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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60화 (60/172)

60화

한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분위기 파악이 빠르다.

공식적인 자리에 잘 얼굴을 비추지 않는 배드니커의 혈통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 중 하나인 헥토르.

그와 친분을 틀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상대의 안색, 미세한 표정 변화, 어투, 손짓을 머릿속에서 합산하여,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그 본능이 지금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엿 됐다.’

지금, 한스는 완전히 지뢰를 밟았다.

“한스 밴더.”

“…예.”

“주제를 알아라.”

“죄, 죄송합니다.”

헥토르는 짧게 말한 다음 좌중을 훑어보았고.

그러다 루안과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

“…….”

잠깐의 정적.

그리고 헥토르는 딱히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한 채 식수대로 향했다.

“와, 와아…….”

“어우. 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제야 에반과 카리스를 비롯한 영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도 귀족들의 살벌한 신경전, 얘기로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겪어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지방 귀족, 혹은 몰락 귀족인 그들로선 이런 분위기가 낯설었다.

“와… 루안, 너 소문과 달리 헥토르 님이랑 친한가 보다.”

그때 팜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

“응. 듣기로 루안 배드니커는 가문에서 완전 찬밥 신세고, 형제자매 중에서 친한 사람 한 명 없는 데다, 헥토르 배드니커와는 특히 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거든.”

팜은 주근깨가 난 주황 머리의 소녀였는데, 제도에 선망을 품고 있어서 그쪽 소문엔 빠삭했다.

활달하고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지만, 눈치가 좀 없는 게 흠이다.

“야, 넌 말을 뭐 그렇게 하냐?”

“내가 뭘?”

“말투에 배려라는 걸 좀 탑재하란 뜻이야, 이 주근깨쟁이야.”

“이 멀대 놈이, 너 다 말 다했어?”

“됐어, 됐어.”

루안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배드니커의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돼. 애초에 교단만큼이나 폐쇄적인 집안이니까. 그래서 바깥에서 나도는 풍문엔 추측이나 과장 섞인 게 많아.”

“그럼 진실은?”

“진실이라…….”

잠깐 고민하던 루안이 말했다.

“헥토르 형님은 평소 날 많이 귀여워하셔.”

쿨럭.

사레들린 소리가 났다.

일동의 시선이 잠깐 식수대로 쏠렸는데, 입가를 닦고 있는 헥토르가 보였다.

헥토르는 불편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더니,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우와아…….”

“진짠가 봐!”

“부럽다!”

루안은 갑자기 환호하는 주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이런 반응이야?”

“하지만… 그 헥토르 님이랑 친분이 두텁다는 거잖아!”

“철혈공의 세 번째 송곳니!”

“그건 또 뭐야.”

“히이로 배드니커와 네로 배드니커가 각각 철혈공의 첫 번째, 두 번째 송곳니로 불리는 거 몰라?”

물론 모른다.

예전에 언급했듯, 이때의 루안은 가문에 관한 소문은 일부러 귀를 닫고 듣지 않았기 때문.

루안의 태도에 영도들이 답답해했다.

“그 두 사람은 영블러드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인이잖아!”

“영블러드는 또 뭐야?”

“25살 이하의 영웅들! 딱히 정식으로 분류가 된 건 아니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데……. 너, 진짜 배드니커 맞니?”

“나도 가끔 그게 의심스러워.”

루안이 괜히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꾸했다.

확실히 흑발이 대부분인 집안이라 저 백금발은 유난히 튀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 두 사람이 현재 보이는 퍼포먼스가 대단한 만큼, 곧 영웅이 될 헥토르 배드니커에게도 기대가 커. 간혹 무투대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활약이 대단했고.”

“와- 대단한 사람이었네.”

“네 형님이거든?!”

팜이 황홀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수련회에 참가하길 잘했어! 교관이 생존율을 들먹일 때는 좀 무서웠지만, 역시 어머니 말대로 배드니커의 수련회엔 그럴 가치가 있었다니까.”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데?”

“수련회는 인맥을 넓힐 절호의 기회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 나름대로 정리도 했지. 일단 BIG3라고 불리는 인물들과는 무조건적으로 친해져야 해.”

카리스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BIG3는 또 뭐야.”

“이번 수련회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

“그걸 누가 정했는데.”

“물론 나지.”

“…아주 공신력 있는 기관이로군.”

“흐흐흐.”

팜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BIG3엔 당연히 헥토르 님이 포함되어 있어!”

“나머지 둘은 누군데?”

“당연히 한 명은 굿스프링의-.”

그때였다.

벌컥, 정문이 열리더니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안 배드니커!”

헉, 또 다른 거물의 출현에 영도들이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건 세렌 굿스프링이었다.

“너, 잠깐 나 좀-.”

[영도에게 전파한다.]

…그러나 세렌의 목소리는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갑작스레 통신 수정에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

[곧 취침 시간이니 신속히 방으로 복귀하도록. 22시 이후로도 얼쩡거리는 놈이 보이면 감점 처리하겠다.]

앗.

루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었지? 내일 얘기하자.”

“뭐? 야!”

세렌이 다급히 불렀지만, 루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카리스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안 저 녀석, 의외로 거물인 거 아니야?”

“애초에 배드니커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긴 하네.”

에반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묘한 눈으로 계단을 보았다.

* * *

이튿날.

해가 뜨기도 전에 공터에 집합한 영도들은 졸음을 꾹 누른 얼굴로 단상 위를 보고 있었다.

“본 수련회에서 네놈들이 집중적으로 배울 과목은 기본적으로 네 개다. 사냥과 생존, 이론, 마지막으로 기타 항목이지.”

단상 위에 선 건 수렵선생이었다.

여전히 서슬 퍼런 눈으로 영도 전원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졸던 놈들은 벌써 감점당했다.

“각 과목의 최대 점수는 10점이고, 수료 조건은 총합 20점을 획득하는 것이다. 각 과목에서 반타작씩만 해도 수료할 수 있다는 뜻이지. 거저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 말에 웃거나 동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영도 중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세렌 굿스프링이다.

이 지저분한 곳에서도 여전히 눈부신 미모다.

“뭐지, 세렌 굿스프링.”

“각 과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흠… 좋다.”

수렵선생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우선 이 자리에 있는 영도들 전원이 가호를 받았고, 그 말은 항마降魔의 적성 또한 자연스레 소유하게 됐다는 걸 의미하지. 즉 그 역겨운 교단 놈들과 맞서 싸울 최소한의 채비는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수렵선생이 반복해서 말했다.

“최소한의 채비를, 말이지.”

“…….”

“지금의 네놈들이 가호를 받고, 자신감이 충천한 상태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그놈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장담하마. 네놈들 전원 하루도 못 버티고 죽거나 사로잡힐 것이다.”

에반은 단언하는 듯한 그 말에 반발심이 차올랐다.

그는 이번 가호식에서 무려 3개의 가호를 받았고, 무엇 하나 쓸모없는 가호는 없었다.

게다가 헬빈가에선 코흘리개 시절부터 쭉, 기간으로 치면 10년이 넘게 수련에 매진했다.

사실 지금 당장 임무를 받더라도, 그게 간부급이 아닌 일개 교인이라면 홀로 토벌할 자신도 있었다.

“교인, 그리고 악마를 꾀어내는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너희 같은 애송이에겐 가장 부족한 소양이지. 그러니 첫째로, 너희는 사냥에 대해 배워야 한다.”

수렵선생이 첫 번째로 손가락을 펴고, 하나를 더 폈다.

“또한 임무 도중엔 고립되는 일이 잦을 것이다. 교단의 저주는 가호와 상반되는 힘이고, 쓰기에 따라선 가호를 무효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니까. 단지 버티면서 지원을 기대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으니, 생존에 대한 훈련도 빠뜨릴 수 없지.”

“…….”

“마지막으로 악마에 대해 모른다면 그놈들을 사냥하기는커녕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역겨운 놈들이지만, 그 때문에 너희는 더욱 그놈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론도 추가한다.”

그때 어떤 녀석이 손을 들었다.

“그럼 기타는 뭡니까?”

“카리스 어스맨. 1점 감점.”

세렌 때와는 다른 대꾸에 카리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예? 어, 어째서…….”

“이제 설명하려고 했는데 네놈이 흐름을 끊었으니까.”

에반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 꼴을 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는데.’

에반은 어제오늘 동안 깨달은 진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타 과목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이다. 네놈들이 이 수련회를 대하는 태도, 임하는 자세, 평상시의 행동 따위를 토대로 교관진이 매기는 점수지. 정확한 채점 기준은 없다. 교관마다 중점적으로 보는 게 다르니까.”

“…….”

“그러니 요 일주일 동안, 우리는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네놈들을 시험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우선은 체력 테스트다.”

우드득, 수렵선생이 다소 거친 동작으로 몸을 풀며 말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끝까지 나를 따라오면 돼. 가장 빠른 다섯 명은 가산점, 반대로 가장 느린 다섯 놈은 감점이다. 그럼 시작.”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수렵선생이 그대로 질주하더니, 곧 저 멀리까지 나아갔다.

“…….”

“…….”

“…아!”

“이런 젠장!”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린 영도들이 그 뒤를 맹렬히 추적을 시작했다.

* * *

수렵선생은 각자의 무학을 존중한다.

언뜻 기괴하고 희한해 보이는 무학이라고 해도, 타인이 참견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무한이 있는 법.

하지만 누군가가 무인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 답은 전원이 일치할 거라 생각한다.

체력이다.

어쨌든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

“──.”

수렵선생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힐끗 뒤를 보았다.

질주를 시작한 약 한 시간.

이쯤 되면 슬슬 결과가 보인다.

별로 어렵지 않게 쫓아오는 놈, 악으로 깡으로 완주하는 데 성공하는 놈, 결국 도중에 낙오하고 마는 놈…….

일단 전체적으로 제법 잘 따라오고 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뒤쫓아오는 놈들 대부분이 어렸을 적부터 가문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한 취급을 받던 놈들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다는 말이 아니다.

저놈들 모두가 차기 영웅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존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는 뜻인데.

당연히 그런 기대를 받는 만큼, 코흘리개 때부터 온갖 귀한 걸 처먹었을 것이다.

잘나가는 선생을 붙이고, 분 단위로 나뉜 체계적인 훈련을 시켰으며, 천금보다 귀한 영약을 먹이고, 무술을 정성껏 가르쳤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개인의 재능이란 천차만별인 법.

수렵선생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몇 놈을 보며 외쳤다.

“힘든가? 죽을 것 같나! 그럼 그냥 주저앉아서 쉬어라! 그런데 네놈들, 이곳이 어딘지 잊은 건 아니겠지-!”

“……!”

나비의 숲엔 마물이 득실거린다.

물론 지금 그들이 달리는 장소는 수련장 캠프라서, 웬만해서는 마물과 맞닥뜨릴 일이 없다.

저 영도 놈들은 그 사실을 죽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뒤처져 있던 놈 몇몇이 이를 악물고 뛰는 게 보였다.

반대로, 수렵선생이 뭐라고 지껄이건 못 뛰겠다며 털썩 주저앉은 놈들도 보였다.

수렵선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귀족 놈들을 훈련시키는 게 싫은 거다.

재능은 둘째 치고, 저놈들에겐 강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결여되어 있다.

바로 근성이다.

수렵선생은 재능만 믿고 꺼드럭대는 놈을 싫어하고, 근성 없는 놈은 더 싫어한다.

그런데 이 귀족 놈들은 그 둘 중 하나이거나, 혹은 둘 다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의외인 건.

가장 그래야 할 것 같은 놈이, 가장 의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렵선생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달리고 있는 금발의 소년을 보았다.

루안 배드니커.

저놈은 수렵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다.

재능도 없고, 근성도 없고, 그런데 꺼드럭대기까지 하는 놈.

아무튼 수렵선생이 몇 번 보고,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세상의 모든 한심함을 응축하기라도 한 듯한 녀석이었는데…….

그랬던 놈이 지금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어찌어찌 쫓아오고 있었다.

‘체력은 진작 한계일 텐데.’

저쯤 되면 차가운 공기를 마셔도 폐가 타오르는 것 같고, 목구멍은 그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산소가 부족해서 현기증도 날 거고.

‘근성은 좋다만, 얼마 안 가 쓰러지겠는데.’

걱정할 일은 아니다.

깨달은 영도는 몇 없는 것 같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사들이 뒤쫓고 있는 상태다.

낙오한 영도들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수렵선생은 루안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다시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이번엔 속도를 좀 더 올려서.

“으어…….”

“…아, 안 돼…….”

멀어지는 수렵선생을 보며 영도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간신히 따라가는 것에 벅차하던 놈들이다.

수렵선생은 그 상태로 30분을 쭉 달린 다음, 다시 뒤를 보았다.

숫자가 반 정도 줄어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건, 수련회 전에도 눈여겨봐 뒀던 놈들이 대다수.

‘응?’

그중에서 루안이 있는 건 의외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제법, 근성이 있군.’

아무래도 평가를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수렵선생은 입가가 씰룩이려는 걸 억누르며 다시 달렸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이제 따라오고 있는 영도는 열 명도 되지 않았고.

‘…….’

여전히, 루안 배드니커가 포함되어 있었다.

‘…저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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