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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112화 (112/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2화

112화. 문전박대 하지 못할 겁니다

붉은색 빛에 가슴을 꿰뚫린 순간.

풍왕은 시리우스가 모종의 공격 마법을 펼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붉은색 빛은 시리우스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어떻게 마법검이 이렇게 먼 곳까지 닿을 수 있는 걸까.

검제조차 이런 마법검을 펼치지 못한다.

‘아, 그렇군.’

뒤늦게 이해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마력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를 사용한 힘이다.

‘시리우스는 마법을 쓰는 게 아니었다!’

연맹에서는 시리우스가 모종의 고대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라 추측했다.

카니스루트 가문이나 리겔 가문에서 몰래 숨겨 놓고 있던 마도서에서 고대 마법을 배운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사용하는 건 애초에 마법이 아니었다.

마력과는 다른 에너지를 활용하여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능력이다.

지금 풍왕의 가슴을 꿰뚫은 붉은빛도, 그 에너지를 칼날에서 압축시킨 뒤 전방으로 길게 뻗은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시리우스가 보여 줬던 어마어마한 움직임들은 전부 이 능력 덕분이었던 거다!’

이건 연맹의 쟁쟁한 대마도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풍왕이 처음으로 눈치챈 것이다.

그 사실에 풍왕은 희열을 느꼈다.

‘이 힘을 질풍 마법에 접목시킨다면…… 나는 연맹 최강의 대마도사가 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능력을 활용한다면 풍왕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검제, 뇌제, 염제…… 연맹의 최고 실력자들도 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리우스, 알려다오!’

풍왕은 그동안 줄곧 답답함을 느껴왔다.

10년이 넘게 성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질풍 마법을 수련해도, 아무리 영역 술식을 연구해도, 크게 나아지는 느낌이 없었다.

이렇게 계속 발버둥 쳐 봤자 10서클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풍왕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스승이 되어다오!’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아예 시리우스의 수하가 되는 것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제발, 나에게…….’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하듯이.

풍왕은 점점 흐려지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향해 계속 손을 뻗었다.

‘더 높은 경지로 도달하기 위한, 단서를…….’

하지만, 풍왕의 간절한 기원은 도달하지 못한다.

풍왕은 이미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리 절실한 눈빛으로 시리우스를 쳐다 봤자, 시리우스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울 뿐이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가르침을 갈구하며…… 풍왕은 숨을 거뒀다.

* * *

풍왕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영역은 해제되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바람 소리가 끊기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흑철맹의 본거지였던 옛 성채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시리우스의 습격으로 많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풍왕 영역에 휘말리면서 그냥 폐허가 되어 버렸다.

“무사하십니까?!”

그때 제피로스가 흑철맹의 생존자들과 함께 달려왔다.

성채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생존자는 의외로 많았다.

환왕이 미리 눈치채고 사람들을 피신시키면서 방어 마법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쯧, 죽는 줄 알았군.”

환왕도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다가왔다.

“풍왕을 해치운 건가.”

“네, 강적이었습니다.”

9서클의 대마도사는 역시 위협적이었다.

5갑자 내공을 얻어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시리우스도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그래, 그렇군.”

환왕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표정에는 풍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섞여 있었다.

어쨌든 풍왕은 환왕의 동료였다.

10서클의 경지를 추구하는 동반자이자 경쟁자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수고 많았다.”

“그건 제가 할 말이죠.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환왕이 없었다면 다들 성채와 함께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시리우스도 환왕이 사람들을 피신시켜 줬기 때문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아니, 사람들 목숨을 구해 준 건 내가 아니라 자네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환왕이 시선을 돌렸다.

“뭣들 하고 있어? 감사의 말, 안 하나?”

“아……!”

흑철맹 사람들이 황급히 앞으로 나왔다.

“가, 감사합니다!”

“시리우스 님이 없었다면 저희 모두 죽을 뻔했습니다!”

“연맹의 간부가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들은 시리우스에게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풍왕은 흑철맹의 본거지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대마도사였다.

그런 강적을 상대로 홀로 맞서 싸워서 승리했으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느낀 상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이 서부 흑회였다.

“저를 상대하실 때는 정말로 전력을 다한 게 아니셨군요. 이 정도 힘을 갖고 계셨을 줄이야…….”

특히 제피로스는 시리우스에게 심취한 눈빛이었다.

이미 시리우스에게 패배의 쓴맛을 경험하고 1차적으로 존경심을 갖게 되었는데, 연맹의 최상위 간부에 맞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자…… 완전히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희들 힘만으로 연맹에 맞서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시리우스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 흑철맹은 풍왕과 싸우게 되었을 것이다.

카슈람이 연맹을 배신하고 흑철맹에 붙은 이상, 그들은 새로운 지부장인 풍왕에게 토벌당할 운명이었다.

제피로스나 카슈람이 마력병장에 더 능숙해져도 풍왕의 영역 술식을 당해 내지는 못했을 테니, 흑철맹은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제피로스와 흑철맹은 시리우스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됐다. 너희를 구해 주기 위해 싸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쪽 큰형님한테나 고맙다고 해.”

공을 환왕에게 돌리자 환왕이 평소처럼 투덜거렸다.

“누가 큰형님이야?”

“감사합니다, 큰형님!”

“고맙습니다, 큰형님!”

“이 자식들이…….”

제피로스 등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큰형님이라 불러 대니, 환왕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리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리우스.”

환왕이 헛기침을 하면서 다른 얘기를 꺼냈다.

“풍왕을 쓰러뜨렸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알고 있겠지?”

“네, 독왕의 부하들도 있으니까요.”

풍왕과 독왕이 협력 체제를 맺었다고는 하나, 독왕의 부하들은 최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자네가 풍왕을 쓰러뜨렸다는 것 자체가 문제지. 슬슬 연맹 본부에서도 위기감을 느낄 거다.”

풍왕이 서부에 온 건 딱히 시리우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부장이 사라진 서부 지부를 재건해야 했고, 환왕과 카슈람이라는 배신자도 처단해야 했다.

오히려 시리우스를 죽이는 건 우선순위가 낮은 임무였다.

하지만 이번에 시리우스가 풍왕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연맹 본부에서도 시리우스를 본격적으로 처단하려 할 것이다.

“그 부분은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뭐라고?”

“연맹 본부에서는 시리우스와 환왕이 협력해서 풍왕을 쓰러뜨린 거라 생각할 테니까요.”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환왕이 눈을 크게 떴다.

“풍왕이 시리우스하고 일대일로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면, 연맹 본부가 믿겠습니까?”

“아니, 그건…….”

“시리우스와 환왕이 협공해서 죽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겠죠. 오히려 환왕이 주도하고 시리우스가 거들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

지금까지 시리우스가 여기저기서 많은 적을 쓰러뜨렸지만, 9서클 대마도사를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환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건 안드레스 한 사람만 목격했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쉽도록, 일부러 더 소문을 퍼뜨릴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시간을 벌 수 있는 거죠.”

연맹에게 시리우스의 진짜 실력을 벌써부터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들을 방심시킨 상태에서 일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왠지 나만 손해 보는 얘기 같은데. 풍왕을 죽인 건 자네인데 왜 내가 뒤집어써야 하는 거지?”

“좀 도와주십시오, 큰형님.”

“누가 큰형님이야, 쯧.”

혀를 차면서 환왕이 불만스러워했다.

그래도 싫다고 하지는 않았다.

“다들 봐라. 매번 저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다 받아 주신다. 진정한 큰형님의 그릇이지.”

“아, 그래서 큰형님이라고 대우해 주시는 거군요.”

“저희도 저분을 큰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자식들이…….”

환왕이 눈을 부라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사실 이 사람도 풍왕과 동급의 존재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자꾸 보여 주니…… 다들 친근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연맹에 있을 당시, 환왕은 특유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제대로 사람들을 모아 파벌을 만들었다면…… 정말 하나로 똘똘 뭉친 집단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집단을 상대하는 건 시리우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큰형님, 일단 이 녀석들부터 보냅시다.”

“보낸다니?”

“제피로스는 천랑표국으로 보내고, 나머지 간부들은 흑철맹의 사업을 정리하게 해야 하니까요.”

제피로스를 천랑표국으로 보내는 건 유스티아나 베르디안 등을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만일 독왕의 부하가 습격해 와도 제피로스가 있다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건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른스트 가문으로 가자고 말입니다.”

이미 서부 흑회는 평정되었다.

서부 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서부 최고의 명문가와 담판을 지을 차례였다.

* * *

서부 지역에서도 서쪽 끝에 해당되는 곳.

기암절벽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속에, 대륙 5대 명가 중 하나인 에른스트 가문이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에른스트 가문은 서부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십 년 전의 내부 분쟁 이후, 외부 활동을 금하는 봉문(封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에른스트 가문의 봉문으로 서부의 여러 가문은 구심점을 잃었다.

여러 가문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흑회 세력들은 점점 영향력을 키워 갔고, 결국 지금처럼 서부 전체가 흑회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봉문을 유지하고 있는 에른스트 가문으로…… 시리우스와 환왕이 접근했다.

“사형(師兄).”

“누가 큰형님…… 잠깐, 사형?”

“이제부터 우리는 사형제입니다. 특별한 고대 마법을 전수받은 뒤 함께 세상을 떠돌며 악인들을 처단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갑시다.”

“드디어 돌아버린 거냐?”

환왕이 머리 옆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졌냐? 내가 모르는 사이 독왕의 약물에 당한 건가?”

“그러면 솔직하게 신분을 밝히면서 방문할까요? 에른스트 가문이 우리한테 문을 열어 주겠습니까?”

“앗…….”

한 명은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시리우스 카니스루트.

한 명은 무려 연맹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환왕.

에른스트 가문이 문을 열어 줄 리가 없다.

“남부 때하고는 상황이 다릅니다. 마땅한 인맥도 없고…… 우리가 방문해 봤자 문전박대만 당할 겁니다.”

“끄응…….”

그렇다고 해서 봉문 중인 가문에 강제로 쳐들어갈 명분도 없다.

시리우스는 에른스트 가문과 사생결단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아니, 우리가 정체를 숨긴다고 해서 문을 열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에른스트 가문도 역사가 오래된 명문가입니다. 선물을 들고 온 사람을 쫓아내지는 않겠죠.”

“선물?”

환왕이 묻자, 시리우스는 품 안에 넣어 놨던 책을 꺼냈다.

“십 년 전의 골육상쟁에서 외부로 유출된 마도서를 가져왔다고 하면, 그들도 우리를 문전박대 하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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