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5화
125화. 불편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시리우스는 유스티아를 만나러 갔다.
“결국 당신 때문에 제가 표적이 된 거네요.”
은랑공의 편지를 다 읽은 뒤, 유스티아는 무표정으로 시리우스에 돌려줬다.
“시리우스, 당신이 바깥에서 어떻게 행동하든 그건 당신 자유이긴 한데…… 왜 제가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거죠?”
유스티아는 시리우스를 흘겨보며 말했다.
“남편 때문에 표적이 되다니, 저도 참 고생이 많은 아내네요.”
“어차피 내가 없었어도 당신은 표적이 되었을 거야.”
“무슨 소리죠?”
시리우스는 냉정한 태도로 말했다.
“은랑공은 미녀를 밝힌다고 하니까.”
“네?”
“내가 은랑공을 자극하지 않았어도, 결국 은랑공은 당신을 탐냈을 거란 얘기지.”
유스티아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걱정 마라, 유스티아.”
그런 유스티아를 향해, 시리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듯이, 나는 내 아내를 탐내는 놈을 결코 용서 하지 않는 남자다.”
“그건…… 명분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잖아요.”
리겔 가문 주위의 적들을 때려잡을 때, 시리우스는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애처가 행세를 했다.
자신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내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하면 민중들의 호감을 얻기 쉬우니까.”
“…….”
“애초에…… 다른 남자가 당신을 건드리는 걸 그냥 용납할 수는 없지.”
흠칫 놀라는 유스티아를 향해, 시리우스는 계속해서 말했다.
“유스티아, 거듭 말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며칠 전, 베르디안은 시리우스한테 유스티아를 안심시켜 주라고 조언했다.
마침 좋은 기회이니, 확실히 태도를 설명해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지킬 거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가까운 사이가 될 생각도 없다.”
“시리우스…….”
“비록 형식적인 관계라고는 하지만, 우리 부부 관계가 흔들리면 우리 모두한테 손해야. 그러니…… 나는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그렇게 말한 뒤, 시리우스는 시선을 돌리면서 덧붙였다.
“물론, 당신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저라고 해서…… 생각이 다르지는 않아요.”
“그럼 다행이군.”
시리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원해서 유스티아와 결혼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유스티아와의 관계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매번 시리우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고, 발목을 잡는 일도 없다.
전생의 아내하고 비교해 보면 천지 차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같은 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후우…….”
시리우스가 자리를 뜬 뒤.
홀로 남은 유스티아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갑자기 뭔가요, 정말…….”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유스티아는 중얼거렸다.
“저도 딱히 다른 남자하고 가까운 사이가 될 생각은 없거든요…….”
시리우스가 갑자기 저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베르디안하고 단둘이서 외출할 때 살짝 언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딱히 진심으로 질투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기억해 두고 있던 모양이다.
“애초에 남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유스티아는 원래 이성과의 연애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결혼을 한 유부녀다. 그런 몸으로 다른 남자와 가까운 관계를 맺을 리가 없지 않은가.
따로 애인을 만들었다가 지금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라도 하면…… 유스티아만 손해다.
유스티아한테도 시리우스는 최고의 파트너니까.
“그리고…….”
유스티아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아까 시리우스는 말했다.
은랑공은 미녀를 밝히니까 유스티아는 어차피 표적이 될 게 뻔했다고.
그 말은 곧…… 시리우스가 유스티아를 그 정도의 미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었지만, 이건 유스티아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는 그런 말 안 하다가, 왜 갑자기…….”
평상시에는 외모를 칭찬받아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그런 말을 안 하던 사람이 불쑥 말을 꺼내서 허를 찔린 탓일까.
차분한 태도로 ‘칭찬해 줘서 고맙네요.’라고 대꾸해 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후우우…….”
유스티아는 책상 위에 얼굴을 묻은 채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뭐, 당신이 멋있게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다고요…….”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유스티아 님하고는 얘기 잘 나누셨나요?”
천랑객잔으로 돌아오니, 베르디안이 1층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유스티아 님을 직접 지정해서 위협한 거니까, 유스티아 님이 안심할 수 있도록 잘 말해 둬야 할 텐데요.”
“걱정하지 마. 잘 얘기했어.”
“정말인가요? 시리우스 님은 평소 유스티아 님한테 너무 쌀쌀맞아서 믿음이 안 가는데요.”
“유스티아도 나한테 쌀쌀맞거든.”
그렇게 대꾸하며 시리우스도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지난번의 네 조언을 참고해서 잘 얘기했어.”
“어라, 그때는 제 조언에 콧방귀만 뀌시더니.”
“연애 경험도 없는 애송이가 유부남한테 충고를 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여자 마음은 여자가 잘 알죠.”
그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을 때, 위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음, 졸려.”
“명문가 출신답지 않게 천박한 하품이군.”
벨리드와 제피로스가 2층에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어젯밤 늦게까지 객잔 앞 공터에서 수련을 했다.
늦잠을 자고 이제야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 시리우스,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맹주님.”
“이미 점심시간이다, 게으름뱅이 녀석들.”
시리우스의 핀잔을 들으면서 벨리드와 제피로스가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빨리 잠 깨라.”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래.”
“흐음…….”
시리우스의 짧은 대답만으로도 벨리드는 모든 걸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딱히 긴장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동안 시리우스와 함께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배짱을 지니게 된 상태였다.
물론, 눈앞에 있는 시리우스가 어떻게든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맹주님…….”
하지만 제피로스는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다.
벨리드와는 달리 시리우스와 함께 한 시간이 짧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도 차이가 나왔다.
“따로 준비할 게 있습니까?”
“말했잖아. 잠이나 깨라고.”
“이미 다 깼습니다.”
“그러면 식사나 해.”
“알겠습니다.”
제피로스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 직후, 바깥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많이 모여 있군.”
이른 아침까지만 해도 천랑객잔 1층에 있었던 환왕이었다.
하지만 세피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피아는 어떻게 하셨죠?”
“천랑표국 사람한테 맡겼다.”
환왕은 지친 표정이었다.
아이를 떼어 놓느라 고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배고프군.”
“뭣 좀 드시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 바깥에서 알레이온도 나타났다.
“맹주님, 천랑검단 배치가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유스티아를 만나기 전, 시리우스는 알레이온에게 발그라드 각지에 천랑검단을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조치였다.
“너도 여기 앉아라.”
“괜찮겠습니까?”
“여기서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알겠습니다.”
알레이온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제피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다른 사람들 식사도 준비할까요?”
“그래, 그냥 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
잠시 후 제피로스가 빵과 함께 간단한 요리를 내왔다.
시리우스는 사람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뭐야, 예상했던 것보다 맛있는데?”
“흑회 조직 말단이었을 때 식사 당번도 했습니다.”
“막내 체질이었군. 앞으로도 계속 막내 해라.”
“너무하십니다, 맹주님.”
허름한 임시 객잔 1층에서 다 같이 식사하며 잡담을 나눴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술병을 꺼내서 한 잔씩 하기도 했다. 차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들여다보면 한가한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현재 정천맹이 북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고 전력이었다.
“슬슬 어둑어둑해지는군.”
“어떻게 할까요? 저녁 식사를 차릴까요?”
북부 지역은 해가 일찍 진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니, 식사는 나중에 하자.”
시리우스는 바깥을 내다봤다.
어둑어둑한 황야 위에서 마차 두 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평범한 마차가 아니라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다들 표정이 달라졌다.
베르디안은 채찍과 부채를 점검했고, 벨리드는 구석에 기대 놓았던 가검을 다시 잡았다.
제피로스는 컵에 남아 있던 술을 단번에 들이켰고, 알레이온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확인했다.
환왕은 팔짱을 끼면서 입을 열었다.
“나갈까?”
“그러지요.”
다 함께 일어서서 객잔 앞으로 향했다.
원래는 통행세를 징수하는 검문소였던 건물이다.
그러니 객잔 앞을 막으면 발그라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물론, 비행 마법을 쓰거나 하면 굳이 이곳을 지나가지 않아도 되지만…… 상대는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
마차 두 대가 객잔 가까이에서 멈췄다.
선행하던 마차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시리우스 일행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마차에서 무슨 물건들을 꺼냈다.
가장 먼저 꺼낸 건 호화로운 의자였다.
좌우로 길어서, 의자 위에 누워도 될 듯했다.
그 앞에 탁자를 놓은 뒤 술병과 술잔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는 두 번째 마차 앞에 양탄자를 깔았다.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맨땅을 밟지 않도록 하려는 것 같았다.
“지랄을 하네…….”
제피로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박한 말투였지만, 다들 제피로스에게 동의하고 있었다.
“은랑공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음, 수고했다.”
마침내 두 번째 마차에서 그들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갸름한 얼굴을 지닌 남자였다.
은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웠고, 이목구비도 단정한 편이었다.
하지만 눈빛이 너무 야릇했다. 붉은색 입술도 음흉한 느낌을 줬다.
남자에게는 불쾌감을, 여자에게는 경계심을 주는 인상이었다.
“딱 봐도 색마같이 생겼군…….”
천랑무제 백무랑이 무림에서 죽였던 색마도 비슷한 인상이었다.
저런 관상으로 태어나면 여색을 탐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여색을 탐하다 보면 저절로 저런 관상이 되는 걸까?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렇게 다 같이 마중을 나와 주다니, 정성이 대단하군, 정천맹.”
남자는 양탄자 위를 걸어, 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자세를 보니 평소에는 여자를 끼고 앉아 있었을 것 같았다.
“내가 은랑공이다. 만나서 반갑군.”
“…….”
은랑공의 시선이 베르디안에게 향했다.
음흉한 눈빛에 베르디안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은랑공은 곧바로 시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네가 시리우스 카니스루트인 것 같군. 내가 보낸 편지는 읽었나?”
“읽었지.”
“그렇다면 네 아내를 어서 내놔라.”
은랑공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마음껏 즐긴 뒤, 네 곁으로 돌려보내 주마.”
음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저 미친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네.”
“동감이다. 맹주님은 아내를 탐내는 놈을 절대로 용서 안 하는데.”
벨리드와 알레이온이 귓속말을 했다.
시리우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내 아내는 지금 업무가 바빠서 말이다.”
“바쁘다고?”
“그래서 내가 상대해 주려고 하는데, 괜찮은가?”
“…….”
은랑공이 잠시 정색했다.
“나는 남색은 즐기지 않는다, 시리우스.”
“걱정 마라. 농담이니까.”
“농담이라고 해도 심히 불편하군.”
“불편해?”
우지끈!
시리우스가 날린 비수가 은랑공의 의자 다리를 부러뜨렸다.
“불편하면 일어서라.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으니 불편하지.”
“……!”
극도의 모멸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은랑공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