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119화 (11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19화

119화. 북부에서 만나자

“시리우스 님!”

약삭빠르게 생긴 남자가 마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다.

협원당(俠員堂)의 당주로서 그동안 남부에 머무르고 있던 팔테온이었다.

“레티우드 가문 사람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그래, 너희 쪽은 어떻지?”

“과로 때문에 죽을 맛이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팔테온의 표정은 밝았다.

업무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남부 명문가들이 너무 열심입니다. 현무위단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서 쉴 틈이 없다니까요.”

“다행이군.”

“강철각의 이그레트 공방도 규모를 확장해서 병장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무영각도 잘 돌아가고 있고요.”

백무랑의 무림맹은 일전(一殿), 이원(二院), 삼당(三堂), 사각(四閣), 오단(五團)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다소 조촐하다.

구성원을 관리하는 협원당.

병장기를 공급하는 강철각.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무영각.

시리우스 직속의 공격 부대인 천랑검단.

지역 사회의 치안을 지키는 현무위단.

이런 구성이다.

“팔테온, 이제 만금당(萬金堂)을 창설할 거다.”

“만금당이요?”

“자금을 관리하는 곳이지. 리알드 그란츠 님이 책임지실 거다.”

“아…….”

슬슬 조직의 규모도 커졌고, 회계 부문도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자금 운용의 전문가인 리알드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유스티아 님이 맡는 게 아니군요?”

“유스티아는 천랑표국에서 할 일이 많으니까.”

애초에 시리우스는 유스티아가 만금당주가 아니라 정천맹 전체를 책임지는 대총관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원로원(元老院)도 따로 만들 생각이야.”

“원로원이라면…….”

“명문가의 어르신들을 원로로 대우해 주는 거지. 특별한 업무는 없고, 일종의 명예직이야.”

“아…….”

루트베인 리겔, 클린드 알브라임, 샤디엔 스트라우스, 모리츠 에른스트 등……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원로로 모실 예정이다.

그들이 원로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천맹의 권위를 향상시켜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호제단(白虎制團)이라는 병단도 새로 만들 거다.”

“백호제단? 현무위단하고 비슷한 겁니까?”

“조금 달라. 현무위단은 지역 사회의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역할이라면, 백호제단은 교통망과 시설물을 관리하는 역할이지.”

“혹시…….”

“그래, 산적이나 수적들이 멋대로 통행세를 뜯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 거다.”

흑철맹에서는 하부 조직에 지침을 내려 체계적으로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인 체제를 만들어 놨지만, 그래도 역시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다.

“지금 천랑표국와 흑철맹이 구체적인 방침을 논의 중이야. 계획이 잡히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해야지.”

“혹시 흑철맹 출신들을 백호제단에 투입하는 겁니까?”

“그 녀석들한테도 먹고살 길을 마련해 줘야 하니까.”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팔테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리우스 님, 그러면 녀석들을 관리하는 건…….”

“수고해라, 협원당주.”

“으윽…….”

앞으로 업무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거라고 깨닫고, 팔테온이 신음 소리를 냈다.

“일할 사람이 더 필요하면 새로 뽑아.”

“아무리 사람을 많이 뽑아도 제가 신경 쓸 일이 늘어나는 건 똑같습니다…….”

“불만이 많군.”

이걸로 일원(一院), 이당(二堂), 이각(二閣), 삼단(三團) 체제다.

원로원, 협원당, 만금당, 강철각, 무영각, 천랑검단, 현무위단, 백호제단…… 슬슬 왕년의 무림맹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팔테온이 고생을 많이 하는군.”

“아, 안드레스 님!”

그때 화려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영각주를 맡고 있는 ‘레티우드의 귀공자’ 안드레스였다.

“시리우스, 서부에서도 큰 활약을 한 모양이군.”

“네, 안드레스 형님은 어떠셨습니까?”

“나야 뭐…… 낮이고 밤이고 바빴지.”

안드레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안드레스는 평상시에는 현무위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지만, 필요할 때는 무영각주로서 악인을 처단하는 흑의인이 된다.

이 귀공자가 밤이 되면 시커먼 복면을 뒤집어쓰고 악인들을 습격하고 다닌다는 건 시리우스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란츠 가문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행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안드레스 형님도 남부 대표로서 단상에 올라 한마디 해 주십시오.”

“부담되는군. 최대한 노력해 보지.”

명문가의 장남다운 기품을 지닌 미남자다.

단상에 올라서 연설을 하면 금방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입니다, 안드레스 님.”

“뭐지?”

“무영각에서 거둬들여 주셨으면 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무영각에서?”

현재 무영각의 구성원은 안드레스 한 명이다.

“산중노인회라는 암살자 집단에서 거둬들인 소년들입니다.”

“아…….”

산중노인회의 장로를 쓰러뜨린 뒤, 시리우스는 그 부하들을 거둬들여 티타니아에게 보냈다.

티타니아가 말하길…… 그들 중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한 건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계속 싸움 속에서 살아야 할 거라는 대답을 듣고, 시리우스는 그들을 무영각에 소속시키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싸우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되도록 정의로운 싸움에 종사하게 하고 싶습니다.”

“…….”

안드레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군.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안드레스 형님.”

옛날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안드레스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시리우스는 안드레스가 암살자 소년들을 잘 이끌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비드 형님은 안 오셨습니까?”

“레티시아 씨가 입덧이 심해서 말이다.”

“아…….”

안드레스의 동생인 데이비드는 현무위단의 일원으로서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아내인 레티시아가 셋째를 임신하고 있어서 남부를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옆에서 팔테온이 뺀질뺀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시리우스 님은…… 아윽!”

전광석화처럼 날아온 딱밤에 팔테온이 비명을 질렀다.

“왜 때리시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여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 시리우스 님은 유스티아 님하고 아이를 안 만드십니까, 그런 소리를 할 줄 아셨습니까?”

“아니었어?”

“맞습니다만…… 아윽!”

팔테온의 이마에 딱밤 자국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드레스가 피식 웃었다.

“나도 좀 궁금하기는 하군.”

“안드레스 형님.”

“두 사람의 자식이라면 분명 매우 뛰어난 아이가 되겠지. 대륙을 이끌어 갈 인재가 될 거야.”

“…….”

시리우스가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자, 팔테온이 한마디 했다.

“시리우스 님, 안드레스 님한테도 한 방 먹이셔야죠.”

“시끄럽다.”

“악……!”

세 번째 딱밤에 팔테온이 땅을 굴렀다.

* * *

마침내 정천맹의 정식 출범을 알리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은 팔라미아에 마련했는데,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팔라미아의 일반 시민들도 구경할 수 있게 해 놨다.

서부 지역의 교역 중심지인 팔라미아에서 대륙 곳곳으로 소문이 퍼질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었다.

에른스트 가문을 비롯한 서부 지역의 여러 가문들이 참석하였고, 남부와 동부에서 온 대표들도 자리를 빛냈다.

“아, 저분은……!”

더스텐 일파 사람들과 함께 행사를 구경하던 갈레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흑철맹 맹주, 제피로스 님 아닙니까?”

“그, 그래, 맞는 것 같군.”

지금은 선착장에서 천랑표국의 인부로 일하고 있지만, 원래 더스텐 일파는 흑철맹에 상납금을 바치는 흑회였다.

그런데 그 흑철맹의 우두머리가 시리우스를 수행하며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확실히 세상이 변하긴 변했군요.”

“그러게 말이다. 우리도 다른 마음먹지 말아야겠어.”

심지어 제피로스는 단상에 올라 흑철맹을 해산하고 정천맹의 일원이 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서부 지역의 흑회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등쳐먹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건 예전에 시리우스가 더스텐 일파를 굴복시키면서 했던 얘기와 같은 것이었다.

“안 그래도 천랑표국에서 대우를 잘해 주니…… 이대로 말뚝을 박아야지.”

“일은 고되지만, 휴식 시간은 보장해 주고 봉급도 잘 올려 주고 말이죠.”

정천맹에 참가하는 건 흑철맹 뿐이 아니었다.

연맹에 가까웠던 가르투스 용병단도 정천맹의 일원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서부 지역은 더 이상 흑회 세력이 활개 치는 무법지대가 아니게 된다.

이제 혼란은 끝나고, 정천맹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더스텐 일파뿐만 아니라 행사를 구경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 * *

“결국 연맹과 전면 전쟁을 시작하기로 한 거군요.”

행사가 끝난 뒤, 베르디안이 시리우스에게 말했다.

오늘 시리우스는 단상에 올라 연맹의 악행을 낱낱이 밝힌 뒤, 정천맹의 이름으로 연맹을 토벌할 것을 선언했다.

“이렇게 대놓고 선언했으니, 연맹에서도 지금까지 하고는 다른 반응을 보일 거예요.”

“그렇겠지.”

이미 풍왕이 죽었다.

독왕의 최측근인 슈레흐트도 당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토벌 선언까지 했으니, 연맹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연맹에서 대륙 각지에 최고 간부들을 파견해서 일제히 공세를 펼치면 대응하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환왕도 그렇게 말하더군.”

검제, 뇌제, 염제, 독왕, 빙왕, 사왕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서 일제히 반격에 나선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로 협력해서 움직일 놈들이 아니다.

“그래도 베르디안, 우리가 미끼가 되어야 해.”

“네, 알고 있어요.”

시리우스와 베르디안, 환왕이 함께 움직이면 연맹은 그쪽에 전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놈들을 유인해서 척살해야 한다.

“시리우스 님, 삼두사(三頭蛇)의 슈레흐트 님이 나타났다고 했죠?”

“그래, 나하고 환왕을 죽이려고 했지.”

“독왕 전하의 명령을 받았을 거예요. 그러니…… 삼두사의 나머지 두 사람도 조만간 나타나겠죠. 조심해야 할 거예요.”

시리우스에게 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니 독왕의 부하들에게 기습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주위를 경계해야 한다.

베르디안이 해독약과 내독약을 만들었지만, 삼두사 같은 실력자들한테는 제대로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 북부로 간다고 하면…….”

바로 그때.

알레이온이 시리우스한테 다가왔다.

“단주님…… 아니, 맹주님.”

알레이온은 오늘 천랑검단을 지휘하면서 행사장을 경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평소보다 훨씬 심각했다.

“방금 전, 부하가 이 편지를 들고 왔습니다. 누군가가 주고 갔다고 하더군요.”

“편지?”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레이온이 건네준 편지를 펼쳐 봤다.

하얀 종이 위에는…….

“북부에서 만나자, 빙왕…….”

편지에 적힌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시리우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빙왕의 부하가 행사를 직접 관람하고 있었나 보군.”

“죄송합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오늘 행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고, 상당수는 서클을 지닌 마법사였다.

그들 사이에서 빙왕의 부하를 찾아내는 건 어려웠다.

“굳이 추적하지 마라. 조용히 구경만 하고 간 것 같으니, 우리도 조용히 보내 줘야지.”

“알겠습니다, 맹주님.”

고개를 숙이는 알레이온 앞에서,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에게 물었다.

“베르디안, 빙왕은 어떤 인물이라고 했지?”

“직접 북부 지역에 머무르며 북부 지부를 지휘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테르나크 가문과 계속 충돌하고 있죠.”

북부 지역은 서부 지역하고도 상황이 다르다.

테르나크 가문과 빙왕이 북부 지역의 패권을 놓고 계속 다투고 있다.

“냉철하면서 야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풍왕보다 강합니다.”

“풍왕보다 강하다…….”

“다섯 왕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나 빙왕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 정도 실력자가 북부 지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시리우스는 기대감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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