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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78화 (78/172)

78화

우리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곳이 안전한 장소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모든 장소가 위험하다면, 그나마 추위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여기요.”

샤를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싶었는데 포션이었다.

“이걸 왜?”

“쓰시라고요……. 지금 그쪽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거든요?”

나는 내 모습을 한번 내려다봤다.

악마가 내뿜는 불꽃 때문에,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됐으니까 넣어 둬. 이 정도면 침 바르면 나아.”

염화제일공의 회복력 때문에 이 정도 화상은 며칠이면 낫는다.

피부가 좀 쓰리긴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고.

내 생각대로라면 저 포션을 쓸 기회는 앞으로 숱하게 찾아올 거다.

이런 데서 낭비할 순 없지.

“허세 부릴 때가 아니잖아요.”

“루안, 우린 괜찮으니까 그냥 써.”

“됐다니까.”

“나중에 다시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예요?”

“그러시든가.”

“흥.”

샤를이 코웃음을 치며 포션을 다시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이거 배드니커에서 벌이는 깜짝 쇼 같은 건 아니죠?”

여전히 안색이 좋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은 샤를이 나를 보며 말했다.

재밌는 추측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어떤 미친 가문이 영도를 단련시킨답시고 악마를 데려오겠냐.”

“그렇죠. 그래도 배드니커라면 혹시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 가문 취급이 그 정도야?”

내 물음에 대답한 건 에반이었다.

“배드니커의 지하실엔 생포한 악마가 득실거린다느니, 그놈들을 고문한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더라.”

“나도 들은 적 있다!”

“헛소문이네.”

“…그쵸.”

물론 그와 별개로 본가 지하실에 모종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맞는 듯하지만…….

아무리 배드니커가 살짝 맛이 간 가문이어도, 수련회의 난도를 올리기 위해 악마를 풀어놓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실제로 가능 여부를 떠나서, 가주의 성향 때문에 안 된다.

‘그 철혈공이 자기 영지 내에 있는 악마를 살려 둔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짚이는 게 없지는 않다.

배드니커엔 아직 배신자가 남아 있으니까.

하리바는 단순히 이용만 당한 머저리일 뿐, 일의 진상을 꾸미던 흑막은 아직도 가문 내에서 숨죽이고 있을 터.

그놈이 이번에야말로 훨씬 음험한 계획을 짜서, 시행한 거라면 가문 영지에서 이 지랄이 난 것도 말이 안 되진 않는다.

“…하아. 배드니커의 영지는 교단에게서 가장 안전한 땅으로 꼽히던데, 설마 그런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요.”

“그러게.”

전생에서도 이런 사건이 있었나?

일단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나는 차분히 전생과 지금의 행적을 비교해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보석 산맥에서 오셀을 죽이고, 본가에서 하리바를 쓰러뜨린 것.

이러한 활약이 마치 벌집을 들쑤신 꼴이 됐을 수도 있는데…….

연이어 떠오른 건 팜의 얼굴이었다.

내가 괜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고, 그럼 팜도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관점에 따라선, 내가 팜을 죽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어어어어어…….

그때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우리는 바로 근처에서 들린 것처럼 숨을 죽였다.

방금 싸웠던 악마는 그만큼 강했다.

“…이제 어떡하죠?”

샤를이 내 의견을 물었는데, 평소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

여태까지는 “그래. 네놈 의견도 한번 들어 보자꾸나.” 하는 말투였다면…….

지금은 아예 책임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까지 내게 떠넘기려는 듯한 느낌.

내가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대꾸하지 않으니, 샤를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여기서 대기하는 건 어때요? 아무리 숲이 넓어도 여긴 배드니커의 땅이잖아요. 분명 가문에서 조만간 대처해 줄 거예요.”

“글쎄…….”

나도 그러면 좋겠지만… 저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 같다.

지금 이 사달을 벌인 건 만만한 놈들이 아니다.

무려 배드니커에 잠입할 만큼의 실력을 갖췄고, 그러면서도 꼬리를 밟히지 않을 만큼 심계가 깊다.

그런 놈들이, 다름 아닌 배드니커의 안마당에서 이만한 사건을 일으켰다면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을 터.

아마 지원이 온다고 해도 제법 시간이 걸릴 걸 알고 있고, 그 시간 동안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게 아닐까?

…물론 그러한 진상을 다 밝히면 이 녀석들 정신 상태만 더 망가질 것 같아 입을 닫았다.

“뭐,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말은 왜 더듬냐.”

“항상 말 많던 사람이 갑자기 입을 닫으니까 그렇죠!”

“…….”

그러고 보니 팜의 시체를 본 이후엔 내 말수가 좀 준 것 같기는 하다.

“으음… 뭐라고 물었더라? 내 생각?”

“네.”

그렇게 원하니 들려줄까.

“난 다시 수색을 시작했으면 하는데.”

“…농담이죠?”

“아쉽지만 아니야.”

샤를이 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악마들의 울음소리 못 들었어요?”

“들었지.”

“그런데도 나가겠단 말이에요?”

“응.”

“왜요.”

“그편이 살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 못 들어 봤어?”

“못 들었어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생전 처음 듣는데요.”

그런가?

하긴. 셋째 사형이 자주 입에 말하던 헛소리는 나로서도 처음 듣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엔 딱 적절한 말 같다.

악마의 머릿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최소 수십 마리 단위일 터.

설령 내가 백화 상태에 진입한다고 해도 그 악마를 모조리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 계속 숨어 있으면 하루 정도는 안전하겠지. 운이 좋다면 이틀까지도.”

나는 잠깐 말을 멈춘 뒤 물었다.

“그런데 그 이후는?”

“네?”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일주일이 될 때까지 악마 놈들이 우릴 발견하지 못할 거 같아?”

“…그건.”

“언제가 되었든 한 번은 악마와 더 싸워야 해. 그때 적은 한두 마리가 아니겠지.”

나는 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살고 싶으면 이쪽도 쪽수는 맞춰야 한다고. 아직 살아 있는 영도가 한 명이라도 더 있을 때 말이야.”

이제는 시험이니, 경쟁이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사실 지금 내가 제일 궁금한 건 다른 영도들의 상황이 아니었다.

‘교관들.’

대사범을 비롯한 교관들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 * *

교의선생 주니앙.

태양교의 정식 사제이며 이단심문관.

그리고 배드니커의 대사범.

사실 그녀는 대사범 중에서도 특수한 케이스다.

대부분의 대사범이 배드니커에 오게 되면, 보통 바깥에서 맡았던 직책 및 단체와는 결별하는 게 일반적이다.

주니앙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태양교의 성직자이며, 이단심문관이었다.

사실 주니앙이 배드니커의 대사범 자리를 받아들인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악마조차 두려워한다는 배드니커의 당대 가주 철혈공.

그 사내와의 개인적 친분 형성 겸 실력을 보기 위해서.

물론 철혈공은 무척 바쁜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그가 대가문의 가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는데, 듣기로 1년에 가문에 머무르는 시간이 한 달도 되지 않는다더라.

그 때문인지 주니앙도 첫 만남 이후로는 한동안 철혈공을 보지 못했다.

목적을 이룬 건 대사범이 되고 약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어쩌다 보니 철혈공과 악마 사냥을 나서게 됐다.

이미 악기가 깊게 침식한 회색빛 대지.

악마와 마물의 영역이 된, 일명 죽은 땅.

원래는 태양교의 이단심문관에게 주어진 임무였지만, 도중에 철혈공이 합류하는 형태가 됐다.

거기서 주니앙은 알게 됐다.

철혈공은 악마 사냥꾼 따위가 아니었다.

“…누가 악마인지 알 수 없군.”

옆에 서 있던 이단심문관 중 한 명이 그리 중얼거리다가 주의를 받았다.

주니앙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사냥을 위해선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각종 무기와 도구의 완비.

목표물에 대한 정보 수집.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한 도주책까지.

이유는 간단하다.

숙련된 이단심문관이라고 해도 교단, 혹은 악마와의 정면 대결에선 승산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철혈공이 보여 준 광경은 사냥이라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악마 이백 마리를 십 분 만에 몰살시키는 행위를 사냥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여긴 이상 없습니다.”

기사 한 명의 보고에 주니앙은 고개를 들었다.

송곳니기사단 출신이다.

이름은 기억 안 난다.

“어쩌시겠습니까? 이 이상 찾아 봤자 의미는 없을 듯한데…….”

“…….”

기사가 은근슬쩍 피로를 토로했다.

주변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

‘여기까진가.’

대사범이란 명목으로 기사를 지휘할 수 있는 한계선은.

주니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만 복귀하십시오.”

“교관님은?”

“전 조금만 더 둘러보겠습니다.”

헛수고하시는군.

기사는 표정으로만 그렇게 말한 다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겠습니다.”

떠나는 기사들의 등 너머로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이게 뭔 개고생인지 모르겠네.”

“숲에 이상 징후가 있다니……. 저 여자는 아사드 님의 결계에 대한 것도 듣지 못한 건가?”

“이단심문관은 원래 별종이 많다잖아.”

“…….”

주니앙의 귀엔 그 낮은 속삭임이 똑똑히 들렸지만, 딱히 그들을 불러 따지거나 하지 않았다.

숲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진다는 핑계로 저들을 끌어들였으니 저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

물론 주니앙은 진짜 생각을 밝히지는 않았다.

밝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배드니커의 땅에서, 악기가 느껴진다는 미친 말을 누가 믿겠나.

“…흠.”

주니앙이 잠시 고개를 들었다.

우거진 숲, 어둡고 침침한 하늘.

비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개운해질까.

“…아톤이시여.”

이 모든 것이 그저 기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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