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4화
114화. 제대로 말려들었군
“케인드……!”
율리아는 눈을 치켜떴다.
에른스트 가문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케인드가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졌다.
비록 선공을 양보했다고는 해도, 일격에 기절해 버린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당신들, 대체…….”
“율리아 님.”
시리우스는 율리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를 조롱하시는 겁니까?”
“조, 조롱?”
“저희는 에른스트 가문에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내보내다니…… 저희를 우습게 여기신 겁니까?”
“아니요, 그런 건…….”
율리아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측면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옷차림도 형편없고, 그리 대단치 않은 인물들 같았다.
게다가 너무 허풍을 떠는 것 같아서…… 진지하게 응대해 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빨리 마도서를 돌려받은 뒤 쫓아내고 싶었다.
“심지어 이렇게 아이들이 훈련하는 곳 구석에서 대련을 시키다니…… 너무하시는군요.”
“그건…….”
“이게 손님을 대하는 예의입니까? 에른스트 가문의 가풍이 이런 줄은 몰랐군요.”
“…….”
입을 다물어 버린 율리아 앞에서, 시리우스는 환왕을 손가락질했다.
“저것 보십시오. 사형도 엄청 화를 내고 계십니다.”
“……?”
사람들의 시선이 환왕에게 향했다.
하지만 환왕은 그냥 평소처럼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중이었다.
“사형이 저렇게 팔짱을 끼는 건 정말로 화가 나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자극하면 정말 큰일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됩니까?”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분출합니다. 사형의 분노가 그 정도로 무섭습니다.”
환왕은 사레가 들릴 뻔했다.
환영 마법으로 그런 광경을 연출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리우스의 표현이 너무 이상했다.
“사형, 진정하십시오. 이곳을 피로 물들이면 안 됩니다. 이제는 착하게 살기로 저하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크흠…….”
시리우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환왕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한편 율리아도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허풍을 떨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걸까.
도저히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결국 율리아는 그들을 다른 곳으로 안내하기로 했다.
훈련장에서 대충 상대하려 했던 건 확실히 결례였다.
게다가 이곳은 보는 눈도 많기에, 이럴 바엔 자리를 옮기는 편이 나았다.
무엇보다…….
“본관 앞에 있는 대련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에른스트 가문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인가.
방금 전, 케인드를 쓰러뜨리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제가 직접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 *
“죄송합니다, 오라버니.”
“아니, 적절한 조치다.”
에른스트 가문의 ‘가주 대리’ 루카스 에른스트는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들이 가르침을 청했다면, 제대로 가르침을 줘야 한다. 에른스트 가문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말이다.”
“…….”
“제대로 교육을 해서 내보내라. 두 번 다시 에른스트 가문에 얼씬도 못 하게.”
율리아와 함께 대련장으로 들어가면서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요새 서부가 많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저런 이상한 놈들도 나타나는 거겠지.”
“네…….”
“우리가 빨리 가문을 정비해서 다시 서부를 다스려야 하는데 말이다.”
에른스트 가문은 십 년 전의 골육상쟁으로 많은 인재를 잃었다.
외부 활동을 그만두고 후진 양성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율리아, 녀석들이 마력병장의 마도서를 갖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
“제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십 년 전에 사라진 그 책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사본이라고는 하나, 세상에 떠돌면 안 되는 마도서다. 반드시 회수해야지.”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다.
그건 에른스트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니까.
“연맹 간부를 쓰러뜨리고 마도서를 확보했다고?”
“네, 맞습니다.”
“대체 어떤 놈을 쓰러뜨린 걸까?”
“그건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위가 높은 간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너무 허풍을 떠는 분위기라서.”
“…….”
대련장에는 에른스트 가문의 중견 인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마도서를 들고 온 불청객이 에른스트 가문을 모욕했다는 얘기가 벌써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저들이군.”
루카스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만나서 반갑소, 가주 대리를 맡고 있는 루카스라고 하오.”
“아, 반갑습니다.”
장발의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무서운 인상의 남자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루카스가 의아해하면서 쳐다보자, 장발의 청년이 다급히 말했다.
“저희 사형이 좀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러니 양해해 주십시오.”
“상태가……?”
“여기가 좀…….”
자기 머리를 손가락질하는 시리우스를 보면서, 루카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그때 무서운 인상의 남자가 괴이한 신음 소리를 냈다.
흠칫 놀란 루카스가 뒤로 물러섰다.
“정말로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군.”
“끄으…….”
입술을 깨물며 끙끙대는 사형의 시선을 피하며,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가르침을 원하신다고 들었소. 가문의 방침 때문에 직접 무언가를 전수해 줄 수는 없지만, 대련을 통해 최대한 얻어가시오.”
“네, 감사합니다.”
“율리아, 앞으로 나와라.”
루카스가 물러서고 율리아가 나왔다.
그 손에는 대련용 가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받으시지요.”
“아까 훈련장에서 쓰던 가검하고는 다르군요.”
“그 가검은 너무 많은 마력을 받아들이면 망가집니다.”
“아하, 율리아 님은 마력이 많으신가 봅니다.”
아까하고는 다를 거라고 은연중에 내비쳤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태평한 표정이었다.
“준비되시면 말씀하십시오.”
“이미 다 준비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율리아는 루카스를 쳐다봤다.
그러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시작!”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율리아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케인드처럼 선공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케인드가 일격에 당했으니, 그 보복으로 일격에 쓰러뜨려 줄 생각이었다.
7서클 마력이 꿈틀거리면서 오른손으로 흘러갔다.
파직, 파직, 번쩍이는 뇌전이 발생하더니 손에 든 가검을 휘감았다.
에른스트 가문을 대표하는 절기, 뇌전의 마법검이었다.
“……!”
그와 동시에 율리아의 두 발 아래에서도 뇌전이 튀었다.
이것 또한 에른스트 가문의 절기다.
뇌전 마법으로 전자기장을 만들어, 마치 번개가 치는 것처럼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보법(步法)이었다.
뇌전의 마법검과 뇌전의 보법.
이것이야말로, 에른스트 가문을 서부 최강의 가문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한 조합이었다.
“갑니다!”
짧게 소리치면서 돌진했다.
다리는 처음 출발할 때만 움직였다.
발에서 만들어진 전자기장이 율리아의 몸을 강제로 전진시켰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뇌전의 마법검을 정통으로 명중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면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에른스트 가문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냐고 모욕했으니, 진짜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르지만, 잘 치료해서 보내면 된다.
“하압……!”
아까 케인드를 쓰러뜨리는 모습은 똑똑히 지켜봤다.
그 정도 속도라면 자신이 더 빠르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율리아는 전광석화 같은 참격을 펼쳤다.
하지만…….
“……!”
휘익!
율리아의 검은 허공을 베었을 뿐이다.
시리우스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시리우스를 찾으려 한순간.
“컥……!”
뒤통수를 엄습한 충격에, 율리아는 눈앞이 새카매지는 걸 느꼈다.
* * *
쿵.
율리아가 앞으로 쓰러졌다.
시리우스가 칼자루의 끝부분으로 율리아의 뒤통수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내공을 실어서 정확히 가격한 터라, 일격에 기절시킬 수 있었다.
“헉……!”
“이럴 수가……!”
주위가 술렁였다.
다들 율리아가 건방진 불청객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때를 보여 주기는커녕, 일격에 뒤통수를 얻어맞아 역으로 기절해 버렸다.
심지어 시리우스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으니, 다들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실망스럽군…….”
시리우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른스트 가문의 실력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
“뇌전의 마법검? 뇌전의 보법? 천둥소리만 요란하지, 실상은 별 게 아니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시리우스가 물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산속에 틀어박힌 건 이런 실력을 감추기 위한 거였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저, 저놈이……!”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여기저기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뇌전 마법을 날리려는 듯이 손을 치켜든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
그때 벼락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루카스의 일갈이었다.
“꼴사나운 짓을 하지 마라! 상대는 우리 에른스트 가문에 가르침을 청한 사람이다!”
“하, 하지만, 가주 대리…….”
“심지어 상대는 한 명! 다 같이 덤벼들었다간 에른스트 가문 역사에 길이 남을 추태가 될 거다!”
“……!”
다들 입을 다물었다.
명문가에 소속된 몸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혀를 찬 뒤, 루카스가 다시 시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실례했소. 이해해 주시오.”
“아닙니다, 루카스 님.”
시리우스는 다시 예의 바른 태도를 취했다.
“함부로 말씀드린 것, 사과드리겠습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로……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군.”
“별거 아닙니다. 그냥 협객행에 필요한 정도의 실력일 뿐이지요.”
“협객행……?”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카스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이것 참 곤란하군요. 가르침을 받는 대신 마도서를 돌려 드리는 조건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그건…….”
“아니, 됐습니다.”
시리우스는 일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마도서는 그냥 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그럴 수는 없소.”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루카스의 만류를 무시하면서 시리우스는 환왕에게 시선을 향했다.
“사형, 그렇게 합시다. 불만스러우셔도 어쩔 수 없지요.”
“크흠…….”
“어허, 화내지 마시고.”
팔짱을 낀 채 헛기침을 하는 환왕을 향해, 시리우스가 타이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안 됩니다. 우리 바깥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
바깥으로 가서 얘기한다.
그 발언을 듣고, 많은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놈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면, 에른스트 가문이 망신을 당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다리시오.”
루카스가 앞으로 나섰다.
“섣부르게 행동할 필요가 없소.”
“하지만…….”
“내가 직접 상대해 주겠소. 그러면 되는 것 아니오?”
그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주 대리님이 직접……?”
“그렇소. 내가 이래봬도 8서클에 도달한 몸이라, 율리아하고는 다를 것이오.”
“어이쿠, 영광입니다.”
시리우스가 고개를 숙였다.
“가주 대리님의 소문은 바깥에서도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배워 가겠습니다.”
“크흠…….”
루카스가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리우스의 태도에 완벽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끄응…….”
한편, 시리우스의 후방에서는 환왕이 팔짱을 낀 채 계속 끙끙대고 있었다.
표정 관리를 하는 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놈들, 제대로 말려들었군.”
시리우스 말고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환왕이 중얼거렸다.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봉문 중인 가문에 들어와, 마침내 가주 대리까지 나서게 만들었다.
심지어 절차적인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도서 반환에 보답하기 위해 에른스트 가문에서 한 수 가르쳐 주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명예와 절차를 중시하는 명문가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을 진행시켰다.
이제 시리우스가 루카스까지 쓰러뜨려도, 에른스트 가문에서는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에른스트 가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악의 굴욕을 느끼며 에른스트 가문의 패배를 인정하든가…… 은둔하고 있는 ‘가주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정말로 정신 나간 놈…….”
시리우스는 에른스트 가문의 콧대를 철저히 꺾어 버린 뒤,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생각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 대륙 5대 명가인 에른스트 가문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돌아버린 놈…….”
환왕은 시리우스한테만 들리는 목소리로 계속 욕을 했다.
이런 놈과 계속 어울리다가 자신도 돌아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