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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43화 (43/172)

43화

철혈공의 자식은 모두 열두 명이다.

아들 일곱에 딸 다섯.

철혈공의 혈통 중시가 틀린 방향은 아니었는지, 그놈들 대부분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나-.

모두가 아무 탈 없이 성년을 맞이한 건 아니다.

내 기억으론 그 전에 세 명이 죽는다.

두 명은 영도 임무 수행 중 사고로, 나머지 한 명은 의문사.

그것도 실종 처리 이후, 3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아서 의문사 처리된 것인데…….

마지막으로 알려진 소재는 다름 아닌 배드니커의 본가였다.

그놈의 이름은 루드빅.

배드니커의 오남이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호기심이 대단히 왕성한 녀석이었다.

지금 이 순간 루드빅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그래도 금지에 발을 들였다고 자식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내 믿음은 오직 철혈공에게만 국한된 것이다.

가령 내 추측이 모두 사실이고, 이번 침입을 원로회가 먼저 깨닫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놈들은 나를 척살한 다음 시치미를 뚝 떼거나, 후보고를 올릴 수도 있다.

죄다 망상으로 치부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애초에 저런 괴물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니…….

애초에 배드니커 가문을 보고 음침하다느니, 음험하다느니… 그런 종류의 소문엔 나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야. 말 좀 해봐.”

나는 세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 녀석은 어쩐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믿을 만한 녀석이긴 한데.’

별개로 이런 얘기를 죄다 말해 줄 필요는 없다.

아무튼 내 생각으로 가장 좋은 방향은, 우리의 출입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여길 탈출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하리바랑 싸워야 할 것 같다.”

“뭐?”

“그게 가장 나아.”

다짜고짜 본론만 꺼내는 게 잘못된 대화 방식인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다.

예상대로 세렌이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너 미쳤냐?”

“설마.”

“그럼 정신이 나간 거군.”

같은 말 아닌가?

“방금 그놈 모습 못 봤어? 가호를 세 개나 휘두른 발차기를 먹였는데 잠깐 주춤한 게 끝이더라. 무슨 철벽을 걷어찬 것 같았다고. 무기라도 있으면 할 만하겠지만, 맨몸으로는 못 이겨.”

이렇게 말하니 나도 예전과 비슷한 대꾸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신이 무기야.”

“……”

“아무튼, 여기 들어온 걸 가문한테 들키면 안 돼. 특히 넌 더 그렇고. 잘못하면 배드니커와 굿스프링의 가문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가문까지 언급하니 세렌의 표정이 굳었다.

이것도 이상하다.

행동하는 걸로 봐선 가문의 뜻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또 어떤 때는 묘하게 크게 의식하는 것 같달까.

“하지만-.”

“나도 혼자였으면 이런 말 안 했어. 그래도 둘이면 충분히 승기가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냐.”

그렇긴 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럴 때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변명을 떠올렸다.

“그게 내 가호니까.”

“뭐?”

“어떤 가호인지는 말 못 해. 하지만 내 가호가 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단 것만 알아줘라.”

“…….”

그러자 세렌이 흠칫한 표정을 하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설마… 너, [별의 가호]를 손에 넣은 거야?”

“…….”

“그런 거지? 그걸로 우리가 이긴다는 계시를 받았다든가.”

그건 또 뭐야.

별의 가호, 뭐 별 하늘한테 계시라도 받는 그런 건가.

“…….”

나는 세렌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랐으나, 그것과 별개로 표정은 여전히 무게를 잡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러고 있는 게 가장 나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세렌이 나를 보며 말했다.

“…좋아. 네 말에 따르겠어. 그럼 작전도 네가 짜는 게 낫겠는데.”

“그럴까?”

안 그래도 먼저 꺼내고 싶었던 말인데, 저쪽에서 먼저 해줬다.

어쨌든 풋내기 시절의 실버문보단 내 작전이 더 그럴듯할 테지.

나는 잠깐 이곳의 지형과 하리바에 대해 떠올렸다.

하리바와 직접 대치한 건 아니지만, 세렌의 발차기는 상당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걸 받고도 아무런 타격도 없었으니, 놈의 육체 방어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겠지만.

그래도 보석수- 사파이어 스네이크의 비늘보다 단단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놈의 방어력이 그 수준에서 그친다면, 나 혼자라도 어렵지 않게 하리바를 처리할 수 있다.

‘…….’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또 방심이라 여겼다.

어쨌든 세렌이라는 전력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혼자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놈의 몸뚱이가 보였던 변화도 맘에 걸리고.’

고무처럼 부풀어 오른 몸뚱이는, 10초도 되지 않아서 더 이상 사람이라 볼 수 없는 꼴로 바뀌었다.

어쩌면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붙어 봐야 알겠는데.’

대략적인 고민은 끝났다.

나는 작전을 설명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하리바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도망쳤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니,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놈을 발견했다.

“루아아아안-!”

귀 째지겠네.

이때쯤 하리바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변해 있었는데, 대체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부풀어 오른 고깃덩어리?

‘저주가 아니라 인체 실험, 뭐 그런 걸 당한 건가?’

저런 음험한 짓을 할만한 건 타락한 연금술사 놈들밖에 없는데.

아무튼 나는 하리바가 좀 더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세렌과는 잠시 떨어진 상태였는데, 일단은 내가 미끼가 되는 형태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하리바의 주의가 나한테 향하고 있으니.

‘슬슬 신호가… 오.’

그때쯤 하리바의 후방으로 이동한 세렌이 이쪽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준비 완료라는 의미.

그럼…….

뚜둑-.

나는 습관적으로 목 관절을 풀며 모습을 드러냈다.

“루……!”

하리바가 단번에 내 존재를 깨닫더니, 직후 포효를 터뜨리며 달려왔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주의 기운은 물론,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파악한 바로 이놈의 능력은 압도적인 육체 성능이 전부다.

즉 직접 부딪치기 전까지는 이놈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는데.

꽈드득.

나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멍청한 짓인 걸 알지만, 일단은 정면에서 한번 부딪쳐 보고 싶어졌다,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하리바를 보며, 자세를 취한 뒤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백일식白日式 제일초식第一招式.

작열灼熱.

꽈앙!

주먹이 맞닿은 즉시 깨달았다.

‘생각보다…….’

너무 센데?

나는 놀란 심정을 느끼며 포탄처럼 튕겨 날아갔다.

“루안-!”

이번에도 또 하리바가 내 이름을 부르짖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내 이름을 외치며 달려든 건 세렌이었다.

그 와중에도 약점은 찾았는지 하리바의 목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근데 그렇게 외치면 기습의 의미가 있나.

예상대로 하리바가 뒤로 돌며 손등을 휘둘렀다.

빠악!

손등에 맞은 세렌이 나처럼 날아갔다.

심지어 내가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다칠 것 같아서 일단 내가 받아내려는데, 용케도 혼자 잘 착지한다.

“야, 피.”

“…알아.”

이마가 좀 깨졌는지 머리에 핏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전체적으로 워낙 하얀 인상이라 붉은 선혈이 더 도드라졌다.

세렌은 핏줄기를 대충 문질러 지우더니,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너는 괜찮냐? 나보다 더 화려하게 날아가던데.”

“멀쩡해.”

“…몸은 튼튼한가 보네. 근데 뭐 하자는 거야? 저 괴물 놈이랑 정면에서 붙으면 어떡해.”

“잔소리는 나중에 하고 멀쩡하면 일어서라. 저놈 다시 오고 있으니까.”

나는 온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걸어오는 하리바를 보며 말했다.

“약점은 찾았고?”

세렌은 단순히 후방으로 이동하기만 한 게 아니다.

일부러 크게 둘러 가며 전 방향으로 하리바를 관찰했다.

“덩치에 비해 목이 많이 가는 편이더라. 다른 곳이랑 달리 근육에 덮여 있지도 않고.”

“그래? 앞쪽에선 잘 모르겠던데.”

“가슴 근육에 가려졌으니까.”

“음. 정면에서 뚫기엔 힘든 상대란 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다시 한번 미끼 역할을 할게.”

“…괜찮겠어?”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저놈은 계속 나만 보고 있는데.”

“…….”

세렌도 뾰족한 수가 없는지 입을 닫았으나, 별개로 미덥지 못한 눈빛을 보낸다.

“이번엔 무리 안 할 테니까 가봐.”

“진짜지?”

“그래.”

“…죽지 마라.”

마지막 말엔 대답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루안…….”

하리바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꽂혀 있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세렌이 눈앞에서 떠나는데도 그랬다.

그렇다면 사랑과 증오,

두 감정 중 더 강렬한 건 증오라고 봐도 될까?

‘…….’

희미한 위화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리바가 다가올 동안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죽은 땅은 불길한 자색을 띠고 있다.

‘시험해 볼까.’

접근한 하리바가 다시 한번 공세를 시작했다.

이 녀석의 공격이란 거의 양 주먹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것이었는데, 이런 단순한 방식도 초월적인 육체가 받쳐 주니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콰가가가각!

하리바는 거의 지면을 갈아 버리며 나를 추적했다.

역시 느릿한 놈은 아니다.

이렇게 공격을 집중할 때나, 방금 세렌의 기습에 반응한 동작.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낸 것이라 여겼지만…….

“루아아안-!”

공세가 1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놈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는 하리바의 공격을 흘리며 나무가 유난히 울창한 장소로 진입했다.

군데군데 풍화된 건물의 뼈대 같은 것도 있는 장소였는데, 한마디로 장애물이 대단히 많다는 뜻이다.

‘세렌한테는 미안하지만.’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꽈과과광!

풀숲을 내달리며 하리바와의 공방을 이어 갔다.

원체 폭력적인 놈이라 귓전에선 무언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난 그 격전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아주 짧지만, 하리바의 움직임이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사방에 장애물이 유난히 많아질 때다.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져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게 아니다.

이 치열한 난전 속에서, 불현듯 마비라도 온 것처럼 움직임이 뚝뚝 끊어지는 것.

물론 그러한 멈칫거림은 나타났을 때보다 더 빨리 사라졌지만… 내 안목을 피할 만큼 치밀하지는 않았다.

나는 하리바와의 격전을 이어 가며 주변을 살폈다.

어느덧 예감은 확신으로 변해 있었다.

숲 어딘가에 하리바를 조종하는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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