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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04화 (104/172)

104화

루안 배드니커가 모종의 사연으로 오늘 대련을 기다렸던 것처럼.

수렵선생 탄코 또한 이 시간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루안 이상으로 말이다.

평소 이 대련에서 선공을 택하는 건 언제나 탄코였다.

루안이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즉시 짐승처럼 달려들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

탄코의 기감은 야생동물 못지않다.

대단히 발전된 감각은 논리적인 검증 없이 위화감을 잡아냈고, 탄코로 하여금 돌진을 망설이게끔 해줬다.

물론 설명 못 할 위화감이었기 때문에 탄코도 확신은 못 하는 상태.

단순한 착각인가?

탓.

그 순간 루안의 신형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치달았다.

뻗어오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쳐내며, 탄코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루안의 움직임이 어제와는 명백히 다르다.

위력이나 속도도 올랐지만, 탄코가 주목한 건 동작에서 군더더기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감탄이 나올 만큼 매끄러운 정권 지르기였다.

‘그렇다면.’

탄코의 눈빛이 바뀌었다.

자잘한 위화감, 의문은 일단 접어 두고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파파팟!

근거리에서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는다.

탄코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자연스레 양팔을 쓰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만큼은 상대가 가르쳐야 할 영도라는 사실도 잊었다.

어쩐지 저 동부의 대초원을 누비며 대전사로서의 검증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탄코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느끼게 됐다.

‘힘든데…….’

상대와의 초근접전이 부담스러워졌다.

이 거리는 탄코가 수십, 수백 번의 사투 속에서 깨달은, 그가 가장 선호하고, 또 자신 있어 하는 거리였다.

상대가 누구건 이 거리까지 접근하면 때려눕힐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두 발자국, 가능하다면 세 발자국 정도로 간격을 조정하고 싶다.

빠악!

그러한 조급함은 곧 다음 공세로 이어졌다.

탄코의 돌려차기가 루안의 가슴에 명중한 것이다.

“……!”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직전에 양팔을 교차시켜서 방어한 듯하다.

다만 충격만큼은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안의 육체는 지면에서 살짝 뜬 채로 날아갔다.

이 대련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다음 순간 벌어졌다.

허공에서 자세를 취한 루안이 나무에 착지했다.

나뭇가지에 발을 디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무의 겉면에, 그러니까 완전히 가로로 선 채로 일시적인 착지를 한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아래로 쏠리기 직전.

콰지직!

루안의 신형이 번개처럼 탄코에게로 치달았다.

탄코는 추후 인정하게 된다.

이 순간 루안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음을 말이다.

빠각!

반사적으로 뻗은 주먹에 촉감이 느껴진 순간, 엄청난 소리가 났다.

“헉!?”

“뭐, 뭐야……?”

한창 대련에 몰입하던 영도들의 시선이 쏠릴 정도였다.

탄코는 그들을 진정시키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본래 공격이란 함은.

상대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한 채로, 직접 움직여 타격을 주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방금 탄코는 공격한 게 아니다.

그저 정해진 경로에 얹어 둔 주먹에, 루안이 멋대로 와서 부딪친 거지.

‘멋대로…….’

방금 그 기술은 미완성의 기술이었나?

숙련도 부족으로 자신의 속도를 감당치 못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졌습니다.”

흙먼지 속에서 루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탄코는 복잡한 눈으로 그쪽을 보다가 뒤늦게 물었다.

“…괜찮은가?”

“음. 그렇긴 한데.”

루안은 별 탈 없는 얼굴로 일어서더니,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팔이 부러진 것 같은데요.”

* * *

수련회 동안 다친 녀석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퇴소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면 몰라, 그게 아니라면 설령 사지 중 하나를 잃더라도 도중 이탈은 불가능하다.

다친 영도는 교관 동에 있는 의무실로 옮겨지는데… 일단 이곳에서 의원 노릇을 하는 교관이야말로 내 목적이었다.

“안 부러졌어.”

주니앙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척골 쪽에 금이 살짝 간 게 다야.”

“아하.”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까 그냥 오늘은 여기서 쉬어라. 여기서라면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엔 낫겠지.”

“포션은 안 주나요?”

“이래서 도련님은.”

주니앙이 혀를 쯧 차며 말했다.

“포션 한 병이 얼마인 줄은 알아? 이 정도 상처에 쓰는 건 낭비야.”

“그럼 성력으로 치료는요?”

“미안하지만 난 그쪽 소질은 없어.”

하긴.

괜히 이단심문관이 아니겠지.

아마 전투 쪽에 적성이 치중된 인재일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의무실에 침대는 네 개였다.

“한스는 어디 있어요?”

“한스? 아. 그저께 실려 왔던 녀석. 상태가 많이 나아져서 숙소로 돌려보냈어.”

“그렇군요.”

방해꾼은 없다는 뜻이다.

“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약 챙겨 먹고 오늘은 푹 자라.”

“교관님은 태양교 소속의 이단심문관이죠?”

막 나가려던 주니앙이 힐끗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그렇긴 한데, 그건 갑자기 왜.”

“아톤의 신자는 악기에 특히 민감하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군.”

헛소문?

내가 두 눈을 깜박이니, 주니앙이 말을 이었다.

“교단 놈들이 구린 짓을 할 때면 낌새가 느껴지는데, 이단심문관이 되려면 그 냄새를 잘 맡는 법부터 배우게 돼. 뭐… 악기를 많이 경험한 것만큼, 문외한보단 잘 느끼겠지만.”

아하.

“그럼 혹시 이번 수련회에서 그 낌새를 느낀 적은 없나요?”

주니앙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순간, 나는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의구심 섞인 눈동자였지만, 아예 헛소리하는 인간을 보는 시선은 아니다.

역시 이때의 주니앙도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여기선 괜히 많이 떠벌일 필요가 없다.

내 역할은 이 사람에게 아주 약간의 확신을 실어 주는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이번 수련회에 교인敎人이 잠입해 있습니다.”

“…….”

주니앙이 두 눈을 깜박거리더니.

“…하하.”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잘 들으렴, 꼬마야. 난 현직 성직자이자 이단심문관이지만, 동시에 대사범이기도 해. 배드니커가의 사람이라고.”

“…….”

“네가 배드니커의 핏줄이라는 사실에 감사해라. 아니라면 그 모욕에 대한 값을 받아냈을 테니까.”

나는 현직 이단심문관의 서슬 퍼런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제사장이 이곳에서 마왕 소환 의식을 벌일지도 모릅니-.”

“야.”

주니앙이 내 말을 끊었다.

“천지 분간이 안 되는 거냐?”

“…….”

“입조심해. 제사장은커녕 하급 악마 한 마리에도 벌벌 떨 놈이, 뭐? 마왕 소환 의식?”

“선뜻 못 믿으시는 것도 이해해요. 그런데 저도 일단 명령으로 수련회에 잠입한 거라서.”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이군. 대사범인 나한텐 숨기고, 배드니커의 무능아인 너한테만 정보를 공유했다고?”

“…….”

사실 이건 나도 의아한 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니앙에겐 이 작전을 말해도 되지 않았을까?

대사범이라서가 아니라, 태양교 소속이라서 그렇다.

주니앙이 암흑교단의 신자일 확률은 아예 없으니까.

‘체면을 생각한 건가.’

이건 내 예상이긴 한데.

철혈공은 물론이고, 가문까지- 의외로 대사범이란 직책을 그리 중히 여기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아실 텐데요?”

“무슨 뜻이지?”

“가주님의 유명한 격언이 있지 않습니까.”

“…….”

주니앙은 입을 닫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깨달았을 것이다.

- 가능성이란, 피에 잠재되어 있다.

철혈공이 자식에게도 위험한 업무를 내린다는 건 루드빅의 경우로 증명됐다.

그러니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되뇌며 연기하는 것이다.

나는 철혈공에게서 특수한 임무를 받고 수련회에 잠입한 것이라고.

“말뿐인 증명은 집어치우고.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대라.”

“그럴까요? 기사 교관 중 한 명, 수준을 알아볼 수 없는 실력자가 있었죠? 평기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강한 남자가.”

“…….”

“이번 작전에서 저와 함께 잠입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판 다음엔, 그의 동생- 루크의 이름도 팔았다.

주니앙이 입을 닫았다.

그렇겠지.

회귀 전에, 이 말을 한 건 다름 아닌 주니앙이었다.

“교관님이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도 이해는 가요. 배드니커의 땅에 교인, 하물며 제사장과 마왕 소환 의식이라니. 하지만, 제가 본가로 오던 중 교단의 습격을 받았다는 건 알고 계실 텐데요?”

“…….”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배드니커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에요.”

암흑교단이 뭔가 바뀌고 있다.

이놈들이 가진 대륙에서의 위치, 세력의 힘을 생각하면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보석 산맥에서의 사건과 하리바의 일, 수련회에서의 비극까지…….

이 세 개 사건과 모두 연관되어 있던 사람으로서 단언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확실한 건 없죠. 그 때문에 교관님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 그러니 납득 가지 않으신다면, 그냥 절 미친놈 취급하십쇼. 뭐하면 본가에 보고를 올려도 좋고.”

마지막 말은 허세였지만.

“…….”

주니앙이 입을 닫았다.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나는 이 사람이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나올지도.

“…이게 거짓말이라면, 아톤의 이름에 맹세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신의 이름까지 꺼냈다는 건 진심이라는 뜻이다.

주니앙은 저래 보여도 제법 독실한 신자 같았으니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

“거창하지는 않아요. 일단은-.”

나는 주니앙에게 작전 개요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이어 갔다.

* * *

교의선생이자 이단심문관, 게다가 이번 수련회의 교관이기까지 한 주니앙의 협조를 약속받았다.

이로써 승률이 2할은 오른 셈이다.

여기에 루크까지 더하면 제사장을 상대로 충분히 해볼 만하지만…….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여겼다.

제사장에겐 필살기가 있다.

자신을 제물로 마왕을 소환하는 자폭기.

전문 용어로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인데, 그 참사를 확실히 막으려면 한 명 더 필요하다.

물론 그걸 위해선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루크나 주니앙만큼이나 강하고.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

고작 두 개 조건이지만 쉽지는 않다.

일단 첫 번째에서 영도는 싹 다 탈락이다. 가장 강한 카론조차 교관 클래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세렌의 경우엔 한 방 파괴력은 교관 이상이지만, 목숨을 갉아먹는 위험이 있으니 패스하고…….

교관 중에선 인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다.’

나는 수련회 도중에 후안에게 동조하는 여러 명의 교관을 보았다.

그들 전부가 제사장의 하수인은 아닐 테지만, 세뇌 같은 공작을 당했을 가능성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픽 웃었다.

사실 마지막 인물을 누구로 할지는 이미 결정했다.

최소 루크나 주니앙에 버금가는 강자이며, 어떤 의미에선 그들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내.

그 남자의 협력만 얻을 수 있다면 승률은 9할 이상이 될 테지.

문제는, 그 작자가 지금 이 수련회 캠프에 없다는 점인데…….

‘어쩔 수 없지.’

나는 손가락에 채워진 반지를 보았다.

철혈공에게 받은 검은색 반지.

우웅-.

마나를 주입하니 즉시 반응이 왔다.

그리고 일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느 방에 이동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번에 왔을 때보단 좀 어두웠다.

“…뭐냐. 너는.”

콱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이 들린 곳엔 부스스한 기색의 아사드가 있었다.

소파에 누운 채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툭 떨어진 책을 보니 저걸 안대 삼았던 것 같은…….

일단은 다행이다.

반지의 순기능대로 아버지와 만났다면 얘기가 길어질 뻔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걸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이 대마법사 양반이니까.

“안녕하세요.”

“…루안 배드니커.”

아사드가 하품하더니 말했다.

“지금은 수련회 중일 텐데.”

“부탁할 게 있어서요.”

“부탁? 나한테?”

“네.”

“잠깐 수련회 영역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결계 좀 풀어 주세요.”

아사드는 내 말에 눈가를 문지르며 대꾸했다.

“뭘 하려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회귀 전 아사드가 공유해 줬던 정보.

루크 배드니커 이외에 준비했던 또 다른 보험.

-도검선생 칼자크.

그 남자가 내 계획의 마지막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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