리 술을 더 시키려고 하고 있었을 때.

“손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쑥한 제복 차림의 점원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저희 대표님이 여러분을 초대하셨습니다. 귀빈 전용 룸으로 옮겨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잠시 시선을 교환한 뒤,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혼자서 다녀오려고?”

“네, 큰형님하고 막내는 여기서 셋째가 경기하는 거나 구경하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저 혼자 가는 걸 더 환영할 테고 말입니다.”

* * *

점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붉은색 융단이 깔린 복도를 걸어 도달한 곳은, 화려하게 장식된 방이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시리우스를 맞이한 건 이십 대 후반 정도의 외모를 지닌 미녀였다.

청순함과 요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저는 이 로스본 클럽의 대표를 맡고 있는 에틸라나라고 합니다.”

“나이가 젊은 것 같은데, 이렇게 큰 점포를 책임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겉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건가?”

“후후, 여자의 나이를 묻지 말아 주시죠.”

에틸라나가 눈웃음을 치면서 대답을 피했다.

“어쨌든,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시리우스 님.”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시리우스는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리우스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여기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거지?”

“그야 시리우스 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지요.”

시리우스가 소파에 앉자 에틸라나는 바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리우스에게 술잔을 건넸다.

“시리우스 님이 서부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희도 거친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다 보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요.”

“거친 사람들이라.”

시리우스는 망설이지 않고 술잔을 받아 들었다.

“흑철맹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에틸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우스 님, 이 점포에서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흑철맹으로 갑니다.”

“…….”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저한테는 남는 것이 없지요. 이렇게 착취당하면서 장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리우스는 술을 홀짝이면서 에틸라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꽤 비싼 술인지, 술맛이 아주 좋았다.

“솔직히 점포를 접고 다른 사업을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다른 사업이라…….”

“네, 더 이상 흑회와 엮이고 싶지 않거든요.”

바로 시리우스의 술잔을 채워 주면서 에틸라나가 말했다.

“듣자 하니…… 부인께서 천랑표국이라는 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다던데.”

“그렇지.”

“아주 장사가 될 된다고 하던데요. 부인께서 매우 능력이 출중하신가 봅니다.”

에틸라나가 몸을 더 앞으로 내밀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똑똑하신 분이라고 서부에도 소문이 들려오는데…… 그렇게 완벽한 분과 결혼해서 좋으시겠어요.”

“딱히 완벽한 건 아니야.”

“그런가요? 아니, 능력도 좋고 가문도 좋고, 심지어 소문으로는 상당한 미녀라고 하던데, 대체 뭐가 부족한가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에틸라나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이건 전부 에틸라나의 ‘기술’이다.

많은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칭찬해 주면 머쓱하면서 ‘에이, 꼭 그렇지도 않아.’라고 말하며 아내의 단점을 입에 담는다.

거기서 단서를 잡아 교묘한 화술로 대화를 이어 가며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그 불만에 공감해 주면서 살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유부남 상대로 미인계를 시도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흠…….”

시리우스가 생각에 잠겼다.

에틸라나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시리우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해 보니 딱히 부족한 게 없군.”

“네?”

“능력도 있고, 내 생각을 존중해 주고, 가끔 부탁도 안 했는데 도움을 주고……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딱히 완벽한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당황하는 에틸라나 앞에서 시리우스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 불만스러운 부분이 하나도 없군. 그러니 아내로서는 완벽하다고 해도 되려나?”

“부, 불만이 전혀 없으시다고요?”

“그래, 전혀.”

시리우스는 담담히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완벽한 아내지.”

“…….”

완벽한 아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 아내를 이렇게 칭찬하는 남자는 드물다.

“부인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모양이군요…….”

문득 에틸라나는 얼굴도 모르는 유스티아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시리우스 같은 남자에게서 이런 사랑을 받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글쎄,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쑥스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요.”

“아니라니까.”

강경하게 부정하는 시리우스를 보면서, 에틸라나는 살짝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에틸라나의 기술은 시리우스에게 먹히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기술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리우스 님.”

시리우스에게 새 술을 따라 주면서, 에틸라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슨 얘기지?”

“흑철맹 얘기 말입니다. 솔직히 저희는 흑철맹이 지긋지긋해서요.”

그렇게 말하면서 에틸라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귓가로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목덜미를 드러내기도 했고, 혀로 입술을 적시기도 했다.

“시리우스 님이 도와주신다면 저희는 흑철맹에서 발을 빼고 시리우스 님 쪽으로…….”

“이봐.”

바로 그때.

시리우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에틸라나를 노려봤다.

“자꾸 이상한 가루를 뿌리지 마. 술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네?”

파팟!

갑자기 시리우스가 손을 뻗어 에틸라나의 몸을 찔렀다.

그 순간, 에틸라나는 갑자기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기껏 좋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말이야. 향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군.”

“읍, 읍…….”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시리우스는 손가락으로 몸 곳곳을 찔러 댔을 뿐인데, 마치 마비약을 먹은 것처럼 전신이 굳어 버렸다.

“이봐, 에틸라나.”

“읍…….”

“나는 그런 약물들에 현혹되지 않아.”

“……!”

모조리 간파당한 걸 깨닫고, 에틸라나는 경악했다.

방금 전 에틸라나의 동작들은 시리우스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최면 상태로 빠뜨리는 약물을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에틸라나의 머리카락에도, 귓불에도, 심지어 입술에도 약물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리우스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충분히 약물이 뿌려졌을 텐데 시리우스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약물을 쓰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나는 마교의 미혼술(迷魂術)도 섭혼술(攝魂術)도 견뎌 낸 사람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쓸데없는 짓이었어.”

“읍…….”

“말해 두지만, 딱히 내가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미인계가 안 통한 건 아니다. 그 점은 오해 말고…….”

그렇게 부연 설명까지 한 뒤, 시리우스가 술잔을 비웠다.

“에틸라나,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네 스승이 흑철맹 5인회의 일원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

“서부에서 가장 실력이 있었던 다섯 조직이 흑철맹에 굴복하면서 5인회가 되었다고 하지. 그중에서도 산중노인회라는 놈들이 무섭다던데.”

산중노인회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부 최대의 암살자 집단이다.

에틸라나의 미인계와 약물도 산중노인회가 사용하는 수많은 기술 중 하나에 불과했다.

“네가 나한테 미인계를 쓰고 약물을 먹이려 했던 것도 산중노인회의 명령이었겠지. 산중노인회도 나름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걸 듣고 싶군.”

“……!”

“물론 너도 산중노인회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겠지.”

시리우스는 품에서 작은 약 봉투를 꺼냈다.

“그래서 정보를 술술 털어놓고 싶어지는 약을 준비했다. 우리 막내가 만들어 줬지.”

“……!”

“물론 네가 나한테 먹이려 했던 것처럼 사람 마음을 현혹시키는 약은 아니다. 그냥 독약이니까.”

“……!”

술에 독약을 타면서,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면 해독제를 줄 거다. 하지만 네가 입을 꾹 닫고 침묵한다면…… 뭐,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

“한잔해라, 에틸라나.”

시리우스가 에틸라나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네 미인계가 통하지 않은 건 내가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다. 오해 말도록…….”

그게 두 번씩이나 말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고 느끼면서, 에틸라나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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