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데구르르…….
굴러다니던 공이 마침 발부리에 닿아서 주웠다.
묻어 있던 괴물의 체액 따위도 빛무리와 함께 사라지는 듯해서 좋다. 품에 넣어도 안 지저분하니까.
보라색 공.
그렇단 건 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이 괴물 놈이 샤를이 말한 [동굴의 주인]이었던 건데…….
어째 좀 튼튼하더라.
“손대지 마. 그건 내 것이다.”
카론이 낮은 어조로 말하더니 내게 활을 겨냥했다.
그러자 헥토르가 깜짝 놀라며 막았다.
“자, 잠깐. 멈춰 봐라.”
“동생이라고 감싸는 거냐? 실망이군, 헥토르 배드니커. 지금은 시험 중이란 걸 잊은-.”
“그런 게 아니다. 일단은…….”
헥토르가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너… 진짜로 루안인가?”
“응.”
“언데드는 아니겠지?”
“좀 봐줘라. 그 오해는 이제 지겹다고.”
한 번밖에 안 겪긴 했지만.
“살아 있었던 건가…….”
“당연하지.”
“그럼 여태껏 대체 어디 있었던 거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이냐?”
“…….”
나는 잠깐 헥토르를 보았다.
일단 이 녀석도 배드니커다. 앞서 둘러댄 다른 녀석들과 달리, 진실을 말해 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옆에 카론만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그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내 목적부터 달성해야겠는데.”
“목적?”
나는 말없이 보라색 공을 보여 줬다.
과연 상황 파악이 빠른 녀석이라서, 헥토르의 표정은 단번에 굳었다.
“…그 공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 둘의 보라색 공까지 모두 빼앗겠다는 거냐?”
“내가 좀 절박한 상황이라.”
“하.”
카론이 대놓고 냉소를 지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진 모르겠지만, 네놈 실력으로는-.”
“입 닫고 집중해라, 카론 우드잭.”
헥토르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방심하면 가진 공을 죄다 털릴 테니까. 저 녀석은… 방금 우리가 쓰러뜨린 괴물 이상으로 강하다.”
“…….”
카론은 헥토르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무언가 짚이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물었다.
“…[동굴의 주인]에게 상처 입힌 게 네놈이었나?”
“맞아. 내 사냥감을 너희가 뺏은 셈이니까, 공격받아도 할 말 없지?”
그때 헥토르가 불쑥 말했다.
“공을 그냥 넘긴다고 해도?”
“뭐?”
“무슨 개소리를.”
카론이 고개를 휙 돌리며 노려봤고, 나도 살짝 놀란 눈으로 헥토르를 보았다.
불과 얼마 전의 헥토르였다면 이런 제안은 절대 안 했을 거다.
내가 저 동굴의 주인인가 하는 놈한테 치명상을 입힌 건 사실이지만…….
그놈은 그 꼴로도 잘만 도망쳤다.
완전히 죽을 만큼의 상처는 아니었단 뜻.
즉 이 두 녀석도 그놈을 잡기 위해 제법 고생했다는 뜻인데, 그 정도 수고를 들인 적의 성과물을 내게 순순히 넘기겠단 말이다.
‘물론 헥토르는 내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한데.’
싸워서 질 것이기 때문에 포기한다…라는 선택지는, 기존의 헥토르에겐 없었을 거다.
즉 지금의 헥토르는 자존심을 굽히는 법을 배웠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방금 헥토르의 반응으로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 녀석이 4주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
헥토르가 한숨을 내쉬었고.
까앙!
즉시 발검을 마친 다음, 내가 휘두른 칠죄검에 대응했다.
휘유,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맞부딪친 검에서 느껴지는 힘이 제법 억세다.
짤막하게 검격을 교환하며, 나는 헥토르의 검술이 훨씬 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형님, 혹시 탄코 선생이랑 대련했어?”
“그래.”
역시나.
어째 검로에서 짐승 같은 기세가 느껴지더라.
이런 야만적인 움직임은 기존의 헥토르에게 없던 것이었는데, 어렸을 적부터 검술 사범 아래서 체계적인 수업만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좋은데?’
딱딱하던 검술에 유연함이 더해졌다.
단점이 사라졌다는 건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인정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과인데.
자신의 못난 점을 솔직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무인은 의외로 드물다.
그 반면.
피잉-!
격전 도중 난입한 화살을 피했다.
“너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구나.”
“네까짓 게 날 평가하는 거냐?”
난 픽 웃은 다음 헥토르에게 우장을 내질렀다.
헥토르는 순간적으로 검을 쥔 손을 바짝 당겨 방어했지만, 내력이 담긴 손바닥은 파괴력보단 이 녀석을 밀어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큭……!”
헥토르의 몸이 붕 뜬 채로 동굴 벽면까지 날아갔다.
즉시 태세를 정비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 전에 이미 칠죄검을 던져 놨다.
푹!
당연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여기서 헥토르를 죽이거나 크게 상처 입힐 생각은 없다.
칠죄검은 헥토르의 옷을 적절하게 꿰뚫은 채 벽에 박혔다.
옷 구조상 벗어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테지.
그사이 카론을 향해 질주한다.
피피핑-.
다시 한번 카론이 화살을 쐈다. 나는 두 발을 피하고, 나머지 한 발은 손으로 낚아챘다.
“하……! 이것도 잡아 보시지!”
카론이 입가를 비틀며, 이번엔 화살을 한 발만 쐈다.
정직할 만큼의 궤도.
‘함정도 뻔하게 파는구만.’
짐승이나 몬스터만 상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무리 영악하다고 해도 사람보단 아닐 테니까.
나는 낄낄 웃음을 터뜨리며, 이 뻔한 함정에 한번 어울려 주기로 했다.
남는 손으로 날아온 화살을 낚아챈 것이다.
“멍청하기는!”
카론이 조소를 터뜨린 순간, 낚아챈 화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꽝!
뒤이어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은 가운데, 카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말을 함부로 믿으니 그딴 일이 벌어지는 거다, 루안 배드니커. 그 팔은 더 이상 못 쓸-.”
그 순간 나는 흙먼지를 걷어내며 카론의 코앞에서 등장했다.
카론이 눈이 큼지막하게 떠진 모습을 보며, 아직 들고 있던 또 다른 화살을 단검처럼 다뤘다.
“큭!”
카론이 급히 회피에 집중했다.
“피하는 게 필사적인데? 화살촉에 독이라도 발라 놨냐?”
대답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사이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는데, 헥토르가 다가온 것이다.
“…….”
후방을 점했는데도 쉽게 공격할 기색이 없다. 언뜻 드러낸 빈틈이 함정이란 걸 깨달은 거다.
나는 여전히 카론을 공격하며 말했다.
“형님아.”
“뭐, 뭐냐?”
“형님은 오늘 좀 덜 맞아도 되겠다. 물러나.”
“어?”
헥토르가 드물게도 멍청한 목소리로 반문해서, 나는 한번 더 말했다.
“물러나. 뒤지기 싫으면.”
헥토르가 잠깐 침묵하더니, 품에서 보라색 공을 꺼낸 뒤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맙다.”
그러자 카론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이, 같은 핏줄이라고 아주 지랄을 떨-.”
짜악!
나는 화살을 든 손으로 카론의 뺨을 후려쳤다.
“──.”
그러자 이 녀석은 꼭 뺨을 처음 맞은 사람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시점에선 처음 맞은 게 맞나?
아무튼.
“형님이 빠졌으니, 네가 그 몫만큼 맞아야겠지?”
“개소리 집어치-.”
짜악!
“나를 뭘로 보-.”
짜악!
“사람 말을 좀 들-!”
짜악! 짜악!
헥토르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는… 나갈 길이 아예 막혔는지 확인해 보겠다.”
“그러세요.”
“자, 잠깐! 헥토르. 우리의 임시 동맹은 어떻게-.”
“그딴 기억 없다.”
“이 개새-.”
짜악! 짜악!
헥토르는 귀에 익은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 * *
마침내 보라색 공 세 개를 확보했지만.
사실 내 목적을 위해선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나와 비슷한 점수대의 녀석들을 견제하는 것이다.
현재 내 점수는 14점에서 75점을 더한 89점이었는데…….
개당 25점인 보라색 공은 내가 다 갖게 됐지만, 아직 15점과 20점짜리 공은 남았다.
대충 점수대가 30~60점 사이의 녀석들은 획득한 공에 따라 충분히 나를 역전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근사한 생각이 들었다.
“알겠지, 얘들아. 우리 셋은 지금부터 임시 동맹이야.”
“…….”
임시 동맹이란 말에 카론의 입이 씰룩거렸지만, 바로 직전 물리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스승님에게 비슷한 치료를 자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기색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헥토르가 물었다.
“임시 동맹이라고?”
“응. 너희 둘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싶지?”
“물론이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우선 나는 앞으로 너희 둘의 공을 계속 뺏을 거야.”
그러자 두 녀석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즉 너희들은 이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금의 점수를 유지하게 되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간단해. 너희들이 지금 등수로 수료하고 싶다면, 다른 영도들도 더 이상 공을 모으지 못하게 견제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내 작전은 이거다.
특별 시험에 참가한 모든 영도가 참가 당시의 점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내 제멋대로의 말에 카론이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동맹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네 뒤처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야, 카론. 잘 생각해 봐. 내 점수는 보라색 공 3개를 더해도 고작 89점이야. 죽었다 깨어나도 1위는 불가능하다고.”
“…….”
“내 목적은 3위 안에만 드는 거야.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떻게든 수료는 해야 하거든. 그러니 헥토르 형님이 내 점수를 추월해도 좋아. 뭐라고 안 할게.”
“음.”
헥토르가 내 말의 진의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했다……. 확실히 지금 포인트로 3위 안에 들려면, 다른 영도의 공을 모두 뺏는 수밖에 없겠어.”
“맞아. 카론 네 포인트는 102점이었지? 가령 세렌이 남색 공 3개를 얻으면 60점을 얻어서 총 109점이 돼. 넌 1등 자리를 뺏기게 되는 거지.”
“…….”
“그러는 김에 다른 영도 녀석들도 같이 견제해 달라는 거야.”
그제야 카론도 내가 아예 개소리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듯, 잠깐 고민에 잠겼다.
솔직히 주먹으로 굴복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이 녀석에게도 나름대로 양보 못 할 선이란 게 있을 터.
애초에 자존심이 낮은 녀석도 아니니 쥐어패는 걸로 복종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
예상대로 생각을 마친 카론이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내 등수가 유지된다면, 좋다. 받아들이지.”
“좋았어. 그럼 우리 셋이서 사이좋게 1, 2, 3위를 독식해 보자고.”
나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자, 아자, 파이팅!”
“…….”
“…….”
그러나 이번 수련회 인원 중에서도 가장 무뚝뚝한 두 영도는 내 구호에 호응해 주지 않았다.
* * *
카론과 헥토르를 뒤로하고, 나는 동굴을 떠났다.
그대로 저놈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불현듯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됐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시험이 끝나는 건 월요일 아침.
즉 내겐 아직 사흘이란 시간이 남았는데.
사흘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휴식을 취하는 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기도 했다.
영산에서 한창 수련에 매진할 때, 나는 종종 스승님에게 휴가를 받았는데 그때도 딱 사흘씩 쉬었지.
- 역시 스승님이 뭘 좀 아신다니까. 원래 휴가는 2박 3일이 제맛이야. 1박 2일은 너무 짧고, 3박 4일은 또 너무 늘어지거든.
말이 많은 셋째 사형도 내 의견에 적극 공감했었다.
어쩐지 앞으로 [나비의 숲]을 이렇게 구경할 기회도 드물 것이란 생각도 들어서, 나는 이곳을 괜찮은 휴양지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우선 캠프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곳에 있는 오두막을 별장으로 삼고, 잠깐 규칙적인 생활에서도 벗어났다.
낮잠을 서너 시간씩 퍼질러 자다 막상 밤엔 잠이 안 와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했고.
굵직한 나뭇가지 위에 누운 채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별을 세기도 했다.
지금이 수련회 중이란 사실, 지옥에서 만났던 마왕, 내게 주어진 사명까지 모두 잊었다.
심지어 운공할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오랜만의 나태한 생활이니만큼 만족스러웠는데, 그나마 아쉬운 건 식사였다.
배가 고프면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었는데, 당연히 맛있지는 않았다.
다른 고기나 과일로 입가심하고 싶었으나…….
몬스터는 죽이는 즉시 사라지고, 늦겨울이 지나 정월에 이르렀지만, 날씨가 아직 쌀쌀해 열매도 따 먹기 힘들었다.
어쨌든 심정적으론 굉장히 평안했다.
‘그러고 보니 회귀 이후 이렇게 평화롭게 보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네.’
수련회에서의 회귀를 말하는 게 아니다.
15살의 루안 배드니커로 눈을 뜬 다음엔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눈뜨자마자 힘줄이 잘릴 뻔했는데 뭐.
이후엔 보석 산맥에서도 죽을 위기에 처했고, 본가에 내려와서도 이런저런 사건에 휩쓸렸다.
사실 나는 천성이 무인이라 그런지 그러한 치열한 삶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사람에겐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나는 다른 영도의 기척이 느껴질 때면 일부러 피했고, 몬스터도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먼저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마침내 수련회의 마지막 날 아침.
“…….”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오랜만에 염화제일공을 운공했다.
그리고 살짝 놀라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단전의 내공이 이상적인 형태로 안정되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회귀 이후 쭉 삐걱거렸던 외공과 내공이, 지금 이 순간에서야 조화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육체도 순응할 기간이란 게 필요한 것임을. 가끔은 한숨 돌릴 시간이란 게 필요하다는 것을.
화륵…….
나는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운공을 시작했다.
조화로운 육체.
그리고 이 단계에 이른 염화제일공.
주천으로 쌓이는 내공의 총량이 훨씬 증가했다.
내친김에 영옥도 한번 녹여 봤다.
“오.”
예상대로 작업 속도가 훨씬 빨라졌는데, 지금 속도라면 늦어도 반년 안에는 영옥을 완전히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두 걸음 정도는 나아간 것 같은데?”
나는 낄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난히 상쾌한 공기가 폐부에 닿는다.
4주 전만 해도 숲의 새벽은 많이 쌀쌀했는데, 이제는 날이 많이 풀렸다.
곧 봄이 오려나.
“……?”
그 순간, 발달된 기감에 무시 못 할 기척이 포착됐다.
기척의 주인은 숲 사이를 은밀히, 그러나 빠르게 질주하며 내게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단 적의는 없는 것 같은데.
팟-.
이윽고 정갈한 정복의 사내가 내 앞에 출현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넌 분명…….”
“징수인 제인입니다.”
“그랬지.”
제인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어쩐지 전에 만났을 때보다 부쩍 정중해진 모습.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으신가.”
“루안 도련님, 대략적인 상황은 교의선생에게 전달받았습니다. 저 또한 전달 과정에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요. 우선 도련님이 세우신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
그리 말하며 제인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얼굴에선 나를 향한 호의가 느껴졌는데, 아무리 내가 철혈공의 아들이라도 징수인의 호의를 받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다.
케이안이 그랬듯, 이자들은 경우에 따라 가문의 직계 혈족에게도 칼을 들이대는 사냥개라서 그렇다.
‘역시 배드니커의 사용인.’
실력과 실적만이 전부인 가문답게 아랫놈들도 성향이 비슷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쩐지 이 녀석이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수련회 도중에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돼 있지.”
“예.”
“그런데도 네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배드니커에서 가법 위에 설 수 있는 건 오직 한 분뿐이지요.”
제인이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