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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73화 (73/172)

73화

수련회에서 나의 일과는 다른 영도들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새벽 4시.

침상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가부좌를 튼 뒤, 영옥에 의식을 집중한다.

“…….”

이제는 익숙한 온기가 느껴진다.

절로 노곤함이 밀려오는 딱 좋은 온도지만, 그 안에 담긴 진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대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온기를 단전에 받아들이기만 해도 충분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영옥을 하사한 철혈공은 물론, 나 또한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손에 자국이 날 만큼 강하게 영옥을 쥐었다.

동시에 내 몸에 쌓인 화기를 일으켜 세워, 영옥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화르륵…….

이 작업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꼭 불로 불을 녹이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지만, 애초에 내력이나 진기의 운용이란 추상적인 감이 없잖아 있다.

같은 기운을 마주하더라도 사람마다 떠오르는 게 다를 정도.

어쨌거나 나는 내 방법이 옳다고 확신했다.

영옥의 온기는 이제 열기가 됐는데, 이쯤 되면 따뜻하다기보다 뜨거운 느낌이다.

‘이거지.’

나의 화기와 영옥의 열기.

두 개의 양기가 한데 뒤섞인 채, 순환하듯 전신 혈도를 내달렸다.

이 흐름은 내공을 쌓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내공 운용과 흡사한 형태였는데, 그보다 효율이 몇 배는 뛰어났다.

내공 증진은 물론이고, 염화제일공의 효과 또한 극대화돼서 회복과 단련에도 탄력이 붙었다.

내가 수련회에서 두세 시간만 자고도 멀쩡한 이유가 되시겠다.

“푸후우…….”

나는 창밖이 어슴푸레해질 때쯤 운공을 마쳤다.

오늘의 운공도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내 손에 쥐인 영옥의 크기는 처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조급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나는 이 작업을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아마 영옥을 완전히 녹이기까지 최소 반년은 걸리지 않을까?

“으음…….”

뻐근한 목 관절을 주무르며 잠시 고민.

이대로 공터로 나가서 몸을 풀까.

아니면 좀 더 눈을 붙일까.

평소 일과대로라면 전자를 택하겠지만, 오늘은 특별 시험이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던 새벽 구보조차 쉬게 해줄 정도니까, 웬만하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에 임하라는 교관진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냥 자자.’

다시 좁아터진 침상에 몸을 눕힌 순간 우우웅, 하고 진동이 느껴졌다.

영옥은 아니고,

머리맡에 놔둔 칠죄검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무신님?’

[…….]

반응을 보니 깨어난 건 아닌 듯한데…….

나는 잠깐 칠죄검을 노려보다가, 곧 이 검이 어느 지점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단 걸 깨달았다.

공터 방향이다.

‘바깥에 뭐가 있나?’

짧게 고민하던 나는, 칠죄검을 집은 채 일어섰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간 다음 라운지를 지나, 건물을 나선다.

휘오오-.

어슴푸레한 공터를 시린 바람이 훑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적이 드문 시간.

실제로 내가 이 시간에 공터에서 몸을 풀며 누군가와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선객이 있었다.

저물어 가는 달 아래 커다란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꼬맹이.

그제야 나는 칠죄검이 떨린 이유를 깨달았다.

“너 거기서 뭐 하냐?”

“…금발 배드니커?”

미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계속 쳐다보니,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꾸한다.

“…음. 그냥 몸 좀 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생긴 것처럼 거짓말을 더럽게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래…….”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다.

나는 미르를 무시한 채, 이왕 공터로 나온 김에 몸이나 풀기로 했다.

찌뿌둥한 관절을 천천히 풀어 주며 체조를 하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는 너야말로 무슨 일이냐?”

“나도 몸 좀 풀려고.”

“그, 그렇군.”

내 단답에 다시 침묵.

그런데 어째서인지 미르가 우물쭈물하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뭔가 귀찮아질 것 같은 조짐이.’

내가 슬쩍 체조를 멈추고 돌아가려는데.

“…긴장되지는 않나?”

아니나 다를까 미르가 날 붙잡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되물었다.

“무슨 긴장?”

“오늘 특별 시험이 있지 않나……. 여기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 해서.”

그리고 망설이다가 덧붙인다.

“…금발 배드니커, 너도 가문에서 이단아 취급받고 있지 않은가.”

나에 대해 알고 있었구나.

거기에 말투를 보니, 내게 어렴풋이 동질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너랑 비슷하다……. 거인족인데 이렇게 작게 태어나 버렸지. 작은놈, 콩알만 한 놈이라고 형제들은 물론이고 동족들까지 죄다 놀려댔다. 부모님조차 나를 수치로 여겼다…….”

미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커다란 상대를 만나면 몸이 잘 움직이지 않게 됐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상대가 나보다 클수록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고 몸은 얼어붙는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툭하고.

미르의 턱 끝에서 방울진 눈물이 떨어졌다.

“…그 소용돌이 여자의 말대로다. 나는 이번 시험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너희의 짐짝이나 되겠지. 그러니까… 만에 하나의 상황이 된다면, 나를 버려라.”

“…….”

얼추 알겠구만.

그토록 강한 힘을 가졌는데도 미르의 성적이 그 모양이었던 이유와.

거대 지네와의 싸움에서 한심한 꼴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던 까닭까지.

다시 한번 바람이 불었다.

한겨울의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멍하니 서 있던 미르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황급히 얼굴을 닦았다.

“모, 못 들은 걸로 해라!”

“뭐?”

“긍지 높은 거인족이자 이미르의 말예인 내가 이런 꼴을 보였다는 건-.”

“야, 그거 알아?”

서리거인 이미르.

나는 기억 속 저편에 파묻혀 있던 그 단어를 끄집어내며 입을 열었다.

“서리거인 이미르가 저주에 걸려서 작아진 일화.”

“…으응?”

미르가 눈가를 북북 문지르다 나를 보았다.

“난 어렸을 때 신화나 영웅 서적을 많이 읽었거든. 이미르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봤어. 그중 한 일화인데, 한 번은 장난꾸러기 신 때문에 이미르가 작아진 적이 있었지.”

“작아졌다면… 나만큼이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만큼이나.”

“오오…….”

“이미르가 상심한 채 들판에 누워 있는데, 그때 개미 한 마리가 말을 걸더래.”

- 위대한 서리거인이시여. 머지않아 태풍이 들이닥칠 텐데, 그럼 이 들판이 모두 쓸려나갈 겁니다. 부디 막아 주실 수 있나요?

“이미르는 고개를 저었어.”

- 네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주먹보다 훨씬 작아졌다. 도무지 거대한 태풍을 막을 자신이 없구나.

- 하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거대하신걸요.

미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냐?”

“개미의 시점에선 인간이건 거인이건, 아무튼 엄청 커다랗게 보인단 거지. 구름 너머의 봉우리 중 뭐가 가장 높은지 알 게 뭐야? 아무튼 높다는 것만 알지.”

“으음…….”

“큰 관계는 없지만, 이미르는 그 말에 문득 깨달았어.”

- 지금의 나는 확실히 작아졌다. 그래서 그게 뭐? 개미가 보기에 나는 여전히 크다. 그렇단 건 크기란 결국 상대적인 것이고, 중요한 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다.

- 나는 비록 작아졌지만, 마음까지 작아진 건 아니다.

미르가 멍한 목소리로 내 말을 따라 했다.

“…마음까지 작아진 건 아니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 나간 다음 태풍을 맨손으로 찢어발겼지. 장난꾸러기 신의 소행답게 덩치는 작아졌지만, 힘만큼은 여전했던 거야.”

미르는 어느새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너는 거대 지네의 꼬리치기를 맨몸으로 버텼잖냐. 마나도 가호도 없이 맨몸뚱이로. 그거, 이 수련회에 있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정말이냐?”

“그래, 교관까지 싹 다 포함해도 없을걸?”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특별 시험에서 보여 주자고. 너랑 나, 집안에서 무시받던 이단아의 유쾌한 반란을.”

“유쾌한 반란……!”

미르가 양손을 붕붕 흔들었다.

꼭 흥분을 감추지 못한 꼬맹이 같다.

“고맙다! 금발 배드니커!”

“내 이름은 루안이야.”

“아……!”

미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난 미르 자이언트다!”

“알아. 아무튼 이제 방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눈 좀 붙여라. 너 한숨도 못 잤지?”

“어떻게 알았나?”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앉았어.”

“으, 으음……! 그러겠다! 전력으로 자고 일어나겠다! 고맙다! 금발… 아니지, 루안!”

“전력으로 자진 말고, 눈만 붙이라니…….”

그러나 미르는 이미 떠난 뒤였다.

나는 녀석이 남겨 두고 간 흙먼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단순하기는.”

그렇다.

미르 자이언트는 단순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단순한 녀석의 장점은, 별것 아닌 위로로도 금방 기운을 차린다는 것.

내 엉망진창인 위로로도 저렇게 활기를 되찾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수련회 내도록 쭉 풀 죽어 있었다.

즉 주변에 이런 쉬운 격려조차 해줄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수련회만이 아닌, 인생을 통틀어서 한 명도.

그렇다면 가끔 보였던 자신만만한 태도도 연기가 아닐까?

원래 가진 게 없는 녀석일수록 목소리가 큰 법이니까.

나는 미르가 떠난 장소를 보았다.

이미르의 후손라면 거물 중의 거물이다.

만약 훗날 영웅이 됐다면, 다른 녀석들처럼 내 귀에 한 번이라도 들렸을 텐데-.

나는 미르라는 이름의 거인에 대해서 전혀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미르 자이언트는, 이 수련회에서 죽었던 게 아닐까.

* * *

마침내 아침이 밝았다.

단 하루도 거른 적 없던 새벽 뜀박질이 오늘만큼은 없어서, 영도 전원은 간만에 만반의 상태로 공터로 집합했다.

물론 아직 분위기는 서먹서먹하다.

원래라면 교관이 오기 전까지는 여기저기서 잡담을 나눴는데, 아직은 조 편성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서로 견제하고 있는 느낌.

어쨌든 금방 교관이 나왔다.

오늘도 모습을 드러낸 건 무예선생 후안.

“영도 여러분, 잘 주무셨나요?”

“…….”

무예선생은 대답하지 않는 영도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하하. 확실히 밤잠을 설쳤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그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무예선생이 시험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이번 특별 시험엔 딱히 제한된 범위가 없습니다. 영도 분들은 숲의 어느 곳이건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단, 이번에 교관들은 단 한 명도 투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후안은 특유의 미소를 살짝 흐릿하게 만들며 말했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명심하세요. 배드니커의 수련회는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

“시험 기간은 총 사흘, 다시 말해서 72시간입니다. 또 영도끼리 공격하는 건 룰 위반이며, 적발 시 곧바로 시험 탈락 및 감점 조치까지 취해질 겁니다. 그럼 각 조장들은 제게 구매 리스트를 제출하고, 물품을 배급받으세요.”

그 말에 각 조의 조장이란 것들이 앞으로 나섰다.

카론이나 헥토르처럼 성적 좋은 놈들이 대부분 조장을 맡은 듯했다.

“루안.”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세렌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이 녀석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훨씬 가라앉아 있었고…….

무엇보다 항상 야, 너라고만 부르던 녀석이 내 이름을 부른 게 어색했다.

“왜?”

“이제부터가 진짜야.”

“뭐?”

세렌은 아까 교관이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말투가 어쩐지 묘했다.

분명히 같은 말이었지만, 어쩐지 담긴 뜻은 전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심해. 그리고 방심하지 마.”

“당연히 그럴 거야. 그런데 너 여유 넘친다? 남 걱정할 시간도 있고.”

세렌은 내 농담에도 평소처럼 반응하지 않고,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죽지 마.”

“…….”

나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이건 단순한 걱정인가?

이번 특별 시험이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하다고?

뭔가 다르다.

어쩐지 나는 이 순간, 스승님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되물을 시간은 없었다.

금방 내 차례가 왔고, 나는 후안에게 리스트를 제출하고 물품을 받았다.

어쨌든 다시 뒤를 봤을 때, 세렌은 이미 없었다.

“…….”

잠시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약 일주일 동안, 에반을 비롯한 영도들과 어울리며 많이 긴장이 풀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거다.

- 20퍼센트.

- 당장 이곳에 있는 네놈들 중에서, 최소 6~7명은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어느 순간 수렵선생이 했던 경고에 대해선 모두 잊게 됐다.

아마도, 세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수련회에 참가하고, 세렌의 표정은 항상 진지했다.

저 녀석은 뭘 알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아마 지금의 나로선 무엇을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겠지.

후안이 빙긋 웃었다.

“그럼 제2차 특별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선 절대 잊을 수 없는 특별 시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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