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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65화 (65/172)

65화

루안의 예상대로, 이 새벽의 습격은 철저히 교관 측에서 의도한 사건이었다.

교관들은 가장 앞선에서 마물을 틀어막고 있는 게 아니라, 실은 교관이 머무는 숙소 건물의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앉은 채 마법 수정에서 방출되는 빛무리를 직시하고 있었는데, 곧 빛무리의 모습이 바뀌어 현재 전투에 진입한 영도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겠지. 본격적으로 옥석玉石이 가려지는 것은.”

방금 자리를 떠났던 교관, 소이몬드.

즉 생존선생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우수한 인재는 이미 어느 정도 보이는군, 탄코. 자네의 달리기 시험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영도들 말일세.”

수렵선생 탄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차게 꼬이지만 않는다면 살아서 수료할 것이라 확신했던 녀석들이다.

잠깐 지켜보던 수렵선생이 말했다.

“가산점을 받은 게 총 다섯이었나? 한 명이 안 보이는데.”

“그렇군. 미르 자이언트가 없소.”

“자이언트라면… 거인족?”

“그렇겠지.”

“이상한 일인데? 이번 기수에 거인족처럼 보이는 영도는 못 봤는데.”

거인족이라는 이름답게, 기본적인 체형이 인간보다 몇 배는 큰 자들이다.

전장 어디에 있건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영상엔 그만한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수렵선생이 영상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저 영도요.”

“음…….”

눈가를 좁히던 생존선생이 말했다.

“…거인족치고는 상당히 작군.”

대단히 왜소한 체구의 소녀는, 사실 거인족으로 치지 않더라도 대단히 작은 체구였다.

“혼혈인가?”

“내가 알기론 아니오. 오히려 가장 위대한 거인의 피를 이었지.”

“가장 위대한 거인? 혹시 서리거인 이미르 말인가?”

“그렇소.”

“아. 그래서 이름이 미르인가.”

수렵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상명세서에 간략한 사정이 적혀 있었소. 결론만 말하자면 돌연변이인데, 생긴 건 저래도 완력은 웬만한 거인족 이상이라더군.”

“흠. 그런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나?”

미르 자이언트는 굳은 얼굴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몸이 굳어 있던 영도들도, 슬슬 몸이 풀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는데도 그랬다.

“실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타입이겠지.”

초원에서라면 가장 죽기 쉬운 유형이다.

재능 있는 인재의 죽음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수렵선생의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으나, 그렇다고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만약 미르가 오늘 죽는다고 해도 그렇다.

‘…만약 오늘 밤까지 살아남는다면.’

저 단점을 극복시키기 위한 도움과 교육을 아끼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수렵선생은 다시 한번 눈동자를 굴렸다.

이번 수련회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녀석을 찾기 위해서다.

그 맹랑한 애송이와의 대련을 회상하니, 수렵선생의 두터운 입술이 움찔거렸다.

싸우던 도중에도 자신의 무술에 점차 적응하고, 흡수까지 하려던 녀석이다.

만약 좀 더 체계적으로, 꾸준히 가르친다면…….

수렵선생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무술.

그 맥을 이을 유일한 인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럼 내가 정식으로 제자를 거두게 되는 것인가?’

수렵선생은 검술선생과 더불어 제자를 두지 않는 대사범으로 유명했으나.

이상하게 루안이 제자라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규칙은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오?”

생존선생이 슬쩍 누군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태껏 가만히 서 있던 무예선생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아무리 상이라고 해도 일개 영도에게 그만한 권리를 준다니……. 너무 과하지 않을까 싶소.”

“그 얘기는 이미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

무예선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두는 아니다.

이번 수련회에 참가한 대사범은 모두 여덟, 그중에서 3명이 반대했으니까.

물론 중요한 건 나머지 다섯이 찬성했다는 것이다.

‘칼자크만 있었어도.’

생존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무예선생이 멋대로 구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최근엔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저 사내를 유일하게 억제할 수 있었던 도검선생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예선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이만 집중하지요. 지금부턴 영도 전원을 세세히 관찰하며 점수를 매겨야 하니까요.”

* * *

칠죄검을 챙기길 잘했다.

덕분에 마물의 지저분한 체액이 상대적으로 덜 튀었다.

나는 오랜만에 용병 시절로 회귀한 것처럼 칼을 휘두르며 설쳐댔다.

처음엔 무신의 은하검을 흉내 내 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내가 실전에서 펼칠 만큼 만만한 무술이 아니라 보류.

푸확!

척살 도중 지네의 핏물이 얼굴에 살짝 묻어서 반사적으로 닦을 뻔했다.

나는 그러는 대신 한 발자국 더 내디디며, 검을 재차 휘두르며 주변의 적을 베었다.

아공간에서 철혈공이 보여 줬던 검술처럼, 사소한 행동마저 모두 배제한 채 모든 사고 회로를 공격에만 집중시키는 것.

이게 은근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결국 전투에선 상정 밖의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모든 상황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공격만을 고집했다.

일부러 평소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는데, 굳이 칠죄검 사용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가호식 이후엔 쭉 주먹만 썼으니, 다른 방식으로 싸우면 부여받은 가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딱히 달라진 느낌은 없네.’

사실 이제 와서 가호가 없다고 답답할 일은 없지만, 정체불명이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

가호 중에선 특별한 순간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종류도 있다지만, 보통은 그 ‘특별한 순간’이 언제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전혀 짚이는 바가 없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영도 중에선 이미 가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싸우는 녀석들이 많았다.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기는 하지만, 사용법 자체는 확실히 깨달은 듯한 얼굴.

‘거울이 뭔가 잘못 표시한 거 아니야?’

턱없는 생각을 할 때쯤, 새끼 지네의 숫자는 이제 절반이 됐다.

죽은 영도는 없어 보인다.

이것까지는 예상 내지만, 크게 다친 녀석조차 없는 건 놀랍다.

과연 영웅의 후예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응이 더 빠르다.

아마 오늘 이 전투에서 살아남는 녀석들은 최소 두 배는 강해질 것이다.

콰라라라라라라락-!

그때 거대 지네가 괴상한 포효를 터뜨리더니, 빠른 속도로 지면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덩치는 지난번에 상대한 사파이어 스네이크보다 작았지만, 그런 만큼 보기보단 날래다.

어쨌든 전체적인 덩치가 작은 놈은 아니라서, 기어가는 것만으로 지면이 움푹움푹 파이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막아-!”

영도 중 한 놈이 용기 있게 외치며 지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 등신…….’

새끼 지네를 너무 쉽게 죽여서 방심이 싹튼 건가?

상대와의 수준 차이를 깨닫지 못한 결과는 비참했다.

지네의 몸과 충돌하는 순간,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간 것이다.

꽈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에 처박힌 영도,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해 본다.

솔직히 말하면 전신의 뼈가 가루가 돼서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다.

물론 뼈가 부러지고 피를 줄줄 흘리고 있긴 하지만, 일단 살아는 있다.

‘맷집이 올라가는 가호라도 받았나 본데?’

그럼 좀 험하게 다뤄도 되겠지?

나는 영도를 집은 다음, 새끼 지네가 없는 수풀 쪽으로 던졌다.

“으아아아-!”

그 순간 누군가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슬슬 도망가는 녀석이 나오나 싶었는데, 어째 소리의 방향이 특이하다.

꼬맹이 영도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지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꼭 도망가는 것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주제에, 몸뚱이는 돌진하고 있는 모순된 장면이었다.

‘저건 또 뭐야.’

내가 얼떨떨하게 서 있는 순간, 거대 지네가 몸을 비틀더니 커다란 꼬리로 꼬맹이를 후려쳤다.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조막만 한 녀석이 지네의 꼬리치기를 정면에서 막은 것이다.

“오…….”

가호인가?

그런 낌새는 없는데.

나는 잠시 후, 거대 지네의 공격을 막은 게 순수한 신체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게 가능한가?

지금의 나는 물론이고, 나보다 훨씬 우월한 몸뚱이를 가진 수렵선생도 맨몸으로 지네의 공격에 대응하는 건 힘들 것이다.

비명의 주인공을 다시 보니, 이번 수련회에서 눈에 띄는 인재 중 한 명이었다.

지난번 수렵선생의 달리기 시험에서 5위 안에 들었던 녀석.

이름이 미르 자이언트였나?

통통 튀는 양갈래 머리가 인상적이라서 기억하고 있다.

‘자이언트? 아. 거인족이었구나.’

그렇다면 저 말도 안 되는 육체 능력에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 이후 대처가 형편없었다.

훌륭하게 꼬리를 막았던 미르는, 그러나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로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붓다 순식간에 지네 무리에 포위당했다.

저대로라면 최초의 사망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때였다.

[저 거인족은…….]

잠에 빠져 있던 무신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연자여, 저 거인족을 구해 주게.]

‘그럴 생각이었지만, 잘 주무시다가 갑자기 왜…….’

[그대도 칠죄검이 어떤 검인 줄은 알고 있겠지.]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무명왕이 일곱 종족을 규합할 때 사용했던 명검이다.

[그때 무명왕이 규합했던 종족을 알고 있나?]

‘기억이 희미한데요.’

[인간, 난쟁이, 요정, 수인족, 용족, 정령, 그리고 거인족일세.]

‘설마…….’

무신이 말했다.

[그때 무명왕에게 패했던 건 서리거인 이미르였지. 저 소녀는 그 후예인 게 분명해.]

‘음…….’

[구해야 하네. 언젠가 칠죄검을 해방하려면 저 소녀의 도움이 필요불가결할 것이야…….]

‘해방이란 건 어떻게 하는데요?’

[…….]

‘저기요?’

[…….]

무신은 다시 잠에 빠진 건지 대답이 없었다.

허참.

자기 할 말만 하고 쏙 사라진다 이거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미르를 둘러싼 새끼 지네를 칠죄검으로 베어 나갔다.

퇴로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야. 이리로 와.”

그러나 미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뒤지고 싶은 건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발부리에 뭔가가 걸렸다.

왜 이런 곳에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로프였다.

누군가의 무기인가?

아무튼 잘됐다.

나는 로프를 집은 다음 던져서 미르의 몸을 칭칭 감아 보기로 했다.

언젠가 내가 쇠사슬에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으헉!”

“앗.”

그런데 실수로 몸이 아니라 머리 쪽을 칭칭 휘감고 말았다.

‘숙련도 이슈…….’

물론 다시 풀고 감을 시간은 없고, 저대로 놔두면 새끼 지네 무리에 당할 위험이 있어서 억지로 당겼다.

미르는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난동을 부렸으나, 그래도 착실히 나한테로 질질 끌려왔다.

“아,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 설마 이곳이 요툰헤임…….”

눈을 가렸으니까 그렇지.

물론 거인족이니까,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문제는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지척까지 미르를 회수한 다음 로프를 풀어 줬다.

시야를 되찾은 미르는 펄쩍 뛰더니 나한테서 멀어졌다.

“너는, 금발 배드니커……?”

금발 배드니커?

아. 헥토르랑 구분하기 위해서인가.

“이게 무슨 짓이지?”

나는 로프를 바닥에 던지며 대꾸했다.

“그게 아니지.”

“뭐?”

“구해 줬으면 감사하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거란다.”

“그게 구해 준 거라고?”

“그럼 공격한 거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딴 지네 놈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가까이서 보니 이 녀석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고, 안색이 파리하다. 동공에도 지진이 난 상태였는데, 심리적으로 불안한 듯 보였다.

내 개인적 진단으로 판단컨대, 저 상태로 계속 싸웠다간 오늘 밤을 못 넘기고 죽었다.

“도와준 건 감사하지만… 다시는 방해하지 마! 나는, 내가 전사인 걸 증명해야 한다!”

미르는 그리 말하며 다시 거대 지네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지그시 보다가, 칠죄검의 칼잡이로 그 뒤통수를 쳤다.

빡!

쇠사슬을 뒤통수에 맞은 미르가 그대로 철퍽 지면에 엎어졌다.

나는 쓰러진 미르를 어렵지 않게 회수한 다음, 처음 기절한 녀석 옆에 던져 놨다.

“설득은 귀찮고 주먹은 빠르다.”

스승님의 격언, 오늘도 1승 추가.

“뭘 하는 거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 위에 음산하게 서 있는 녀석이 보였다.

“구호 활동.”

“왜.”

“지금 죽기엔 너무 어리잖아.”

“…….”

카론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툭 내뱉었다.

“위선자였나.”

뭐라는 거야.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카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따라가서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으나 우선은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나는 이미 기절하거나, 곧 죽을 것 같은 놈들을 하나씩 걸러냈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가 흐르니, 이제 전장엔 제 몫은 해낼 수 있는 녀석들만이 남았다.

그쯤에서 나도 어울리지 않는 구호활동은 때려치우고 다시 지네 토벌에 참가했다.

가까이에 있는 지네에게 다가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꽈앙-!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대로 지네를 꿰뚫었다.

가호가 깃든 화살은 대포보다 강력한 파괴력으로 지네의 머리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나는 지저분한 마물의 잔해를 피하며, 다른 마물을 찾았다.

근처에 있는 식물 형태의 괴물들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피피핏!

이번에도 화살이 날아왔다.

방금처럼 파괴력 있는 화살이 아니었지만, 수가 많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화살은 마치 폭우 같아서, 마물은 순식간에 구멍투성이 꼴이 돼서 쓰러졌다.

‘…….’

나는 위화감을 느꼈으나, 내색하지 않고 다음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노리던 마물은 화살에 의해 관통당했다.

이제는 확실하다.

일부러 내가 노리는 마물을 가로채는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특정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야.”

나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

그 가지에 올라 서 있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너, 뭐 하냐?”

카론은 화살을 메기며 대꾸했다.

“내 먹잇감이다. 건들지 마.”

“뭐?”

“네놈은 잠자코 찌그러져 있으란 뜻이다, 루안 배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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