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106화 (106/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06화

106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그동안 시리우스는 제피로스 얘기를 하면서 ‘맹주’라는 호칭을 사용한 적이 없다.

흑철맹의 우두머리, 흑철맹의 수장…… 이런 식으로 말했을 뿐이다.

이건 시리우스가 맹주라는 호칭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맹주는 그야말로 한쪽 진영을 아우르는 거대 연맹의 수장이나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리우스는 맹주를 자처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작 서부 흑회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인 제피로스가 맹주를 자처하니…… 코웃음만 나왔다.

“제피로스, 네 주제에 무슨 맹주냐. 어디 상단(商團)에 앉아서 사업 구상이나 하고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데.”

“뭐, 뭐라고?”

“내 말이 틀렸나?”

시리우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서부를 둘러보니 장사 수완이 매우 뛰어나더군. 크고 작은 흑회 조직을 통폐합해서 돈벌이를 가르쳤더구나. 덕분에 서부 흑회들은 아주 등 따습고 배부르게 지내고 있더군.”

“그, 그게 어쨌다는 거냐!”

제피로스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원들이 배불리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건 당연한 의무일 텐데?”

“그래, 그건 나쁘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맹주’로서는 부족함이 많지.”

“뭐……?”

“너는 단순히 흑회 연합의 수장이 아니라 서부 전체를 지배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 같더군. 심지어 대륙 전체의 군주가 되겠다고 하더군. 그런 놈이……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뜯고 행인들에게 통행료를 뜯으라고 부하들에게 가르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도록 도박장 이용을 장려해?”

시리우스는 제피로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피로스, 너는 피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적이다. 너 같은 놈이 대륙의 지배자가 될 수는 없어.”

“지, 지금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

제피로스가 다급히 항변했다.

“지금 내 밑에는 흑회밖에 없단 말이다! 나한테도 천랑표국 같은 조직이 있었다면…….”

“아니, 너한테 천랑표국이 있었다면 온갖 더러운 방식으로 돈을 긁어모았겠지. 결국 지역 경제에는 조금도 이바지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유스티아는 아주 건전한 방식으로 천랑표국을 운영하고 있다.

천랑표국이 진출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는 것도, 그만큼 유스티아가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진행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단 말이다! 나중에 내가 대륙의 패권을 잡으면 그것도 전부…….”

“민중을 등쳐 먹은 돈으로 세상을 손에 넣은 뒤, 다시 민중에게 돌려주겠다고? 참 훌륭한 지도자로군. 민중들한테 먼저 물어보고 진행하면 어떨까?”

“……!”

말문이 막힌 제피로스를 향해, 시리우스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제피로스, 젊은 나이로 서부 흑회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일대 세력을 구축한 네 수완은 인정하마. 하지만 거기까지가 네 한계다.”

“시리우스, 네놈……!”

“그걸 인정 못 하고 헛된 꿈에 취해 있다면…… 내가 두들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해 주마.”

가차 없는 독설.

제피로스의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자존심에 죽고 자존심에 사는 서부 흑회의 남자로서, 이런 모욕은 견딜 수 없었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시리우스!”

전신으로 거센 마력을 뿜어내면서, 시리우스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 * *

시리우스와 제피로스가 대치하는 사이, 환왕은 서부 지부장이었던 카슈람과 마주하고 있었다.

“환왕, 시리우스와 행동을 함께하고 있던 겁니까? 대체 언제부터?”

“꽤 됐다. 서부 지부장을 그만두는 바람에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나 보군.”

카슈람이 환왕을 노려봤다.

“어째서 연맹을 배신한 겁니까?”

“딱히 배신한 건 아니다만.”

“뭐라고요?”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

“정작 연맹을 배신한 건 자네 아닌가?”

환왕의 질문에 카슈람이 인상을 찡그렸다.

“더 이상 연맹 밑에서 일하는 것에 의미를 못 느끼게 되었을 뿐입니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리고 있는 연맹에 미래는 없습니다.”

“헛소리를 하는군. 결국 검제 녀석한테 인정받지 못해서 화난 것 아닌가?”

“무슨 말을…….”

“지부장으로 보냈다는 것 자체가, 검제 녀석이 자네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 마음에 드는 제자는 곁에 두는 게 검제 녀석이니까 말이다.”

“…….”

“검제 녀석한테 제대로 된 절기 하나 배운 것 있나? 없지?”

카슈람이 입술을 깨물었다.

환왕의 도발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단 말이지? 아무리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하필이면 흑철맹 아래로 기어들어 가나? 제피로스가 자네보다 더 급이 높은 인물 같지는 않은데?”

이건 환왕이 계속 의문을 느꼈던 부분이다.

제피로스는 아직 나이도 젊고, 미숙한 부분이 많다.

카슈람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대단한 인물 같지는 않았다.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환왕.”

카슈람은 대답을 거부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알려 드리죠.”

“뭘?”

“시리우스 카니스루트가 아무리 대단해도…… 제피로스에게 승리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

“원래는 저희 둘이서 함께 시리우스를 제압할 생각이었지만 제피로스 혼자여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카슈람의 목소리에는 제피로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어째서 저 애송이를 저렇게 신뢰하는 거지? 서부 지부장까지 된 녀석이.”

“그 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군요.”

“뭐라고?”

“당신이야말로 왜 시리우스 같은 애송이에게 붙은 겁니까? 환왕까지 된 사람이 말입니다.”

“…….”

그 순간, 환왕은 카슈람이 자신과 닮은꼴이라는 걸 깨달았다.

환왕은 9서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리우스라는 애송이와 함께하고 있다.

카슈람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피로스라는 애송이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제피로스는 무슨 힘을 갖고 있는 거지?”

“그걸 알 필요는 없습니다, 환왕.”

카슈람이 손을 치켜든 순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숨어 있던 카슈람의 심복들이 뛰어올랐다.

“당신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요!”

“하하……!”

환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검제 본인이라면 몰라도 겨우 그 제자한테 당할 것 같으냐!”

그 순간, 환왕의 마법이 전개되었다.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인물을 환영 공간 속에 가두는, 환왕 스스로 만들어 낸 고유 마법이었다.

“……!”

카슈람뿐만 아니라 그 심복들도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 한 사람도 저항할 수 없었다.

“여기는……!”

“카슈람 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흑철맹의 성채 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용암이 분출하는 화산 지대에 있었다.

“동요하지 마라!”

카슈람은 심복들에게 소리쳤다.

“전부 환상이다! 실체가 아니니 동요할 필요 없다!”

“그래, 전부 가짜다.”

머리 위에서 환왕의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땅이 갈라지면서 튀어나온 화룡이 카슈람의 심복 하나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가짜에게 당해도 목숨을 잃는 건 마찬가지니……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거다.”

“……!”

쿠쿠쿵!

화산이 폭발하면서 막대한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염제의 화염 마법을 방불케 하는 열기가 카슈람과 심복들을 덮쳤다.

“이런 마법은 지속 시간에 한계가 있다! 최대한 버티면 되니 흔들리지 마라!”

“그래, 한계가 있지. 하지만 9서클의 대마도사인 내가 한계에 도달하는 게 빠를까, 아니면 자네들이 한계에 도달하는 게 빠를까……?”

콰앙!

땅이 갈라지면서 용암 거인이 솟구쳤다.

심복들이 검을 휘두르며 거인을 공격하려 했지만, 칼날은 용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카, 카슈람 님, 끄아악……!”

“큭……!”

용암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심복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카슈람은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이 공간 어디에 환왕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 환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카슈람이 이길 수 있다.

“어디냐, 환왕……!”

어차피 환왕은 직접적인 전투력은 약한 편이다.

접근할 수만 있다면 8서클인 카슈람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숨통을 끊을 수 있다.

문제는 환왕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디냔 말이다……!”

그렇게 소리치면서 카슈람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마법검이 기둥처럼 거대해졌다.

허공을 향해 휘두르자 공간 자체에 균열이 발생했다.

“어이쿠, 위험하군.”

하지만 환왕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시리우스한테 당한 적이 있어서 말이다. 웬만해서는 공간이 붕괴하지 않도록 개량해 놨지.”

“크윽……!”

콰콰쾅!

무수히 많은 화룡이 카슈람을 향해 쇄도했다.

카슈람은 이를 갈면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이 공간 어딘가에 숨어 있는 환왕에게 칼날이 닿기를 기도하면서.

* * *

“커헉……!”

쿠웅!

제피로스가 공중을 날아 성벽에 처박혔다.

시리우스를 향해 돌진해 왔지만 곧바로 시리우스의 반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날아간 것이다.

“…….”

하지만 시리우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뼈가 분쇄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할 타격을 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제피로스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피로스, 방금 뭘 했지?”

시리우스는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신으로 마력을 분출하지 않았나?”

방금 전, 제피로스는 온몸으로 마력을 뿜어 댔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육체에 두른 채 시리우스에게 돌격했다.

시리우스의 주먹을 맞고도 제피로스가 멀쩡한 건, 전부 그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몸을 일으킨 제피로스가 이곳저곳에서 먼지를 털어 내며 말했다.

“주먹이 매섭군. 나하고는 달리 맨몸인데도 말이야.”

“…….”

“검을 뽑고 마법검을 펼쳐라, 시리우스.”

제피로스가 두 팔을 벌린 채 시리우스를 노려봤다.

“맨손으로 싸우면 너무 위험할 테니까.”

쿵!

굉음과 함께 제피로스가 움직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전신에 마력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리우스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

쿠웅!

시리우스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피로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시리우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측면을 노리고 달려든 제피로스의 모습이 보였다.

제피로스가 뻗은 주먹이 시리우스의 어깨를 스쳤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옷이 찢어져 나갔다.

시리우스는 경공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제피로스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단숨에 거리가 좁혀졌다.

“하압……!”

쿠쿵!

시리우스의 몸이 튕겨 나갔다.

이번에는 시리우스가 성벽에 처박힐 차례였다.

“헉, 헉…….”

근처에 착지한 제피로스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검을 뽑으라고 말했을 텐데 시리우스.”

“…….”

“뼈 몇 군데는 부러졌나? 혹시 벌써 죽은 건 아니겠지?”

제피로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리우스는 지금 상황을 분석했다.

“그렇군.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이유를 알겠다.”

제피로스의 움직임은 이 세계의 마법사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무림의 무인들과 비슷했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손에 넣은 건가, 제피로스.”

“그래, 시리우스.”

제피로스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별한 마법을 손에 넣어서 강해진 건 너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

이것이 제피로스가 ‘세계를 지배하겠다.’라는 거대한 꿈을 꾸게 된 이유였다.

원리는 마법검과 비슷했다.

칼날을 마력으로 코팅해서 마법검을 펼치듯이, 육체를 마력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걸 통해 제피로스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7서클이지만, 내 전투력은 8서클인 카슈람을 능가해. 만약 내가 8서클이나 9서클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연맹이나 대륙 5대 명가의 대마도사들도 모조리 제압할 수 있겠지.”

제피로스는 오른손을 쥐면서 마력을 집중시켰다.

막강한 파괴력을 갖게 된 주먹을 확인하면서, 제피로스는 계속 떠들어 댔다.

“그러니 시리우스, 더 이상 까불지 말고…….”

하지만 제피로스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방금 전 성벽에 처박혔던 시리우스가 아무런 상처 없는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너, 어떻게…….”

“제피로스.”

몸에서 먼지를 털면서, 시리우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측근 중에 벨리드라는 놈이 있다.”

“뭐?”

“나는 그 녀석에게 기본적인 검술을 계속해서 반복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 그놈이 이만 번을 달성하더니 슬슬 검술을 알겠다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떠들어 대더군.”

“……?”

“그래서 내가 말해 줬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아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제피로스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제피로스, 너도 그 정도 수준이다.”

“뭐, 뭐라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세계를 지배한다? 9서클 대마도사까지 쓰러뜨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니까 할 수 있는 얘기다.”

시리우스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단언했다.

“네가 진정으로 강해지려면 네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라는 걸 깨달아야 할 거다.”

“무슨……!”

쿵!

제피로스가 다시금 돌진했다.

방금 전의 공격과는 달리, 마력을 오른쪽 주먹에 최대한 집중시킨 상태였다.

이 주먹으로 후려치면 성벽에도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시리우스라고 해도 이걸 정통으로 맞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제피로스는 시리우스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

하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끄떡하지 않았다.

뒤로 밀려나지조차 않았다.

성벽에도 균열을 낼 수 있는 제피로스의 타격을, 그냥 몸으로 받아 냈다.

“아……!”

그리고, 제피로스는 깨달았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한 자신처럼, 시리우스도 무언가를 몸에 두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제피로스가 전개한 마력보다 명백히 견고했다.

“시리우스, 이게…….”

이게 무엇이냐.

그렇게 질문하려던 제피로스에게, 시리우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신강기(護身罡氣).”

시리우스가 뻗은 주먹이 제피로스의 복부에 꽂혔고, 제피로스는 왈칵 피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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