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나는 이제 반쯤 이 존재를 무신이라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서인지 다소 무례한 발언에도 화보단 의문부터 생겼다.
“어째서입니까?”
[그 무술은 미완성이군.]
나는 멈칫하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완성도엔 흠이 없을 터인데.”
[이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문젤세. 그저 한 폭의 그림을 보았을 때- 제아무리 뛰어난 화가가 그린 그림일지라도 말이야. 한 곳에 노골적으로 텅 빈 곳이 있다면 당연히 미완성작이라고 생각할 테지.]
“…….”
[그러나 내가 익히길 그만두라고 권하는 건 단순히 백일식이 미완성의 무술이라서가 아닐세.]
무신이 말을 이었다.
[연자가 내게 보여 준 백일식의 형태는 총 열 가지였네. 그리고 그 형形들엔 딱히 공통점이랄 게 없었어. 극양의 기운을 띠고 있다는 걸 제하면 말일세.]
맞는 해석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한번 언급했듯, 백일식은 모든 초식이 필살기다.
물론 응용하기에 따라서 견제의 역할을 수행하고 연쇄기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 한 번의 초식으로, 반드시, 적을 죽이는 기술이란 뜻.
[이외에도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었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점점 위력이 강해지더군. 주변을 집어삼키며 점차 가열되는 불꽃처럼 말이야.]
“…….”
[지금 연자의 육체로 쓸 수 있는 건 일곱 번째, 혹은 여덟 번째 형까지일 터. 마지막 두 개의 형은 지금으로선 사용할 수 없을 듯한데, 맞나?]
“…맞습니다.”
[또한 그대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형태는 지금보다 위력이 훨씬 더 강해야 하겠지. 아마 열한 번째 형태부터는 이미 인간의 무술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야.]
그 말대로다.
내가 지금 백일식의 후반부 창안에 손도 못 대고 있는 이유가 그거다.
어차피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무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한 무술일세.]
“…….”
[파괴력만큼은 대단하지만, 기본적으로 초월적으로 단단한 육체를 갖춰야 구사할 수 있는 무술이야. 피와 살로 이뤄진 육체로는 언젠가 반드시 한계가 올 테지.]
보이지 않지만, 내 안색을 훑어보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놀라지 않는군. 혹 연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예.”
[그럼 왜 계속 익히는 것이지? 부작용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어차피 이 신적인 존재에게 비밀을 말했다고 널리 퍼질 일은 없을 테니.
“제가 익힌 연단법은 육체 회복에 있어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어느 정도의 부하負荷가 걸리더라도 연단법의 회복력으로 상쇄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그대가 특별한 연단법을 익혔다는 건 방금 보인 혈투에서 충분히 보았네. 분명 탈진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순식간에 기력을 회복하더군. 하나 그 또한 임시방편일 뿐. 결국 진기를 끌어다 쓴 게 아닌가.]
“…….”
나는 무신의 통찰력에 다시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무신이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대부분의 무술에는 단련鍛鍊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네.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서, 순서대로 경지를 오르고,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끔 이끌어 주지. 그러니 선대로부터 배운 무술은 그 자체만으로 이정표인 셈이야.]
“…….”
[덕분에 후학은 그 과정에서 육체만이 아닌 정신의 수양마저 겸할 수 있게 되는데, 그 또한 창시자의 배려일세. 결국 상승의 무술을 다루기 위해선 강인한 정신력도 갖춰야 하니까. 그러나.]
무신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백일식엔 그런 배려가 없어. 단순한 파괴 기술의 집합체야. 개인적으론 무술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네.]
“…….”
[사용하지 말라는 게 아닐세. 더는 익히지 말라는 뜻이지. 방금 보인 열 개의 형으로도 전투에 부족함은 없을 거야. 그 이상을 추구하는 건 그릇을 부수는 것과 같네.]
무신이 약간의 간격을 두더니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무술을 가르친 그대 스승의 진의가 짐작이 가질 않는군.]
“무언가 이유가 있겠죠.”
[제자를 부숴서라도 이뤄야 할 이유 말인가?]
무신이 날카롭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크게 기분이 상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무신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사실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점이라 그렇다.
백일식이 여러모로 괴이한 무공이란 건 나도 수련하는 내도록 느꼈다.
계속 익히면 위험하다는 말은 진실이 맞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걸까?
“사람과 무술엔 적성이란 게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무술이라도, 누군가에겐 돌멩이보다 가치가 없을 수도 있죠.”
[이것은 적성이 아닌 위험성에 관한 얘기일세.]
“압니다. 저는 그저 사제 간에도 궁합이란 게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
“무신이시여, 스승님께선 저에게 백일식을 익힐 것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제 몫이었으니 그 책임 또한 제 몫이어야 할 것입니다.”
무신의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무례한 말을 하는 걸 수도 있다.
짧은 대화로 깨달은 건, 기본적으로 이 무신이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조언도 호의에서 우러나온 것일 터.
하지만, 나는 사제의 영역이 누군가에게 침범당하는 게 기껍지 않았다.
비록 그게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도.
[…연자의 뜻은 잘 알겠네. 왜 나의 무술을 거절했는지, 그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군.]
“예. 그러니 무신께서는 저 이외에 다른 연자를 찾는 것이-.”
[지금 이곳에 오고 있는 자 말인가?]
“…그건 좀.”
그러고 보니 하덴아이하르의 하수인이 부리나케 달려오는 중이지.
동굴이 워낙 크니 아직 시간은 좀 있을 테지만…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닐 거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 말했다.
“이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이곳을 나가면, 무신께 어울리는 신도를 찾아보겠습니다.”
[흐음. 그럼 그때까지는 신도를 택하는 걸 보류하라?]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연자는 이곳으로 오고 있는 무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구먼.]
“그렇죠. 재앙신을 숭배하고 있는 악한 자이니.”
신적 존재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딱히 설득력이 없겠지만, 일단은 그리 말했다.
[흐음…….]
무신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잠시 후 말했다.
[연자여, 한 가지 조건만 수락한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뭐죠.”
[나의 무술을 익히게.]
“말씀드렸듯이 저는-.”
[백일식은 계속 익혀도 좋네.]
무신이 말했다.
[그 건에 관해선 내 간섭하지 않지. 그런데 어차피 미완인 무술이지 않은가. 쭉 개발에 몰두할 게 아니라면 다른 무술을 익히는 게 해가 되지는 않을 터.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다네.]
“확신이요?”
[나의 무술은 그대에게 큰 보탬이 될 것이야.]
“…왜 저 같은 놈한테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무신으로서의 고집일세.]
“예?”
[나는 확신하고 있네. 내 무술을 익히다 보면, 그대의 생각이 도중에 꼭 변할 것이라고.]
“제가 변해서, 스스로 백일식의 수련을 관둘 것이라 여기는 겁니까?”
[그렇네.]
“허어.”
헛웃음이 나왔다.
“…보통 그런 의도는 숨겨야 하지 않나요.”
[숨기든, 숨기지 않든 상관없을 것이라 여겼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오래 숨길수록 그 후폭풍이 큰 법이지. 사제 간에 신뢰란 기본이지 않은가.]
“저는 무신님의 제자가 아닙니다만…….”
[그렇지.]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어쩐지 말린 기분이었지만, 나는 굳이 따지지 않고.
“알겠습니다.”
받아들였다.
무신이란 존재가 이 정도까지 숙이는데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실은 제안 자체가 나한테 해가 될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묻지 않았다.
“혹시 제게 가르칠 무술이 무엇입니까?”
[은하검銀河劍이라고 하네.]
“…….”
툭, 하고.
내 입이 쩍 벌어졌다.
제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
나는 경악을 간신히 숨긴 채로 물었다.
“…무신께서는 설마 무명왕無名王이십니까?”
* * *
은하검銀河劍.
지금은 실전된 검술로써, 제국을 세운 건국왕 이래,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 무명왕의 검술이다.
무명왕의 업적으로는 당시 악마의 대대적인 침공에도 흩어져 있던 나라를 규합하고, 대부분의 이종족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한 것에 있다.
그것도 칼 한 자루로 말이다.
그 시절 무명왕이 만든 관계를 토대로, 오늘날 왕국은 이제 제국이라 불린다.
지금은 대륙에 단 하나의 나라만이 존재하는 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불과 오백 년 전만 해도 이 땅 위엔 수많은 나라와 종족이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교단이라는 거악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아닐세.]
그러나 무신은 쓴웃음과 함께 내 말을 부정했다.
[애초에 무명왕은 인간이지 않은가.]
“무명왕을 비롯한 다섯 왕은 현 제국에서 신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는 종교도 있을 정도인데.”
[그런가? 시대가 많이 변했군…….]
무신이 약간 놀라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난 무명왕이 아닐세. 애초에 그렇게 유명한 존재였다면 내가 잊힌 신이라 불릴 리가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긴 하다.
나는 무신의 말에 납득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무명왕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과거 나의 연자였지. 그게 전부일세.]
쿠르르…….
그때 동굴 전체가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이 부스스 떨어졌다.
[이 동굴은 오래 버티지 못할 듯하군.]
“무너진다는 뜻입니까?”
[방금 연자가 치른 싸움은 그 정도로 격렬했으니.]
무신이 말했다.
[연자여, 은하검을 잇는다면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이 있네. 저 탑의 꼭대기에 한 자루 검이 꽂혀 있을 것이야.]
“…설마 칠죄검七罪劍은 아니겠지요?”
과거 무명왕이 대륙의 일곱 종족을 규합했을 때 사용한 무기.
각 종족 최강자와의 연전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게 해줬던 명검의 이름이 칠죄검이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다고 들었다.
황궁엔 모작만이 전시되어 있다고.
내가 읽은 책에도 그 생김새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분명 칼날엔 잔가지처럼 기이하게 뻗어나간 칼날이 있고, 검신엔 기묘한 문양이-.
[칼날에 잔가지처럼 기이하게 뻗은 칼날이 있고, 검신에 스물일곱 개의 룬 문자가 새겨진 검을 말하는 거라면, 맞네.]
맞구나.
“…탑 꼭대기에 있다고 하셨죠?”
빨리 챙기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