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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76화 (76/172)

76화

나는 오두막 내부를 살펴봤다.

좁아터진 오두막엔 가구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좁은 굴뚝과 이어진 지저분한 벽난로 하나뿐.

숨을 만한 곳은 없지만, 일단 화안을 켜서 한번 더 주변을 확인했다.

수상한 기척은 없고.

나는 시체를 더 조사하기에 앞서 조원들을 불렀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조원들이 오두막으로 다가왔고.

“욱… 피 냄새?”

“이건…….”

“…팜?”

이 녀석들도 팜의 시체를 확인하게 됐다.

“오래되지는 않았어. 아침에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봤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죽은 거야?”

“그래.”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파, 팜이 죽었을 리-.”

“입 닫아, 에반 헬빈.”

내가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니 에반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럴 걸 예상 못 했어? 설마 배드니커의 수련회를 피크닉 따위로 여긴 건 아니겠지. 교관들은 분명 처음부터 말했어. 영도 중 누가 죽건 이상할 건 없다고.”

“그건……! 그렇, 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에반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의 패닉은 번질 우려가 있다.

여러모로 에반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따뜻한 위로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미르, 일단 주변을 한번 더 체크하고, 누구 오는 놈 없는지 확인해 줄래?”

“음. 알겠다.”

그나마 미르의 정신이 가장 멀쩡해 보였다. 살아온 환경 때문인지, 거인이라는 출신 때문인지.

저 녀석은 피에 거부감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본격적으로 시체를 조사했다.

팜의 얼굴엔 굳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거의 반항하지 않은 것 같은데…….’

팜은 이래 보여도 영도다.

게다가 배드니커의 수련회에 자원했을 만큼 담량이 큰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이,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하고 겁에 질린 채로 죽었다…….

정체 모를 위화감.

그리고 시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그 위화감은 확실한 형체를 갖춰갔다.

“저기요. 그렇게 뒤적거린다고 뭔가 나오나요?”

“대충은. 일단 몬스터의 소행은 아냐.”

내 말에 둘의 표정이 단숨에 바뀌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당신이 말했잖아요? 조들끼리 서로 공격하는 건 룰 위반이라고. 교관진도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죽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냐. 극단적인 예시지만,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죽였을 수도 있잖아.”

“…….”

샤를이 시체를 보더니 말했다.

“…살인 사건이라는 근거는요.”

나는 사실 살인 사건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몬스터보단 사람이 죽였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어쩐지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꺼림칙한 점이 많다.

“몬스터가 죽인 시체치고는 너무 깨끗해.”

이게 마물의 소행이라면 팜의 시체는 훨씬 더 끔찍한 꼴이었을 것이다.

시체가 아니라, 사람 조각 몇 개가 떨어져 있었겠지.

그러나 이어지는 의문은 대체 누가, 라는 것이다.

우선 영도라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카론이다.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녀석.

그 녀석이라면 팜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속단하긴 이른가.

아직은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에반, 팜과 같은 조였던 게 누군지 기억나?”

“…응.”

“말해 봐.”

“덴마 갈가르, 바질 쥴, 그리고…….”

에반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헥토르 배드니커.”

* * *

나비의 숲에 진입하고 약 열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헥토르 배드니커는 위화감을 느꼈다.

‘몬스터의 수가 너무 적은데.’

헥토르는 나비의 숲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숲이 가진 특징은 물론이고,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나 수에 대해서도.

외가에서 정보를 제공해 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헥토르는 수련회의 특별 시험 중 하나가 나비의 숲에서 진행되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교관들의 감시 영역은 캠프를 기준으로 약 15킬로미터.’

사실 영도들 수준으로는 이 범위 밖을 벗어나기 힘들 터다.

수련회 캠프를 기준으로 결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범위를 벗어나려고 해도 자연스레 다시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

결계를 친 건 다름 아닌 대마법사 아사드,

아무리 뛰어난 가호를 지녔어도, 영도 레벨로는 죽었다 깨도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쪽도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바질 쥴.

비슷한 나이대인데도 벌써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난쟁이 영도가 말했다.

“고작해야 나비를 잡는 거니까 괜찮겠지. 굳이 따지자면 수렵보단 채집이니까.”

“음…….”

헥토르가 이번 시험의 타깃으로 정한 건 나비다.

물론 평범한 나비는 아니고, 스칼렛플라이란 이름의 희소 나비인데……. 이놈은 나비의 숲에서 극소수만 존재하는 개체다.

여타 나비와 차이점이 있다면, 발광할 때 내뿜는 색이 핏빛처럼 붉다는 것.

거기에 스칼렛플라이의 인분은 마도학이나 연금술에 사용하는 희귀 재료이며, 외관 또한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워서 깔끔히 박제한 사체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문제는 어떻게 발견하냐는 것인데.’

이 넓고 어두운 숲에서 스칼렛플라이를 발견하는 건 어렵다.

물론 헥토르는 한 가지 정보를 더 알고 있었다.

일몰.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스칼렛플라이의 광채는 가장 강해진다.

제법 떨어진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물론 그 강렬한 발광은 10분도 되지 않은 채 사라지지만…….

그 때문에 숲에 진입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비가 가장 많은 장소를 찾는 데에 투자했다.

그리고 일몰 때 스칼렛플라이를 발견했다.

예상 밖의 상황은 그때 벌어졌는데, 발견한 붉은 광채가 두 개였던 것.

한곳에 죄다 몰려갔다가 놓치면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헥토르는 조를 두 개로 나눠서 각기 다른 광채를 추적하도록 지시했다.

“너무 깊숙이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으니 별일 없을 거다.”

“그럼 좋겠지만…….”

바질 쥴은 헥토르가 알고 있던 난쟁이의 선입관을 많이 깨부순 영도였다.

이 영도는 여타 난쟁이처럼 무례하지 않았고, 호탕하지도 않았다.

성격은 기본적으로 냉정, 침착하며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고수한다.

단점이 있다면 걱정이 과할 정도로 많다는 점.

헥토르는 호들갑이 심한 조원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 대신 품에 간직하고 있는 스칼렛플라이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 숲에 스칼렛플라이보다 귀한 건 없어.’

그러니 그 건방진 카론 우드잭은 물론이고, 굿스프링- 그리고 루안까지 이길 수 있을 거다.

‘…루안 배드니커.’

막냇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니, 헥토르의 가슴에 호승심이 들끓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헥토르는 루안을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이 수련회에서, 당당히 루안을 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어째서인지 루안은 이 수련회에 진심으로 임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 진면목을 경험한 헥토르로선 답답할 지경이다.

카론 우드잭?

놈이 우수한 건 물론 인정한다.

만약 그 사건을 겪지 않고 마주했다면 열등감을 가졌을지도.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한 괴물을 만났다.

고작해야 영도 사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놈 따위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왜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지는 의문이다만…….’

루안이 본 실력을 발휘할 생각만 있었다면, 저 건방진 하이드의 독남은 감히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텐데…….

“…헥토르.”

그때 바질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헥토르는 슬그머니 눈을 뜨며 대꾸했다.

“나도 안다.”

수풀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느껴지는 기척으로 봐선 다른 조원- 팜과 덴마는 아닌 게 확실하다.

헥토르는 검을 뽑았다.

키에엑!

동시에 수풀을 가르고 몬스터가 등장한다.

꼭 늑대처럼 생긴 몬스터였는데, 눈이 세 개였고 이빨은 괴이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몬스터를 본 헥토르의 표정이 설핏 굳었으나, 곧 검을 휘둘렀다.

늑대는 검은 핏물을 흩뿌리며 쓰러졌다.

‘…생각보다 질긴데.’

마나를 주입하지 않았다면 검이 근육이나 관절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

“여,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것이 배드니커가의 천재 헥토르의 검술…….”

바질이 호들갑을 떨며 감탄했으나, 헥토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눈가를 좁혔다.

‘…늑대?’

나비의 숲엔 늑대도 산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괴이하게 생긴 늑대형 몬스터에 대해선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외가의 정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나비의 숲을 샅샅이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방금 검술이 혹시 그 유명한 잔영검-.”

“바질, 너도 무기를 꺼내라.”

“예?”

“더 온다.”

쿠르르……!

동시에 숲 전체가 떨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감이 둔한 바질도 그 사실을 깨닫고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 이게 대체 몇 마리-.”

최소 수십 마리.

물론 알아 봤자 겁만 더 먹을 것 같아서 육성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바질은 전투원이 아니야.’

물론 아예 못 싸우는 건 아니지만, 전투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

즉 실질적으로 이 수십 마리의 늑대를 헥토르 혼자서 몰아내야 한다는 것인데…….

‘쉽지 않겠군.’

뜬금없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투가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따라와!”

“예, 예!”

헥토르는 숲을 질주하면서도 계속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늑대형 몬스터가 나올 수는 있지만.

이렇게 많은 놈들이 고작 영도 두 명을 잡기 위해서 달려드는 건 명백히 이상한 일이다.

카릉!

하늘에서 떨어지듯 늑대가 등장했다.

나무 위에서 떨어진 건가?

헥토르는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스걱!

“헤, 헥토르 경!”

“계속 달려!”

이대로 쭉 도망칠 수는 없을 거다.

숲이란 지형에서, 네발 달린 짐승보다 빨리 도망칠 수는 없다.

헥토르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나마 적절한 곳을 발견했다.

거목 뿌리가 사방에 얽혀 있어서 움직이기 힘든 지형.

저곳이라면 그나마 사방으로 포위당할 일은 없다.

‘도망칠 곳도 없다는 게 흠이지만.’

헥토르가 입가를 비틀었다.

어차피 이놈들을 모두 못 죽이면 죽는 건 똑같다.

“바질, 널 돌볼 여유는 없을 것 같다. 알아서 살아남도록.”

“…아, 알겠습니다.”

헥토르가 할 수 있는 배려는, 그나마 적이 많이 몰려오는 쪽에 서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바질도 패닉에 빠지지는 않고 헥토르의 지시에 따랐다.

컹!

동시에 늑대 무리가 들이닥쳤다.

* * *

얼마나 벤 거지?

헥토르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핏물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바질은…….’

옆을 보니, 엉망인 꼴을 하고 있기는 해도 살아 있기는 했다.

“후우우…….”

헥토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었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크르릉…….

늑대 놈들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몬스터란 놈들이 공격하지도 않은 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모습은 어쩐지 섬뜩했다.

‘덕분에 이쪽은 쉴 시간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뭘 기다리는 거지?

“헥토르 배드니커, 위험해 보이는군.”

그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재수 없는 얼굴이 보였다.

“…카론 우드잭.”

“흠. 말할 힘 정도는 남아 있나?”

헥토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순간 갑자기 등장한 모습을 보니,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추측이 떠올랐다.

“…설마 이 늑대, 네가 다루는 거냐?”

“글쎄. 하지만 이 상황을 바꿔 줄 수는 있지.”

“무슨 말이냐.”

카론이 턱을 괴며 말했다.

“거래다, 헥토르 배드니커. 소지하고 있는 포인트를 모두 넘기면 구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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