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0화
120화. 토벌을 개시한다
에른스트 가문과 그란츠 가문에게 서부 지역을 맡긴 뒤, 시리우스는 북부 지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동안은 강을 타고 이동했지만, 북부 지역은 육로를 통해 이동해야 한다.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이쪽 가르간티스 산맥을 넘어야 해요.”
유스티아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험준한 산맥이 북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경계였다.
“문제는 가르간티스 산맥을 넘어가는 주요 경로를 전부 산적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죠.”
“산적들이라…….”
“평범한 산적들이 아닙니다.”
옆에 있던 제피로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연맹 북부 지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놈들입니다. 흑철맹이 압박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더군요.”
“직접 충돌한 적도 있나?”
“흑철맹 산하의 조직 중 하나가 그쪽과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상대가 안 됐다고 하더군요.”
“꽤 실력 있는 놈들인가 보군.”
“특히 산적들의 우두머리인 갈리우스라는 놈이 강합니다. 8서클의 마법검사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벨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어떻게 산적이 8서클에 도달하지? 체계적으로 마법을 배운 사람도 8서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연이 있겠지. 어디서 좋은 스승을 만났을 수도 있고.”
시리우스는 지도를 다시 살피며 말했다.
“유스티아, 천랑표국으로서는 어느 경로로 이동하고 싶지?”
“그야…… 이쪽 가프랑 고개죠.”
유스티아가 지도에 표시된 고갯길을 가리켰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길도 넓어요. 이쪽 루트를 뚫을 수 있다면 북부와 서부의 교역을 크게 활성화시킬 수 있겠죠.”
“그러면 그쪽을 뚫어 봐야겠군.”
“그렇게 쉽지 않아요. 산적들이 이곳을 완전히 장악하고 무슨 요새처럼 만들어 놨다고 하니까요.”
“상관없어. 정면에서 뚫도록 하지.”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은 앞으로 누구의 화물도 건드리지 못하게 될 거다.”
* * *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북쪽으로 출발했다.
북부 지역으로 가는 천랑표국의 수송단을 천랑검단이 호위하는 형식이었다.
물론, 천랑검단에는 알레이온뿐만 아니라 시리우스, 환왕, 벨리드, 베르디안, 제피로스까지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시리우스.”
말을 타고 가는 도중, 벨리드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제피로스라는 녀석,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거지?”
“서열?”
“마지막에 들어왔으니 막내인가?”
벨리드가 하는 소리를 듣고, 반대편에서 말을 타고 있던 제피로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맹주님, 이 녀석 대체 뭡니까? 별것도 아닌 놈 같은데 맹주님한테 반말이나 하고, 너무 건방진데요.”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번에는 벨리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자식아, 내가 시리우스의 제일가는 친구야.”
“제일가는 친구?”
“그래, 나만큼 친한 친구가 없어.”
“믿기 어려운데…….”
“진짜라니까? 이봐, 시리우스, 나보다 친한 친구 있어?”
벨리드의 확인에 시리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친구였나?”
“야……!”
시리우스의 냉담한 대꾸에 벨리드가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제는 좀 인정해 주라고! 어차피 너는 나 말고 친구라 할 사람 없잖아!”
“…….”
그러고 보니 시리우스는 벨리드 말고는 딱히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벨리드를 유일무이한 친구라고 인정하는 건 왠지 찜찜했다.
“그냥 친구 없는 외톨이인 걸로 해야겠군.”
“이 자식이……!”
벨리드가 눈을 치켜뜨자, 제피로스가 피식 웃었다.
“뭐야, 불쌍한 놈이군. 혼자만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아, 아니라고! 시리우스는 쑥스러워서 저러는 거야!”
“어쨌든, 서열 같은 걸 따지고 싶으면 한번 붙어 보자. 어느 쪽이 강한지 위아래를 가리면 되겠지.”
사실 서열에는 큰 의미가 없다.
최근에 시리우스가 서열을 정리했을 때도 그냥 나이 순서대로 정했으니까.
다만 제피로스는 시리우스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나이 순서대로 하면 제피로스가 시리우스보다 서열이 높아진다.
실력 순서대로 해도…… 제피로스가 시리우스와 환왕 다음 서열이 된다.
실제로 그 정도 실력을 갖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들어온 제피로스가 갑자기 서열 3위가 된다고 하면 과연 다들 납득할까.
“어, 어느 쪽이 강한지 위아래를 가려 보자고? 그건 좀…….”
“벨리드.”
바로 그때.
큰형님 취급을 받는 환왕이 입을 열었다.
“너무 까불지 마라. 제피로스는 흑철맹이라는 거대 단체를 이끌고 시리우스에게 투항한 놈이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앗…….”
“나이 차이도 별로 없고, 시리우스 앞에서 몸을 낮추고 있으니 만만해 보이는 모양인데…… 저놈이 마음만 먹으면 네 녀석 정도는 단번에 죽일 수 있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
벨리드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보고 시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너무 뭐라 하지 마십시오, 큰형님.”
“누가 큰형님이냐.”
“벨리드가 저러는 건, 그동안 저하고 오랫동안 함께 다녔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레이온을 제외하면, 벨리드가 가장 오래전부터 시리우스와 함께 다녔다.
“벨리드는 예전부터 저를 도와준 동료입니다. 그 부분은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 시리우스…….”
벨리드가 감동한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베르디안이 중얼거렸다.
“언제는 친구도 아니라고 하고, 언제는 오랜 동료라고 하고…… 사람 마음을 아주 가지고 노시네요.”
“초 치지 마라, 베르디안.”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피로스, 네 실력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너는 충분히 정천맹의 중진 역할을 할 자격이 있다.”
“네…….”
“하지만, 갑자기 너한테 높은 자리를 주면 벨리드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위화감을 느낄 거다. 어째서인지 아나?”
“제가 신참이기 때문입니까? 다른 부하들처럼 오래전부터 함께 해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아니,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뢰.
결국 그게 문제였다.
“네가 흑철맹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불신감을 준다. 언젠가 우리 뒤통수를 치고 흑철맹을 부활시킬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맹주님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내가 너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네가 야심이 많은 인간이었던 건 사실이고, 다들 너를 어느 정도 경계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자, 앞장서서 전진하고 있던 알레이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레이온은 줄곧 제피로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천랑검단 부하들에게 제피로스를 감시하도록 명령해 둔 상태였다.
“제피로스, 일단 한동안 네가 막내 역할을 해라.”
“제가…… 막내입니까?”
“그래, 그게 맞을 것 같다.”
흑철맹의 우두머리였던 사람이, 묵묵히 막내 역할을 수행하며 몸을 낮춘다.
신뢰를 쌓아 가기에는 이게 최선일 것 같았다.
“애초에…… 벨리드가 말하는 서열이라는 것도 그렇게 진지한 게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허물없이 지낼 때 누가 형 노릇을 하고 누가 동생 노릇을 하는지 정하기 위한 것이지.”
“아…….”
“내가 보기에 너는 동생 노릇도 잘할 것 같다. 그동안 흑철맹에서 큰형님 노릇은 많이 했을 테니, 이제는 막내 노릇도 해 봐라.”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제피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맹주님이 그렇게 결정하셨으면 따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제피로스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뒤쪽에서 베르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막내에서 탈출하네요. 그동안 막내로서 온갖 심부름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제피로스가 없을 때는 네가 막내야. 너무 안심하지 마라, 베르디안.”
“짜증…….”
베르디안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시리우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슬슬 가르간티스 산맥이 보이기 시작하는군.”
딱 봐도 험준해 보이는 산맥이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저곳을 넘으면…… 일행은 북부 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 * *
천랑검단은 원래 칼슈타인 검단의 잔당으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무림의 검술을 가르치면서 철저히 훈련시켰고, 여러 지역에서 쓸 만한 놈들을 가입시켜 규모도 키웠다.
그 결과 천랑검단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정예부대로 성장한 상태였다.
그런 천랑검단이 천랑표국을 호위하면서 가르간티스 산맥으로 진입하고 있으니…… 산적들도 전력을 집결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두에 서 있던 알레이온의 목소리를 듣고, 다들 고개를 치켜들었다.
가프랑 고개에 수백 명이 넘는 산적들이 집결해 있었다.
들었던 대로 방어 시설을 설치하여 마치 요새처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천랑표국을 지켜라!”
알레이온이 목소리를 높이자, 천랑검단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고갯길 좌우에서 산적들이 습격하는 걸 대비해, 좌우 양쪽에서 천랑표국의 수송단을 지키는 진형을 취했다.
전방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시리우스가 측근들과 함께 앞으로 나섰으니까.
“멈춰라!”
턱수염을 기른 거한이 부하들과 함께 전방을 막아섰다.
시리우스가 살펴보니 별다른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매우 건장해서, 사람 한 명 정도는 맨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갈리우스 일파가 관리하고 있는 길이다. 통과하려면 통행료를 내도록 해라.”
그 목소리를 듣고, 시리우스는 제피로스를 힐끔 쳐다봤다.
“막내.”
“네, 맹주님.”
“네가 응대해라.”
그렇게 지시를 내리자, 제피로스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제피로스가 앞장서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턱수염의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뭐가 궁금하지?”
“통행료의 책정 기준을 알고 싶다. 구체적인 기준을 알려 주면 우리가 검토하여 지불하겠다.”
“…….”
턱수염이 잠시 침묵했다.
“그런 건 없다.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성의를 보여라.”
“성의가 어느 정도지? 화물 가치의 2할 정도면 되나?”
“어림도 없는 소리. 절반은 내놔라.”
“형편없군.”
“뭐라고?”
“그런 식으로 해서 장사가 되겠나?”
제피로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통행료라는 건 적정 수준을 지켜야 하는 법이다.”
“…….”
“너무 많은 통행료를 요구하면 상인들이 그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다른 루트를 이용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제피로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딱히 산길을 잘 정비해 놓은 것도 아니군. 화물 가치의 5할을 지불하면서까지 통과할 길이 아닌데, 대체 무슨 배짱인 거냐?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물론, 너희도 나름대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지 않으니, 한 번에 많이 뜯어내야 한다고.”
“…….”
“급한 화물이라면 이 고갯길을 지나갈 수밖에 없지. 그런 급한 사정을 이용해 너희는 매번 거액의 통행료를 뜯어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짓을 반복하면 결국 너희들만 손해 본다.”
흑철맹 시절, 제피로스는 통행료나 보호비를 어떻게 징수해야 하는지 하부 조직들에게 일일이 지침을 내렸다.
그런 제피로스의 눈으로 보기에 갈리우스 일파의 운영 방식은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유스티아 님하고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녀석이네.”
“…….”
옆에서 벨리드가 한마디 해서, 시리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티아도 제피로스도 효율적으로 금전적 이득을 얻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만 유스티아는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다 함께 이득을 얻는 방식을 추구해 온 반면…… 제피로스는 사람들에게 돈을 뜯으면서 자기들만 이득을 얻는 것만 추구해 왔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래도 이제는 제피로스도 흑회에서 손을 씻었으니, 차츰 유스티아 같은 방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쯧, 애송이가 뭘 안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제피로스의 설교에 짜증을 냈다.
“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말고, 어서 통행료나 바쳐라.”
“불합리한 통행료라면 지불할 수 없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가 커다란 대검을 건네줬다.
“됐다. 너를 죽이고 너희들 대장하고 얘기를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턱수염의 남자가 대검을 크게 치켜들었다.
워낙 건장한 남자라 마법검 없이도 제피로스를 일도양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네가 감히?”
꽈앙!
마력병장을 전개한 제피로스의 주먹이 남자의 복부에 직격했다.
몸집은 절반밖에 안 되었지만, 마력으로 강화된 주먹은 상대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남자는 그대로 후방으로 날아가 부하들 사이에 떨어졌다.
“혀, 형님……!”
“어떻게 이런……!”
일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노려보며, 제피로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네까짓 놈이 말을 섞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막내인 내가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라.”
“저 자식이……!”
분노하는 산적들을 내버려 둔 채, 제피로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봤다.
“이 정도면 막내 노릇은 한 겁니까?”
그렇게 말한 뒤, 제피로스는 아까 자신을 견제했던 벨리드를 쳐다봤다.
이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과시하는 눈빛이었다.
“하하, 아주 잘했다, 막내!”
하지만 벨리드는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었다.
제피로스의 활약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피로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막내가 잘해 줬군. 그러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측근들은 물론이고 천랑검단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정천맹의 이름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뒤 첫 번째 싸움이다. 그러니 다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해라.”
수하들을 쓱 훑어본 뒤, 시리우스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천맹, 갈리우스 일파 토벌을 개시한다.”
“네……!”
일방적인 토벌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