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명가의 절대무신-129화 (129/129)

몰락명가의 절대무신 129화

129화. 지저분하게 노는군

삼두사의 두 번째 머리, 스큘라.

그가 씹어 먹은 약은 환왕이 언급했던 ‘강화약’ 같았다.

하지만 지난번 슈레흐트가 먹었던 것하고는 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평범한 체구였던 스큘라의 전신이 부풀어 올랐으니까.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느끼고, 시리우스는 스큘라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윽……!”

쿠웅!

스큘라가 발에 차여 천랑객잔 바깥으로 날아갔다.

공터에서 몇 번 뒹굴었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너무하는군. 노인을 이렇게 발로 차도 되는 건가?”

“객잔 내부가 망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시리우스는 더 이상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아내가 차려 준 가게거든. 싸움질로 망가뜨리면 혼날 거야.”

“흐음, 그런 건가.”

내공을 실어서 찼는데도 불구하고, 스큘라는 별다른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전신의 근육이 비대화된 모습으로 그저 시리우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슈레흐트는 그런 모습이 아니던데.”

“완전히 똑같은 약이 아니니, 반응도 다를 수밖에.”

“독왕이 너희들에게 이것저것 먹이면서 실험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너희는 그런 것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 건가?”

“독왕 전하를 위해 이 몸을 희생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일세.”

“너도 단단히 세뇌를 당했군.”

“그냥 충성이네, 시리우스.”

“글쎄, 과연 그럴까.”

슈레흐트도 독왕에게 철저한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기 직전에 진정한 본심을 드러냈다.

스큘라는 과연 어떨까.

“독왕이 직접 너를 파견했나? 슈레흐트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네가 가서 죽이고 오라고?”

“아니, 독왕 전하도 요즘 바쁘셔서 나한테 일일이 지시를 내릴 여유는 없으시지.”

“바쁘다고?”

“삼두사의 첫 번째 머리가 독왕 전하의 말을 전달해 주더군. 그래서 내가 여기로 온 걸세.”

“…….”

삼두사의 첫 번째 머리라…….

아무래도 그놈이 독왕의 오른팔인 것 같았다.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자네부터 죽이고 베르디안과 환왕을 죽이러 가야겠군.”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해 봐야 알겠지.”

콰앙!

스큘라가 움직였다.

땅바닥을 강하게 밟으면서 돌진했다.

그대로 근접전을 시도하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독왕의 부하 주제에 독은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

시리우스는 보법을 펼쳐 스큘라의 주먹을 피했다.

스큘라의 주먹이 허공을 지나간 직후,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육체 자체가 독인 건가.”

“그런 것이지.”

스큘라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폈다.

손 전체가 보라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특히 손톱의 색깔이 진했다.

방금 전엔 주먹을 휘둘렀지만, 상황을 봐서 손톱으로 할퀴는 전법으로 전환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무림으로 치자면 조법(爪法), 그것도 독조(毒爪)를 쓰는 노인이었다.

“접근전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스큘라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꼭 그렇지만도 않거든.”

휘익!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고 시리우스를 향해 날아왔다.

속도가 빠른 데다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손톱을 날릴 수도 있는 건가.”

“독왕 전하의 약 덕분에 금방 재생도 되지.”

스큘라가 독조를 연달아 날리며 달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암기를 날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암기를 꺼내는 동작 없이 손톱에서 바로 발사할 수 있기에, 암기술보다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시리우스는 빠르게 움직이며 독조를 피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독침처럼 독조가 꽂혀 중독되어 버릴 것이다.

웬만한 독은 내공으로 즉각 정화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먹거나 들이마셨을 때의 얘기다.

손톱이 살을 뚫고 들어와 혈맥으로 직접 독이 흘러 들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독조를 피하기 위해 좌우로 움직이는 사이, 스큘라가 거리를 좁혔다.

직접 몸과 몸을 맞대며 싸우는 건 망설여졌다.

스큘라의 몸과 접촉하면 그것만으로도 독이 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랑무제 백무랑의 경험을 생각할 때, 독공(毒功)은 그냥 주위에 독을 뿌리는 것보다 육체 자체를 독으로 만드는 것이 더 흉악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시리우스는 직접 몸을 맞대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화천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음……!”

쿠쿵!

폭음과 함께 화염이 터져 나왔다.

스큘라가 두 팔을 교차시키면서 얼굴을 보호했다.

그사이 시리우스는 경공으로 솟구쳤다.

도망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리우스가 가려고 했던 곳은 천랑객잔 2층이었다.

“뭐야, 왜 이리 시끄럽…… 허억?!”

2층에서 곯아떨어져 있던 벨리드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가 기겁했다.

시리우스는 창문 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벨리드, 네 가검을 줘라.”

“아, 알겠어!”

벨리드가 후다닥 가검을 던져 줬다.

흑철검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를 빌려야 했다.

“나, 나도 도울까?”

“오늘 수련을 너무 많이 했어. 그냥 구경이나 해.”

시리우스는 가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흑철검처럼 좋은 검은 아니지만, 손에 들기엔 이 가검이 더 자연스럽다.

무게나 형태 등을 시리우스가 지정해서 주문한 검이기 때문이다.

즉, 무림에서 쓰던 검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면…….”

다시 지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스큘라가 다시 독조를 날렸지만, 검풍을 발생시켜 막아 냈다.

그대로 지상으로 착지해 쾌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음……!”

파파팟!

검기가 전개된 가검이 스큘라의 전신을 노렸다.

강화약을 먹어서인지 스큘라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근육이 울퉁불퉁한 두 팔을 움직여서 시리우스의 검기를 잘 막아 냈다.

“몸도 단단해진 상태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몸이 토막 났을 것이다.

하지만 옷만 찢어졌을 뿐 몸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화천의 공력을 뒤집어쓴 두 팔도 멀쩡했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진 상태였다.

“그런 몸이 되면서까지 독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건가?”

“어리석은 질문이군, 시리우스.”

쿠웅!

스큘라가 진각처럼 땅을 강하게 밟으면서 달려들었다.

“실험체로서 독왕 전하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상태가 심각하군, 스큘라.”

시리우스는 혀를 차면서 계속 검을 휘둘렀다.

검강을 전개하면 저 몸을 단숨에 절단할 수 있겠지만, 이 훈련용 가검으로는 검강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흑철검을 꺼내기 위해 객잔 1층으로 향하면…… 스큘라가 쫓아 들어와서 집기를 다 부숴 놓을 것이다.

객잔을 차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다 박살 났으니 새로 구비해 달라고 했다간 영락없이 유스티아한테 잔소리를 들을 것이다.

원래 객잔이라는 건 쉽게 박살 나기 마련이라는 걸 유스티아가 이해해 줄 리도 없으니…….

“어쩔 수 없군.”

“뭐가 말이냐?”

“마누라 잔소리를 안 들으려면, 여기서 승부를 내야 하겠다는 의미다.”

“……?”

스큘라가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왜 마누라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바로 그때, 시리우스가 뒤로 물러섰다.

잠깐 숨을 돌리는 듯이 공세를 중단했다.

스큘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반격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돌격했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스큘라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고 있다.

빈틈을 보이는 척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주 단단한 방어 태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스큘라가 독조를 발사해 시리우스의 허를 찌르려 했지만, 그것조차 몸을 살짝 틀어서 피해 버렸다.

“시리우스……!”

조바심을 느낀 스큘라가 목소리를 높이며 팔을 치켜든 순간.

시리우스는 지금이야말로 필살의 일격을 처넣을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2층에서 구경하던 벨리드가 탄성을 질렀다.

방어에 치중했던 시리우스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러…… 스큘라의 입에 꽂아 넣었다.

“컥……!”

가검은 끝이 뭉툭해서 스큘라의 목을 관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시리우스의 목적은 스큘라의 목구멍으로 화천의 공력을 방출하는 것이었으니까.

“카아아악!”

타오르는 극양의 화염이 스큘라의 체내로 쏟아져 들어갔다.

아무리 육체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어도, 배 속을 불태우는 것까지 견뎌 낼 수는 없다.

“끄윽, 끄으윽……!”

“…….”

시리우스는 몸부림치는 스큘라를 응시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바로 숨통을 끊어 주고 싶었지만, 검기가 안 통할 정도로 단단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

“도, 독왕 전하…….”

그때 스큘라가 두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입에서 불을 뿜으며 소리쳤다.

“독왕 전하, 대업을 이루십시오……!”

“……!”

퍼엉!

스큘라의 몸이 폭발했다.

그러자 스큘라의 피와 살덩이가 사방으로 퍼졌다.

“시리우스……!”

객잔 2층에서 벨리드가 다급히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쪽으로 오지 마라. 중독된다.”

“아……!”

시리우스는 무사했다.

순간적으로 검막을 펼쳐 전신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맹독으로 가득한 피와 살덩이를 그대로 뒤집어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자폭이라니…… 지저분하게 노는군.”

이건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천랑객잔 앞을 오물로 더럽힌 것에 대한 말이기도 했고…… 부하를 저렇게까지 세뇌시킨 독왕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만약 베르디안도 계속 독왕 밑에 있었다면 저렇게 되었을까.

“벨리드, 마법으로 정리 좀 해 줘. 독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알겠어. 그런데…….”

벨리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 괴물의 입 안에 가검을 처넣은 것도 중검의 묘리가 담긴 거지?”

“일반적인 중검과는 많이 다르지만, 기본 정신은 비슷하지.”

빠르게 여러 번 공격을 퍼붓는 게 아니라, 정확한 순간에 필살의 일격을 처넣는 것.

그것이 중검의 묘리다.

목구멍으로 불꽃을 주입한 걸 중검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여 줬다는 점은 중검과 같다.

“흠, 뭔가 감이 오는 느낌이야.”

“다행이군.”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스큘라도 꽤 강한 인물이었고, 시리우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번 싸움을 지켜보면서 벨리드도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시리우스의 얘기를 들은 베르디안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밤중에 스큘라 님이 나타났었다니…….”

그러고 보니 베르디안은 슈레흐트가 나타났을 때도 자리에 없었다.

“상당히 골치 아픈 적이더군. 삼두사들은 다 그런 느낌인가?”

“글쎄요. 저도 그분들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이걸로 삼두사도 한 명밖에 안 남았군.”

“네…….”

베르디안이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삼두사의 첫 번째 머리…… 휴드라 님은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에요.”

“어떤 면에서?”

“제 동료들 모두 휴드라 님을 무서워했어요. 조금만 심기가 상해도 ‘폐기 처분’을 당하니까.”

“…….”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독왕 전하보다 휴드라 님이 더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베르디안 등은 독왕에게 ‘부모’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도록 세뇌되어 있다.

그러니 휴드라 쪽에 더 순수한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독왕이 우리한테 그 휴드라라는 놈까지 보낼 것 같나?”

“가능성은 반반이겠죠. 하지만 휴드라 님이 온다면 슈레흐트 님이나 스큘라 님처럼 혼자 오지는 않을 거예요.”

“여럿이서 몰려온다는 건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바깥에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설마 벌써 온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시리우스와 베르디안은 함께 객잔 바깥을 내다봤다.

그러자 화려한 마차들이 발그라드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력이 느껴지는군.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은데.”

“네?”

“하지만…….”

마차들이 천랑객잔 앞에서 멈춰 섰다.

“공자님, 여기에 식당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배가 정 고프시면 여기서 식사를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흠, 어쩔 수 없군.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채로 중요한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

한 남자가 수행원들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얼굴에서 귀티가 났다.

“너희들, 점원인가?”

수행원이 시리우스와 베르디안을 보면서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테르나크 가문의 넷째 공자님이시다. 그러니 어서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준비해라.”

“테르나크 가문의……?”

북부의 패자, 테르나크 가문.

시리우스는 이미 그곳으로 편지를 보내 놨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테르나크 가문에서 발그라드에는 왜…….”

“이놈, 점원 주제에 뭘 캐묻는…….”

그때 넷째 공자님이라는 남자가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이제부터 식사 차려 줄 사람한테 거칠게 대해서 되겠느냐?”

“앗, 죄, 죄송합니다.”

그는 시리우스를 보면서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이 자자한 정천맹주를 만나러 온 거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말이다.”

“…….”

그 말을 듣고, 베르디안이 시리우스를 쳐다봤다.

“정천맹주라면…… 읍.”

베르디안의 입을 틀어막은 뒤, 시리우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셨군요. 들어오십시오.”

“음.”

시리우스는 진짜 점원처럼 공손한 태도로 응대했고, 그는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객잔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베르디안이 다급히 귓속말을 했다.

“어쩌시려고요?”

“일단 지켜보자고.”

유스티아가 이미 조사해 놓은 상태다.

테르나크 가문에서는 자식들 사이에서 후계자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그런데 그중 한 놈이 ‘개인적으로’ 시리우스를 찾아왔다?

이건 꿍꿍이속이 있다는 얘기다.

“어떤 놈인지 확인한 뒤, 방침을 정하자.”

잘 대접해서 보낼지.

두들겨 패서 보낼지.

모두 저 넷째아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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