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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16화 (116/172)

116화

에디 피스콜은 헥토르의 옆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헥토르 배드니커는 기본적으로 차갑고, 위압적인 사람이 맞지만…….

동시에 같은 귀족의 모범이 될 만큼 예의범절에 엄격하고, 품행이 단정한 남자로도 유명하다.

윗사람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기품, 품격은 물론이고 카리스마와 리더십까지-.

에디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주군으로 삼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헥토르라면 훗날 배드니커의 가주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랬었는데.

이번 수련회를 거치면서 헥토르가 조금 변했다.

그게 긍정적인 방향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헥토르는 분명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처음엔 그 사실에 당황했고, 낯설기도 했지만…….

측근들은 곧 이런 헥토르도 나쁘지 않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오히려 매사 차갑게 굴던 헥토르가 부드러움까지 갖추니, 인격적으로 더 성장한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배다른 형제라고 해도, 혈육은 혈육이란 거겠지.’

사실 처음 루안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헥토르였다.

“죽여도 죽지 않을 놈이다. 별일 없겠지.”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 루안의 실종사 판정이 내려졌을 때 헥토르의 얼굴은-.

“무, 물론입니다. 따, 따라오십시오……!”

마침내 한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기본적으로 심약한 녀석이었으니, 아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테지만…….

에디는 또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힐끗 뒤를 보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세렌이 덤덤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같은 조로 활동하고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에디는 여전히 세렌 굿스프링을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명문가의 자손인 만큼, 은연중에 기품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언가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라 대하기 어렵달까.

“…….”

물론 그건 세렌이 의도한 바였다.

세렌은 되도록 이곳에 있는 영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니 그 별나기 짝이 없는 놈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 건, 분명 계산 밖의 일이었다.

‘그렇게 죽을 놈이었던가?’

사실 잘 모르겠다.

말투나 행동만 봐도 평범한 녀석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별개로 수련회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건 또 아니다.

하리바와의 일전에서 보였던 침착함이나 판단력은 대단했지만 말이다.

‘종잡을 수 없는 놈.’

하지만.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감이 그랬다.

사실 이것 말고도 이해 안 가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왜 2차 시험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거지?

도검선생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후안 선생의 이탈, 그리고 루안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중요한 건, 세렌은 그 일에 대해 조사하거나 파고들 권리가 없단 거지.

일개 영도라는 신분은 둘째 치고, 굿스프링이라는 꼬리표가 거추장스럽다.

‘괜히 2차 시험에서 오버하다가 이 꼴이 됐고.’

세렌은 2차 시험에서 재앙이 벌어질 걸 확신했다.

그 때문에 조금 무리를 해서, 굿스프링의 이름까지 써먹어 가며 영도들을 지휘했다.

결과적으로 헛짓거리가 됐다.

2차 특별 시험은, 루안의 수색 작업으로 며칠 연장된 것 이외엔 별다른 사건 없이 무난히 끝났다.

그 과정에서 영도 두 명이 죽긴 했지만, 모두 몬스터에게 죽은 거고…….

결과적으로 세렌의 말을 들었던 영도들은 큰 손해를 봤다.

귀중한 포인트를 써 가며 산 식량, 식수 따위는 잔뜩 남았고, 그 손실을 메꿀 만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세렌은 일단 조장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발언권이 크게 사라졌다.

굿스프링이란 이름 때문에 대놓고 눈치 주는 녀석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최종 시험에서, 세렌 조가 헥토르 조와 합류하게 된 이유다.

사박-.

풀숲길을 한스를 앞세우며 걷는다.

에디가 헥토르 옆에 접근하더니 낮은 어조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함정일 것 같은데요. 저 얼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는 거고.”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인 헥토르가 말했다.

“그래도 간다. 일단 따라가면 카론 우드잭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헥토르는 진심으로 1위를 노리고 있고, 그러려면 이번 시험에서 반드시 카론을 꺾어야 한다.

강직한 어조였기 때문에 에디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반나절 정도 지난 후…….

문득 걸음을 멈춘 한스가 어두컴컴한 동굴을 가리켰다.

“카, 카론은 이 안에 있습니다.”

“…….”

헥토르의 조원 중 한 명, 팜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정신이신가? 여길 들어가라고?”

“그, 그게…….”

“이 새끼가 진짜 누굴 등신으로 아나…….”

발끈한 에디가 한스를 노려봤다.

뒤를 따르던 세렌도 살짝 굳은 얼굴로 동굴을 보고 있었다.

이 동굴이 어딘지, 동굴의 주인이 누군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자.”

헥토르의 지시에 나머지 영도들이 당황한 채 돌아봤다.

“하지만 헥토르 님…….”

“나 혼자 가도 상관은 없다.”

“…으음.”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다.

나머지 조원들이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캄캄한 동굴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제법 넓은 동굴의 내부는 생각보다 따듯했고, 넓었다.

이 정도 넓이라면 적어도 포위당할 일은 없을 거다.

“팜, 앞장서 줄 수 있나?”

“넵.”

고개를 끄덕인 팜이 앞을 보았다.

파앗-!

맹금猛禽의 가호를 발동한 순간, 팜의 동공이 확장됐다.

팜의 눈동자가 동굴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일단 함정은 없는 듯하네요.”

“카론은?”

“동굴 끝에서 인기척은 느껴져요. 한 명이고, 카론인지는 모르겠구요.”

“수고했다.”

동굴은 컸지만, 그리 깊지는 않았다.

그들은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널찍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윽…….”

팜이 코를 틀어막았다.

악취가 진동한다.

이제는 곱게 자란 귀족들도 이 냄새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시체 썩는 냄새.

사방엔 오래된 살점과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공간의 중심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

카론 우드잭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동굴의 주인]은 잠깐 외출한 듯하더군.”

중저음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먹을 걸 구하러 갔겠지. 파악하기로는 항상 해가 질 때쯤 돌아오던데, 이제 두 시간 정도 남은 셈이지.”

“그래서. 그놈을 함께 잡자고 우리를 부른 건 아닐 텐데.”

“물론이지.”

주변을 둘러본 헥토르가 물었다.

“너 혼자인가?”

카론이 픽 웃더니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팟!

그 순간 출입구에서 다수의 영도가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팜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방금까진 아무도 없었는데?’

“신바가 가진 [축지縮地의 가호]다. 하루에 딱 두 번만 쓸 수 있지. 능력은 보다시피 순간이동이고.”

헥토르가 미간을 좁혔다.

“무슨 꿍꿍이지?”

“네놈의 조원과 나의 조원, 전체적인 전력은 비등한 편이다. 쉽게 승부를 낼 수 없단 뜻이지.”

“그래서.”

“환경을 좀 이용하기로 했다. 내가 파악하기로, 너희 여덟 명 중에서 이동의 권능을 가진 영도는 없는 듯하던데-.”

“…….”

“우리는 널 죽일 수 없지. 하지만, [동굴의 주인]은 아니야.”

…설마 이 녀석.

“여기서부턴 거래다. 소지하고 있는 공을 모두 내려놓고 꺼져라. 그럼 그냥 보내 주마.”

그제야 헥토르는 상황을 파악하고 입가를 비틀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와 싸워야겠지. [동굴의 주인]이 올 때까지 말이야. 그리고 그놈이 돌아오면, 우린 축지의 가호를 써서 곧바로 퇴각할 거다.”

“…하.”

[동굴의 주인]이 얼마나 강한지 안다.

지금 헥토르 조의 전력으로 이길 수 없다. 애초에 그 괴물을 잡으라고 풀어놓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

“다른 영도의 공엔 손대지 마라.”

“뭐?”

“애초에 네 목적은 나 한 명일 텐데? 너의 점수를 따라잡을 만한 건 나밖에 없으니까.”

“…….”

“헛짓거리는 집어치우고 일대일로 겨루자. 이긴 쪽이 공을 독식하는 걸로. 만약 패배하면, 나도 군말 없이 승복하겠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카론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넌 나보다 약하지만, 만약 싸우게 된다면 제법 지치게 될 거다. 쓸데없는 전투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아.”

“네겐 긍지라는 게 없는 거냐?”

“사냥꾼의 긍지란 사냥감의 가치로만 증명할 수 있다. 네놈들 귀족 나부랭이의 허울뿐인 명예와는 전혀 달라.”

“…….”

“오히려 궁금하군, 헥토르 배드니커. 왜 1위에 집착하는 거냐? 배드니커라서? 아니면, 루안 배드니커의 죽음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카론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해가 안 간다. 얼빠진 놈이었잖나. 시험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한밤중에 멋대로 캠프를 떠났다가 실종사라니.”

“…너.”

“그 정도 실력이라면 어차피 다른 시험에서 죽었을 거다. 차라리 시체를 직접 보지도 않았으니 오히려 호재 아닌가?”

헥토르가 냉소를 지었다.

“말이 너무 많군. 일대일은 자신이 없나 봐.”

그 말에 여태껏 침묵하던 제로스가 입을 열었다.

“배드니커의 도련님께서 뻔한 도발을 하는군. 카론도 말했다시피 우리로선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재밌군.”

“카론?”

카론이 단검을 뽑으며 말했다.

“대신 조건을 바꾼다. 너와 내가 대장전을 하고, 패배한 세력의 다른 녀석들도 공을 전부 바치는 걸로.”

헥토르가 멈칫했다.

“그건…….”

“받아들이십시오, 헥토르 님.”

에디가 말했다.

헥토르가 뒤를 돌아보니, 살짝 웃고 있는 조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저놈들에게 보여 주는 겁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헥토르 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요!”

“믿고 있다구요, 헥토르 님……!”

“너희들…….”

헥토르가 마주 웃은 다음 카론을 보며 말했다.

“좋다. 받아들이겠다.”

“와라, 애송이. 네놈들 같은 온실 속 화초와는 격이 다르단 걸 보여 주마.”

두 영도가 투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세렌은 홀로 생각했다.

‘난 동의한 적 없는데.’

* * *

나비의 숲에 들어오고 약 한 시간.

나는 특별한 일 없이 느긋하게 산책하듯 걷고 있는 중이다.

“공기 좋고…….”

그러고 보니 멀쩡한 나비의 숲을, 이렇게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둘러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악기에 침범되지 않은 나비의 숲은 아름다웠다.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어둡기는 하지만, 굵고 높은 거목이 빼곡히 들어선 숲은 일대 장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몬스터만 없었다면 관광지로 사업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쿠오오오오오오-!

몬스터만 없었다면 말이야.

곰처럼 생긴 몬스터 세 마리가 나를 향해 질주하는 게 보였다.

각각 회색곰, 흰곰, 갈색곰이었다.

물론 비대하게 발달한 송곳니나 발톱만 봐도 평범한 짐승은 아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건 흰곰이었는데, 이 녀석이 휘두른 앞발을 피하니 거목에 부딪쳤다.

쿠르르……!

거목이 몸을 떨며 나뭇잎을 털어냈다.

방패를 든 기사라도 이놈들의 몸통 박치기를 제대로 맞으면 갑옷째 찌그러져 죽을 거다.

게다가 이놈들, 덩치에 비하면 동작도 잽싼 데다 가죽과 살점이 질겨 급소를 노리기 어려워 보였다.

스걱-.

달리 말하면, 그게 전부였다.

나는 칠죄검으로 곰 세 마리를 반 호흡에 베었다.

회귀 직전, 철혈공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은 검로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이 몬스터 베어가 흉악하다고 해도 악마에 비하면 훨씬 약한 놈들이다.

쿠웅……!

곰 세 마리가 사이좋게 바닥에 쓰러지더니, 곧 그 사체가 빛무리에 휩싸였다.

이윽고 그 자리엔 공 세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

이런 식으로 되는 거였군.

이것도 마법인가?

하여간 신기한 학문이라니까.

“에이. 파란색이네.”

이게 10점이었나, 15점이었나.

하여간 25점이 아니라면 내겐 의미가 없지만……. 달리 써먹을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파란색 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하며 한동안 또 걷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기척이 또 느껴졌다.

이번에도 몬스터다.

“음?”

그런데 몬스터만이 아니다.

중간중간 기합성 같은 것도 섞여 들리는 걸 보니 영도도 있는 것 같다.

전투 중인가?

탓!

나는 공을 품속에 넣은 다음 질주했고, 금방 기척이 들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 낯익은 얼굴들이 세트로 있다.

에반과 미르, 그리고 샤를까지…….

‘오랜만이네.’

사실 내 체감 시간은 바로 어제 본 것과 다름없었지만, 어쩐지 나도 오랜만에 재회한 것처럼 반갑다.

막 전투가 끝난 걸까?

이 녀석들은 좀 허름해진 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세 명이서 간신히 잡았는데 겨우 초록색 공이야?”

“일단은 챙기죠. 써먹을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았다!”

왠지 모르게 일사불란한 동작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역시 배드니커의 수련회.

절망의 6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듯, 이 녀석들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가 됐다.

“크흠.”

나는 그쯤에서 기척을 드러냈다.

방심하고 있던 녀석들이 화들짝 내가 있는 나무를 올려다봤다.

“안녕. 오랜만이야.”

“…….”

“…….”

에반이 눈을 끔벅이더니 말했다.

“언.”

언?

“언데드형 몬스터다! 전투 준비!”

셋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나를 둘러쌌다.

이 자식들…….

배드니커의 수련회에 완전히 적응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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