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1화
111화.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거대한 태풍이 흑철맹의 본거지를 집어삼켰다.
유일하게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은 태풍의 중심부…… 영역의 주인인 풍왕이 서 있는 장소뿐이다.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 한가운데에서 풍왕은 만능감을 느꼈다.
봐라, 이것이 나의 왕국이다.
이 왕국 안에서는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감히 고개를 쳐드는 불경한 놈들은 모조리 가루가 될 것이니라.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절대적 군주, 진정한 왕이다……!
“하하……!”
이렇게 공간을 집어삼키는 종류의 마법을 ‘영역 술식’이라 한다.
9서클 대마도사의 막대한 마력을 활용해, 자신이 절대적 지배자가 될 수 있는 필승(必勝)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영역 술식은 오로지 연맹에만 존재한다.
원류는 일찍이 세상에서 사라진 고대 마법이다.
먼 옛날 10서클의 경지에 도전하던 마법사들이 연구하던 마법이라 했다.
9서클에 도달한 연맹 간부들은 영역 술식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으며,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대로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만의 왕국 혹은 제국을 구축하여…… 10서클에 도달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이 모든 것은 연맹이 추구하는 대업(大業)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보고 있나, 환왕……!”
풍왕은 바람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거짓된 환영의 공간만을 만드는 환왕의 영역 술식과는 달리, 풍왕은 제대로 실체가 있는 바람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풍왕은 자신의 마법이 환왕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 왕국이다……!”
콰콰콰!
거센 바람 소리가 마치 ‘위대하신 풍왕 전하시여!’라고 자신을 찬양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대한 영토를 소유한 군주의 만능감 속에서 풍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신민(臣民)도 없는 왕국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환청인가?
풍왕은 잠시 혼란을 느꼈다.
바람 소리가 엄청난데, 아주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환왕에게 들었다, 풍왕.”
아니, 환청이 아니다.
이건 시리우스의 목소리다.
풍왕은 시리우스를 찾으려 했다. 이렇게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거라면 근처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서 주위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영역은 풍왕 스스로도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애초에…… 시리우스는 어떻게 이 영역 속에서 멀쩡하게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너희 연맹 간부들의 진정한 목적은…… 이런 영역 술식을 연구하여, 이 세계 전체를 지배할 힘을 얻는 거라고.”
“……!”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연맹에서 추구하는 대업이다.
영역 술식을 연구하는 것으로 10서클에 도달해, 이 세계를 지배하려 했다.
연맹이 이런 목표를 추구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애초에 연맹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가 길다.
원류를 따지자면 대륙 5대 명가보다 오래되었으니까.
“카슈람은 너희들이 허황된 꿈에 집착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더군. 영역 술식에 집착하지 말고, 대륙 흑회들의 힘을 모아 5대 명가를 쓰러뜨리고 패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그런데 검제라는 녀석은 서부 지부에 제대로 지원도 안 해 주고 영역 술식만 연구하고 있으니……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연맹을 배신한 것이지.”
서부 지부장인 카슈람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흑철맹이 서부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는데, 검제는 서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스승으로서 새로운 가르침을 내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카슈람은 연맹을 배신하고 흑철맹으로 넘어갔다.
“일단 지금 이 영역을 보니 카슈람의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이런 걸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뭐라고……?”
풍왕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네가 뭔데 그런 말을…….”
“내가 보기에 이건 가르발디가 전개했던 폭풍하고 큰 차이가 없다. 규모와 위력만이 몇 단계 위일 뿐이지.”
“웃기는 소리!”
부하와 비교당한 풍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르발디도 거대한 폭풍을 생성할 수 있지만, 풍왕의 영역과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질풍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구나! 이 영역은……!”
“물론, 나름의 깊은 깨달음이 반영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 결과물이 고작 이 정도면 한심하다.”
시리우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그냥 거대한 태풍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 중심에서 홀로 거들먹거리면서 껄껄 웃고 있을 뿐이지.”
“뭣…….”
“내가 보기에는 환왕의 환영 공간이 훨씬 더 발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
환왕이 더 낫다는 소리를 듣고, 풍왕은 모멸감을 느꼈다.
풍왕은 자신의 마법에 자부심이 있었다.
특히 연맹 본부를 떠나 남부에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환왕에게 뒤진다곤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웃기는 소리……!”
풍왕은 태풍의 위력을 더 증폭시켰다.
마력 소비량이 더 많아졌지만, 상관없었다.
시리우스를 확실히 죽여 놔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없게 만들어 주마!”
“놀랍군. 여기서 더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가.”
“그래! 너 따위 애송이는 결코 버틸 수 없는 나의 왕국이다……!”
“확실히 이 정도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 버틸 수 없지.”
시리우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바람을 태우기로 했다.”
“뭣…….”
쿠쿵!
폭음과 함께 바람의 흐름이 흔들렸다.
거침없이 휘몰아치던 바람이 갑자기 거대한 장애물을 만난 것처럼 주춤했다.
아니, 이건 장애물이 아니라…….
“……!”
콰쾅!
다시금 폭음이 들리면서 바람이 갈라졌다.
그리고, 풍왕은 마침내 목격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거대한 불꽃에 둘러싸인 시리우스가 있었다.
“화염 마법……?”
이런 엄청난 바람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꽃은 거침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폭풍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바람을 연료 삼아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바람을…… 불태우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바람을 불태우는 불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잠깐.”
풍왕도 9서클의 대마도사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다.
얼핏 보기에는 지금 저 불꽃이 바람을 불태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마력을 불태우고 있는 건가……!”
“그렇다, 풍왕.”
시리우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풍왕의 추측대로, 지금 이 불꽃은 풍왕의 마력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천랑신공의 네 번째 단계 ‘화천’의 진정한 힘이었다.
본래 화천은 평범한 정면 대결을 위해 만들어진 힘이 아니다.
온갖 사이한 힘을 사용하는 천마신교와 싸우기 위해, 백무랑은 모든 기(氣)를 강제로 불태울 수 있는 무공을 개발했다.
아무리 교묘한 진법이든, 아무리 절묘한 환술이든, 아무리 괴이한 마공이든…… 순수하게 내공의 힘만으로 모조리 불태워 없애 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이 화천의 불꽃은…… 이 세계의 마력조차 불태울 수 있다.
“너는 바람의 힘으로 너만의 영토를 만들었다. 오로지 너만이 절대군주로 군림할 수 있는 바람의 왕국을 만들었지.”
시리우스는 영역 중심부에서 홀로 존재하는 풍왕을 쳐다봤다.
바람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리우스는 풍왕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왕국, 내가 불태워 주겠다.”
“시리우스……!”
풍왕이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그 직후, 바람의 세기가 더욱 강해졌다.
아마 풍왕은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우스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람을 제어하는 마력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있으니까.
주위에는 여전히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시리우스의 불꽃이 전개된 곳만큼은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으으윽……!”
영역을 해제하고 태세를 바로잡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풍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풍왕 영역은 마법사로서 살아온 풍왕의 인생 그 자체다.
그것을 중단하고 물러선다는 것은, 마법사로서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인정하는 것과 똑같았다.
심지어 방금 전에 환왕의 영역보다 못 하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더더욱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런 마음이 풍왕의 목을 더욱 조르게 되었다.
“윽……!”
바람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마력이 빠르게 고갈되면서, 마법을 제어하는 것조차 뜻대로 안 되게 되었다.
환왕의 영역은 실체가 없는 환영을 조종하는 것이지만, 풍왕의 영역은 실체가 있는 바람을 조종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 소비가 더 빠를 수밖에 없는데, 시리우스의 도발에 넘어가 더 많은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시리우스는 그 빈틈을 정확히 포착했다.
“…….”
화천의 공력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손에 든 요철검에 막대한 기운이 모였다.
이그레트식 가공술에 의해 칼날에 새겨진 불그스름한 무늬가 불꽃과 어우러졌다.
요철검, 불타는 철의 검이라 했다. 화천의 공력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렇게 검에 기운을 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막대한 기운을 담으려고 해 봤자 칼날이라는 공간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검기를 만들면 주위로 다 흘러나가 버린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예가 필요하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려면 과거의 깨달음을 끄집어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 깨달음을 활용하려고 해도 힘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지금 시리우스는 5갑자 내공을 지닌 화경의 무인이니까.
칼날과 어우러져서 요동치던 불꽃에 차츰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칼날에 스며들 듯이 불꽃이 압축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흐름이 멈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칼날 위에서 계속 순환하고 있다.
극한까지 압축된 탓에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검기가 계속해서 압축되어 중첩된다.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옛사람들은 이렇게 검기를 압축했을 때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와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별자리를 의미하는 강(罡)이라는 글자를 가져왔다.
무림에서는 이것을 검강(劍罡)이라 했다.
“화천검강(火天劍罡).”
화염의 검강이 바람의 왕국을 가로질러, 그 제왕의 가슴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