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태어난 곳이긴 하지만, 새삼스레 배드니커는 정신이 나간 가문이다.
이 가문에선 오직 실력과 실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데, 가주의 피를 이은 직계혈통이라도 예외는 없다.
여기에 폐쇄적인 성향도 다른 가문과 비교도 안 되게 짙은데…….
어느 정도냐면 가주의 친자를 상대로 징수인을 보낼 정도.
그렇다면 징수인이 무엇이냐.
“지, 지, 지, 징수인……! 꼬르륵…….”
“히이익!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옆에 있던 하인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며 단체 패닉에 빠졌다.
무슨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진 놈도 있었고, 게거품을 물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녀석도 보였다.
배드니커에 나도는 징수인에 대한 소문, 그 부스러기만 주워들었어도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배드니커의 집행관이니, 철혈공의 이빨이니, 사냥개이니…….
불리는 이름은 여럿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불리는 호칭은 징수인이다.
그들의 임무는 대체로 무언가를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수하는 건 거의 목숨이고.’
우선 가만히 있으면 내 힘줄이 잘린다는 건 자명한데.
과거의 난 여기서 어떻게 대처했더라?
- 지, 지, 지, 징수인!? 징수인이 왔다고?
- 그,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배드니커다! 가주님이, 아버지가 그러셨을 리가……!
대충 뭐 그런 식으로 현실도피를 하다가 도망쳤고, 결국 저 노인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징수당했다.
즉 힘줄을 잘렸다.
이것이 징수인이란 자들의 역할이다.
배드니커 가문의 또 다른 이름은 [무술명가]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가문의 비전 무술에 관해선 굉장히 폐쇄적인 성향이 있다.
만약 가문의 비전을 외인에게 유출시킨 게 적발되면, 주동자는 물론이고 주변인의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
나 또한 가호식을 받기 전까지 나름대로 가문에서 대우받았기에, 당연히 머릿속엔 배드니커의 무술에 대한 정보가 있다.
윗대가리들이 탐탁찮은 건 그 점일 거다.
원로회는 나를 배드니커의 무술을 쓸 자격이 없는 놈으로 판단했고, 더는 쓰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나로선 억울한 부분이 많았으나, 원로회는 오히려 관대한 처사라고 여기고 있을 거다.
‘일반적으로는 사지의 힘줄을 죄다 끊거나 아예 죽이는 경우가 태반이니.’
물론 내가 혈족이라 참작을 받은 건 아니고, 아직 나이가 어리고 이룬 경지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걸 어쩐다.’
가만히 눈 뜨고 당할 생각은 물론 없다.
오른팔을 못 쓰게 되면 차후 나의 전력이 최소 3할은 떨어질 거다.
특히 내가 익힌 무학- 고금제일공은 외공의 비중이 안 그래도 큰 편이다.
‘반대로,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애매하다.
그야 지금 내 몸 상태가 상태니.
내공 한 줌 없는 건 물론이고, 이 빈약한 몸뚱이로는 징수인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력으로 뛰어도 세 호흡 내로 따라잡히겠지.
‘왜 열다섯이냐고.’
패닉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황만 봤을 때 이보다 나쁘기 힘들 정도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케이안을 보았다.
제법 오래 침묵했는데도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징수인으로서 보이는 마지막 배려일까.
아니면 이미 잡은 쥐새끼라고 생각하는 걸까.
시간이라도 끌 요량으로 말문을 뗐다.
“케이안 경, 오랜만이군.”
“예. 별 탈 없으셨습니까?”
별 탈 없냐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병석에 누워 있는 꼴이 안 보이는 건 아닐 테고.
“정정해 보이는데 치매라도 걸렸는가.”
“예?”
“…라고 할 뻔.”
나는 짧게 사태를 수습한 다음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급하게 온 듯한데, 식사는 잡쉈어?”
“적게 먹었습니다. 집행 전에는 항상 소식을 하는 터라.”
“저택 소개는? 하인을 한 명 붙여 줄 테니 느긋하게 정원부터 둘러보는 게…….”
“배려엔 감사드립니다만, 도련님. 지금은 제 업무에 집중하고 싶군요.”
씨알도 안 먹히는구나,
일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 말로 구슬리는 건 힘든 상대랄까.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시간이 있었어도 상황이 훨씬 나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으로선 지껄이는 것밖에 방도가 없어서 계속 입을 열었다.
“그랬군. 그런데 보다시피 내 상태가 많이 별로야. 날도 늦었는데 집행은 내일로…….”
“외람된 말씀이오나, 도련님.”
케인이 나를 보며 손등을 보였다.
그 순간 소매에서 쑥 하고 예리한 비수가 튀어나왔다.
“꺅!”
하녀가 새된 비명을 터뜨리는 가운데, 케이안은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케이안, 여태껏 징수를 미룬 적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괜히 철혈의 징수인이라 불리는 노인네가 아니다.
저벅.
말을 마친 케이안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은 단순히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행정관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진짜로?’
진짜 이렇게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힘줄을 잘리는 건가?
반신반의하던 가능성이 현실이 돼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으니 갑자기 머리가 차게 식었다.
나는 여전히 침상에 앉은 채로 케이안을 올려다봤다.
“…….”
그러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늙은이가 처음으로 멈춘 채 나를 보았다.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예상했던 것과 다른 나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 찰나 동안, 나는 짧은 방안을 떠올린 다음 입을 열었다.
“나는 징수 대상자가 아니야.”
뻗어오던 손이 잠깐 멈췄다.
“징수에 대해 판단하는 건 가주님이십니다. 그 판단을 부정하는 건 가주님의 의사에 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틀렸어. 가주님께선 최종 결정만 내리신다. 징수 대상자와 처벌 정도에 대해 판단하는 건 가문의 원로회지.”
“…….”
그러자 이 늙은이의 낯빛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으나, 그 변화는 나타났을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만, 원로회에게 그 권리를 넘긴 것 또한 가주님의 판단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가주님의 명령과 다를 바가 없지요.”
“그럼 작은 틀에서 본다면?”
“유독 말꼬리를 잡으시는군요. 시간을 끌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만.”
“맞아.”
“……?”
“경이 나를 제압하는 건 휴지에 코 푸는 것보다 쉽지. 언제든 할 수 있다고. 그러니 더욱 급하게 굴 이유는 없지 않나?”
“말씀드렸듯 여태껏 징수를 미룬 적은 단 하루도…….”
“그래. 하루. 오늘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잖아.”
케이안이 가만히 나를 보았다.
나이를 허투루 먹은 건 아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나로선 제발 이 노인의 신중함이 발목을 붙잡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 매사 병신 같았던 루안 배드니커가 뭔가 뒷배가 있는 듯 굴고 있다. 괜히 지껄이는 말이 아닐 수도…….
이 정도 생각만 들어도 좋다.
“…….”
생각보다 침묵이 길다.
이 침묵은 내게 있어 호조였으나,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을 철저히 지키는 남자니까, 곧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판단할 거다.
그럼 그 전에 동요의 파문을 더 크게 만들면 된다.
“케이안 경, 배드니커의 징수는 더없이 철저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만 해. 한번 행하면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판단은 내 말을 듣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이후엔 군말 없이 처벌에 따를 걸 약속하지.”
그리고 가문의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덧붙였다.
“배드니커의 이름을 걸고.”
여전히 침묵과 무표정이지만, 내가 가문에서 보고 들었던 징수인 케이안이라면 통한다.
통해야 한다.
“…….”
마침내 새까만 장갑에 감싸여 있던 손이 완전히 거둬졌다.
그리고 방금까지 느껴지던 압박감이 녹아들 듯 사라졌다.
“하인들을 모두 내보내 주시지요.”
“그래.”
내가 살짝 눈짓하니 하인들이 옳다구나 하며 우르르 나갔다.
당연하겠지만 옆을 지키겠단 녀석은 한 놈도 없었다.
스릉…….
그리고 방금까지 내 힘줄을 끊으려 했던 비수가 소매 너머로 사라졌다.
이어서 케이안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더니 흘끗 내려다봤다.
“23시 56분.”
“…….”
“하루가 끝나기까지 4분 정도 남았군요.”
케이안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도련님. 스스로 징수 대상자가 아니라 주장하신 근거를 말입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뭐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힘줄이 끊겨 버리는 사태 말이다.
“하나 만에 하나 뚜렷한 이유 없이 징수를 지연시킨 것이라면…….”
물론.
“처벌 정도를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설득은 지금부터다.
* * *
케이안 골단, 68세.
배드니커의 징수인 중에선 가장 긴 경력을 지니고 있으나, 지금도 최종 실적이 세 손가락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토록 긴 경력 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자는 그를 철혈의 징수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케이안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업무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줄은 말이다.
루안 배드니커.
배드니커의 오점, 철혈공의 유일한 실패작, 보검판매상, 무능아.
거기에 소유한 가호는 전무全無.
위대한 가문 출신으로서 죽음보다 더한 수치를 안고 있는 애송이.
케이안은 이 소년에게 별다른 유감을 품고 있지 않다.
아주 희미한 안타까움이 전부다.
하지만 가호식 이후 루안 배드니커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은 한심함으로 변모했다.
가호를 받지 못한 건 물론 죽고 싶을 만큼 끔찍한 일일 것이다.
평범한 혈통인 케이안으로선 그 절망을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
그래서 어쩌라고.
이미 벌어진 일이고, 들이닥친 현실이다.
납득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현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루안 배드니커는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뒷걸음질을 치며 시야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케이안도 루안이라는 이름에 대해 잊었다.
…명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임무다.
가주의 친족이란 요소가 조금 별나지만, 케이안은 긴 경력 동안 비슷한 업무를 몇 번이고 수행했다.
친족이라고 해서, 어리다고 해서.
감정이 요동칠 일은 없을 텐데.
오랜만에 마주한 배드니커의 오점은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케이안을 맞이했다.
보통 징수인을 목격한 자들이 보이는 태도란.
대체적으로 현실 부정이고, 간간이 반항하는 이들이 있다.
아주 간혹 협상을 하려는 놈들도 있었으나, 그것들의 주둥이에서 나온 말이 케이안의 손길을 늦춘 적은 없었다.
오늘까지는 그랬다.
“원로회에서 징수인을 보냈다는 건.”
잔뜩 부은 얼굴, 붕대에 둘러싸인 육체.
볼품없는 꼬락서니로 루안이 말했다.
“회수하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지. 이 경우엔 배드니커의 가전 검술일 거야. 당연히 이미 배운 검술을 잊게 하는 건 불가능하니 경은 내 힘줄이라도 자르려고 했을 테고.”
‘정확하군.’
그러나 케이안은 첫 만남 직후, 내내 이 애송이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루안에게선 징수인을 맞이했을 때 대부분의 이들이 보였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즉 두려움이 없다.
겁을 상실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아닌 듯하니.
애초에 그랬다면 케이안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지도 못했을 테고.
“그럼 원론적인 얘기를 해볼까? 원로회가 내게서 검술을 회수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
“원로회의 판단 기준은 일개 징수인인 저로선 알 수가 없군요.”
“경은 이제 보니 내숭을 참 잘 떠는군. 그럼 내가 말해 볼까?”
루안은 갑자기 근엄한 얼굴로 성대모사를 했다.
“이대로 한심하게 살다 죽을 것 같은 놈에게 배드니커의 가전은 아깝다.”
“…….”
“배드니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느니. 보검을 갖다 팔았다느니… 뭐 여러 말이 오갔겠지만 진짜 이유는 이거야. 내게서 비전을 못 본 거지.”
이 말이 진실인지는 케이안도 모른다.
아무리 집행인으로서 오래 근무했다고 해도, 원로회의 사견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다만…….
루안이 꺼낸 말은, 케이안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이유와 완전히 일치했다.
“그럼 나는 이렇게 주장하겠다. 이 징수는 향후의 배드니커에게서 반드시 손해가 될 거라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간단히 말하면 지금 경은 거목의 싹을 꺾으려 하고 있다는 거지.”
“오만한 발언이군요.”
“그게 진실이야.”
째깍-.
이 순간 케이안의 시선은 어쩐지 회중시계를 향해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23시 59분.
오늘이 끝나기까지 1분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징수를 집행해야 늦지 않을 텐데.
“배드니커에게서 배운 검술은 내게 필요해.”
“어째서입니까.”
“왜냐면 나는 이걸 바탕으로 새로운 무술을 만들 거니까.”
째깍-.
마침내 분침이 넘어가고 하루가 지날 때까지.
“…….”
징수인 케이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