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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48화 (48/172)

48화

대체 무슨 질문이 날아올까.

나는 긴장한 채로 기다렸지만, 철혈공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모닥불로 시선을 옮기더니 가만히 응시할 뿐.

“…….”

가만히 있을까.

아니면 다른 말이라도 할까.

잠깐 망설이던 찰나, 루드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쇠사슬을 주섬주섬 회수하더니 내게 내밀었다.

“이거 가질래?”

“예?”

“뭘 그리 놀래. 오랜만에 본 동생한테 형이 선물할 수도 있지.”

형의 선물이라?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얼떨떨한 기분이 됐다.

“신의 유물을 저한테 준다고요?”

“응.”

“…….”

“요것 봐라. 좋아서 난리를 쳐도 안 이상한데, 오히려 표정이 썩네.”

“이유 모를 호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배워서요.”

“귀여운 맛이 없군.”

루드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신의 유물이 뭔 줄은 아냐?”

“세상에 99개밖에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요.”

정확히 말하면 72신과 13악신, 아홉 정령신과 다섯 왕의 유물을 의미한다.

큰 맥락에서 보면, 내가 제단에서 손에 넣은 칠죄검 또한 신의 유물인 것.

“그래. 금화가 가득 채워진 마차 수십 대가 있어도 살까 말까 한 보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하는 본새 좀 보게.”

루드빅이 유쾌한 웃음을 흘리더니 철혈공을 보았다.

어쩐지 허락을 구하는 듯한 동작이다.

철혈공이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다시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유물은 아냐. 레플리카지.”

“모조품이요?”

“그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성능이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야. 만드는 데에 천문학적인 지출이 발생한다니까.”

“교단에서 만든 겁니까?”

“아니.”

루드빅은 쇠사슬을 발부리로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 쇠사슬, 이번 임무 때문에 교단에서 잠시 대여한 건데 이대로 가져가면 십중팔구 회수당하겠지. 레플리카를 그렇게 뺏기는 건 배가 아파서 그냥 이참에 잃어버렸다 보고하고 가문에 넘기려고 했어.”

“다시 교단에 돌아간다고요?”

“그래.”

“위험하지 않습니까? 임무에 실패한 것 같은데.”

루드빅이 픽 웃었다.

“너, 교단의 임무가 뭔 줄은 알고 있냐?”

“[가호]를 받은 자를 확보하는 것 아닙니까.”

“눈치는 빠르군.”

씩 웃은 루드빅이 말했다.

“그 임무는 실패하지 않았어.”

“예?”

“이미 확보한 녀석이 있다. 가호식에 참가했던 녀석이지.”

“…….”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멀쩡한 영도를 납치하지는 않을 테고, 뭔가 구린 놈인가요?”

“…맞아.”

이번엔 정말로 놀랐는지, 루드빅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가문에 숨어든 쥐새끼 중 한 명이지.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지만 배드니커의 적이랄까.”

“본가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이쪽이 의심을 사지 않겠습니까?”

“배드니커의 일 처리가 그렇게 어설플 것 같아? 그놈이 귀향할 때를 노릴 거다. 증거 한 톨 남지 않을 거고.”

나는 이 유쾌해 보이는 청년도 배드니커란 사실을 이해했다.

암흑교단에 넘긴다는 것은 사실상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그보다 끔찍하면 끔찍하겠지.

그런데도 이 남자의 표정엔 망설임,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이것을 당연한 보복이라고 여기는 눈치.

가문에 해를 끼치려는 적이라면, 어떤 대우를 받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 놀라운 점은, 나의 성향 또한 이들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교단에 복귀하게 되면 오히려 공을 치하받을 거야. 같이 나섰던 두 놈은 죽었고, 나는 어쨌든 임무를 달성했으니까. 사슬을 잃은 점은 문책받겠지만 실질적인 처벌은 없겠지.”

“회수는 하려고 들겠죠.”

나는 사슬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거절하겠습니다.”

추후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예정이다.

괜히 유물씩이나 되는 물건을 갖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건 사양이다.

“재밌는 놈.”

루드빅이 낄낄 웃더니 말했다.

“가주님, 이놈은 나중에 제 밑으로 와도 되겠는데요?”

그러고 보니 루드빅은 다른 자식들과 달리 철혈공을 비교적 편하게 대했다.

어쩐지 철혈공의 내부 평가도, 헥토르 같은 놈보다 루드빅이 더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중에 있던 철혈공의 최측근을 목격한 기분이랄까.

“나중에 [울크아]에 오게 되면 [빅스의 공방]을 찾아와라.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이지.”

“제가 거기 갈 일이 있을까 싶은데요…….”

그래도 일단 머리 한구석에 [빅스의 공방]이라는 이름을 저장해 뒀다.

그때 철혈공이 말했다.

“오늘은 방에 돌아가서 푹 쉬어라.”

“예?”

“가급적 누군가와 마주치는 건 피하고, 곧장 방으로 돌아가도록.”

어쩐지 철혈공이 처음으로 강압적인 명령을 한 것 같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술에 대한 건 더 안 물어보십니까?”

“그래.”

“어째서죠.”

“무술의 연원엔 관심이 없다.”

철혈공은 여전히 모닥불을 응시하며 말했다.

“중요한 건 그런 뛰어난 무술을 익힌 네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느냐지.”

“…….”

“기대하마.”

이건 칭찬일까.

나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

루드빅이 경박한 태도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철혈공과 일별하면서도 여전히 등 뒤에 주의를 집중했으나, 철혈공은 이미 내게 흥미가 떠난 사람처럼 가만히 침묵했다.

결국 철혈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숲을 벗어나고, 다시 담장을 넘고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 * *

루드빅은 루안이 떠난 곳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

“하르바 가르쉬아는 무수히 많은 끄나풀 중 하나일 뿐이겠죠. 그놈에겐 송곳니기사단에 사람을 심을 힘도, 머리도 없으니까요.”

“음.”

“원로회의 움직임이 조금 수상쩍습니다만…….”

철혈공이 가만히 침묵하니 루드빅이 말을 이었다.

“일단 하리바의 친부인 레이건 가르쉬아에 대한 조사도 끝냈습니다. 암흑교단과 접선한 적은 있는데, 잔챙이랑 몇 번 거래한 게 전부입니다. 일단은 좀 더 거물과 끈을 만들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아니. 곧바로 처리해라.”

철혈공이 덤덤히 명령했고, 루드빅은 더 따져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밖에 보고할 건.”

“딱히 없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잠깐 둘 사이의 대화가 중단됐고,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다시 먼저 입을 연 건 루드빅이었다.

“재밌는 놈이군요.”

“그래.”

루드빅이 고개를 들어 철혈공을 보았다.

말을 걸긴 했지만, 혼잣말로 치부하고 내뱉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철혈공이 동조할 줄은.

“아버지도 저놈한테 흥미가 생기셨습니까?”

“내게 거래를 제안하더군.”

“예?”

“스스로를 미끼로 내던져서 교단을 끌어낼 계획을 짰다.”

“…….”

루드빅이 입을 닫았다.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쭉 루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는 했다.

함께 있었던 두 녀석은 일단 같은 [암흑교단]의 소속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른 종파다.

암흑교단은 여섯 앙신을 숭배하고, 그들의 계파는 총 여섯이다.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수십은 될 테고.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루드빅은 함부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중간에 루안을 습격하며, 합동한 것은 원래 작전이 아니다.

저놈들이 뒤늦게 개입한 거지.

“아버지의 작전이 아니라 그놈의 작전이었단 거군요. 푸핫. 이걸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제 몸 하나는 지킬 자신이 있었던 거겠지.”

“그래서 더 따져 묻지 않으신 겁니까?”

루드빅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자명하다.

“어떻게 강해졌는가.”

철혈공이 손을 뻗었다.

모닥불 속의 장작이 제멋대로 들썩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시시한 의문이지. 그리고 힘은 더없이 순수해. 어떤 목적을 지녔건 투명하게 드러나게 해줄 것이다.”

철혈공이 낮게 중얼거렸다.

“루안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그게 전부입니까? 아버지가 루안한테 가지고 계신 감상 말입니다.”

“그 이외에 뭐가 있단 말이냐.”

“그래도 막내지 않습니까. 아직 얼굴에 젖살도 덜 빠졌던데, ‘아빠’라고 부르는 게 듣고 싶으시진… 죄송합니다.”

루드빅이 빠르게 머리를 숙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루드빅을 보던 철혈공이 다시 말했다.

“너는 언제쯤 돌아갈 것이냐.”

“금방 가봐야지요.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놈들이니.”

“다음 보고를 기다리마.”

“예. 몸조리 잘하십시오, 가주님.”

루드빅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다.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루드빅의 가장 큰 재능은 생존과 적응이다.

철혈공은 저놈을 전쟁통 한가운데 던져 놔도 몇 달은 멀쩡하게 살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홀로 남은 철혈공은 가만히 모닥불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빠?”

혀 위에 모래 알갱이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느낌.

철혈공은 곧 루드빅의 헛소리를 머리에서 지웠다.

* * *

나는 침상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뜬 직후 다소 당황하고 말았는데, 몸과 정신이 엄청나게 개운했기 때문.

“뭐야?”

이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던 때가 최근 있었나?

마치 사흘 밤낮은 잠만 잔 것 같다.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몸을 푼다.

창문을 열고, 따뜻한 햇볕도 좀 즐기고, 바깥 풍경도 구경했다.

어쩐지 오늘의 저택은 고요한 느낌이다.

꾸르륵…….

그렇게 한동안 몸을 풀고 있자니, 어마어마한 허기가 느껴졌다.

지금 식당에 가면 밥 줄라나. 그보다 지금은 몇 시지? 이 방엔 쓸데없는 가구는 넘쳐나면서 정작 시계는 없었다.

똑똑.

이때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타이밍 좋게 아르잔이 나타났다.

아르잔은 나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깨어나신 걸 모르고-.”

“됐어. 근데 뭘 그리 놀래?”

“그게-.”

아르잔이 어울리지 않게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어쩐지 위화감을 느끼며 물었다.

“혹시 내가 좀 오래 잤나?”

“예.”

“얼마나?”

“오늘은 가호식으로부터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즉 도련님께선 사흘 밤낮을 쭉 주무셨습니다.”

진짜 사흘 밤낮을 잤네.

하긴. 백화 이후로 며칠 뻗어 있었다고 해도, 아르잔에게 업힌 상태로 잔 게 제대로 된 휴식일 리는 없다.

이제야 육체 피로도가 깔끔히 사라진 거겠지.

“어쩐지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어 있더라니. 밥 줘. 배고파.”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이때 다시 한번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케이안이었는데, 그 또한 깨어난 나를 보고 다소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죄송합니다. 깨어나신 걸 모르고-.”

“이미 들은 대사니까 생략해 주라.”

케이안이 입을 닫았다.

어쩐지 평소보다 표정이 더 굳어 있는 것 같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그저 대단히 미묘한 시기에 깨어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말이야?”

“원로회가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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