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5화
115화. 한 번 겨뤄 보자
에른스트 가문의 가주 대리, 루카스 에른스트.
그가 8서클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에른스트 가문의 절기, 뇌전의 마법검과 뇌전의 보법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시작해도 되겠나?”
“얼마든지.”
시리우스의 짧은 대답을 들은 순간, 루카스가 움직였다.
율리아처럼 정직하게 전방으로 돌격하지는 않았다.
실력이 부족한 녀석들은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는 것밖에 못 하지만, 루카스는 전후좌우 어느 방향이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상대가 쉽게 대응할 수 없도록, 전자기장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며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
시리우스는 입을 다문 채 그 움직임을 관찰했다.
뇌전의 마법검도, 뇌전의 보법도, 에른스트 가문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기술이었다.
뇌전 마법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질풍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루카스 개인의 기량도 훌륭해 보였다.
만약 제피로스가 루카스에게 도전하면 몇 분 버티지 못하고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로 루카스의 움직임은 잘 단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루카스는 시리우스를 전혀 얕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덤벼들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이쪽도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파직.
시리우스의 몸에서 뇌전이 튀었다.
그와 동시에 푸른색 뇌기가 전개되어 대련용 가검을 감쌌다.
“……!”
시리우스가 창뢰의 검기를 펼치자, 주위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시리우스의 검기는 뇌전의 마법검하고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대체 저게 뭐냐고 술렁이는 사람들 앞에서, 루카스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상대가 뇌전의 힘을 사용한다면 더더욱 질 수 없다.
에른스트 가문의 명예를 걸고, 루카스가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다.
시리우스의 몸을 일도양단하겠다는 듯이 패기 넘치는 공격이었다. 그러면서 번개 같은 속도도 갖춰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 공격을 정확히 막아 냈다.
“……!”
눈을 크게 뜨는 루카스.
그 앞에서 시리우스는 손을 놀렸다.
루카스의 검을 튕겨 낸 뒤, 뇌전의 보법을 펼치는 것보다 먼저 움직였다.
바람처럼 움직여 측면으로 스쳐 지나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루카스의 손에서 검이 날아갔다.
“악……!”
짧은 비명.
시리우스가 짧게 휘두른 검이 루카스의 검을 날려 버렸다.
그 충격에 손목을 다친 루카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면서도 애써 고개를 돌려 시리우스를 보려 한 순간, 서늘한 감촉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어느새 시리우스의 검이 루카스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
주위에 침묵이 흘렀다.
관전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서른이 넘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8서클의 가주 대리, 루카스가 패배했다.
그 사실이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줬다.
지금 여기 있는 곳에서 루카스 이상의 실력자는 없다.
즉, 루카스의 패배는 에른스트 가문의 패배였다.
“이럴 수가…….”
결국 누군가가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를 냈다.
에른스트 가문은 서부 최강이었다.
서부의 그 누구도 에른스트 가문의 적수가 아니었다.
십 년 전에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외부와의 싸움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골육상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온 건지 알 수도 없는 후줄근한 놈에게 패배를 맛본 것이다.
“이거…….”
“어떻게든…….”
몇몇 중진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이 굴욕적인 패배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다 같이 달려들어 저놈을 죽인 뒤 없었던 일로 만들자.
그런 의견을 눈빛만으로 교환했다.
“눈 깔아라.”
바로 그때.
줄곧 침묵하고 있던 ‘사형’이 입을 열었다.
분노하면 땅이 무너지고 용암이 분출한다던 그 사람이다.
“정정당당한 대결이었다. 허튼짓을 하려는 놈들은 내가 바로 죽여 주마.”
“……!”
사제가 저렇게 강한데, 사형은 얼마나 강할까?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 말이 맞다…….”
그때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다들 에른스트 가문의 긍지를 더럽히지 마라……!”
“루, 루카스 형님!”
“가주 대리……!”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루카스가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정말로, 실력이 대단하군. 내가 졌소…….”
루카스는 굴욕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번 대련에서 루카스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전부 다 사용하면서 전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패를 당했다.
가주 대리인 루카스까지 패배했으니, 이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에른스트 가문의 패배였다.
“루카스 에른스트.”
그런 루카스를 보면서,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패배가 부끄럽나?”
“……!”
루카스가 흠칫 놀라며 시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방금까지와는 달리, 시리우스는 냉철한 표정으로 루카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패배가 부끄러운 이유가 뭐냐. 대답해 봐라.”
“뭐, 뭣…….”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인가?”
시리우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루카스, 대답해 봐라.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가?”
“그, 그렇소…….”
“그렇군. 하지만 말이다.”
루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시리우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패배하기 전부터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뭐, 뭐라고?”
“내 말이 틀렸나?”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금 정신을 차린 율리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너희는 우리를 대하면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 너희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다 준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 그것은…….”
“아무리 옷차림이 허름하고 언동에 신뢰가 가지 않아도 말이다. 너희들이 상대가 누구든 명문가로서의 도리를 지키려 했다면, 아직 배움을 끝마치지 못한 이십대 젊은이를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까 시리우스는 분명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율리아는 시리우스와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청년을 데려와서 훈련장 구석에서 대련을 시켰다.
“너희는 명문가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이건 분명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다.”
“…….”
율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서 부끄러운 것은, 너희가 대륙 5대 명가의 의무를 십 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시리우스의 발언에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십년 동안 너희는 외부 활동을 안 하고 이 산속에 틀어박혔다. 그사이 서부는 흑회들이 날뛰는 무법지대가 되었지.”
“자, 잠깐, 그것은 사정이…….”
“너희들한테도 사정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십 년 전의 골육상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지. 실력 있는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
장남과 장녀, 차녀가 차기 가주 자리를 놓고 싸웠다.
장남은 장녀한테 죽었고, 장녀는 차녀한테 죽었다. 차녀도 장녀와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죽었다.
지금 가주 대리를 맡고 있는 루카스는 재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던 차남이다.
“이런 상태로 서부 지역의 맹주 노릇을 하려고 하면 망신만 당한다, 전력을 회복할 때까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후진 양성에만 힘을 기울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무림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봉문에 들어가는 세가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에른스트 가문은 서부에서 너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너희가 이 산속에 틀어박히면서 서부의 다른 가문들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너희는 서부 명문가들의 구심점이었으니까.”
“…….”
“결국 서부 지역은 흑회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너희가 산속에 틀어박혀 평화롭게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고 있는 동안에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주위를 쓱 둘러봤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건 이 부분이다, 에른스트 가문.”
“…….”
“너희들은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주위 가문들과 힘을 합쳐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서부 지역은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전력을 잃었다고 해도, 에른스트 가문은 동부의 리겔 가문보다 사정이 양호했다.
다른 가문들과 힘을 합치면서 노력했다면, 서부 지역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는 다른 가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게 싫었다. 대륙 5대 명가인 에른스트 가문이 그런 굴욕을 당할 수 없다고 말이다.”
“…….”
“그렇기에, 에른스트 가문은 더 이상 명예로운 가문이 아니게 된 거다.”
시리우스의 독설이 에른스트 가문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눈을 치켜뜨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만큼 정곡을 찌르는 발언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 취소해 주시오.”
루카스가 몸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가문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아 주시오…….”
“너희가 나를 꺾는다면 취소해 주마.”
시리우스는 차갑게 말하며 환왕을 힐끔 쳐다봤다.
“아까 내 사형이 너희를 위협했지만, 무시해도 좋다. 다 같이 덤벼 봐라.”
“……!”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 말을 취소시켜 봤자 에른스트 가문의 긍지만 땅에 떨어질 뿐이다.”
그렇게 해서 승리를 거둔다면 시리우스의 말을 취소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에른스트 가문 사람들의 마음에는 더 큰 패배감만 남을 것이다.
“우리는…….”
루카스가 떨리는 눈동자로 친족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아니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됐다, 루카스.”
“……!”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대련장 입구에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몸을 지닌, 왜소한 노인이었다.
“아, 아버지……!
“가주님……!”
그의 이름은 모리츠 에른스트.
한때 서부 최강의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던, 9서클의 대마도사다.
하지만 100세를 넘어서면서 기력이 쇠했고, 십 년 전의 골육상쟁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거하게 되었다.
“아, 아버지, 어째서 여기까지…….”
“미안하구나, 루카스.”
모리츠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너한테 너무 많은 책임을 짊어지게 한 것 같다.”
“……!”
몸을 떠는 루카스를 내버려 둔 채, 모리츠가 시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른스트 가문의 모든 과오는 가주인 내가 책임져야 하네. 그러니 루카스를 너무 괴롭히지 말아주게.”
모리츠가 부축하던 사람들을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지팡이에 의지해 비틀비틀 접근해 왔다.
“자네 얘기는 잘 들었네. 다 일리 있는 얘기였어.”
“…….”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인정할 수는 없네. 자네는 명문가의 명예나 긍지를 들먹였지만…… 이건 명문가의 자존심일세.”
발을 멈춘 모리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흐릿한 눈동자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내가 자네를 꺾어도…… 취소해 주는 건가?”
에른스트 가문을 모욕했던 말을 취소해 줄 것이냐.
그 질문에 시리우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가주님.”
“좋다.”
그 순간.
흐릿하던 모리츠의 눈동자에 새로운 빛이 깃들었다.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듯한 노인의 눈빛이, 일세를 풍미했던 대마도사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한 번 겨뤄 보자, 젊은이.”
투지가 가득한 눈동자에 뇌전의 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