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128화 (128/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8화

128화. 나처럼 강해지고 싶다면서?

은랑공을 격퇴하고, 알레이온과 제피로스를 파견한 뒤.

시리우스는 계속 천랑객잔에 머물렀다.

누구든지 발그라드로 들어오려고 하면 천랑객잔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이곳에서 감시하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는 놈도 마력을 감지하면 색출할 수 있다.

“백빙화보다 성질이 강한 약초? 그런 게 왜 필요한 건가요?”

천랑객잔 1층에서 베르디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는 백빙화를 먹어 봤자 내공을 크게 증진시킬 수 없거든. 그러니 백빙화보다 강한 걸 찾아봐.”

“아, 같은 영약을 여러 번 먹으면 효과가 약해진다고 했었죠.”

“그래, 백빙화는 이제 나한테 그냥 ‘고만고만한 영약’에 불과해.”

백빙화를 재료로 만든 백빙환을 복용해서 내공이 6갑자에 가까워졌지만…… 다시 백빙환을 복용해도 내공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기껏 백빙환을 개발했더니…….”

“나중에 네가 먹으면 돼.”

“부작용을 줄였다고 해도, 백어증이 두려운데요.”

“지금처럼 유운심법을 계속 수련하면 백빙화의 냉기도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될 거야.”

베르디안은 시리우스가 가르쳐 준 유운심법을 잘 수련하고 있다.

천랑표국의 힘으로 약재를 모아서 영약을 만들어 먹고 있기 때문에 내공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계속 수련하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시리우스 님, 그런데 검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안 그래도 오늘 가르쳐 줄 생각이었어.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구만구천구백구십일…… 구만구천구백구십이…….”

객잔 앞 공터에서 벨리드가 삼재검법을 수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할 일이 많아서 횟수 증가가 정체되고 있었는데, 은랑공의 부하들과 싸운 이후 다시 불이 붙었다.

“솔직히 조금 존경스러워요.”

“벨리드가?”

“저렇게 단순한 동작만 십만 번 가까이 연습하다니,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베르디안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벨리드 님은 목검조차 잡아 본 적이 없는 알브라임 가문의 도련님이었잖아요. 게다가 아카데미 출신의 엘리트……. 그런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요?”

“…….”

“중간에 때려치우지 않았다는 게 신기해요.”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벨리드는 묵직한 가검을 계속 휘둘렀다.

“구만구천구백구십칠…… 구만구천구백구십팔…….”

휙, 휙, 휙.

가로베기, 세로베기, 찌르기.

삼재검법의 동작을 반복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구만구천구백구십구…….”

시리우스도 베르디안도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십만……!”

털썩.

벨리드가 공터에 드러눕는 소리가 들렸다.

삼재검법만 십만 번.

무림인들도 중간에 지쳐서 때려치워 버릴 연습을, 마침내 끝마친 것이다.

시리우스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베르디안, 벨리드를 불러와라.”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단한 위업을 달성한 벨리드를 위해, 마실 물을 준비해 줄 생각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십만 번의 연습을 마친 벨리드는,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울 자격이 있는 무인이었다.

* * *

“오늘은 쾌검(快劍)과 중검(重劍)의 개념부터 설명해 주려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시리우스는 벨리드와 베르디안을 앉혀 놓고 검술 강의를 시작했다.

“쾌검은 경쾌한 검술이다. 상대보다 가볍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것을 중시하지.”

“…….”

“그렇다면 중검은 뭘까?”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벨리드를 쳐다봤다.

“벨리드, 대답해 봐라.”

“쾌검은 가볍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니까…… 무겁고 느리게 검을 휘두르는 건가?”

“무겁고 느리면 뭐가 좋지?”

“그야…… 한 방의 위력이 강하겠지?”

“그렇지 않다.”

“뭐?”

시리우스는 천천히 설명했다.

“똑같은 무게의 검을 휘두를 경우, 빠르면 빠를수록 상대방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느린 검이 빠른 검보다 더 위력이 강할 수는 없어.”

“어, 그런가……?”

“애초에 중검은 무겁고 느린 검술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럼 중검은 대체 뭔데?”

“중검의 묘리는 결국 ‘신중함’에 있다.”

“신중함?”

옆에 놓아둔 훈련용 목검을 집어 들어, 빠르게 휘둘렀다.

“쾌검은 신중할 필요가 없다. 상대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까, 일단 신속히 움직이는 게 좋지.”

파파팟!

목검이 순식간에 세 번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중검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시리우스는 목검을 두 손에 잡은 채 가만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한다면 이렇게 방어 자세를 취하며 견실하게 막아 낸 뒤…….”

우웅!

갑자기 시리우스가 몸을 틀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가장 알맞은 순간에, 필살의 일격을 펼쳐 적을 쓰러뜨린다.”

“……!”

강렬한 일격에 공기가 진동했다.

하지만 단순무식하게 휘두른 건 결코 아니었다.

“대충 이해가 되었어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베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쾌검과 중검의 차이는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아니라, 검을 휘두르는 타이밍에 있는 거군요.”

“그렇지.”

중검은 결코 느린 검이 아니다.

하지만, 공격 자체를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쾌검보다 느리게 보인다.

“중검에서 추구하는 것은 필살의 일격을 가장 정확한 순간에 펼치는 거다. 그렇기에 중검은 쾌검보다 느려 보일 수밖에 없어. 언제 어떤 공격을 펼쳐야 최선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공격 자체는 빨라야 하고요.”

“그래, 검을 느릿느릿 휘두르면 최선의 순간을 놓치게 되지.”

결국 중검도 검을 휘두르는 게 빨라야 한다.

하지만 성급하게 검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

가장 정확한 순간에 필살의 일격을 펼칠 수만 있다면, 쾌검처럼 급하게 선제공격을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이 묘리를 깨달은 검사의 중검을 쾌검으로 격파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육중한 검을 느릿느릿 휘두를 뿐이라면, 쾌검으로 얼마든지 허점을 찌를 수 있지.”

무림에서도 육중한 검을 느릿느릿 휘두르면서 ‘나는 중검을 수련했소.’라고 하는 무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검은 쾌검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다.

쾌검으로 허점을 찔러 대면 금방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졌다.

반면 제대로 중검을 수련한 검사는 달랐다.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으면서, 불쑥 필살의 일격을 펼쳐 상대를 격파했다.

어떨 때는 쾌검보다 빠르게 선제공격을 해서 승부를 결정짓기도 했다.

“벨리드, 그렇다면 중검에는 다채로운 기술이 필요할까?”

“어…….”

지목당한 벨리드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니, 차라리 단순한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래야 타이밍을 더 정확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그래, 바로 그거다.”

중검이라면 단순한 초식 몇 개만 알고 있어도 된다.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몇 가지 기술을 가장 정확한 순간에 펼칠 수 있도록 극한까지 수련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네가 수련한 삼재검법도, 중검에 적합한 검술이다.”

“아……!”

벨리드가 눈을 크게 떴다.

십만 번 연습한 삼재검법의 이의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 그래, 그랬던 거구나!”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벨리드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 이 세 가지를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펼칠 수 있다면, 복잡한 기술도 필요 없어!”

“그래, 세 가지 기술만 써도 얼마든지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지.”

삼재검법만 극한까지 수련해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까지 할 근성이 없으니까 다른 검술을 수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벨리드,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리우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기초가 확실해야 한다. 내가 너한테 십만 번의 연습을 지시한 건 이 기초를 쌓기 위한 거지.”

“그래,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십만 번으로는 부족해. 정말로 극한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백만 번…… 아니, 그 이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부분은 시리우스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천랑검제 백무랑도 삼재검법을 그렇게 오랫동안 수련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벨리드가 직접 수련하면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필살의 순간을 찾아내는 건 연습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잔챙이들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놈들과도 겨뤄야지.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할 거다.”

“으음…….”

“게다가 심리전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최적의 순간은 찾아낼 수 없어. 때로는 네가 직접 상대방의 마음을 동요시킬 필요도 있을 거야.”

“어렵군…….”

벨리드가 팔짱을 끼며 신음했다.

“그냥 백만 번 휘두르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될까?”

“그건 그거대로 해야지.”

“어휴…….”

“벨리드.”

휘익!

시리우스가 갑자기 목검을 휘둘렀다.

목검은 벨리드의 정수리 바로 직전에 멈췄다.

“은랑공이 나타났을 때, 네가 목숨을 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그건…… 시리우스 네가 있어서?”

“아니, 은랑공이 여유를 부렸기 때문이다.”

은랑공이 부하들을 잔뜩 데려와서 다짜고짜 총공격을 개시하고, 가장 약한 벨리드부터 죽이려 들었다면…… 벨리드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은랑공처럼 강한 놈이 방금 전 내가 했던 것처럼 기습하면 너는 그 자리에서 죽는 거다.”

“윽…….”

“그런 상황이면 내가 지켜 줄 수도 없어. 결국…… 네가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목검을 거둬들였다.

“벨리드, 너한테 큰 욕심이 없다면 나도 굳이 강요하지 않을 거다.”

“…….”

“하지만 너한테는 욕심이 있지.”

시리우스는 벨리드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처럼 강해지고 싶다면서?”

“기억하고 있었어?”

처음 함께 야영했던 날, 벨리드는 시리우스처럼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삼재검법을 연습시킨 것이다.

“꾸준히 노력해라, 벨리드.”

“…….”

“삼재검법을 가르쳐 준 첫날 밤, 잠도 안 자고 연습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한테는 노력의 재능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 봐라.”

천랑무제 백무랑도 한계까지 삼재검법만 수련한 적은 없다.

벨리드가 계속 삼재검법을 수련해서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 부분만큼은 시리우스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강해져라, 벨리드.”

“…….”

벨리드가 입을 다문 채 시리우스의 말을 곱씹었다.

이어서 시리우스는 베르디안에게 시선을 향했다.

“베르디안, 너한테는 쾌검을 가르쳐 줄 거다.”

“네, 저한테는 쾌검이 더 맞을 것 같네요.”

베르디안은 임기응변이 빠르고 몸이 유연하다.

경쾌하게 움직이면서 쾌검을 펼치는 게 더 어울린다.

“구풍검법(九風劍法)이라는 검법이 있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아홉 가지 초식으로 구성된 검법이지. 네 유운진기하고도 잘 맞아떨어진다.”

“구풍검법…….”

“너는 임기응변에 강하다. 상황에 따라 검도 쓰고 채찍도 쓰고 독도 쓰면 얼마든지 상대를 농락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시리우스 님.”

베르디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시리우스와 벨리드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시리우스가 두 사람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강의를 한 건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알레이온과 제피로스가 돌아오면 대련을 시킬 거다. 그 녀석들한테 이길 수 있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수련해라.”

“네……!”

“쯧, 알았어!”

의욕을 불태우는 두 사람에게, 시리우스는 본격적인 검술 수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 * *

모두가 잠든 심야.

조용해진 천랑객잔 1층에서 시리우스는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별다른 안주는 없었다.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시는 것이었다.

오늘 벨리드와 베르디안을 가르쳤던 걸 되새기기도 했고, 북부 지역을 공략할 작전을 고민하기도 했다.

환왕이 세피아를 잘 돌봐주고 있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찾아왔다.

“…….”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차분한 인상에, 옷차림은 깔끔했다.

그는 말도 없이 자리에 앉더니 시리우스가 홀로 마시고 있는 술을 쳐다봤다.

“같은 걸로 주게.”

“알겠습니다.”

시리우스는 평범한 객잔의 점소이처럼 술을 내왔다.

“이런 곳에 가게를 내도 손님이 오나?”

“지금 이렇게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노인은 술잔을 받고도 바로 입에 대지 않았다.

품에서 젓가락 같은 쇠막대 하나를 꺼내서 술잔에 집어넣었다.

“미안하군. 버릇이라서 말이야.”

“…….”

쇠막대의 상태를 확인한 뒤, 노인은 그것을 다시 품 안에 갈무리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보다는 다른 곳에 차리는 편이 장사가 잘되지 않겠나?”

“이곳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뭐지?”

“여기서 발을 멈추지 않고는 못 배기죠.”

그렇게 말하며 시리우스는 노인을 쳐다봤다.

“발그라드 시내에 잠입할 생각이었어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시리우스 카니스루트가 도시 입구에 식당 겸 여관을 차려놓고 노닥거리고 있다.

이걸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흐음.”

노인이 술을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나?”

“북부의 양대 세력은 테르나크 가문과 연맹 북부 지부입니다.”

연맹 북부 지부는 이미 시리우스를 적대하고 있다.

테르나크 가문은…… 일단 편지를 보내놓긴 했는데, 아직 답변이 없다.

“하지만, 북부에서 주의해야 할 게 그 두 세력만 있는 건 아니죠.”

“…….”

“어르신은 마실 것에 독이 들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시더군요. 평소 일상적으로 독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분이라는 얘기죠.”

그 말을 듣고, 노인이 술잔을 비웠다.

“그래, 맞네.”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술값을 치르기 위한 돈과…… 작은 알약이었다.

“삼두사(三頭蛇)의 두 번째 머리, 스큘라라고 하네.”

삼두사.

얼마 전에 시리우스는 그중 한 사람인 슈레흐트를 죽인 적이 있다.

“독왕 전하의 명을 받고, 자네를 죽이러 왔네.”

콰직.

노인이 약을 씹어 삼킨 순간, 그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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