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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화 (1/172)

1화

“-10년입니다.”

나는 그리 말하고 노인의 얼굴을 직시했다.

노인은 벌러덩 누운 채로 있다가 눈동자만 굴려 이쪽을 보더니, 곧 입이 찢어져라 하품했다.

“뭐가 말이냐?”

“본 제자가 이 산봉우리에 처박힌 지 말입니다.”

“벌써? 허참. 시간 한번 존나 빠르구나.”

“그리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스승님, 전 언제쯤 되어야 하산下山할 수 있는 겁니까?”

“…….”

그 말에 당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자 영산靈山의 무선武仙, 그리고 나의 스승인 백노광白路光이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막내야.”

“예.”

“너는 강하다.”

“…….”

천하제일인의 칭찬에도 내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마음이 영 불편해졌다.

“물론 무슨 개지랄을 떨어도 내 옷깃 한번 스치는 것조차 힘들겠지만, 강한 건 맞다.”

“암요. 잘 알고 있습니다. 천하제일인이시자 고금제일인, 만인지존萬人至尊, 하늘이 낳은 완벽초인인 스승님의 앞에서, 불초 제자가 어찌 천하를 입에 담겠습니까.”

“음. 너는 스스로의 미숙함을 잘 알고 있구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니라. 이 스승을 앞에 두면 그 어떤 천재라도 태양 앞의 반딧불이 되는 법이지.”

스승님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어조를 바꿨다.

“그저께 첫째가 왔었다.”

“대사형이요? 대단히 위험한 곳에 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스승님은 나를 포함해서 총 다섯 명의 제자를 뒀는데, 첫째라고 하면 당연히 대사형을 말하는 것이다.

대사형은 영산에 머무는 일이 좀처럼 없다. 사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형들이 모두 그랬다.

“그랬지. 한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첫째는 파문했다.”

“예?”

“정확히는 제 발로 나갔지. 그러니 막내야, 네가 그놈을 좀 잡아 와야겠다.”

“예?”

딱!

“악!”

딱밤을 맞았다.

말이 딱밤이지, 스승님의 손가락은 실제로 산을 무너뜨릴 수준이라 나는 이마를 감쌌다.

“이 스승이 제일 싫어하는 건.”

“…두 번 묻는 거요. 그래도 납득이 안 가니까 그렇죠. 대사형이 제 발로 나간 것이라면 굳이 다시 데리고 올 필요가 있습니까?”

일단 파문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으니 둘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사형의 경지는 이미 일대종사라 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독자적인 무학을 창안하기 위해 스승의 그늘을 벗어난 것이라면, 그건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

“있다.”

“뭐죠.”

“그놈이 떠날 때 영단靈丹을 훔쳐서 갔다.”

“어…….”

영단이라면 스승님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제조한 지고의 영약이다.

나야 영약에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다른 사형에게 듣기로 기존의 영약, 신단이라고 불리던 것과는 격이 다른 보물이라는 듯하다.

“왜 대사형이 그걸…….”

훔치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거다.

애초에 스승님은 딱히 영단을 숨겨 두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놔뒀으니까.

내가 의아한 건 그걸 훔친 대사형의 저의다.

“목적을 이루는 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지.”

목적?

나는 대사형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에 온화한 말투가 먼저 그려졌다.

내가 스승님한테 흠씬 얻어맞은 날이면 직접 캔 약초를 정성스레 발라 주기도 해서, 나는 사형 중에서 대사형을 가장 따랐다.

“아마도 내내 잠잠하던 광증狂症이 도진 게 아닐까 싶다. 원래도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놈이었으니 뜻밖의 일은 아니야.”

“음…….”

나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리고 아직도 욱신거리는 이마를 살살 문지르며 물었다.

“말씀하신 바는 이해했습니다만… 왜 저입니까? 스승님께서 직접 가시면 쉽게 해결할 문제가 아닐는지 싶은데요.”

“하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

“그리고 나는 안 돼.”

“왜죠.”

“네가 직접 가보면 알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따라 말투가 좀 불손한 것 같은데 이 스승의 착각이냐?”

“…착각이십니다.”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굴렸다.

어찌 됐건 스승님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사형을 시키는 것보단 나를 보낼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 저의는 아직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한번 정한 건 무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저 혼자 대사형을 감당하는 건 좀.”

“물론 지금의 네가 첫째를 데려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

“지금의 너라면, 말이지.”

스승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비쩍 마른 몸에, 거적때기나 걸친 볼품없는 모습인데 내겐 그 모습이 태산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저벅.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스승님.

이때부터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슬금슬금 차올랐다.

“막내야.”

“예, 예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몇 살이었더라?”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대답했다.

“스물 하고도 다섯이었습니다, 스승님.”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당시의 난 완전히 자포자기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제 다 틀렸거니 싶은 순간 스승님이 나타났다.

그러니 그 만남은 내게 있어 기적과 다름없었다.

“스물다섯. 적은 나이는 아니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무학에선 조금 다르다. 육체와 정신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으니까. 당시의 너는 근골이 발달하다 못해 굳어 버린 상태라서 몸뚱이가 고금제일공에 걸맞은 최적의 형태로 변하지 못했다.”

그건 나로서도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저 이유로 영산에서의 수련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배는 가혹해져서 셀 수도 없을 만큼 죽을 뻔했지.

“그럼에도 이 스승의 완벽한 훈련과 친절한 가르침 덕택에 봐줄 만한 수준까지는 됐다만… 쯧.”

“부, 분에 넘치는 은혜엔 항상 감복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계속 다가오는 스승님의 위압감에 밀려 뒷걸음질을 쳤다.

“만약 네가 어렸을 때 고금제일공을 접했다면 어떠했을 것 같으냐?”

“글쎄요……. 그래도 지금보단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나는 대꾸한 직후 의아해져서 물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지 않습니까? 오늘 좀 이상하십니다.”

내가 아는 스승님은 기본적으로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약’을 가정하는 건 여태껏 본 적도 없는 일면인 것이다.

그러자 스승님이 헐헐 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들어라. 아까 언제쯤 하산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스승이 왜 여태껏 너의 하산만 불허했는지.”

“수발들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 하나 그 때문만이 아니지.”

스승님이 표정에 있는 장난기를 지웠는데, 이때쯤 나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무심코 뒤를 보니 기이한 안개에 둘러싸인 천 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다.

“뭐든지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툭.

그리고 스승님이 나를 밀쳤다.

“뭔……?”

뒤늦게 내공을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몸뚱이도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했다.

추락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스승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안개에 뒤덮여 사라졌다.

그 도중에도 이상하게 목소리만큼은 정확히 들렸다.

“어디 보자……. 15살이 적당하겠군. 아예 유소년기부터 운공할 필요는 없다는 게 또 고금제일공의 장점이지.”

“자, 잠깐만요!”

“그럼 막내야, 10년 후에 다시 보자.”

어처구니없게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의 정신은 암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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