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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85화 (85/172)

85화

살아남은 영도와 합류했다.

당연하지만 이 녀석들 꼴은 말이 아니었다. 쓰레기장 더미를 사흘 밤낮 정도 전전하면 이 꼴이 되지 않을까.

이 녀석들 몸에선 악취 대신 피와 땀 냄새가 풍겼지만.

“…카론.”

“여기 있었나, 제로스.”

제로스 실베르.

카론 옆에 붙어 다니던 녀석이다.

멋대로 반입한 바깥 물품을 영도들한테 팔아 댄, 카론의 포인트 확보 계획의 핵심이었던 영도.

“신바는 어디 있나?”

“모르겠어. 그래도 죽지는 않았을 거야. 질긴 놈이니까.”

“그런가.”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에반은 카리스의 상처를 살폈다.

“…에반?”

“그래. 나야.”

“…염병할 환각이군. 뒤지기 직전이라면 끝내주는 미녀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말하는 걸 보니 죽을 상처는 아니었지만, 저대로 방치하면 위험하다.

에반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샬르에게 받아 뒀던 포션을 건넸다.

“고마워.”

헥토르는 영도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헥토르 파벌에 속해 있었던 귀족 중 한 명 같다.

내가 시선을 보내니 그 녀석과 함께 다가와서 소개해 준다.

“이쪽은 에디. 피스콜 가문의 적자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루안 님.”

“루안이면 돼. 그 느끼한 존댓말도 집어치워 주면 고맙겠고.”

그 말에 에디가 헥토르를 보았다.

그리고 헥토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말했다.

“알겠어.”

“세렌은 어때?”

“지금은 기절한 상태야.”

축 늘어진 세렌 옆을 영도 두 명이 돌봐 주고 있었다.

헥토르가 말했다.

“그렇게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왜 진작 쓰지 않았던 거지?”

“글쎄요… 아마 조건이 있거나, 리스크가 큰 가호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얘기는 좀 있다 할까? 여기도 안전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 일단 우리 조가 찾아 놓은 거처가 있으니 거기로 가자.”

우리는 기절한 세렌과 다친 카리스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에디 조가 찾아 놨다는 거처는 커다란 바위의 뒤편이었다.

일단 위장을 위해 그쪽 지형을 조금 파 놓은 상태였는데, 그 근처에 수풀로 가려 두니 그럭저럭 위장이 됐다.

거기서 에디 조가 나눠진 식량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먹을 게 많네?”

“포인트를 여기에 많이 투자했거든.”

그래 봤자 육포와 물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것도 귀중하다.

“…후우. 어떻게 살아는 남았군.”

에디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배가 부르니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는 모양이다.

“헥토르 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도 파악 중이다. 하나 확실한 건, 한가롭게 시험이나 치를 때는 아니라는 거지.”

“…….”

나는 분위기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끼어들었다.

“너희는 어쩌다 그 꼴이 된 건데? 7명이나 있었던 걸 보면 습격받기 전부터 뭉쳐 있었던 것 같은데.”

“…맞아. 도중에 합류한 건 저기 있는 제로스뿐이고 우리는 원래 12명이었어.”

“3개 조가 같이 다녔다고?”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헥토르도 처음 듣는 눈치로 보였고.

에디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헥토르 님. 그래도 조장의 지시 사항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괜찮다. 애초에 특별 시험에선 서로 관여하지 말자고 내가 먼저 말했으니까. 그보다 조장이라면?”

에디의 시선이 기절한 세렌에게 향했다.

“세렌 굿스프링인가?”

“네.”

“왜 그런 작전을 짠 거지?”

“나비의 숲에 대해 잘 안다고 했습니다. 이 숲에 [여왕나비]라는 몬스터가 있는데, 그걸 잡으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여왕나비? 나비도 그런 게 있어? 개미처럼?”

“몬스터다.”

슬쩍 헥토르를 보니 녀석이 설명해 줬다.

“숲 어딘가에 그런 개체가 있다더군. 숲에 있는 나비 대부분은 여왕나비가 낳는다고 한다. 가문에서도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서식지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긴 했지만, 헥토르 님에게 그게 진실이란 얘기를 들어서 세렌 님의 말도 믿었죠.”

“그 말을 믿고 3개 조나 모였다고?”

에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특별 시험에서 반등을 노린 영도는 많아. 세렌 님의 말에 반신반의한 건 맞지만, 그래도 굿스프링이잖아? 아예 헛소리할 것 같지는 않았어. 물론… 이후엔 뭔가 기묘한 일이 많았지만.”

“묘한 일이라면?”

“그 전에 배드니커인 두 분한테 물을 게 있습니다. 세렌 굿스프링이 이 숲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요?”

헥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가호식이 아니었다면 굿스프링의 핏줄이 본가에 올 일도 없었겠지. 루안과 혼담을 나눴을 때도 구두로만 말이 오갔으니까.”

“근데 그건 왜?”

“세렌 님은 분명 여길 처음 왔을 텐데 뭔가 익숙해 보였어.”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했다.

“출현하는 몬스터에 대해서도 잘 알더라.”

“개천을 처음 발견한 것도 세렌 님이었어.”

“그리고 숨겨져 있던 묘한 제단도 찾았지.”

마지막 말이 특히 내 주의를 이끌었다.

“제단?”

“거기서 처음 듣는 언어로 뭐라 중얼거리더니, 이제 됐다고 했지. 그리고…….”

“또 뭐?”

“…시험 시작 전에, 최대한 넉넉하게 식량을 사야 한다고 말한 것도 세렌 님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나는 내심 불만스러웠는데.”

“지금 상황에선 신의 한 수가 됐군.”

역시 세렌은 이 사건이 터질 걸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로?

‘계획을 엿들은 건가?’

그건 아닐 것이라고 내 직감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근거 없는 예상이지만…….

세렌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란, 추론 따위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기절한 세렌을 곁에서 보살피고 있는 여자 영도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몸이 얼음장 같아. 꼭…….”

시체 같다.

대충 그런 말을 하려는 거겠지.

이럴 때 자주 쓰이는 비유지만, 실제로 시체를 본 영도들은 이제 그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됐을 거다.

나도 세렌을 봤다.

원래도 피부가 하얀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창백할 지경이다

“어디 보자.”

나도 세렌의 손목을 살짝 잡아 봤다.

겨울 시냇물에 손을 담근 것 같은 냉기가 느껴졌다.

‘음기가 폭주하고 있구만.’

겉으로 보기엔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지만.

방금 피를 한 사발 흘렸던 카리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다.

이대로 놔두면 세렌은 몇 시간 내로 죽는다.

나는 다시 헥토르가 있는 곳을 보았다.

지금은 에디, 제로스와 함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듯했다.

“너희는 이제 어쩔 거지? 우리는 수련회 캠프로 향하고 있는데.”

“캠프입니까…….”

에디가 쓴웃음을 지었다.

“힘을 보태고 싶지만… 솔직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런가. 그럼 우리 거처의 위치를 말해 줄 테니, 거기로 가서 영도들과 합류하고 있어라. 모여 있는 게 유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카리스가 에반을 보며 말했다.

“에반, 너도 무리하지 마라.”

“네 몸이나 잘 챙겨.”

“난 이제 멀쩡해. 포션 약빨 죽여주더라. 뭐하면 나도 합류하리?”

나는 막 떠나려던 녀석들에게 말했다.

“세렌은 우리가 맡아도 될까?”

“응?”

“내가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필 세렌의 몸을 망가뜨린 게 냉기인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내 화기로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을 테니.

거기에 세렌은 치료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전력이 될 거다.

그건 하리바와 싸울 때 합을 맞춘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알겠어.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잘 부탁해.”

“참. 이거는 너희가 갖고 있는 게 좋겠다.”

떠나기 직전, 에디 일행은 우리에게 식량과 포션을 건네줬다.

육포 몇 봉지와 수통.

그리고 포션 다섯 병이다.

“오. 잘 쓸게.”

“조심해.”

에디 일행이 떠나고.

나는 주변 녀석들한테 말했다.

“잠깐 집중 좀 할 테니까 주변 경계 좀.”

“얼마나 걸리지?”

“글쎄… 최소 30분, 넉넉잡아 1시간?”

“알겠다.”

그리고 나는 세렌의 상단전, 즉 이마에 손을 얹은 다음 눈을 감았다.

시린 냉기가 내 손을 파고들었다.

그 순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순간적으로 손끝을 움츠릴 뻔했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나는 화기를 억지로 밀어 넣으며 냉기를 몰아냈다.

본래 남의 혈도를 탐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세렌이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라 거부 반응은 없었다.

‘근원지를 찾아야 하는데.’

멀쩡한 인간의 몸속이 이런 꼴일 리는 없으니, 냉기를 쏟아내는 근원이 있을 거다.

중단전이었으면 진작 죽었을 테니, 아마 하단전 근처가 아닐까 싶은데…….

머리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먼 길이 되겠지만, 가장 냉기가 취약한 부분이 아니라면 이렇게 원활히 진입하지도 못했을 테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어쨌든 나는 화기를 불어넣으며 꾸준히 아래로 향했는데, 중간 시점에선 막힐 수밖에 없었다.

딱 그 시점부터 냉기의 기세가 몇 배는 강해졌기 때문.

이 앞은 그야말로 북풍한설이라, 지금 내가 가진 화기로는 도무지 진입할 엄두가 안 났다.

‘어쩌지?’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다른 방도를 찾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다.

좀 무리를 할까 생각한 순간…….

화륵……!

품속에서 불현듯 열기가 느껴졌다.

‘영옥?’

수련회에서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던 이 영약이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깐 당황한 순간, 영옥의 열기는 폭주하듯 내 몸속에 침입하더니 다소 거칠게 나의 화기와 섞였다.

‘세렌의 냉기에 반응한 건가?’

나는 놀라움 속에서도 내력을 다스렸다.

뜻밖의 사태였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덕분에 내 화기의 기세가 훨씬 강해졌으니.

나는 강해진 화력으로 혹한의 추위를 쭉쭉 밀고 나갔고, 곧 냉기의 근원지와 마주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어…….’

세렌의 육체, 가장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음기가 아닌 양기였던 것.

‘…….’

그만한 냉기의 바람을 일으켰으면서, 진력盡力은 양기라니.

희한한 일이다.

화륵!

어쨌든 나는 마침내 냉기의 핵을 녹였다.

‘…일단은 끝.’

뜻밖의 수확도 거뒀다.

방금 일로 영옥이 제법 많이 녹은 것이다.

10퍼센트 정도는 줄어든 것 같은데, 녹아내린 영옥은 그대로 나의 내력이 됐다.

세렌의 냉기와 뒤섞여서 그런지 통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내력의 두 배쯤 되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영초의 몇 배나 되는 내공을 얻었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일 터.

‘역시 착한 일은 하고 보는 건가?’

세렌도 목숨은 건졌다.

언제 깨어날지는 순전히 이 녀석의 기량에 달린 셈인데…….

“으윽…….”

그 순간 세렌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거렸다.

이윽고 눈발이 내려앉은 듯한 눈썹을 움직이더니, 그 아래에 있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너…….”

“안녕. 살아 있지?”

“…그런 것 같네.”

세렌이 머리를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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