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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71화 (71/172)

71화

어떻게 조가 이따위로 정해질 수가 있지?

객관적 지표와 공정한 편성은 대체 어디 갖다 판 거야.

내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는 사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너희는 운이 좋군. 나 미르 자이언트와 같은 조가 되다니. 안심해도 좋다. 이제부턴 내가 너희들을 이끌어 줄 테니까.”

다람쥐같이 조막만 한 놈이 호탕하게 소리치니, 아마 이 조에 나보다 수십 배는 불만을 품고 있을 영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말도 안 돼!”

루비에타 영애,

그러니까 샤를의 얼굴은 거의 창백할 지경이었다.

“내, 내가 이딴 조에 편성됐다고……? 객관적 지표와 공정한 편성은 대체 어디 갖다 판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어이, 소용돌이 여자. 말이 좀 심하군.”

“심한 건 당신 머릿속이겠죠!”

“뭐라?”

“안심해도 좋다고요? 절망을 잘못 말한 거 아냐? 이, 이 조는 망했어-!”

이 녀석은 흥분하면 존댓말을 유지하지 못하는 성격인가 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 옆에서 난리를 피우면 이쪽은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것이었는데…….

샤를이 완전히 정신이 나가니 반대로 나는 침착해졌다.

그리고 다시 상황을 보니, 의외로 팀 밸런스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황당한 결론이 나왔다.

사실 여기서 우수하다고 할 만한 인재는 샤를뿐이다.

내 포인트가 상위권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대다수의 수업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건 아니다. 오히려 교관진의 평가는 상당히 낮을 것으로 추측된다.

에반 녀석의 포인트도 낮은 편은 아니지만, 이 녀석의 내부 평가는 어쩌면 나보다 낮을 수도 있다.

교관진 중에서 가장 큰 입김을 가진 무예선생이 에반을 안 좋게 보고 있으니 말이다.

미르 자이언트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지,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하. 절대 납득 못 해. 이의를 신청하고 오겠어요!”

그리고 성큼성큼 후안 교관이 있는 곳을 향했고…….

정확히 1분 뒤에 하얀 재를 풀풀 날리며 돌아왔다.

“뭐라던.”

“망했어… 난 망했어…….”

“그렇구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반이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일단… 서로 얼굴이랑 이름은 다 알겠지만, 일단 다시 소개나 할까? 난 에반 헬빈이라고 해.”

“루안 배드니커다.”

“나는 미르 자이언트다! 위대한 서리거인 이미르의 말예지!”

“오호…….”

내가 감탄하니, 미르의 얼굴에 뿌듯한 자부심이 어렸다.

사실 난 이 녀석이 ‘말예’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감탄한 거지만…….

불편한 진실은 굳이 밝히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우리의 시선이 마지막 조원, 샤를에게 향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여전히 혼이 나가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루비에타 영애분은 경황이 없는 것 같으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앞으로 같은 조원으로서 잘해 보자.”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나도 달리 할 말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미르가 살짝 나를 불편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래. 금발의 배드니커. 우리 구면이지?”

표정을 보니 특별 시험 때의 일을 아직 담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저 녀석의 얼굴을 로프로 묶고 뒤통수를 때려서 기절시킨 사건 말이다.

‘나참.’

좋은 일을 하고도 이런 반응이라니. 감사까진 바라지도 않았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무예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렇게 조 편성이 끝났습니다. 영도분들은 다시 모여 주세요.”

어쨌든 무예선생의 명령에, 영도들은 다시 단상 앞으로 모였다.

나는 우선 카론부터 확인했는데…….

카론의 조는 세 명이었다.

양쪽에 있는 건 거상 집안인 실베르가의 제로스와- 훗날 수인족의 영웅이라 불리는 신바.

카론의 최측근으로 보이는 두 명.

‘딱 저 셋이 같은 조가 된 건가?’

사실 이미 구린내가 진동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 기막힌 우연이라도 두 번까지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의심을 가지되 단정은 짓지 마라.

- 그럼 세 번은요?

- 세 번은 확신을 가져도 되는 횟수지.

나는 넷째 사형의 말을 떠올리며, 아직 확신까지는 미뤄 두기로 했다.

“그리고 조 편성 기념으로. 내일 오전부터는 짤막한 시험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네?”

뜻밖의 말에 영도들이 잠시 웅성거렸다.

그중 한 명이 질문했다.

“주말에 별도의 일정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니 이 시험은 자유 참가입니다.”

후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숙소로 돌아가셔서 쉬셔도 됩니다. 단, 불참자는 포인트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만요.”

“…….”

영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꼭 사회에 막 진출한 새내기들이 생전 처음으로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낯짝이었다.

당연하지만, 후안의 말은 말장난이다.

숙소로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고?

그럴 놈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 자리에 있는 영도들은 이래 봬도 각지에서 엄선된 정예고, 자존심이 높으며, 스스로가 최고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포인트를 얻을 기회가 있다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무예선생의 제안은 사실상 반쯤 협박이었다.

“…혹시 이 시험도 특별 시험입니까?”

“그렇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지난 특별 시험에서, 상위 5인은 많은 포인트를 획득했고 1위를 거머쥔 카론은 막대한 혜택을 받았다.

그 혜택을 이용해서 현재 위치를 공고히 다졌고…….

만약 두 번째 시험도 1위 자리를 카론이 손에 넣는다면, 이제 따라잡기 힘들 만큼 격차가 벌어질 터.

죄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영도들은 단 한 명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불참자는 없는 듯하군요. 영도 분들의 진취적인 자세, 아주 보기 좋습니다.”

“…….”

“괜찮아요. 이번 특별 시험엔 감점은 없습니다. 시험 내용도 아주 간단해요. 숲으로 나가서, 뭐든 구해 오시면 됩니다.”

갑자기 발표된 시험 내용에 영도들이 두 눈을 끔벅거렸다.

“…뭐든, 말입니까?”

“네. 뭐든.”

무예선생은 한번 더 강조하듯 말했다.

“그 어떤 걸 가져오건, 하다못해 돌멩이나 잡초라고 할지라도 교관진에서 점수를 매겨 줄 겁니다. 물론 점수는 턱없이 낮겠지만요.”

보다 희귀한 걸 구해 오라는 뜻이다.

“또한 이번 시험에선 조 합산 포인트를 사용해서 여러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상품 리스트는 오늘 중에 전달될 겁니다.”

“…예?”

“합산 포인트가 뭐죠?”

“말 그대로, 조원의 포인트를 모두 총합한 포인트입니다.”

후안은 영도들의 얼빠진 질문에도 생글생글 미소만 지었다.

“자세한 개요는 내일 시작 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모두 즐거운 휴일 보내시고… 아! 그리고 상품 리스트가 전달되기 전까지 조장을 정하세요. 합산 포인트를 쓸 수 있는 건 조장의 권한이거든요.”

비꼬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후안이 떠났다.

얼마 안 가 공터에 있던 영도들은 떠나거나, 조끼리 뭉친 채 저들끼리 쑥덕거렸고…….

남은 건 나를 비롯한 우리 조원뿐이었다.

이때쯤 샤를이 정신을 차렸다.

“…후우우우우우.”

속에 있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싹 다 게워내듯, 엄청 긴 한숨을 동반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요. 이 답도 없는 조에서 활약한다면 나의 주가도 올라갈 터. 그리 생각하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쟤는 저걸 혼잣말이라고 하는 건가?

어찌 됐건 샤를이 우릴 보며 말했다.

“샤를 루비에타입니다. 우선 당신들이 소지한 포인트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소지 포인트는 왜?”

미르가 물으니 샤를이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그걸 알아야 좀 이따 온다는 상품 목록을 보고, 뭘 살지 결정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그렇군……. 나는 13점이다.”

이어서 나와 에반도 말했다.

“18점.”

“19점이요.”

“으음… 점수 자체는 뭐,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요. 거인족을 빼면.”

미르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들이 또 싸우기 전에, 내가 선수 치듯 물었다.

“넌 몇 점 있는데?”

“20점이요.”

“그럼… 합쳐서 딱 70점이네.”

“그러네요. 어쨌든 조장 역할은 제가 맡겠어요. 모두 불만 없으시죠?”

이 녀석 봐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조장 자리를 꿰차려고 하네?

“없을 리가 있나!”

그리고 마침내 미르가 폭발했다.

“너 따위보단 이 몸이 조장 역할에 훨씬, 훠어어얼씬 적임이다!”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네요. 우리 조를 시궁창에 처박을 일 있나요?”

“뭐라고!”

“하아…….”

샤를이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나머지 조원들한테 물어볼 수밖에.”

“하! 그러든가! 너희 둘! 누가 가장 조장에 적임일 것 같지?”

우리는 두 영도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에반은 여전히 난감한 기색이어서, 내가 먼저 대꾸했다.

“나.”

“…응?”

“내가 적임일 것 같은데.”

까놓고 말해서 둘 중 한 명만 고르라면, 그나마 샤를이 낫겠지만…….

당연히 이 애송이들보단 내가 훨씬 나을 거다.

“웃기지 마세요!”

“죽고 싶나, 금발 배드니커!”

“어휴.”

익히 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번엔 에반을 보았다.

“그럼 네가 결정하면 되겠네. 에반, 우리 셋 중에 누가 조장에 가장 적합할 것 같아?”

“어, 음…….”

에반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망설임 끝에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샤를이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웃기지 마아아악-!”

그렇게 1조의 조장이 정해졌다.

* * *

언제나 떠들썩하던 라운지가 오늘은 부쩍 조용하다.

사람이 줄어든 건 아니다.

여느 때와 비슷한 인원수였지만, 평소처럼 무리를 지은 게 아니라 꼭 툭툭 떨어진 섬 같다.

분리된 기준은 당연히 조였고.

“…좀 그러네.”

“뭐가?”

“방금까지 친구였던 녀석들이랑 이제는 적이 된 것 같아서.”

나는 혼자 씁쓸함을 곱씹는 듯한 에반을 보며, 우선 큰 착각부터 정정해 줬다.

“적이 아니라 경쟁자지. 익숙해져. 편의상 영웅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숭고한 목표를 지닌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아마 정식 영웅이 되고서도 이렇게 겨루는 일이 잦을걸.”

물론 나는 영웅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대사범이란 작자들이 영웅 지망생을 가르치는 꼴을 보면, 적만큼이나 아군도 경계해야 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에반이 묘한 얼굴로 말했다.

“…넌 가끔 교관님들처럼 말씀하더라.”

“그런가?”

“그래.”

“그럼 가르친 대로 잘 배웠다는 거겠지.”

“푸핫… 그럴지도.”

“거기! 그만 떠들고 이리 모이시죠. 상품 리스트란 걸 봐야 하니까.”

샤를은 여전히 조장에 미련이 남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당장은 단념하기로 한 듯하다.

아마도 내 이름 뒤에 붙은 배드니커라는 꼬리표 덕분이 아닐까?

권위주의에 찌든 녀석일수록 더 큰 권위에 약한 법이니까.

어쨌든 나는 교관에게 직접 받은 한 장의 종이를 테이블 위로 펼쳤다.

[물 500ml. 1pt.]

[육포 한 봉지. 1pt.]

[단검. 3pt.]

[밧줄. 3pt.]

[그물. 3pt.]

…….

…….

[사냥용 덫. 5pt.]

[붕대. 7pt.]

[램프. 10pt.]

…….

…….

[침낭. 5pt.]

[텐트. 10pt.]

…….

…….

[포션. 30pt.]

내 생각 이상으로 품목이 많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어떠한 공통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번 특별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첫 번째 특별 시험, 새벽의 마물 습격의 목적이 ‘생존’이라면…….

두 번째 특별 시험의 목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냥’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건 70포인트.

이 포인트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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