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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46화 (46/172)

46화

쇠사슬.

특유의 무기질적 서늘함이 옷감 너머로 느껴진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쓸데없는 짓은 관둬라. 그 사슬은 유물이다. [비네의 쇠사슬] 너도 이름쯤은 들어 봤겠지?”

“처음 듣는데요.”

“얌전히 굴면 다칠 일은 없을 거다.”

말로만 봐선 나를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지면 아래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발목을 잡았던 녀석이 흙더미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하게도 이놈은 로브로 몸을 감싸지 않았다.

박박 민 머리카락에 바위 같은 몸뚱이. 방금 부풀어 오른 하리바에 뒤지지 않는 체형의 소유자다.

‘인상 한번, 더럽네.’

암살자보단 용병, 혹은 산적이 어울릴 것 같은 낯짝.

그 더러운 인상이 나를 향했다.

“너, 설마 이 애송이를 데려가려는 것이냐?”

“그러려고.”

“반대한다. 고작 하나의 가호밖에 받지 못한 놈이야. 재료로도 못 써먹을 것이다.”

“그걸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가?

어쩐지 서로 오가는 말투에 날이 서 있다.

나는 일단 더 잠자코 있어 보기로 했다.

“그래도 철혈공의 핏줄이다. 단 한 개의 가호도 받지 못했다면 나도 이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럼 어쩌자는 거지? 네가 공들이던 하리바는 죽었다. 고깃덩이가 된 저놈 시체라도 갖고 돌아갈까?”

이들의 대화의 맥락이 완전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아무튼 나를 완전히 잡아 놓은 물고기 취급하고 있는 건 알겠다.

“네 생각은 어떻지?”

대머리가 내 뒤에 있는 녀석한테 물었다.

딱히 상급자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고, 둘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나머지 녀석의 선택에 맡기려는 뜻 같다.

“데려가는 게 좋아 보이는데.”

목소리로 봐선 여자다.

“이유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복귀할 수는 없고, 게다가 저 애송이의 가호는 나쁘지 않아 보여. 너희도 봤을 텐데. ‘시약’을 먹은 하리바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

“그러고도 여유가 남아서 같잖은 연기까지 벌였지. 우리가 숨어 있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는 뜻이야. 배드니커 가문의 쓰레기가 하루 만에 저 정도로 발전했다. 저놈이 가진 가호는 최상급일 거야.”

또 멋대로 오해하고 있긴 하지만.

영산에 관한 일을 모르는 녀석이 보면 저 해석이 현실적이다.

실제로 가호 하나로 인생이 바뀐 놈들은 제법 있다.

“…음.”

대머리 거한은 잠깐 멈칫했으나, 곧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철혈공의 직계를 데려가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리바 같은 분가 놈을 데려가는 것과는 전혀 달라.”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철혈공은 한번 눈 밖에 난 인물이라면, 그게 피를 이은 혈족이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고개를 들고 괴인을 보았다.

여전히 들은 적 없는 목소리였지만…….

나는 어쩐지 지금까지 들은 말 중 가장 큰 위화감을 느끼고 말았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쐐기를 박은 건 대머리 놈의 태도였다.

나는 잠깐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했다.

이놈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에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최소한의 것들은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처음 등장했던 괴인은 나를 알고 있고.

대머리 거한은 성질이 급한 편.

마지막으로 여자는 이 중에서 가장 냉정하다.

나는 판단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셋 중 딱 한 명만.”

“뭐?”

“지금이라도 사슬을 풀어 주면 셋 중 하나는 살려 드릴게.”

“…….”

말하는 개새끼를 목격한 표정이 이럴까.

물론 다른 두 녀석의 표정은 안 보이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머리의 얼굴을 보고 든 생각이다.

“뭐라고 했냐?”

“귀먹었어? 사슬 풀고,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면 하나는 살려 주겠다니까.”

대머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즐거워서 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신이 나갔군.”

“아닌데.”

“그럼 생포한다는 말에 안심이라도 한 거냐? 우리가 널 포로로서 대우해 줄 것 같나. 너는 모르겠지만 세상엔 죽는 것보다 비참한 신세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작업의 전문가지.”

대머리가 입가를 비틀었다.

“기술에 따라선 눈알과 혀가 뽑히고, 사지가 잘린 상태로 한 달간 연명시킬 수 있다. 그걸 살아 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

“알겠냐, 애송아. 농담할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쯤은 구분해라. 그렇지 않으면-.”

“말 더럽게 많네. 일단 넌 뺀다, 대머리.”

직후 대머리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이 아닌 가슴을 향해서, 쇠사슬로 감싸져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무카드!”

괴인이 제지하듯 외쳤다.

정황상 이 대머리의 이름이다.

본명일까, 아니면 가명?

어느 쪽이건 이건 단서가 될 거다.

콰자작!

괴인의 목소리에도 대머리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공격을 받은 채로 저 멀리 날아갔다.

‘무식한 새끼.’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사슬을 갑옷처럼 둘렀는데도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뼈에 금이 가면 느낄 수 있는 익숙한 고통이다.

하지만 원하던 건 이뤘다.

나는 멈출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가던 도중 지면을 박차며 힘을 더 실었다.

“어…….”

사슬을 꺼낸 놈이 뒤늦게 멍청한 소리를 낸 순간… 나는 몸뚱이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촤르륵!

‘으어어.’

빙글빙글, 사방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어지러워졌으나 도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뒤로 날아가며 몇십 바퀴나 회전하니, 사슬은 낚싯줄처럼 내 몸에 칭칭 감기는 형태가 됐다.

“큭……! 설마!”

뒤늦게 내 의도를 깨달은 것 같지만 이미 늦었다.

텅!

무언가 끊기는 소리.

괴인이 한 발자국 늦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사슬은 끝은 그놈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당연하지만 사슬의 길이는 무한하지 않고, 끝이 있었다.

아무리 유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그러니 나는 사슬을 풀기보다, 반대로 내 몸뚱이 전부를 감아 버림으로써 생포 상태에서 벗어났다.

‘근데 이거 너무 꼬였는데?’

엉킨 실타래 정도가 아니다.

아무리 봐도 단시간에 풀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사슬을 절그럭거리며 숲속을 달렸다.

양팔이 봉해진 상태로 뛰다 보니, 금방 후방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귀여운 짓거리를 하는구나, 애송아.”

대머리 거한이다.

이 새끼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개는 낯짝으로 나를 맹추적하고 있었다.

내 생포에 반대했던 놈이니,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엿같이 생겼네.”

“뭐?”

“후드를 뒤집어써야 할 건 네 친구들이 아니라 너 아니야? 이 배려심 없는 놈.”

“하하하……!”

욕을 먹어도 웃음을 터뜨린다.

다만 이번에도 즐거워서 웃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화가 날수록 웃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다.

스릉-.

허리춤에서 기괴하게 휘어진 곡도曲刀가 드러났다.

‘주먹 잘 휘두르게 생겨서 무기까지 갖췄구만.’

워낙 덩치가 큰 놈이라, 곡도가 꼭 장난감 칼처럼 보였다.

탓!

거한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곡도를 휘둘렀다.

빠르다.

하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쐐액!

첫 공격을 피했으나, 거한의 맹공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 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연격을 퍼부었다.

기괴하게 생긴 곡도엔 힘, 속도, 살기가 완벽한 밸런스로 갖춰져 있었다.

‘좀 치는데?’

하리바보다 못한 놈이 아닌데, 나는 그때보다 안 좋은 꼴로 싸워야 한다.

반격을 날리기도 애매하다.

양손이 봉해진 상태라 발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라면 발차기를 할 수가 없었다.

공격 직후 치명적인 빈틈이 생길 테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거한의 동료가 딱히 같이 추격해 오지는 않는다는 것.

서로를 믿기 때문, 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동료보다는 동업자에 가까운 건조한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좋지 않은데.’

시간을 끄는 게 마냥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언제 이놈의 검에 베여도 이상하지 않다.

짧은 고민.

나는 판단을 마친 다음 거한에게 다가갔다.

기다렸다는 듯 곡도가 날아왔고, 나는 오히려 몸을 더 들이밀었다.

채앵!

이판사판 사슬이 묶인 곳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이 새끼가……!”

거한은 당황한 듯했으나, 금방 침착함을 되찾을 것으로 보였다.

‘전투 경험은 풍부하고.’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좀 더 여러 방식으로 싸웠을 테지만…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다.

나는 머리로 열기를 모았다.

손과 발을 쓰지 않아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내 머리에 열기가 몰렸지만, 딱히 백일식에 이런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다.

이 공격은 단순한 박치기다.

빠악!

“억…….”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잠깐 대머리랑 박치기를 하는 건 내 쪽이 손해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정수리가 일방적으로 이놈의 안면에 들이박은 상황이니 타격은 이 녀석이 더 클 거다.

슬쩍 보니 눈이 뒤집힌 대머리가 보였다.

그 와중에도 검은 여전히 꽉 쥐고 있었다. 나는 몸을 회전시킨 다음, 쇠사슬의 끝자락으로 대머리의 손을 가격했다.

“억……!”

손가락뼈를 쇠사슬에 얻어맞으면 꽤 아플 거다.

아무리 세게 잡고 있던 검이라도 놓칠 수밖에 없을 만큼은.

나는 대머리가 검을 놓친 틈을 놓치지 않고, 떨어지는 칼자루를 입에 물었다.

스스로 성공하고도 감탄할 만큼의 기예.

그리고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대머리의 목을 베었다.

으드득…….

잇몸에서 핏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치악력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이빨이 다 나갔을 수도 있겠다.

나는 직후 힘이 풀려 쓰러졌다.

짤그랑!

입에선 검이 떨어졌고, 그 대신 썩은 낙엽과 흙 맛이 느껴졌다.

뱉을 새도 없이 대머리부터 확인했다.

죽은 것 같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저놈의 급소를 정확히 베었다.

“윽…….”

아직 턱이 아릿하지만, 여유 부릴 틈은 없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보면 알겠지만, 양팔의 도움 없이 다리만을 써서 몸을 일으키는 건 의외로 어렵다.

“움직이지 마라.”

그때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 위에 웅크리고 있는 괴인이 보였다.

희한한 놈이다.

이렇게 밑에서 쳐다보는데도 후드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단 건 저 옷도 유물일 확률이 있다.

“일을 귀찮게 만드는군.”

싸늘한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이놈들과 동료인 여자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대머리한테만 맡길 리가 없지.’

이놈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아무튼 나는 여기까지다.

아무리 그래도 이 상태로, 이 컨디션으로 정체불명의 적 두 명을 더 쓰러뜨리는 건 무리다.

“…한 놈 쓰러뜨렸습니다.”

“뭐 어쩌라고.”

“너희한테 하는 말이 아냐.”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제 슬슬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가주님.”

“……!”

두 명이 얼어붙었다.

그들의 시선이 삐걱대며 한곳을 향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 시야엔 애초부터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말이다.

“한 명은 살려 준다고 했나.”

철혈공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네가 정해라, 루안. 누굴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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