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6화
116화. 맹주라는 이름으로
파직, 파직.
허공에서 뇌전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마법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츠 에른스트의 체내에서 꿈틀거리는 마력이 방전 현상을 발생시켰다.
모리츠 에른스트가 9서클에 도달한 지도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뇌전 마법의 명가 에른스트의 가주로서 선조들의 가르침을 계승해, 최강의 뇌전술사로서 오랫동안 서부에 군림해 왔다.
하지만, 모리츠도 세월의 흐름에는 견디지 못했다.
노화로 인한 각종 질환이 모리츠를 덮쳤다.
십 년 전에는 큰 병을 앓아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기도 했다.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그사이 가문 내부에서 다툼이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심신이 모두 지쳐 버린 모리츠는 범재(汎才)였던 차남에게 가문을 맡기고 은거했다.
후대를 위한 마도서를 저술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죽어 가고 있던 모리츠의 눈빛에서, 다시금 뇌전이 번뜩였다.
“다들 물러서라……!”
루카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심판의 벼락이다……!”
심판의 벼락.
뇌전 마법으로 9서클에 도달한 대마도사 모리츠 에른스트의 고유 마법.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고리가 출현했다.
금색의 고리가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광채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고리의 회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막대한 뇌전의 기운이다.
그것을 그대로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이 대련장을 증발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모리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금색 고리라는 ‘발전 기구’에서 생성된 막대한 기운을 집결시켰다.
사람의 시력을 빼앗을 정도의 광채를 발생시키면서 대량의 뇌전이 한곳으로 모였다.
본래 이 공간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 정도의 뇌전이 철저하게 압축되어…… 한 자루의 창이 되었다.
그것은 뇌신(雷神)이 심판을 내릴 때 던진다는 뇌창(雷槍)을 연상케 했다.
지금 이 순간, 모리츠 에른스트는 신화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다.
“아아……!”
많은 이들이 공포에 떨며 뒷걸음쳤다.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방어 마법을 전개하며 다른 사람들까지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여기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위대한 가주, 모리츠 에른스트의 고유 마법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수백 시간 마법을 수련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터.
그렇기에 다들 공포에 떨면서도 이 장엄한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눈을 떼지 못했던 건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숨을 거둘 듯한 노인이 저런 장엄한 마법을 펼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하다. 시리우스는 마음속으로 인정했다.
대륙 5대 명가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마법이다.
이 정도 마법이면 얼마 전에 풍왕이 보여 줬던 풍왕 영역도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쟁쟁한 대마도사들을 보유한 연맹이 함부로 세계를 정복하려 들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마법사들이 버티고 있는 세계를 정복하려면, 10서클에 도달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엎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모리츠는 지금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치고 있다.
시리우스가 일격에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5갑자의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아까 모리츠가 마법을 쓸 때는 허공에서 방전 현상이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시리우스의 전신에서 뇌전이 튀었다.
천랑신공의 세 번째 단계, 창뢰의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오른손에 집중시켰다.
이미 시리우스는 요철검을 들고 있었다.
아까 빌렸던 대련용 가검으로는 이 막대한 공력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방대한 뇌기를 압축하고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심판의 벼락에 맞설 수 없다.
창뢰의 검기를 응축시킨 검강.
창뢰검강(蒼雷劍罡)이 펼쳐졌다.
“……!”
심판의 벼락이 쏟아졌다.
창뢰검강이 번뜩였다.
경이로운 뇌전이 서로 충돌한 순간, 엄청난 광채와 굉음이 주위를 휩쓸었다.
“악……!”
“허억……!”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미리 방어 마법을 전개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충돌의 여파만으로 사망자가 나올 뻔했다.
그리고, 엄청난 광채가 잦아들면서 비로소 주위를 판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
모든 이들이 숨을 삼켰다.
대련장 바닥에 거대한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시리우스는 아무런 상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모리츠도 마찬가지였다.
“심판의 벼락이……!”
“가주님의 고유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고?!”
경악하는 사람들 앞에서, 모리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졌군.”
모리츠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다급히 부축해 줬다.
방금까지만 해도 눈을 번뜩이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지금은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만약 여기서 시리우스가 한 번만 더 공격했다간…… 모리츠는 무력하게 목숨을 잃을 것이다.
“가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많은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이미 가주 대리였던 루카스가 패배했다.
여기서 모리츠까지 패배를 인정한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에른스트 가문 전체의 패배다.
그때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퍽!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요철검이 산산조각 났다.
창뢰검강을 펼친 상태에서 심판의 벼락과 충돌한 탓이었다.
마법검에 특화된 검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검은 아니었다.
모리츠의 육체가 이 싸움을 견디지 못했듯이, 시리우스의 검도 이 싸움을 견디지 못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모리츠 님.”
시리우스는 두 손을 모으면서 깍듯이 예를 표했다.
무림에서 고수에게 가르침을 얻었을 때처럼 말이다.
승패와는 무관하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였다.
“…….”
모리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게. 더 패배감을 느끼게 되는군.”
그렇게 말하면서 모리츠가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잘 봤는가?”
“아……!”
“귀인(貴人)이 우리를 찾아와서 큰 가르침을 줬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일깨워 줬으니, 다들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라.”
숨을 삼키는 사람들 앞에서, 모리츠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에른스트 가문의 현재 상태다. 실력도 태도도 마음가짐도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걸 다들 깨달아야 한다.”
“…….”
“다들 고민해 보도록 하자. 에른스트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루카스를 비롯한 중진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모리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손님을 모셔라. 내가 직접 응대할 것이다.”
* * *
언제부터인가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방에서, 시리우스는 모리츠와 마주 봤다.
“그렇군. 자네가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였나.”
자기소개를 하자, 모리츠는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을 들으셨습니까?”
“바깥 상황은 계속 전달받고 있었네. 그리고 루트베인한테도 편지를 받았으니까.”
“장인어른께서 편지를…….”
스트라우스 가문의 샤데인도 루트베인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루트베인은 여전히 동부에 머물고 있지만, 리겔 가문의 이름을 활용해 시리우스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큰형님입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환왕은 그냥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곧바로 시리우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연맹에서 환왕이라 불렸던 분입니다.”
“이봐……!”
환왕은 눈을 크게 뜨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그걸 까발리면 어떻게 해?!”
“뭐 어떻습니까. 스트라우스 가문의 샤디엔 님도 알고 계시는데.”
“아니, 그렇지만…….”
모리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연맹의 환왕이라면 한때 남부 지부장까지 맡은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제 수하 중엔 연맹 출신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추구하는 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흑과 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만드는 것 말인가?”
“네, 맞습니다.”
루트베인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모리츠도 시리우스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리츠 님, 에른스트 가문도 그 길에 동참해 주기를 바랍니다.”
“…….”
“그동안 에른스트 가문은 전력을 회복하기 위해 십 년 동안 봉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의미 없는 일이다.
오늘 시리우스한테 철저하게 깨졌으니까.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혼란 속에 몸을 던져, 스스로 피를 흘리고 손을 더럽히며 싸우십시오.”
“…….”
“산속에 틀어박혀 수련만 한다? 참으로 고상하고 고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 함께 바깥으로 나가서 실전 경험을 쌓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에른스트 가문은 금방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게 될 겁니다.”
시리우스는 거침없이 발언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 건방진 말이라, 옆에서 듣고 있는 환왕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너무 걱정 말게, 환왕.”
“……!”
그때 모리츠가 불쑥 입을 열었다.
“패배한 쪽이 무슨 반론을 하겠는가. 다 받아들여야지…….”
“크흠…….”
그 말을 듣고 환왕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지난번에 시리우스한테 패배했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
모리츠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시리우스는 입을 다문 채 빗소리를 들으면서 모리츠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리우스.”
빗소리 속에서, 모리츠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맹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이름 말씀이십니까.”
동부 지역에서 처음 동맹을 만들었을 때, 시리우스는 특별한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목표는 이 세계에서 진정한 무림맹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무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데 어떻게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쓰겠는가.
게다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렇기에 시리우스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새로운 이름을 내세울 생각이었다.
지금 시리우스는 동부와 남부에 이어 서부를 평정하고 있다.
대륙의 절반 이상을 휘어잡았다고 할 수 있으니…… 슬슬 이름을 내세워도 될 것이다.
“정천맹(正天盟)이라고 합니다.”
정천맹.
그것이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날 진정한 무림맹의 이름이다.
천(天)이란 천도(天道), 즉 마땅히 지켜야 할 세상의 도리를 의미한다.
그러니 정천이란 곧 정도(正道)라 할 수 있다.
백도에도 흑도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정도만을 추구하는 연맹.
그것이야말로 시리우스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정천맹이라…….”
모리츠가 입 안에서 그 이름을 음미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네.”
모리츠는 시리우스를 바라보면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른스트 가문은 정천맹의 일원이 되겠네.”
옆에 있던 환왕이 숨을 삼켰다.
남부의 스트라우스 가문에 이어, 또 하나의 대륙 5대 명가를 포섭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륙 5대 명가 중 3개 가문이 참가한 것이 되며, 명실공이 동부와 남부와 서부를 아우르는 거대 세력이 된다.
“앞으로 에른스트 가문은 정천맹주가 추구하는 길을 함께 걷겠네. 잘 부탁하네, 맹주.”
맹주.
그 호칭을 듣는 순간, 시리우스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시리우스는 의도적으로 맹주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그렇게 불릴 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
거대한 힘을 숨기고 있는 연맹 본부와 싸우기 위해, 정천맹의 태두를 용납하지 않을 다른 명문가들에게 맞서기 위해…… 이쪽도 제대로 된 진용을 갖춰야 한다.
다시금 맹주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가 온 것이다.
“함께 세상을 바로잡아 보세, 맹주.”
시리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무림맹주 백무랑이 정천맹주 시리우스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