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4화 (4/172)

4화

싸우면 진다.

도망쳐도 잡힌다.

그러니 말로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쉴 새 없이 나불거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떠올렸던 방안을 개선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케이안이란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정보, 소문으로 접한 행적, 실제로 보고 느낀 인상, 그것들로 유추할 수 있는 가치관.

이것들을 머릿속에서 수십 번이고 조합하고, 검토했다.

그러니 비교적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사실이 하나쯤은 나오더라.

‘징수인 케이안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다.’

이자는 정에 휩쓸리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이 상부의 명령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비수를 찌를 수 있는 게 이 노인이다.

그렇다면 내가 파고들어야 할 것도 그 부분일 것이다.

배드니커에 충성을 맹세했기에,

윗선의 명령에 복종하기에 피어나는 의문을 이용한다.

물론.

“…검술의 창안.”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지만.

“터무니없는 말씀을 입에 담는군요.”

징수인의 서늘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과거엔 안개에 둘러싸여 있던 것처럼 불분명했던 케이안의 실력이, 이제는 어느 정도 보였다.

잡다한 표현이나 수식어는 집어치우고, 괴물 같은 늙은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애초에 징수인이란 직위는 강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징수 대상자가 나 같은 반병신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배드니커의 가전을 익힌 강자나 그걸 노리는 타 가문의 실력자, 돈만 받으면 시체 똥이라도 닦을 용병 놈들…….

그자들에게도 징수는 예외 없이 이뤄져야 하고.

케이안은 그 실력파 집단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괴물 중에서도 괴물이라는 뜻이다.

“터무니없는 말이라니? 배드니커의 혈통이라면 독자적인 무술 한두 개쯤은 반드시 만들어야 하잖아.”

배드니커는 제국에서도 여러모로 특이한 가문이지만, 유난히 이해하기 힘든 관습이 있다.

배드니커의 이름을 가진 자- 누가 됐든 성년이 되기 전엔 독자적인 무술을 하나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칙에는 예외가 없다.

무술을 창안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배드니커로서 누렸던 모든 권리를 빼앗긴다.

“물론 나는 성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둘째 형도 이때쯤 무술을 만들었으니 이상할 건 없지.”

철혈공의 둘째 아들을 언급하니 케이안의 눈빛이 더욱 가라앉았다.

“도련님.”

“어.”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갑자기?

나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대꾸했다.

“열다섯인데.”

“헥토르 도련님은 그 나이에 이미 일곱 가지의 검술을 창안하셨습니다.”

“…….”

꼽 주려고 물었던 거였구만.

“어렸을 때부터 무학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드러내셨지요. 한번 본 동작은 반드시 외우셨고, 이튿날엔 똑같이 움직이셨습니다. 불과 열한 살에 가문의 비전 검술에 대한 개선점을 입에 담으셨고, 그중 몇 개는 실제로 반영됐지요.”

철혈공의 자식 중에서도 특히 두각을 드러내는 녀석이 셋 있는데, 헥토르란 놈은 물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나와는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잘나가는 녀석이란 뜻이다.

“저는 배드니커 가문에 오랜 세월 이바지했고, 많은 사람을 경험했습니다. 그 시간이 헛된 건 아닌지 그럭저럭 쓸 만한 안목이 길러지더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루안 도련님께선 스스로를 헥토르 도련님과 동일시하는 겁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렇다면-.”

“그놈은 내 밑이야.”

기가 찰 노릇이다.

헥토르가 대단한 건 인정한다.

그놈뿐만이 아니라 철혈공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편이고.

장남인 히이로, 차남인 헥토르, 차녀인 네로는 그들 중에서도 특출하다.

과거엔 경외심을 품은 채 그들을 바라봤다. 망나니가 된 이후에도 항상 귀는 그들의 소문을 좇았고, 열등감에 먹혔을 때엔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지금은?

‘진짜 천재들을 봤지.’

영산에서 사형들을 보며 몇 번이나 마음이 꺾일 뻔했는지.

세상엔 천재라는 말로 규정지을 수 없고, 괴물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케이안이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뭐?”

“일어나십시오.”

표정이 진지하다.

‘못 서겠는데?’라고 하면 ‘그렇습니까?’ 하며 힘줄을 끊을 것 같은 느낌이라 나는 군말 없이 침상에서 일어났다.

“…끙.”

두 발로 직접 서니 침음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보니 내 몸뚱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한 꼴이었다.

비단 집사한테 얻어터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단 평소의 방탕한 생활 탓이 더 크다.

“검이 있습니까?”

“검? 칼 말이야?”

“예.”

“있기야 하겠지?”

“검을 들어 주십시오.”

당연히 이 방엔 검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하인을 시켜 가져오라고 했다.

“목검을 말씀이옵니까, 진검을 말씀이옵니까?”

“진검.”

“힉…….”

케이안의 무덤덤한 대꾸에 하인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후다닥 뛰어나가더니 얼마 안 가 검을 갖고 왔다.

검을 받으며 생각했다.

‘뭐에 쓰는지는 묻지도 않는구만.’

하기야 가문의 구성원에게 원칙적으로 징수인의 집행을 막을 권리가 없기는 하지만.

“검을 뽑고, 휘두르십시오.”

“뭐?”

“내려베기 세 번이면 됩니다.”

슬슬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어쩐지 이번 요구가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칼집에 검을 넣은 채로 허공을 세 번 그었다.

하나, 둘, 셋.

딱 세 번.

“…….”

케이안은 신중한 얼굴로 그 과정을 보더니 물었다.

“도련님은 무예武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법 재밌는 질문이다.

딱히 정답이랄 게 없는 질문이기도 했는데, 일단 대답을 듣는다면 상대가 가진 무학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가 있다.

‘내 생각을 말해도 좋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게 100점짜리 정답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케이안, 철혈의 징수인.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가문에 스스로의 충성과 가치를 증명한 사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줄곧 현역이었던 자.

이 사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야 할 대답은 어떤 것일까?

“실전에서의 효용성.”

“…….”

“아무리 뛰어난 무술이어도 실전에서 써먹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지.”

“그것은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그냥 책 읽고 혼자 수련하면서 든 생각인데.”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점수를 따려고 거짓말을 하려 했는데,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기존의 내 생각과 준비한 대답이 반쯤 섞인 느낌이었다.

“…….”

케이안은 우묵한 눈으로 나를 직시했다.

내가 한 말의 진의를 간파하려는 모양인데.

‘백날 쳐다봐라. 내 속이 보이나.’

나는 마음먹고 시치미 떼면 스승님조차 긴가민가하게 만들 수 있다.

나중에 증거를 잡혀서 복날 개처럼 얻어맞긴 했지만.

“그리 생각하신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스릉.

잠깐 모습을 감췄던 비수가 다시 쑥 튀어나왔다.

케이안은 장갑에 감싸인 손가락으로 비수의 날을 훑으며 말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무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실전성입니다. 실전에서 쓸 수 없는 검술이란 볏짚을 엮어 만든 검보다도 못한 법.”

“그러니까 직접 시험하시겠다? 내 검술의 실전성을 알기 위해서?”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당장 이놈과 싸우면 패배가 확실해서 주둥이를 나불거렸던 건데.

헛수고했나 싶어 작게 회의감이 들 때.

“물론 일반적인 형태의 대련은 아닙니다.”

케이안이 말을 이었다.

“도련님의 수준과 상태를 고려하지요.”

“어떻게.”

“방금 검을 휘두를 때 도련님이 선보이신 움직임, 제가 그보다 빨리 움직일 일은 없을 겁니다.”

뭔가 했더니 내 움직임을 측정하려고 시킨 거였구만.

일단 저 말대로라면 최소한의 형평성은 맞추는 거긴 한데…….

“…….”

나는 케이안을 보았다.

나도 이자에게 내심을 모두 보여 주지 않았지만, 그것은 케이안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이 노인에겐 의문점이 많다.

하지만.

“좋아.”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징수를 집행하겠지.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내겐 선택지가 없는 문제기도 했다.

나는 물론 그 이유도 알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이치이며 세상의 진리기도 하다.

케이안이 강자고, 내가 약자니까.

애석하게도 약자가 선택지를 갖기는 힘든 세상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강자를 상대로 원하던 결과를 끌어냈으니.

* * *

무술의 창안이란 말은 뭐가 됐든 케이안의 심기를 자극했을 거다.

이 노인은 적지 않은 시간을 수련에 투자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건, 언급했다시피 케이안이 공과 사가 철저한 인물이니까.

스릉-.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품평이라도 하듯 검신 전체를 훑어봤다.

날이 무딘 편이긴 하지만 진검은 맞다.

기술만 받쳐 준다면 충분히 사람 하나는 죽이고도 남을 검.

사실 검을 든 순간부터 무게로 알 수 있었으나, 역시 두 눈으로 봐야 맘이 놓이는 법이다.

“준비가 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케이안이 말했다.

여전히 몸짓과 말투만큼은 공손한 노인네다.

나는 칼집을 침대 위로 던지고 오른손만으로 검을 들어 봤다.

“…….”

무겁다.

그리고 어색하다.

일전의 삶에서.

나는 오른팔의 힘줄이 끊긴 이후에도 배드니커의 무술을 잊지 못했다.

잊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가문에서 퇴출당한 내게 있어, 배드니커와 이어 주는 마지막 연결고리가 바로 가전 무술이었기 때문이다.

대륙을 떠돌아다니던 시절, 이 무술은 내 손에 의해 나름대로 변화를 거쳤다.

외팔이에게 어울리는 형태로 개량됐다고 해야 할까?

물론 전문적으로 뜯어고친 게 아닌, 살기 위해 변형된 형태라 무척 조잡하다.

창안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본가의 무술을 모욕했다고 사지의 힘줄이 다 끊길 수도 있다.

하지만.

- 뭐냐. 그 어설픈 동작은?

- 오호라. 기존의 무공을 네 몸에 맞는 형태로 바꾼 것이로구나.

- 제법 그럴듯하지만, 이제는 버리도록. 네 오른팔은 내가 고쳤으니까. 봐라. 멀쩡히 움직이지 않느냐.

지금부터 선보이려는 무공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다.

-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 호흡이 낭비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빈틈투성이다.

- 상대와의 간격을 대가리에 박으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초식의 형태를 빚는 것은 그다음이다.

- 겨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거리 조절이다. 상대에게 몇 발자국, 몇 호흡이면 다다를 수 있을지 항상 염두에 둘 수 있다면 강적을 상대로도 일격에 절명하지는 않는다.

스승님의 조언으로 만들어진 무공.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선보일 이 무공을, 철혈의 징수인은 과연 어떻게 판단할까?

“시작하지.”

내가 짧게 중얼거린 순간 주변 조명이 조금 어두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조명이 불길하게 깜박거리는 가운데…….

케이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느릿한 동작이었는데, 이상하게 거리는 성큼성큼 좁혀지고 있었다.

‘저 기묘한 걸음걸이 때문인가?’

동작은 느린데 실제 속도는 빠르다니.

얼 타는 상대를 한 호흡에 죽이기 딱 좋은 기술이 아닌가?

‘쓸 만한 기술 같은데.’

물론 감탄이나 할 때는 아니라서, 나는 케이안의 움직임에 계속 집중했다.

이윽고 서로의 간격이 두 발자국 반 정도가 됐을 때…….

내가 먼저 선공을 취했다.

나의 단순한 찌르기를 케이안은 어렵지 않게 피해 냈는데, 고개를 살짝 비튼 게 전부였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공격을 피하는 행위는 상대의 공세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기예다.

야심 찬 선공이 빗나갔으나, 나는 낙심하지 않고 맹공을 이어 갔다.

연이어 찔렀고, 베었고, 검을 마치 몽둥이처럼 휘두르기까지 했다.

케이안은 공격을 허용하지 않은 채 착실하게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곧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분명 공격하고 있는 건 나이고, 케이안은 단지 회피하고 있을 뿐인데도 어느새 이쪽에서 뒷걸음질을 치는 형국이 된 것이다.

턱.

어느 순간 나는 벽까지 내몰렸으나, 그 시점까지 케이안은 옷매무새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더 이상 검을 휘두르기엔 어려운 간격.

압박하듯 내 앞에 서 있는 케이안의 체격은 나보다 머리 한 개는 더 컸고, 쉽게 무시하기 힘든 압박감을 내뿜고 있었다.

“허억, 헉…….”

빌어먹을 몸뚱이.

검 몇 번 휘둘렀다고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반쯤 탈진한 꼴로 늙은 징수인을 올려다봤다.

“조금은 기대했습니다.”

“…….”

많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는데, 케이안이 일부러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다.

이 늙은이는 건조한 목소리, 무감정한 눈동자 밑에 깔린 짙은 실망을 숨길 생각이 없다.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게 허울이었군요.”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이토록 근접한 상태에서 검을 휘두르면 내가 다칠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턱!

손목이 붙잡혔다.

이 노인은 체격만큼이나 손까지 커서, 비루한 내 손목을 완전히 감싸고도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꾸우욱.

“큭!”

악력.

손목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고통에 나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날이 무딘 칼이 허무하게 나동그라졌다.

쉬익!

뒤이어 주먹이 날아왔다.

비수는 보이지 않으니 왼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속도라 나는 어깨를 살짝 비틀며 주먹을 피했다.

그러자 케이안은 뻗은 주먹의 손바닥을 펼치더니 내 어깻죽지를 붙잡았다.

꽈드득!

어깨뼈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 늙은이, 손이 맵다.

탈골이라도 시키려는 건가.

“창안하셨다는 검술은 잘 보았습니다. 아직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이 케이안이 추천해 드릴까 합니다만.”

“…….”

“‘볏짚검술’은 어떻겠습니까.”

무학에 대한 자존심이 높아서일까.

드물게도 이 무표정한 노인에게서 조소의 기색이 느껴졌다.

다시 시계를 꺼낸 케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괜히 시간을 낭비했군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징수를 집행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나는 케이안의 얼굴이 징수인이 되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볏짚검술. 재밌는 작명이야. 그런데 경, 언제 내가 검술을 창안했다고 말했나?”

“다시 무의미한 얘기로 시간을 끌 생각이십니까?”

“착각을 일깨워 주고 싶은 것뿐이야. 내가 만든 건 권법拳法이니까.”

빠악!

케이안의 턱이 위로 솟구쳤다.

체격 차이와 초근접한 거리,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시야의 사각…….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전략을 짰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

즉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 것이다.

“……!”

케이안은 고개가 하늘로 향한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늦어도 1초면 평정심을 찾을 게 분명해서,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공을 이어 갔다.

차례대로 상대의 가슴 중앙, 명치, 복부를 가격한다.

퍼버벅,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격에, 그제야 케이안의 몸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러고도 내 어깻죽지를 잡은 손아귀엔 아직 힘이 남아 있다.

나쁘지 않다.

나는 케이안의 팔오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근육을 단련할 수 없는 인체 부위는 역시나 부드러웠다.

푹!

한 마디 정도 푹 들어간 손가락.

케이안이 짧게 침음을 흘리며 손아귀의 힘이 사라졌다.

이후엔 일사천리였다.

아직 경황이 없는 케이안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린 다음,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검을 낚아챈 후…….

칼끝으로 케이안의 목울대를 겨눴다.

“…….”

철혈의 징수인은 큼지막하게 떠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경은 작명 센스가 많이 구리군.”

“무슨…….”

“이 무술엔 이미 이름이 있어.”

그리고 나는 덤덤히 입에 담았다.

천하제일인 백노광.

나의 스승과 함께 만든 무공의 이름을.

“백일식白日蝕이라고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