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3화
123화. 명백한 선전 포고였다
베르디안이 부채를 흔들어 독약을 뿌리는 동안,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경비원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어느새 시리우스는 단상 위로 올라가 있었다.
“혹시 더 높은 금액으로 입찰하실 분…… 음?”
경매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말을 멈추고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열심히 입찰하던 손님들도 전부 시리우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왜 저래? 술을 너무 마셨나?”
“약물에 취했을 수도 있어.”
“이봐! 방해되니까 꺼져!”
손님들이 야유를 보내는 사이, 경비원들이 다급히 단상으로 올라왔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따라와 주시죠.”
하지만, 그들은 시리우스를 끌어내지 못했다.
시리우스가 소매를 펄럭인 순간, 목이 꺾여 쓰러 졌기 때문이다.
“……?”
손님들은 단상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피 한 방울도 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상에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금방 상황을 이해하고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비명 소리가 아니었다.
“쿨럭!”
“커헉!”
기침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평범한 기침이 아니었다. 가래 대신 핏물이 나오는 기침이었다.
하지만 객석이 워낙 어두웠기에 사람들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독약이 객석 전체를 뒤덮고 있었지만, 베르디안 본인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단상 위의 사회자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닫고 뒷걸음쳤다.
시리우스는 신경 쓰지 않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이걸 먹어라.”
“……?”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이 만든 내독제를 꺼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먹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
객석에서는 사람들이 피를 토하면서 차례차례 쓰러지고 있었다.
단상까지 독약이 퍼지지 않도록 베르디안이 조절했겠지만, 그래도 내독제를 먹어 두는 편이 좋다.
“그냥 삼키면 된다.”
“…….”
여자아이가 두려움에 떨면서 알약을 입에 삼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시리우스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회자가 뒷걸음치고 있었기에, 비수를 집어던졌다.
“컥……!”
등에 비수를 맞고 쓰러지는 사회자.
하지만, 그 대신 단상 뒤편에서 새로운 경비원들이 뛰어들어왔다.
“뭐 하는 놈이냐!”
“끌어내!”
시리우스는 먼저 백랑의 공력으로 여자아이를 속박하고 있던 족쇄를 끊었다.
그사이 경비원들이 시리우스에게 접근했지만, 시리우스가 팔을 한 번 휘두르자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베르디안.”
“네, 시리우스 님.”
부채를 접으면서 베르디안이 단상으로 다가왔다.
“이 아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백빙화는 어쩌고요?”
“내가 찾아볼 테니, 나중에 진품인지 감정만 해 줘.”
“알겠습니다.”
베르디안이 여자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시리우스는 화천의 공력을 방출해 객석에 불을 질렀다.
“끄윽……!”
“사, 살려 줘……!”
중독되어 쓰러진 손님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조금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손님들 중에 어린 여자아이를 낙찰하려 했던 건 극히 일부였다.
하지만 나머지 놈들도 그냥 방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다 똑같이 취급해 주면 된다.
“…….”
시리우스는 아까 경비원들이 튀어나왔던 곳으로 향했다.
다른 놈들이 가로막았지만, 모조리 죽이며 전진했다.
“이게 오늘 출품될 예정이었던 물건들인가.”
다행히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시리우스는 물건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러던 도중, 화려한 칼집에 담긴 검이 눈에 들어왔다.
“…….”
검을 뽑아서 칼날을 확인했다.
칼날 색이 특이했다. 마치 칠을 한 것처럼 까만색이었는데, 철 자체가 흑색인 것 같았다
가볍게 휘둘러보니 꽤 괜찮은 검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모리츠 에른스트의 고유 마법을 받아치다가 요철검이 부러졌다.
강철각에 새 요철검을 주문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거라도 써야겠군.”
검을 허리에 찬 뒤, 시리우스는 물품들을 계속 뒤졌다.
그러다 보니 작은 상자에 담긴 약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
나이엘 유테루스의 약장에서 찾았던 백빙화와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모조품일 수도 있으니 베르디안에게 감정을 받아야 한다.
시리우스는 약초를 품에 넣은 뒤,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멈춰라……!”
얼굴에 상처 자국이 많은 남자가 부하들을 이끌고 복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간이 큰 놈이군. 이곳이 이 로벨루트가 운영하는 경매장이라는 걸 알고 이런 난동을 부린 거냐?”
“네가 책임자인가 보군.”
시리우스는 차가운 눈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혹시 고객 명부 같은 건 없나? 단골들을 추적해서 모조리 척살하고 싶은데.”
“죽여라!”
로벨루트는 시리우스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수하들이 짧은 칼을 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공간이 좁았기에 짧은 칼이 더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 확보한 검을 뽑아 들었다.
“윽……!”
“아악……!”
촤악!
바람처럼 움직여서 놈들을 도륙했다.
공간이 좁든 넓든, 이 정도 녀석들을 베어 죽이는 건 시리우스한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놈, 르블링드 가문의 흑철검을……!”
르블링드 가문.
아까 여자아이를 소개할 때 사회자가 언급했던 이름이다.
은랑공이라는 놈이 르블링드 가문을 멸망시켰다고 하던데, 이 검도 거기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
시리우스는 칼날에 북명의 공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흑색 칼날 위에 흑색 기운이 더해지면서 상당히 섬뜩한 모습이 되었다.
“이 자식……!”
로벨루트가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이미 그는 마법검을 전개한 상태였다.
하지만…….
“……!”
칼날이 충돌한 순간, 마법검을 구성하고 있던 마력이 송두리째 빠져나갔다.
천랑신공의 첫 번째 단계인 북명은 상대의 기(氣)를 집어삼키는 성질을 지녔다.
마력검을 유지하는 마력까지 빨아들인 것이다.
“꽤 좋은 검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리우스는 검을 휘둘렀다.
마력으로 보호되지 못한 로벨루트의 검이 단번에 부러졌다.
“아악……!”
촤악!
로벨루트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비명을 지르면서 로벨루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 멈춰!”
시리우스가 숨통을 끊으려 하자, 로벨루트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여,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을 거다! 만약 나를 죽이면 은랑공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은랑공이라.”
시리우스는 아까 들었던 얘기를 되새기며 물었다.
“은랑공이 너희들 뒷배인가?”
“그, 그래! 은랑공은 빙왕의 수제자다!”
“빙왕의 수제자라…….”
“아주 잔혹하신 분이다! 그분이 너희를 지옥 끝까지 추적해서 반드시…… 끄윽!”
푸욱.
흑철검이 로벨루트의 가슴에 꽂혔다.
“그러면 굳이 직접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
로벨루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절명했다.
시리우스는 로벨루트의 시체를 발로 밟고 복도를 통과했다.
화천의 공력을 방출하여 불을 더 크게 지르면서.
“나오셨군요.”
바깥으로 나오니, 베르디안이 여자아이를 데리고 싸우는 중이었다.
유운진기를 실은 채찍을 휘두르면서 덤벼드는 놈들을 차례차례 제압하고 있었다.
“유운진기를 다루는 실력이 늘었군.”
“매일 수련하고 있으니까요.”
베르디안은 시리우스가 시키는 대로 영약을 복용하면서 유운심법을 계속 수련하고 있다.
이미 내공도 1갑자를 넘어선 상태였다.
“조만간 검술도 가르쳐 주마.”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우스는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측면에서 덤벼들던 놈들이 검풍(劍風)에 두 조각 났다.
“……!”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놈들이 주춤했다.
그들을 쳐다보면서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덤비고 싶은 놈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라.”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리우스는 코웃음을 친 뒤 앞으로 걸어 나갔다.
놈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 줬다.
“대, 대체 뭐 하는 놈이냐?”
“궁금한가?”
누군가가 다급히 질문했기에, 시리우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해 줬다.
“우리는 정천맹이다.”
“정천맹……?”
“아직 북부에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군.”
시리우스는 베르디안과 여자아이를 데리고 걸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실어 말했다.
“조만간 정천맹에서 천랑검단을 이곳에 파견할 거다. 더러운 짓을 하고 있는 업장은 모조리 때려 부술 테니 기억해 두도록.”
“……!”
“불만 있는 놈은 발그라드로 찾아와라. 현재 정천맹은 발그라드에 머무르고 있으니까.”
이건 명백한 선전 포고였다.
전율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시리우스는 스블란드를 빠져나갔다.
* * *
“은랑공이라.”
시리우스의 얘기를 듣고, 환왕이 생각에 잠겼다.
“빙왕의 제자 중에 비슷한 이름을 지닌 놈이 있었지. 그놈이 성장해서 은랑공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모양이군.”
“조사를 해 보니 이 일대는 은랑공이 관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갈리우스도 은랑공한테 명령을 받고 있던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조만간 은랑공이 쳐들어오겠군. 이렇게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니.”
“아주 잔혹한 놈이라고 하던데요.”
“그래, 게다가 나쁜 취미가 있지.”
“나쁜 취미?”
“미녀를 밝힌다. 미녀를 죽이는 것도 좋아하고.”
경매장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르블링드 가문의 여인한테 나쁜 짓을 했다는 것 같았다.
“쓰레기로군요.”
“그렇지.”
색마(色魔).
그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림에는 때때로 색마라는 별호로 불리는 악인들이 나타난다.
백무랑이 무림맹주 자리에 있을 때도 어떤 문파에서 쫓겨난 고수가 아녀자를 겁탈하고 다녀 색마라 불렸다.
워낙 재빨라서 아무도 붙잡지 못했는데, 결국 백무랑이 직접 나서서 척살했다.
은랑공이 색마 같은 놈이라면, 이번에도 시리우스가 척살해야 할 것이다.
“그런 놈이 계속 활개 치고 다니다니, 북부는 서부보다 더 무법지대인 것 같군요.”
“어쩔 수 없다. 이 근방은 테르나크 가문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니.”
“놈이 빨리 쳐들어오기를 바라야겠군요.”
“그래, 그런데…….”
환왕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는 뭐냐?”
“은랑공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랍니다. 경매장에서 구출했습니다.”
“으음…….”
시리우스 옆에서는 갈색 머리카락의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르블링드 가문의 외동딸인데, 은랑공에게 가문이 멸망당해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데려온 거지?”
“큰형님이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내가 왜?”
환왕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쁘십니까?”
“아니, 바쁘지는 않지만…….”
유스티아, 알레이온, 벨리드, 베르디안, 제피로스 등은 각자 업무가 있다.
하지만 지금 환왕은 별다른 업무가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애를 봐달라고 하는 건…….”
“이 아이, 지금 말을 못합니다.”
“뭐?”
“정신적인 충격이 심한 것 같습니다. 잘 달래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군요.”
시리우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디안이 지금 약을 만들고 있긴 합니다만…… 큰형님이 마법으로 어떻게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
환왕은 시리우스가 뭘 부탁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환영 마법으로 마음의 상처를 완화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환왕이 할 말을 잃은 채 가만히 있었을 때.
바깥에서 알레이온이 얼굴을 내밀었다.
“맹주님, 잠시 괜찮겠습니까? 천랑검단의 편제에 대해서 의논드리고 싶습니다만.”
“알겠다. 곧 가지.”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큰형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이것 참…….”
난감해하는 환왕을 두고, 시리우스는 자리를 떴다.
방 안에는 환왕과 여자아이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환왕이 한숨을 내쉬었을 때, 여자아이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 흐윽…….”
“……!”
환왕은 당혹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가, 가만있자, 일단…….”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환왕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 일단 잠이나 푹 자라.”
그 순간.
흐느끼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감고 잠들어 버렸다.
환왕이 마법으로 잠재운 것이었다.
“이것 참…….”
아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하면서, 환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아이가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다.
악몽을 꾸게 하는 게 더 능숙하지만, 좋은 꿈을 꾸게 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니까.
“어휴, 이걸 어쩐다.”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잠들어 버린 아이를 끌어안은 채, 환왕은 난감한 심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