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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64화 (64/172)

64화

수렵선생은 할 말을 찾는 것처럼 입을 반쯤 벌렸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나는 나대로 생각해 봤다.

일단 현재 전투의 형세와는 무관하게, 이 이상 싸워 봤자 얻을 게 적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대련을 이어 갈 이유가 없다.

“졌습니다.”

“…….”

승패는 아쉽지 않지만, 이런 형태의 대련이 됐다는 건 아쉽다.

대련, 즉 모의전이라는 틀 안에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게 더욱 어려우니.

생명을 도외시한 과감한 공격을 못 펼쳐서 그렇다.

애초에 그런 제약이 풀리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대련이라고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

수렵선생은 무뚝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인상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양반이라 어째 쎄하다.

설마 패배를 시인한 걸로 시비를 걸지는 않겠지?

“…대련 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패배했으니 2점 감점이다.”

“예.”

나는 순순히 감점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2점을 잃은 건 나로서도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판단해서다.

방금 수렵선생과 펼쳤던 대련은, 까놓고 말하면 회귀하고 난 이후의 싸움 중 가장 수준이 높았다.

일주일 내내 나와 치고받은 케이안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백일식의 후반 초식에 대한 영감도 얻었으니, 오늘부턴 운공을 하는 틈틈이 새 초식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하게 될 거다.

“하지만…….”

“……?”

그때 수렵선생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네가 선보인 무술의 완성도와 임기응변, 끈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반격을 날린 점……. 또한 내가 했던 말을 스스로 무르게 됐으니, 별개로 3점을 주겠다.”

그러니까…….

2점 감점은 유지하고, 거기에 추가로 3점을 받았으니.

내 포인트는 최종적으로 1점이 추가된 건가?

“감사합니다.”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수렵선생은 이미 몸을 돌린 채였다.

그때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영도들 사이에서,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 이름이 분명…….

‘카론 우드잭?’

제국 최강의 레인저라고 불리는 하이드의 독남이다.

딱히 말을 섞은 적은 없지만, 어떤 의미로는 헥토르나 세렌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라 알고는 있다.

‘뭘 봐.’

내가 입모양으로만 말하니, 카론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저 새끼 뭐야?

* * *

“너 오늘 대단하더라.”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에반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대꾸했다.

“뭐가?”

“교관님이랑 싸웠잖아.”

“졌는걸, 뭐.”

그러자 에반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는 게 당연하지. 수렵선생이라면 ‘무패의 대전사’라고 불리는 강자라고. 동부 초원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던데?”

“그렇구만.”

졸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오늘 대련을 복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방해받은 기분이라서 귀찮은 기색을 담아서 대꾸했는데, 그걸 깨달았는지 에반도 입을 닫았다.

‘음.’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건 딱 질색이지만.

당장은 이 녀석과 친해져야 한다는 과제를 떠올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뜨며 물었다.

“넌 오늘 이긴 것 같더라.”

“어, 봤어?”

“아니. 근데 졌으면 우울한 얼굴하고 있었을 거잖냐.”

“그건 맞지.”

씩 웃던 에반이 말을 이었다.

“오늘 상대는 루비에타 가문의 막내딸이었어.”

“오호.”

미래의 거물 중 하나시다.

루비에타라면 [위대한 가문] 중에서도 상당한 권세를 가진 곳이고, 그곳의 막내딸인 샤를 루비에타는 나도 알 정도의 유명인.

마찬가지로 에반도 알 만한 사람은 알 정도의 유명세는 갖췄으니, 아마 이 둘의 대결은 영도들의 주목을 받았을 거다.

“강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반쯤은 운으로 이긴 거야. 그 사람은 원래 둔기 같은 무기를 쓴다고 들었는데, 교관들이 그런 무기까지 준비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

확실히 나무로 창이나 칼을 만드는 건 쉬워도 둔기를 만드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철퇴 같은 건 불가능할 테고, 끽해 봤자 방망이 따위가 한계이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이겼지. 아버지의 무술이 강하단 걸 증명한 거야.”

“무술을 아버지한테 배웠어?”

“맞아. 그분이 내 유일무이한 스승님이지.”

에반이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세간에서 아버지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었어. 솔직히 말하면 무인으로서의 명성은 떨치지 못하셨거든.”

에반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 자랑이야. 나는 그분이 가르쳐 주신 [레이븐]으로…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어.”

차분한 목소리에 미미한 열기가 묻어나온다.

나는 사람이 어떤 경우에 저런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다.

스승 된 존재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을 갖고, 그런 사람의 제자라는 스스로에게도 자부심을 지녀야만 낼 수 있는 목소리.

“…….”

나는 여전히 에반에 대해서 모른다.

회귀 전에 들었던 건 단순한 소문이었고, 헬빈가에 대해서도 몇 가지 주워들은 게 전부다.

당연히 현 가주인, 에반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그러나 지금 에반의 목소리를 들으니 하나는 알겠다.

에반의 아버지는 아마 좋은 스승일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성공이 뭔데?”

“어?”

뜬금없는 내 물음에 에반이 당황하더니 떠듬떠듬 말했다.

“[헤로스]에 입단해서 영웅이 되고… 많은 사람을 돕고… 그리고 나중에는 교단과 마왕을 몰아내서, 대륙에 평화를 불러오는 거?”

놀랍게도 에반의 최종적인 목표는 나와 흡사했다.

그 말은, 에반이 저 목적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내 우군이 된다는 뜻이다.

“당장의 목표는 이 수련회에서 몸 성히 수료하는 거지만.”

“그렇구만. 힘내라.”

“그래. 고맙다.”

에반이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했으나, 나는 이번엔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다행히 에반도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라서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방엔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리게 됐고. 고요한 적막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

…….

…….

[기상──! 영도 전원, 기상한다──!]

…려다 10분 만에 눈을 떴다.

[긴급 사태다! 마물들이 캠프에 침입했다-! 전 영도는 전투 준비를 마치고 연무장으로 집합한다-!]

근데 이건 또 뭔 상황이야?

* * *

대충 옷매무새만 만지고 후다닥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 교관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그런지, 대부분의 영도들이 아직도 잠이 덜 깬 얼굴로 연무장에 집합해 있었다.

단상 위에 침착한 얼굴로 서 있는 건 처음 보는 교관이었다.

“교관 중 하나인 소이몬드다. 자세한 소개는 생략할 테니 우선은 현 상황에 집중하도록. 현재 캠프에 형성되어 있던 마방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다.”

“네?”

어리바리하게 서 있던 영도들은 잠이 확 달아난 얼굴이 됐다.

“사람이 이렇게나 모여 있는 장소니 곧 숲의 마물들이 곧 몰려들 터. 교관들은 최전선에서 놈들을 막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소이몬드가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겠지? 어떻게든 살아남도록 해라.”

“…….”

“그럼 나도 이만 다른 교관들과 합류하러 가겠다.”

나는 단상을 내려온 다음, 숲 너머로 사라지는 소이몬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불안에 억눌려 있던 영도들이 그제야 쥐어짜듯 목소리를 냈다.

“마물이 온다고?”

“거, 거짓말하는 게 아닐까? 이곳에 있는 나비의 숲에 존재하는 마방진은 대마법사 아사드 님이 형성한 것이랬어. 그렇게 쉽게 뚫릴 리가…….”

“그 말은 틀렸다.”

헥토르가 멍청하게 생긴 영도-다시 보니 카리스였다.-의 말을 정정해 줬다.

“아사드 님이 사용하시는 결계의 범위는 본가 저택의 담장 안뿐이다. [나비의 숲] 최심부까지 그분이 보호 마법을 펼쳤을 것 같지는 않군. 있다고 해도 여길 벗어날 수 없도록 억제하는 용도겠지.”

“그, 그럴 수가…….”

카리스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썩어 들어갔다.

나 또한 헥토르의 말에는 동감하는 바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상황 자체가 또 하나의 시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관이 한 명도 없으니.’

방금 소이몬드란 교관이 떠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아예 영도들만 남겨 둔 게 이상하다.

딱히 한두 명이 최전선에 합류한다고 전황이 확 바뀌지는 않을 테고, 그럴 바에야 이곳에서 한 명은 지휘를 맡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력을 보려는 건가?’

확실히 훗날 교단과 싸울 걸 고려하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항목이기는 하다.

몇 명이나 눈치챘을까?

깨닫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냉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경험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경험.’

수련회에 집합한 천재들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

그리고 명줄이 걸린 사투란, 그러한 경험을 폭발적으로 충족시킨다.

‘20퍼센트라…….’

배드니커의 수련회의 사망률.

이곳에 있는 영도 중, 최소 2할은 죽는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 어떤 영도가 죽을 위기에 처해도 교관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슬슬 이 수련회가 추구하는 방향이 어떤 건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쿠르르…….

그때 숲 너머에서 스산한 기척이 느껴졌다.

영도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무기를 꺼냈으나, 별개로 다리는 뒷걸음질을 친다.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당황하지 않고 전투태세에 진입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내가 파악하기로 가장 재빨리 움직인 건 카론 우드잭이었다.

저놈은 어렸을 때부터 사선을 넘어온 티가 났다. 아까 언급한 경험이란 요소가 충족되어있는 유일한 영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뒤로 헥토르, 세렌, 에반 같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보니 지난 달리기에서 가산점을 받았던 상위권 인재들이었다.

나는 딱히 그쪽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어차피 놔둬도 알아서 잘할 녀석들이니, 그것보단 내 할 일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나도 마침 기회네.’

나는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칠죄검을 뽑아 들었다.

겉모습이 영 아니긴 한데, 그래도 무명왕의 유물이니까 막 휘두른다고 부서지지는 않을 거다.

우지끈!

그때 거목이 무너지며, 마침내 마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다!”

“저, 저게 대체-.”

“웁……!”

지네처럼 생긴 놈이었는데 크기가 집채만 하다.

심지어 한 놈도 아니고 작은 새끼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나타난 상황.

손가락만 할 때도 징그러운 놈들인데, 지금은 쓸데없이 크기까지 해서 속이 좋지 않았다.

이 인상적인 외견을 보고 영도들이 깜짝 놀랐으나, 다행히 패닉 상태에 빠진 얼간이는 없어 보였다.

교관들이야 이놈들을 다 애송이 취급하기는 했지만, 그건 분위기 잡느라 그런 것이고…….

수련회에 모인 녀석들은 객관적으로 봐도 우수한 편이 맞다.

우르르!

먼저 몰려오기 시작한 건 새끼 지네 무리였다.

“제기랄!”

“싸워야 해!”

그 모습을 보고 영도들이 무기를 꺼냈다.

아마 당장은 손에 익는 방식으로 싸울 생각인 듯하지만, 끝까지 그러기는 힘들 거다.

언제가 됐든 이 교전 속에서 한 번은 위기가 찾아올 테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가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겠지.

그러니 교관들이 이딴 쇼를 벌인 이유는, 어떻게든 영도들이 가호加護라는 신비한 힘에 빨리 적응하길 바라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순간적으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도 가호를 받았다.

분명 받긴 받았는데, 나는 아직 내 가호가 뭔지 모른다.

다른 녀석들과 비교하면 아직 시작점에도 서지 못한 셈이다.

그런 주제에, 나는 다른 영도들보다 잘난 척, 우습게 취급했다.

- 자만하지 마라.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자만이고, 오만일지도 모른다.

“스읍-.”

나는 스승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문득 떠오른 생각.

어쩌면 이번 수련회에서…….

나 또한 가호의 사용법에 대해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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