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아마도 카론은 이 습격이 교관 측의 의도라는 걸 눈치챈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이런 급박한 순간에 저딴 말을 지껄일 이유가 없으니.
아무튼 이렇게 노골적인 도발을 받았는데도, 의외로 내 심정은 차분했다.
저놈의 강함과는 별개로, 주변에 사람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경쟁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심한 상대의 도발에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 꼴불견이지.
결국 같은 수준이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
내가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올려다보니, 카론은 살벌한 눈빛을 보낸 뒤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미친 듯이 화살을 쏘며 다시 마물 토벌에 임했다.
‘성적에 목숨이라도 걸었나.’
저 녀석의 실력은 날고기는 영도 사이에서도 가히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하다.
저 멀리서 분전하고 있는 헥토르와 세렌, 에반 등…….
이미 검증된 천재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돋보이는 느낌.
내가 보기에 재능 자체는 비슷한데, 그런데도 이 정도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경험 때문.
아마도 카론은 사고가 가능한 시점부터 목숨을 건 전투를 셀 수도 없을 만큼 치렀을 거다.
그런 놈이니만큼 지금 상황이 딱히 위기로 느껴지지도 않겠지.
냉정함을 유지한 채, 효율적인 움직임을 추구할 수 있다는 뜻인데…….
어쩐지 카론의 행동에선 조급함이 느껴졌다. 꼭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경험을 갖춘 놈이 보이기엔 모순된 태도라서 의아했으나, 나는 카론 대신 다른 영도들을 챙겨 줬다.
죽기엔 너무 어리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시간이 흐르고…….
쿠웅……!
거대 지네의 시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 위에 널브러졌고, 주변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끝난 건가.”
그 침묵을 에반의 지친 목소리가 일깨웠다.
털썩, 연이어 긴장이 풀린 영도 몇몇이 주저앉는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까지 주변을 경계하는 기특한 놈들도 보였다.
커다란 위기를 넘겼지만, 장내엔 환호성보단 고요함이 흘렀다.
짝짝짝-.
그 고요함을 뜬금없는 갈채 소리가 깼다.
영도 몇 놈이 깜짝 놀란 채 일어섰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훌륭합니다!”
모습을 드러낸 건 교관이었으니.
어떤 놈이 이딴 상황에서 박수를 치는가 싶었는데, 상판을 보니 묘한 납득이 갔다.
무예선생 후안이 실실 웃는 낯짝을 하며 말했다.
“아주 훌륭하게 막아 냈군요. 예상대로 이번 기수는 아주 훌륭해요.”
“교관님?”
“이게 대체…….”
아직도 얼빠진 낯짝을 하고 있는 생도를 보며 후안이 말했다.
“첫 번째 특별 시험에 통과한 걸 축하합니다, 영도 여러분.”
“……!?”
예상외로 깨닫지 못한 녀석이 많았는지,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시험이라니요?”
“서, 설마 이 마물의 습격은…….”
“예. 저희가 의도한 상황이었습니다.”
“…….”
태연한 대꾸에 영도들의 표정이 굳었다.
몇몇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의도한 상황이라니!”
“어떻게 이딴 비상식적인 일이 시험이 될 수 있습니까?”
“저, 저는 이번 전투에서 죽을 뻔했다고요!”
“-그래서?”
그때 후안과는 상반된, 싸늘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수렵선생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는 그들의 면면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사부 전원이 처음으로 집합했군.’
총 8명이다.
10명 전원이 등장한 건 아니었지만, 본가의 기사를 양익兩翼처럼 두른 채 걸어오고 있어서 분위기가 제법 웅장했다.
수렵선생이 냉소 섞인 얼굴로 말했다.
“죽을 뻔했다고 지껄였나? 그거 다행이군. 네놈들에게 죽을 위기를 겪게 만드는 게 수련회의 의도 중 하나니까.”
“그, 그런…….”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합니다…….”
“과하다라.”
수렵선생이 입가를 비틀었다.
아마도 거슬리는 뭔가를 발견했을 때 나오는 일종의 습관 같았다.
“하나 묻겠다. 영웅으로 살아가며 심야에 습격당할 일이 없을 것 같나? 말해 두는데 오늘 상황은 상당히 친절했다. 우리가 미리 네놈들을 깨워 줬고, 마물들이 습격하기 전까지 태세를 정비할 시간도 있었지. 이게 진짜 실전이었다면 그딴 여유는 없었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떴을 때, 나이프가 이미 네놈의 목젖을 갈랐을 수도 있단 뜻이다.”
이 말에 덩치가 유난히 큰 놈이 반문했다. 꼬리가 달린 걸로 봐서 인간은 아니었다.
“그, 그래도 이건 실전이 아니잖습니까?”
“반쯤 죽여 버리고 싶은 변명이로군.”
“그쯤 하시죠, 탄코 선생.”
무예선생이 다시 분위기를 환기했다.
“지금 우리가 이들을 꾸짖자고 모인 게 아니잖습니까?”
“…….”
“보십시오. 놀랍게도 모든 영도가 생존했습니다.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니지만,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예선생이 다시 박수를 쳤다.
그에 동조하듯 몇몇 대사범과 기사들이 같이 손바닥을 때리는 모습도 보였다.
“…….”
반면, 끝까지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교관들도 보였다.
‘교관이라고 다 친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저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있는 듯한 느낌.
나는 가만히 서 있는 교관들의 얼굴을 한 명씩 뇌에 집어넣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또한 시험의 하나였으니, 모든 영도에겐 활약에 걸맞은 채점이 매겨졌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그 결과는 내일 말씀드리지요.”
“…그럼 오늘 시험은 끝난 겁니까?”
헥토르가 물으니 무예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안심 섞인 한숨 소리나 실소 따위가 터져 나왔다.
일부는 숙소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당장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거다.
“어딜 가는 거냐.”
그때 수렵선생의 싸늘한 덤덤한 목소리가 그 발걸음을 막았다.
비틀비틀 걸어가던 영도들이 핼쑥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애도 아니고, 난장판을 벌였으면 뒷정리는 직접 해야지.”
“예……?”
수렵선생이 연무장에 널브러진 마물의 시체를 가리키며 웃었다.
“다 치우고 자라.”
“…….”
* * *
이튿날 아침.
나는 조금 피곤한 상태로 눈을 떴다.
“음…….”
쪽잠에 익숙한 내가 이 정도라면 다른 영도 놈들은 기절 직전일 거다.
“끄어어…….”
과연 옆 침대에서 좀비가 깨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에반은 평소 밝은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 채 음울한 연기를 풀풀 풍겼다.
무슨 늘어진 해초처럼 침대 아래로 내려오는데, 그 동작이 대단히 음산하다.
“괜찮냐?”
“그으래애.”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더 말을 걸지는 않고, 에반의 어깨를 툭 치며 그대로 지나쳤다.
연무장으로 나가니 이곳에도 좀비 무리가 가득했다.
하긴.
거의 밤샘 작업을 한 뒤,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자고 다시 일어났으니 당연한가.
나도 하품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건 아직 해가 안 떠서 그런 거고.
곧 날이 밝고 햇볕을 좀 쬐면 컨디션이 금방 돌아올 거다.
반작용으로 저녁쯤부터는 미친 듯이 졸리겠지만 말이다.
그때 교관 숙소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특유의 차가운 얼굴, 수렵선생이다.
“…….”
등장만으로 주변이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콧대 높은 영도 놈들도, 이번 수련회에서 특히 주의 경계해야 할 교관이 누군지 깨달은 모양이다.
수렵선생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인원 체크부터 하더니,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늘도 잘 따라오도록.”
그리고 곧장 뜀박질 시작.
아마도 이 새벽의 질주는 수련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일과일지도 모르겠다.
내겐 좋은 일이다.
기초 체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뜀박질만 한 게 없거든.
오늘도 상위권은 비슷했다.
가장 앞에 달리는 놈이 카론이고, 그 뒤를 세렌과 헥토르가 거의 균등한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에반과 미르, 나이트워커의 차기 족장, 루비에타의 영애와 슈발리에의 독남…….
내 속도는 어제와 비슷했지만, 등수는 많이 뒤쳐져서 중간 정도가 됐다.
아마 포인트의 귀중함을 깨달은 놈들이 근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급하진 않다.
내게 성적이란 딱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달리기가 끝났다.
“허억, 허억…….”
“…죽겄다, 진짜로…….”
어제보다는 낙오된 영도가 적었지만, 공터엔 녹초가 된 채 널브러진 놈들이 태반이었다.
나 또한 땀에 흠뻑 젖은 채 한동안 호흡을 골랐다.
다행인 건 오늘 오전 일정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아침을 먹을 시간은 물론, 이후엔 짤막한 휴식 시간까지 주어졌는데 그래도 어제 치러진 불시의 시험이 조금 과했다는 인식 정도는 한 모양이다.
그래 봤자 30분 정도였지만, 잠이 부족한 녀석들은 그 시간을 활용해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다시 연무장으로 집합.
“…진짜 숨 돌릴 틈도 없군.”
“1시간만 잘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오전은 후안 교관님 수업이라 그나마 다행이야.”
그 말대로 단상 위에 서 있는 건 무예선생 후안이었는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많이 피곤하시죠? 모두 앉으셔도 됩니다.”
“으아.”
“감사합니다……!”
잔뜩 지쳐 있던 영도들이 넙죽 자리에 앉았다.
“오전 수업에 앞서 짧게 공지할 게 있습니다. 어젯밤에 치렀던 시험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 전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했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엄정하고도 객관적인 심사를 통해 각 영도들의 성적을 매겼지요.”
어제도 아니고 오늘 새벽에 벌어졌던 일.
그걸 분석했다는 말은, 교관들은 어젯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뜻이다.
쪽잠이라도 잔 영도들 이상으로 힘든 상태라는 뜻인데, 그런데도 오늘 보았던 교관들은 모두 멀쩡해 보였다.
“전부 다 발표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상위 5인만 발표하겠습니다. 마침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전부니까요. 이들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0점, 8점, 6점, 4점, 2점을 획득하게 됩니다.”
웅성-.
생각보다 더 큰 포인트에 영도들이 술렁거렸다.
“그럼 5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에반 헬빈.”
“아……!”
에반이 탄성을 터뜨렸다.
표정을 보니 뿌듯함 반, 아쉬움 반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명성을 생각하면 낮은 순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에반은 아직 성장 도중이다.
“이어서 4위 헥토르 배드니커, 3위 세렌 굿스프링.”
헥토르의 표정이 굳었고, 세렌은 덤덤한 얼굴이었다.
지금 자신의 수준에 적합한 순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보았다.
내 순위가 궁금한 모양이었는데……. 시선은 하나 더 있었다.
세렌보다 열 배는 더 끈적하고, 백 배는 더 귀찮은 시선이.
카론 우드잭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었군요. 이번 습격전은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치러질 [특별 시험] 중 하나였는데, 이 특별 시험의 1위에겐 포인트와 별개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1위만 받을 수 있는 특별 보상?
또다시 술렁일 수밖에 없는 발언을 입에 담은 뒤, 무예선생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별 보상에 대한 설명은 순위 발표 이후에 말씀드리죠. 그럼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