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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명가의 절대무신-127화 (127/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7화

127화. 가장 고통스러운 환영을

“건방진……!”

은랑공이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얼음의 송곳니가 하늘로 쏟아졌다.

“내 빙아(氷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얼음의 송곳니…… 빙아는 남자 팔뚝만한 길이의 얼음 조각이었다.

끝 부분이 뾰족하고, 모서리도 날카롭다.

제대로 꽂히면 사람 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 수 있고,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어진다.

그리고 은랑공은 이 빙아를 수십 개씩 동시에 조종할 수 있었다.

“벗어날 생각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리우스는 오른쪽 손바닥을 뻗었다.

그 순간, 천랑신공의 네 번째 단계인 화천의 공력이 분출되었다.

화천장법이 펼쳐진 것이다.

“……!”

쿠쿠쿵!

분출된 화염이 수십 개의 얼음 송곳니를 집어삼켰다.

아예 전부 증발되지는 않았지만, 얼음은 녹아내리면서 살상력을 잃었다.

“네놈……!”

은랑공이 까득 이를 갈았다.

중력에 의해 낙하하는 시리우스를 노려보면서, 다시 한번 빙아를 전개했다.

수십 개의 얼음 송곳니가 각기 다른 궤도를 그리면서 시리우스를 노렸다.

방금 전에는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한꺼번에 녹아내렸으니, 빙아를 분산시킨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전후좌우에서 시리우스를 덮치는, 고도의 제어 능력이 필요한 마법이었다.

“제법이군.”

자신을 포위하는 얼음의 송곳니를 관찰하면서, 시리우스는 양손으로 화천장법을 펼쳤다.

은랑공은 이걸로 시리우스를 몰아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다면, 순서대로 대응하면 되는 거니까.

화르르!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간 시리우스의 오른손이 화염을 뿜었다.

우측에서 날아오는 빙아에 대응한 뒤, 그대로 왼손을 휘둘러 좌측 상단을 방어했다.

몸을 회전시키면서 종횡무진 화천장법을 펼쳐 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생긴 빈틈을 이용해 튀어나왔다.

“……!”

휘익!

순식간에 빙아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달려드는 시리우스.

그 모습을 확인한 은랑공이 다급히 양손을 움직였다.

얼음의 송곳니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시리우스의 진로를 방해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 모든 것을 격파하면서 은랑공과의 거리를 좁혔다.

쿠웅!

시리우스가 오른쪽 손을 내지른 순간, 은랑공의 눈앞에 얼음의 방어벽이 출현했다.

빙아 수십 개를 중첩시켜 만든, 단단하기 그지없는 얼음의 방패였다.

“흥……!”

시리우스의 화염을 얼음의 방패로 막아 냈다.

은랑공의 눈빛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시리우스와의 공방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수가 먹혀든 것이다.

신속하게 거리를 벌리면서, 은랑공은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빙아 하나하나를 잔뜩 흩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하나로 모아 시리우스의 화염에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하압……!”

팔뚝만 했던 얼음의 송곳니가 사람만 한 크기가 되었다.

사람을 관통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짓이길 수 있는 크기가 된 것이다.

은랑공은 그것을 여러 개 만들어 시리우스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거대한 빙아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다니면서 파공음을 발생시켰다.

“…….”

시리우스는 경공을 사용하며 거대한 빙아를 피했다.

얼음덩어리가 너무 거대해서 화천장법을 펼쳐도 단번에 녹일 수 없었다.

그렇게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은랑공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냐, 시리우…….”

콰릉!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시리우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랑공이 눈을 크게 뜬 순간, 시리우스를 추격하던 거대 빙아가 박살 났다.

파직, 파직.

푸른색 뇌기를 전신에 휘감은 시리우스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그 손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흑철검이 들려 있었다.

화천장법으로 녹일 수 없다면, 창뢰검강으로 부수면 되는 것이다.

“무슨 마법검이……!”

은랑공이 경악했다.

빙아는 매우 단단하다. 그걸 한데 모아 거대한 빙아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푸른색 뇌기가 번쩍이는 검으로 빙아를 차례차례 부수고 있었다.

은랑공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시리우스가 펼치고 있는 기술은, 평범한 마법검과는 전혀 다른…… 검강이었으니까.

검강은 일반 검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한 기운을 극한까지 압축한 것이다.

그 견고함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마법검도 따라잡을 수 없다.

은랑공이 펼치는 빙결 마법이 아무리 단단해 봤자, 시리우스의 검강 앞에서는 한낱 얼음덩어리일 뿐이다.

“크윽……!”

다급히 후퇴하면서 은랑공이 두 손을 치켜들었다.

빙아의 숫자를 더욱 늘렸다. 뿐만 아니라 훨씬 작은 빙아도 생성했다.

시리우스가 큰 송곳니에 눈을 빼앗기는 사이, 작은 송곳니로 빈틈을 찌르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오른손으로 창뢰검강을 펼치면서 왼손으로는 화천장법을 펼쳤다.

두 가지 공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오묘한 수법이었다.

창뢰검강으로 커다란 덩어리를 격파하면서, 화천장법으로는 작은 덩어리를 녹여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은랑공은 계속해서 빙아를 날렸다.

저렇게 서로 다른 힘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분명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해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윽……!”

하지만.

한계에 도달한 건 은랑공이 먼저였다.

너무 대량의 빙아를 한꺼번에 날리느라 몸에 무리가 갔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코에서 시커먼 피가 주룩 흘러나왔다.

계속해서 쏟아지던 빙아가 순간적으로 끊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리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으윽……!”

쿠웅!

은랑공이 가까스로 전개한 얼음 방패가 시리우스의 공격을 막았다.

창뢰검강이 얼음 방패를 파고들었지만, 은랑공이 얼음 방패를 계속해서 중첩시켜 창뢰검강이 파고드는 걸 막았다.

“하, 하하, 아핫……!”

은랑공이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웃어 댔다.

너무 궁지에 몰린 나머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은랑공한테는 지금 이 순간 시리우스의 검을 막아 내고 있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네 검으로는 내 얼음을 뚫지 못한다……!”

소리를 지르면서 은랑공이 방어를 더 강화했다.

공격을 생각하지 않고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마력이 고갈되어 자멸하게 되겠지만, 시리우스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빙왕의 수제자가 사용하는 빙결 마법이 어떤 건지, 지금까지의 공방을 통해 충분히 관찰했으니까.

시리우스는 창뢰검강을 거둬들였다.

어차피 창뢰의 공력을 사용한 검강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단단하고 예리한 검강은 따로 있다.

천랑신공의 두 번째 단계, 백랑.

그 냉기가 칼날에 깃들었다.

그냥 검기가 아니다. 막대한 기운을 불어넣은 뒤 철저하게 압축하여, 검강을 만든다.

검은색이었던 흑철검의 칼날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 광경에 은랑공이 눈을 크게 떴다.

“빙결의…… 마법검?”

“아니다.”

은랑공의 빙결 마법을 능가하는 냉기를 발산하면서, 시리우스가 검을 휘둘렀다.

“백랑검강(白狼劍罡)이다.”

샤아악!

새하얀 검강이 얼음 방패를 파고들었다.

음과 양을 비교했을 때, 음은 응축되는 힘이고 양은 확산되는 힘이다.

그렇기에 검강을 펼칠 때는 극양의 공력보다 극음의 공력이 더 견고하고 예리해진다.

“……!”

시리우스의 검강은 은랑공이 펼친 은랑의 송곳니보다 날카로웠다.

이것이 바로 백랑의. 아니, 천랑의 송곳니였다.

은랑공이 아무리 얼음 방패를 수복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백랑검강은 순식간에 얼음 방패를 일도양단하고, 은랑공의 몸통에 도달했다.

“악……!”

더 힘을 주면 은랑공의 몸 전체를 일도양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러지 않았다.

살짝 힘을 빼면서 아래로 그었다.

백랑검강은 은랑공의 복부를 가른 뒤…… 가랑이 사이까지 훑고 지나갔다.

“끄아악……!”

남자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두 조각 나는 고통에 은랑공이 거품을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리우스는 입을 열었다.

“환왕.”

“뭐냐.”

환영 마법을 방해하던 연기는 아직도 주위에 남아 있다.

하지만 무방비한 표적 하나에게 환영을 보여 주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놈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환영을 보여 주십시오.”

“가장 고통스러운 환영이라.”

환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남들한테 하던 짓을 그대로 당하는 꿈이면 되겠지.”

그 직후, 은랑공이 눈을 까뒤집고 몸을 비틀었다.

“아까 남색은 싫다고 질색을 하던 놈이니까 말이다. 충분히 고통스러울 거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은랑공을 응시하면서, 환왕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그 아이의 복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랑공에게 모든 것을 잃은 세피아를 떠올리며, 환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 이놈 모습을 그 아이한테 보여 주면 위로가 될까?”

“관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소식만 전해 주죠.”

“알겠다.”

환왕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은랑공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 일대의 흑회를 지배하며 온갖 악행을 자행하던 은랑공은 그렇게 처참한 꼴로 죽음을 맞이했다.

은랑공의 시체를 응시하면서 시리우스는 입을 열었다.

“제피로스.”

“네, 맹주님.”

“그동안 입수한 자료는 충분히 분석했나?”

“네, 이 일대에 연맹의 하부 조직이 어떻게 흩어져 있는지 거의 다 파악한 상태입니다.”

제피로스의 대답을 듣고,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레이온.”

“네, 맹주님.”

“제피로스와 함께 토벌을 시작해라. 은랑공이 죽었으니 나머지는 천랑검단의 전력으로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거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은랑공의 목을 베어서 가지고 가라. 이 주변 흑회들은 은랑공만 믿고 있었던 것 같으니, 은랑공이 죽었다는 걸 알면 전의를 상실할 거다.”

“알겠습니다.”

“목을 벤 뒤 시체는 들판에 던져서 짐승 먹이가 되도록 하고.”

잔챙이들 토벌을 위해 시리우스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해야 부하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면, 못 먹었던 저녁이나 먹자.”

시리우스는 다시 천랑객잔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환왕 혼자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먼저 가 보겠다.”

“왜 그러시죠?”

“그 아이한테 소식을 전해 주고 싶으니까.”

“…….”

시리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슬슬 세피아도 잠들 시간일 테니, 빨리 가보시는 게 좋겠군요.”

“자네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나? 은랑공은 결국 자네가 해치운 건데.”

“세피아는 큰형님한테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으니, 큰형님이 가서 얘기해 주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세피아도 시리우스가 자신을 구해 줬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경매장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해서인지, 시리우스한테는 별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최선을 다해 보지.”

환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내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베르디안이 중얼거렸다.

“저분이 어린아이 한 명을 위해 저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어요.”

“원래 그런 소양을 지닌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연맹이라는 흑색 구렁텅이에서 끌어내 백색 세상으로 데려오지도 않았다.

은랑공이나 풍왕처럼 시리우스 손으로 죽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그동안 환왕은 남을 현혹시키기 위해 환영 마법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처 입은 소녀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환영 마법을 쓰고 있다.

이 경험이 환왕을 어떤 곳으로 이끌어 줄까. 그건 시리우스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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