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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7화 (17/172)

17화

진로를 정한 이후에도, 우리는 세 번이나 교단 놈들과 충돌했다.

다행히 앞서 마주친 놈들처럼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숫자가 많아지는 게 꺼림칙했다.

차례대로 네 명, 다섯 명, 마지막엔 무려 일곱 명.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상대의 수준을 떠나서 다수의 숫자, 어두컴컴한 숲이라는 장소, 암살자라는 특징은 분명 까다로운 게 맞다.

게다가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상대와 달리, 나와 아르잔은 여력을 보존해야만 했다.

그렇게 끝없이 내달리다가, 날이 거의 밝기 직전에야 1차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기군.”

괴물의 아가리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장소.

아마도 보석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초거대 동굴의 모습이 보였다.

“더-럽게 크네.”

지도로 봤을 때부터 클 건 예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동굴의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정도 커다란 구멍이 뚫렸는데 산이 무너지지 않은 게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아르잔이 피곤함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 말대로 일단 입구 근처는 안전해 보였다.

저 속까지 그럴지는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동굴의 크기를 보니, 여차할 때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와 아르잔은 동굴에 발을 들였다.

바깥만큼은 아니지만 내부도 서늘한 편이다.

바위엔 이끼가 껴 있고, 동굴 천장에선 종유석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축축한 느낌을 보니 어딘가에 지하수가 흐르는 석회동굴인 모양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괜찮은 장소를 발견했다.

조금 구석진 곳이었는데 바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고, 반대로 입구 쪽을 확인하기엔 용이한 장소였다.

그쪽으로 이동한 다음 아르잔을 보며 말했다.

“그럼 집사, 일단은 눈 좀 붙여.”

“예?”

“많이 피곤하잖아.”

“아닙니다.”

아니긴 개뿔.

눈동자가 하도 새빨개서 토끼로 보일 지경인데.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사흘 밤낮을 지새우고 버티다가, 오늘은 밤부터 새벽까지 줄곧 싸웠다.

겉은 저래도 속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일 거다.

나는 가방에서 담요를 꺼낸 다음 손수 바닥에 깔아 줬다.

“됐으니까 그냥 자. 지금 상태로 집사는 짐짝밖에 안 돼.”

“…….”

아르잔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알겠습니다.”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담요를 몸에 둘둘 감싼 다음, 적당한 벽면에 기대서 잠을 청했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그냥 퍼질러 자지, 사서 고생한다.

애초에 저렇게 배웠으니 어쩔 수가 없나? 살아오며 길러진 습관이란 단시간에 바꿀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찬 다음 적당한 곳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급한 건 아니지만,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꼭 삼킨 불덩이를 삼킨 느낌이다.

“음…….”

사실 방금 추격전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여서 죽을 뻔했다.

온기가 아닌 열기.

미세한 차이지만, 화기가 진력인 내겐 중요한 문제다.

자리 잡은 내공에서 온기가 아닌 열기가 느껴진다면, 이 내공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오셀의 독으로부터 주입받은 양기를 아직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증거이자, 아직 불순물을 완전히 게워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내가 급히 운공에 들어간 이유기도 하다.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실제로 나는 이 상태로 내공을 운용하여 백일식을 펼쳤으니까.

그러나 방치하는 건 위험하다.

이 힘을 체내에 적응시켜, 완전한 진기로서 소화시켜야 한다.

다행히 이 작업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약 30분 후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후우우…….”

입을 살짝 벌리니 거뭇한 연기 같은 게 흘러나왔다.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열기를 완전히 중화시켰다는 증거라 어쩔 수 없다.

‘별일 없는 것 같…… 응?’

그때 아르잔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잔은 덜덜 떨면서, 창백한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동굴 내부가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 핏기 없는 입술이 달싹거린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억지로 깨우기엔 잠든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나는 아르잔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내부의 온기를 조금 주입해 줬다.

“…….”

그러자 창백했던 안색에 혈색이 조금 돌아오며, 호흡도 한결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인상이 풀리니 훨씬 어려 보였다.

물론 난 아르잔의 나이를 모르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뜻.

항상 정장에 장갑까지 끼고 있는 데다, 여자치고는 키도 큰 편이니 당연히 노안으로 보일 수밖에.

이 녀석이 의도한 걸 수도 있겠다.

“음…….”

자는 사람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나는 아르잔한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동굴 내부를 살짝 둘러봤다.

물론 아르잔을 내버려 두고 움직일 순 없어서 근처를 조금 걸어 다닌 게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있었지만… 아직은 애매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정도 흐른 뒤, 아르잔이 깼다.

“…….”

막 잠에서 깬 아르잔이 흐리멍덩한 얼굴로 날 봤다.

저런 멍청한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흐릿한 표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아르잔이 샥샥 인상착의를 정돈하더니 완벽 집사로 복귀했다.

“…실례했습니다, 도련님.”

나는 방금 보인 모습을 빌미로 놀려 볼까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더 안 자도 되겠어?”

“예. 충분합니다.”

아직 완전히 피로를 털어낸 건 아닌 듯 보였지만.

사실 더 배려해 줄 만큼 넉넉한 상황인 것도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바로 안으로 가 보자고.”

그리고 나와 아르잔은 본격적으로 동굴 내부에 진입했다.

동굴은 일자로 이어진 터널 형태였기 때문에 지도를 꺼내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희한한 건 안쪽에도 몬스터가 거주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혹시 모르니 경계 태세는 계속 유지했다.

동굴은 깊어질수록 점차 좁아지는 형태가 됐다. 거기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기둥이 얽히고설켜 복잡한 느낌도 강해졌다.

그래도 웬만한 동굴보단 훨씬 커서 여전히 헤맬 일은 없었다.

다만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점점 추워지는 것 같지?”

“예.”

어쩐지 그 사실이 껄끄럽다.

빛 한 점 없는 공간인데 은은하게 밝은 점도 마음에 걸리고.

…사실 짚이는 바가 있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는 재수 옴 붙을 것 같아서.

아르잔과 나는 신중하게 세 시간 정도를 걸었고… 동굴의 끝자락이라 생각되는 장소에 이르렀다.

아마도 반대쪽 출입구가 자리 잡은 장소.

그곳에서 나와 아르잔은 불길함의 근원을 목격했다.

──시이이이…….

동굴 출구를 자신의 몸뚱이로 틀어막고 있는 괴물이 있었다.

──시이이이…….

잠에 빠진 상태다.

그러나 호흡하며 들썩이는 몸뚱이는 여태껏 산맥에서 목격한 돌연변이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이 거대한 괴물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비늘은 얼음을 깎아 만든 것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시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네.

최악의 상황이다.

저놈은, 토벌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 * *

나와 아르잔은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어떤 대화도, 수신호조차 없었지만, 사전에 정해 둔 것처럼 같은 동일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사파이어 스네이크의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 곳에 이른 다음에야 참았던 토해 냈다.

“…보석수란 게 다 저런 건가? 저건 그냥 날개 안 달린 드래곤이잖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르잔도 놀란 것 같았지만,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 줬다.

“사실 보석수는 하나의 부류라기엔 너무나도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특징과 성향도 완전히 제각각이니까요.”

“그럼 왜 보석수라고 묶어 부르는 건데.”

“눈동자나 이빨, 발톱부터 갈기나 비늘, 혹은 갑각까지… 특정 부위에 깃든 기이한 빛깔 때문입니다. 오직 보석 산맥의 돌연변이에게만 찾을 수 있는 특징이지요.”

“음.”

“도련님, 돌아가시지요.”

아르잔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차라리 교단과 싸우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런가? 아버지는 저런 걸 세 마리나 토벌했다며.”

“다릅니다. 일전의 가주님께서 토벌한 보석수는 각기 에메랄드 스콜피온, 가넷 크로커다일, 토파즈 마우스로- 사실 보석수 중에서도 중하급에 속하는 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방금 본 놈은 다릅니다. 그건 최소 수백 년 묵은… 괴물보다는 영물에 가까운 존재가 분명합니다.”

아르잔은 이상하게 보석수에 대해선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트롤에 대한 대응법도 몰랐던 녀석이 말이다.

의아하기는 했지만, 지금 짚을 문제는 아니라 대충 넘기며 대꾸했다.

“S급 몬스터 정도 되려나.”

“예?”

“용병의 방식으로 분류하자면 말이야.”

본래 용병이란 게 등급 매기기에 사족을 못 쓰는 놈들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판별은 비교적 정확하다.

사실 나도 보석수보단 교단과 싸우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이상하게 호승심이 들끓네.’

접어야 할 마음이다.

승산이 1푼조차 안 된다면, 그건 승부가 아니라 도박이니.

“알겠어. 그럼 일단 어느 쪽을 돌파할지부터 생각-.”

말을 하며 지도를 꺼내다가 멈칫했다.

아르잔도 흠칫 놀란 상태였다.

우리는 짤막하게 시선을 교환한 다음, 즉시 근처에 있는 바위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굴 끄트머리에서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움직임 때문에 언뜻 보면 헛것을 봤나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착각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 모습을 드러낸 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짓했다.

그리고 뒤에서 비슷한 옷차림을 한 괴인이 다수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여덟, 아홉, 열…….’

나는 스무 명까지 세다가 세는 걸 포기했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서른 명에 가까운 숫자.

게다가 옷차림도 앞에서 처리한 어중이떠중이와 다르다.

어쩐지 몸을 감싼 후드의 색이 검붉다는 점이 그랬다.

“…….”

들은 적 있다.

핏빛 달의 마왕.

선혈을 숭배하는 그들은, 보다 높은 직위를 받은 자일수록 피에 가까운 색으로 무장한다고.

‘엿 됐네.’

빼도 박도 못 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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