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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2화 (2/172)

2화

- 막내 이름이 뭐였더라?

대사형이 종종 내게 했던 질문.

사실 대사형만이 아니라 다른 사형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외우기가 힘들어서 물어본 것 같지만, 확실히 기억한 이후에도 장난치듯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럴 때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내 이름을 재차 말해 줬다.

- 루안이요.

- 루안 배드니커.

처음엔 배드니커를 내 이름으로 알았단다.

아니면 성이 ‘루’고 이름이 ‘안’인 줄 알았다나.

뒤늦게 루안이 이름이라고 말하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름 형식도 있었지, 하며.

이렇듯 나의 출신은 스승님이 거둔 다섯 제자 중에서도 좀 특이한 편인 듯했다.

배드니커 가문.

조상에 요정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선천적으로 엄청난 힘을 타고나는 집안.

대부분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보이는 괴물딱지 가문.

요정족 특유의 잘난 외모는 덤이다.

그런데 난 아니었다.

외모? 객관적으로 봐서 못난 얼굴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잘생긴 편이다. 가족 구성원들의 외모가 죄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잘나서 그렇지.

비유하자면 최고급 보석 사이에 놓인 유리 공예품이랄까.

재능도 부족했다.

…음. 정정한다.

부족한 게 아니라 없었다.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게 아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도 뭐하지만, 난 멍청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암기력도 뛰어났고 머리 회전도 빨랐다.

이건 칭찬에 인색한 스승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 확실하다.

다만 체질이 문제였다.

나는 가호加護를 받을 수 없는 특이체질이었고, 그건 영웅의 후예라는 [위대한 가문]의 일원으로선 저주와 다를 바 없었다.

15살에 있었던 ‘가호식’ 때 아무런 가호도 받지 못했다.

평균적으로 배드니커의 인간이 적어도 3개, 많으면 5개까지의 가호를 받는 걸 감안하면 역사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그래도 가호식 전까지의 나란 놈은, 그렇게 근성까지 썩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웅담이나 대륙의 강자들, 모험 이야기에 가슴이 두근두근했고 동경까지 품었으니까.

그래서 절망이 더 컸다.

솔직히 죽고 싶었다.

형제자매들은 내게 동정을 보내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나를 숫제 오물처럼 내려다봤다.

그 멸시가 견디기 힘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목검을 휘두르며 놀았었는데.

“괜찮다. 배드니커라면 2차 가호식에 참여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는 이 어미가 단련시켜 주마.”

나의 어머니는 그리 말했지만, 난 도무지 멸시를 받으며 그때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귀족학교에도 가지 않은 채 멋대로 굴었다.

즉 망나니짓을 했다.

가문의 돈을 맘껏 쓰고, 사용인들에겐 폭언을 일삼았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배드니커 가문의 보검을 갖다 판 거였다.

‘정신이 나간 거지. 하필 그때 도박에 미쳐서.’

이건 내가 벌인 미친 짓 중 한 손에 들 만한 것이어서, 소문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까지 널리 널리 퍼졌다.

당연히 가문의 명예는 실추됐고, 형제들 중 과격한 이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막은 부친, 가주의 판단이 이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죽지만 않았을 뿐이지 쫓겨나듯 변방에 보내지게 됐는데…….

실질적으론 배드니커 가문에서 완전히 내쳐진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꼴이 되고도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쓰레기처럼 지내다, 결국 오른팔의 힘줄까지 잘리게 되고…….

이후에 떠돌이에 방랑기사, 음유시인 흉내도 내보고 마지막엔 용병으로서 굴렀다.

가호도 없고, 팔의 힘줄도 잘렸지만, 검 굴리는 솜씨만큼은 썩 나쁘지 않아서 어떻게 명줄은 이어 갔다.

그래도 삶에서 평화를 느꼈던 적은 없었지만.

물론 원인은 숫제 내게 있었다.

그래도 명문 가문의 혈통을 이었다는 정체불명의 자부심 때문에, 어딜 가서도 쉽게 섞이지 못한 것이다.

저쪽에서 마음을 열고 다가올 때면, 항상 혈통과 신분을 핑계로 무시하고는 했다.

그러다 20살 때 모종의 사건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엔 완전히 정신줄을 놔 버렸다.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대륙을 떠돌았고, 25살의 나이 때 죽었다.

앙신의 숭배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휩쓸려서 말이다.

‘지랄 맞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전신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죽음’의 감각을 확실히 느끼는 도중,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눈을 뜨니 난 안개에 둘러싸인 어느 산의 분지에 있었다.

“엉?”

몸에 상처가 없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어떤 노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걸레보다 조금 더 나은 의복에, 산발한 머리카락을 한 노인이었다.

“안녕하냐.”

“예, 예?”

“너는 오늘부터 내 제자란다.”

노인이 히죽 웃으며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

당연히 나의 반응도 지극히 타당했다.

“이 노인네가 미쳤-.”

욕지거리를 끝내기도 전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뺨을 세게 얻어맞은 거다.

턱이 빠질 뻔했다.

“스승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뒤질래?”

“다, 당신 누구쇼?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요?”

“너? 내 제자잖아, 이 씹새야.”

상쾌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주먹, 그리고 해가 저물 때까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두들겨 맞았다는 뜻이다.

장담컨대, 내 기구한 인생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힐 만큼의 고통을 느꼈던 하루였다.

그런데도 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탄했는데, 이건 내 맷집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단지 이 미치광이 노인이 사람을 두들겨 패는 데 도가 튼 것이었다.

아무튼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머리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만이 자리 잡았다.

이 노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돼.

“음. 이제야 준비가 된 듯하구나.”

미친 노인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달리 말하면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사실 당시의 내겐 훈련이 지옥이고 지옥이 훈련이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스승과 악마란 말도 동의어였다.

백노광은 악마였다. 처음엔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배드니커 가문에서 날 쓰레기 취급하던 모든 사람을 합쳐도 백노광보다 증오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허리를 펴라. 세상을 낮게 바라보면 시야 또한 좁아진다. 다리 간격은 좁히라고 했잖느냐. 불알 한번 깨져 볼래, 이놈아.”

“호흡은 아끼고 머리는 식혀라. 고작 수련으로 뜨거워지기엔 천하가 너무 넓다. 세상엔 너 스스로를 불태울 일이 초원의 잡초처럼 널려 있느니라.”

“눈동자에 비굴함을 없애라고 했거늘. 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 넌 천하제일인 백노광의 제자다. 이 스승 이외의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하하하. 이제 제법 자세가 잡히는군. 잘했다.”

“…….”

잘했다.

그런 말을 얼마 만에 들은 건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내 삶에 칭찬이란 없었다. 내가 가장 따랐던 어머니조차 나를 위로할지언정 칭찬한 적은 없었다.

견디기 힘든 멸시와 혐오, 그리고 오물보다 조금 나은 평가만을 받아 왔다.

악마는, 악마라 여겼던 이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은인이 되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난 내가 얼마나 구제불능이었는지 알고 있다. 아마 백노광의 폭력 이외엔 그 글러먹은 정신머리를 고치는 게 절대로 불가능했을 거다.

아무튼 지옥 같은 훈련이 십여 년 정도 이어졌다.

점차 강해지는 게 느껴져서 뿌듯하고 재밌긴 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

영산靈山에 사람이라곤 스승님과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힘은 점점 늘어나는데 제대로 시험할 데가 없으니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물론 몇 번씩 사형師兄이란 존재들이 찾아오기는 했다.

순서로 보건 실력으로 보건 나는 막내였고, 사형이란 작자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었다.

과연 스승님이 천하를 주유하며 뽑아낸 인재라고나 할까.

사형들은 거의 영산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상대는 주로 영산에 서식하는 요괴妖怪들이 되었는데, 이 녀석들도 일정 경지에 이르니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유일하게 남은 대련 상대는 스승님뿐.

그러나 난 스승님의 옷깃 한번 잡은 적이 없었다.

무려 10년 동안, 하루에 20회 이상을 겨루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처맞는 나날만 이어지다가, 어제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도, 도련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오오. 세상에! 바알이시여!”

“괜찮으십니까?”

“…….”

나는 15살의 루안 배드니커로서 눈을 떴다.

‘…염병.’

* * *

누군가 내게 가장 돌아가기 싫은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다.

열다섯 살.

열다섯의 루안 배드니커의 삶은 어땠나?

그걸 지금 확실히 겪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전신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만하다.

“…으음.”

부기 때문에 눈 뜨는 게 힘들긴 하구만.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정신이 드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집사께서 이번에야말로 도를 넘으신 게 아닌지…….”

“…….”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난 잘 뜨이지 않는 눈으로 팔을 내려다봤다.

…확실히, 해골에 거죽만 걸쳐 놓은 듯한 앙상한 팔을 보니 과거로 돌아온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이헤 므슨 이리냐.”

참고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말한 거다. 젠장. 입안까지 완전히 헐었잖아.

그런 이빨 빠진 발음을 용케도 알아듣고, 하인 중 하나가 대답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아르잔 집사님과 모의전을 벌이시지 않았습니까.”

아르잔?

“그러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집사님의 손속이 무척이나 과해졌습니다.”

“…….”

아르잔. 누군지 기억난다.

배드니커 가문의 젊은 집사다.

그녀는 새까만 양복에 넥타이, 장갑에 외눈안경까지 착용한, 실로 집사로서 귀감적인 외견의 소유자이며…….

10년 전 있었던 영토전쟁에서 가주인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지고, 그대로 배드니커가에 충성하게 됐다고 들었다.

“그게 언제 일이냐?”

조금 말하다 보니 발음을 안 뭉개고 말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사흘 전입니다.”

그럼 난 꼬박 사흘이나 기절해 있었던 건가?

“아르잔은.”

“별채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부터 물 이외엔 아무것도 먹지 않고요.”

“내가 시켰어?”

“아니오. 집사가 자발적으로…….”

…이 사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내가 뭐 하다가 이 꼴이 됐더라.

나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떠올렸다.

‘아.’

그래.

15살의 오늘,

나는 수련을 봐주던 아르잔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 그럼 전쟁이라도 터지면 되잖아!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집사나 가주님보다 내가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 …….

- 내 말이 틀린가, 집사! 영웅은 난세에, 그리고 전쟁 속에서 탄생한다고 들었다!

‘와.’

새삼스레 15살의 루안 배드니커가 참으로 대단한 새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잔은 전쟁고아다.

왕국을 휩쓴 전쟁 때문에 가족 전부를 잃었는데, 그녀가 불과 5살 때 벌어진 일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전쟁이 일어나라고 고사를 지냈으니 이렇게 깨지는 것도 어떤 의미로는 당연했다.

물론 어딜 감히 사용인이 도련님을 때려 패 놓느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가문 내의 서열은 나보다 아르잔 쪽이 높을 것이다.

열다섯이면 내가 보검을 갖다 판 직후였고…….

아르잔은 본가에서 근무할 때 나의 부친, 즉 가주家主에게도 큰 신임을 받을 만큼 인망이 두터웠다.

아마 지금 내 취급은 가문의 최하급 사용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 나은 수준이 아닐까?

‘거기에 아버지는 아르잔에게 나에 대한 모든 교육을 전임하셨을 터.’

정도가 심하긴 했지만, 일단 이 폭력엔 교육이라는 당위성이란 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아르잔은 나를 이 꼴로 만든 다음, 스스로 독방에 들어가 자처해서 벌을 받고 있었다.

아르잔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고지식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울 좀.”

내가 짧게 말하자 하인 중 한 명이 거울을 가져다줬다. 나는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붓고 터진 꼴. 스승님이 몇 번인가 만들어 준 만두라는 요리가 생각나는 얼굴이다.

그래도 겉은 요란하지만, 슬슬 상처가 아물고 부기가 빠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고금제일공을 운용한다면…….

이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쯤부턴 거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더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몸뚱이에 힘이 없었다.

눈꺼풀에 뭐라도 얹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나는 억지로 물어봤다.

“근데 지금 몇 시냐?”

“이제 밤 11시가 지났습니다.”

졸린 이유가 있었구만.

“알겠어. 이만 나가 봐.”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다시 부를게.”

“아, 알겠습-.”

이때, 문 밖에서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긴 도련님의 방인데…….”

“그럼 내가 잘 찾아온 거로군.”

“도련님은 방금 깨어나셨습니다!”

“다행인 일 아닌가. 나도 의식이 없는 상대에게서 징수하는 건 좀 거북하다네.”

누군가와 모종의 실랑이가 일어나고 있는 듯했는데…….

[징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벌컥!

직후 문이 열리며 댄디한 인상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얼굴의 주름은 노인의 인생이 황혼을 맞이했다는 걸 알려 줬으나.

그와 별개로 곧게 펴진 허리와 보기 좋게 벌어진 어깨는 정장으로도 가릴 수가 없었다.

“…….”

노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방을 훑어보았는데, 시선이 마주친 하인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그 눈동자가 향한 건 물론 나였다.

노인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합니다, 루안 도련님. 징수인 케이안이라고 합니다.”

“…….”

-열다섯.

결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내 인생 최악의 시기.

이때의 나는 가호식에 참여했고.

무능이라 판정받았으며.

가문에선 사실상 의절당하고.

집사에게 곤죽이 되도록 처맞은 데다.

끝내 팔의 힘줄마저 잘렸다.

“가주님의 명으로 징수를 집행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과거 나의 힘줄을 끊었던 장본인이 다시금 눈앞에 서 있었다.

그때와 같은 목적을 갖고.

‘…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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