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07화
107화. 진정한 맹주
“커헉!”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밀려 나갔다.
제피로스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을 육체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졌다.
단순한 충격이 아니다. 내장까지 도달하는 묵직한 일격이었다.
“으윽……!”
제피로스가 다급히 물러서려 했다.
전신에 전개한 마력은 단순히 방어력만 향상시켜 주는 게 아니다. 제피로스는 이 마력을 활용해 자신의 속도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더 빨랐다.
“윽……!”
쿠웅!
다시 한번 뻗어 온 시리우스의 주먹을, 제피로스는 두 팔을 교차해서 막아냈다.
뼛속까지 울리는 타격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 걸까.
제피로스는 의문을 느꼈지만, 고민에 잠겨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마력을 더욱 끌어 올려 팔에 집중시켰다.
시리우스의 다음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에 치중하기로 한 것이다.
꽈앙!
이번에는 제피로스도 밀려나지 않았다.
두 팔을 사용해 시리우스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공격에 견디고 있으니 시리우스의 우측 옆구리 쪽에서 빈틈이 보였다.
그곳을 노리고 마력을 실어 주먹을 뻗은 순간.
“윽……!”
그건 시리우스의 함정이었다.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했던 시리우스가 오른손을 뻗어 제피로스의 팔뚝을 후려쳤다.
제피로스의 주먹은 허공을 꿰뚫었을 뿐이고, 커다란 빈틈이 생겼다.
그 빈틈을 시리우스의 오른쪽 발이 파고들어 왔다.
쿵!
마치 공성추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제피로스는 멀리 날아갔다.
“커헉……!”
망루에 처박힌 제피로스는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하지만 덕분에 거리가 벌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제피로스는 시리우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도 같은 마법을 터득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 시리우스는 모종의 힘으로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제피로스를 날려 버린 공격만 해도, 인간의 근력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마력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제피로스하고는 명백히 다른 방식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아니…… 어떻게 저런 힘을 손에 넣은 걸까.
“제피로스.”
시리우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로 스승이 있나?”
“뭐……?”
“지금 네가 쓰는 마법, 어떤 스승한테 전수받은 것이냔 말이다.”
“…….”
제피로스는 잠시 망설인 뒤 답했다.
“아니, 이 마법은 내가 마도서를 보면서 독학으로 터득했다.”
“그렇군.”
시리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비꼬는 건가?”
“그럴 리가.”
지금 시리우스는 진심이었다.
스승도 없이 책만 읽고 이런 마법을 터득한 거라면 제피로스는 충분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매우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제피로스는 단순히 흑회 조직을 이끄는 수완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다른 흑회 조직들을 굴복시키고 수장이 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다만 시리우스가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쪽 세계에서 접근전이라고 하면 마법검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제피로스처럼 육체 자체를 강화하며 근거리 격투를 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학으로 터득한 전투법이라, 시리우스의 눈으로 보면 허점이 너무 많았다.
“제피로스.”
그래서, 시리우스는 짧게 말했다.
“직접 경험하면서, 배워라.”
“뭐……?”
쿵!
경공을 사용해 거리를 좁혔다.
눈을 크게 뜨면서 제피로스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공세는 절묘했다.
첫 번째 공격으로 제피로스의 방어를 흔든 뒤, 두 번째 공격으로 자세를 무너뜨렸다.
뒤로 쓰러지듯이 주춤하는 제피로스를 향해, 세 번째 공격을 처넣었다.
망루가 무너지면서 제피로스가 추락했다.
“끄윽……!”
제피로스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전신에서 마력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밀도 있게 응축되면서 온몸을 견고하게 보호했다.
방금 전에 시리우스가 펼친 호신강기를 참고한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호신강기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기(罡氣)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깨달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피로스가 저렇게 호신강기를 단번에 흉내 낸다는 건 꽤 훌륭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
쿠웅!
시리우스가 엄청난 기세로 날아들어 왔다.
빠르게 튀어나온 시리우스의 주먹이 제피로스의 팔뚝과 충돌했다.
공간이 크게 울리면서 주위에 먼지가 휘날렸다.
이를 악물면서 제피로스가 반격에 나섰다.
제피로스의 육체를 보호하고 있는 마력은 공격력도 강화해 준다.
무거운 쇳덩이로 후려치는 것처럼, 시리우스의 어깨를 찍어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절묘하게 움직여 그 공격을 피했다.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동작을 펼치면서 제피로스의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지금까지는 서로 강(鋼)에 치우친 움직임을 보였지만 시리우스가 갑자기 유(柔)로 전환했다.
그 사실에 제피로스가 허를 찔린 순간.
꽈앙!
시리우스의 오른쪽 손바닥이 제피로스의 가슴을 후려쳤다.
“끄윽…….”
제피로스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주먹으로 친 것도 아닌데 더 큰 충격이 느껴졌다.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제피로스는 눈을 부릅뜨고 시리우스에게 맞서려 했다.
시리우스의 연속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제피로스는 휘청거리면서도 그 공격을 최대한 방어했다.
전신을 마력으로 단단히 보호하고 있던 덕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일은 없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반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제피로스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악……!”
콰직!
좌측 팔뚝에서 격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력의 보호가 약해지면서 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너무 오래 유지하고 있었던 탓이다.”
“……!”
시리우스가 짧게 설명해 주자 제피로스가 눈을 크게 떴다.
원래 강기는 내공 소모가 심한 편이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도 화경에 도달하기 전에는 호신강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피로스는 7서클의 마력으로 호신강기를 흉내 내고 있었으니…… 마력이 빠르게 고갈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완급 조절을 했다면 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거다.”
“윽……!”
콰앙!
시리우스의 공격이 다시 강맹해졌다.
육중한 주먹이 제피로스의 명치를 가격했다.
체표를 보호하고 있던 마력은 일격에 뚫려 버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
제피로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멀리 날아가 성벽에 충돌했다.
“으윽…….”
제피로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이 박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로 끝인가.
제피로스는 절망감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제피로스.”
그때 시리우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터득한 마법은 확실히 새로운 가능성을 지녔다. 마법 자체도 훌륭하지만 아마 네 적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거겠지.”
시리우스는 지금까지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놈들을 여러 명 봤다.
하지만 베르디안을 제외하면 다들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혈관이 터지기도 하고, 온몸이 불타기도 했다.
그런 놈들과는 달리 제피로스는 매우 안정적으로 마력을 운용했다.
마력으로 무공을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시리우스에게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다.
“제대로 수련한다면 언젠가 9서클 대마도사들과도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
“독학으로는 어렵다.”
제피로스의 마법은 한계가 명확했다.
내공을 체내에서 운용할 수 있는 시리우스와는 달리, 마력을 체외로 방출하여 온몸에 둘러야만 하기 때문이다.
효율이 좋지 않고, 금방 마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더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있을 텐데 쉬운 일은 아니다.
마도서 하나만 손에 들고 독학으로 연구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제피로스.”
시리우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철맹 전체를 이끌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
“……!”
제피로스가 숨을 삼켰다.
“서부 흑회의 대부분을 장악한 네 수완은 인정한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네 한계다. 그 이상을 노리기에는 네 그릇도, 네 실력도 아직 부족하다.”
“…….”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라.”
제피로스의 행보는 시리우스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심지어 나이도 비슷하고 말이다.
하지만 천랑무제 백무랑의 기억을 갖고 있는 시리우스와는 달리, 제피로스는 아직 미숙했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는 제피로스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힘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
“내가 너를 이끌어 주마, 제피로스.”
“시리우스…….”
제피로스는 뒤늦게 이해했다.
시리우스가 자신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시리우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조차 뽑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단칼에 제피로스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사실에 제피로스는 패배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경외감도 느꼈다.
“시리우스.”
제피로스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위대한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후련한 표정을 지은 뒤, 고개를 숙였다.
“흑철맹은 모든 하부 조직과 함께 당신 밑으로 들어가겠다.”
흑철맹은 서부 흑회 조직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이대로 제피로스가 흑철맹을 통째로 갖다 바친다면 시리우스는 서부 흑회의 일인자가 된다.
물론 이 조치에 반대하는 조직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흑철맹까지 굴복시킨 시리우스에게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제피로스, 너는 이제 천랑표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
“그곳에서 서부 흑회 전체의 갱생을 위한 계획을 구상해라. 너라면 사람들을 등쳐 먹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지.”
제피로스 혼자서는 어렵다고 해도, 유스티아가 도와주면 문제없다.
“그 작업이 끝나면 나를 따라와라. 이 세상을 바로잡는 여정에 동참시켜 줄 테니까. 그 여정 속에서 너는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심복이었던 십이위병 중에는 인왕(寅王)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원래는 흑도 세력의 젊은 수장으로, 흑도 통일의 야망에 불타던 사내였다.
하지만 흑사련에게 숙청당해 부하들을 잃고 떠돌던 도중, 백무랑에게 패배하여 수하가 되었다.
거친 기성이 단점이었으나, 흑도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어 흑사련과의 싸움에서 큰 역할을 했다.
시리우스는 제피로스가 그 인왕과 비슷한 역할을 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알겠다, 시리우스.”
제피로스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다들 들어라……!”
5인회의 생존자를 비롯해, 주변에 남아 있는 흑철맹 맹원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서 외쳤다.
“이제부터 흑철맹은 전부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밑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나한테 복종했던 것처럼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에게 복종해라……!”
“매, 맹주님……!”
누군가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제피로스를 불렀다.
하지만 제피로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이제 나는 맹주가 아니다.”
그렇다.
제피로스는 더 이상 맹주가 아니다.
맹주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은, 여기서 단 한 명뿐이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제피로스는 후련한 기분으로 선언했다.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맹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