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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23화 (123/172)

123화

나는 단상 위에 올라선 다음 두 영도를 보았다.

‘장하다, 이 새끼들아.’

헥토르, 그리고 카론.

나는 약속을 충실히 지킨 두 녀석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줬지만.

이 무뚝뚝한 놈들은 비슷하게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외면했다.

“어흠…….”

반면 단상 위에 선 칼자크는, 대단히 많은 감정이 함유된 눈동자로 나를 보았으나 곧 헛기침과 함께 감정을 추스르더니 말했다.

“…위 세 명의 영도는 우수한 성적으로 제61회 수련회를 수료하였으며, 이에 소정의 상금과 함께 정식으로 영웅 자격을 부여한다.”

‘오…….’

돈도 주나?

듣던 중 반가운 얘기다.

지금까진 가문에서만 싸돌아다녔으니까 딱히 금전의 필요성이 부각되진 않았지만, 앞으론 다를 거다.

당장 배드니커를 나서면 숙박하거나 밥을 먹고, 옷이나 생필품을 사는 것마저 다 돈이다.

물론 철혈공은 금전이 부족하다면 재무부에 얘기하라고 말했지만, 글쎄.

아무리 내 성이 배드니커라고 해도 이 가문과 깊게 관여되는 건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언제든 끊을 수 있게 접점은 최소한으로만 만들고 싶달까.

단상 뒤쪽에서 기사 한 명이 올라왔다.

양손으로 목함을 들고 있었는데, 무슨 장치라도 해놨는지 우리 앞에 서는 순간 혼자서 열렸다.

달칵-.

목함 안에는 똑같이 생긴 금속 패牌가 세 개 있었다.

“영웅패다. 카론 우드잭, 헥토르 배드니커, 루안 배드니커. 셋 모두 영웅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활약을 기대하마. 모두 박수!”

우렁찬 박수 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환호성도 같이 나올 만했는데, 박수를 치는 녀석들 대부분이 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않나! 살아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쥔 미르가 거봐라는 듯 소리쳤다.

“유, 유령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니, 칼자크가 준비된 대본을 읊듯 설명했다.

“…루안 영도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도중에 수련회를 이탈했지만, 최종 시험을 사흘 남겨 둔 시점에 복귀하였다. 본인이 수련회 수료에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시험의 도중 참가를 인정하였고,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지. 음. 대단한 녀석이야.”

“…감사합니다.”

딱히 커버가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이며 단상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낯익은 얼굴이 여럿 달려왔다.

“루안! 너 이 새끼!”

“죽은 줄 알았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기본적으로 환영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교관님이 말한 대로야. 숲이 더럽게 넓어서 좀 헤맸지.”

“4주 동안?”

“뭐 어쩌다 보니.”

“하… 이 독한 새끼!”

“나비의 숲에서 4주를 헤맸는데도 살아남다니. 대단한데!”

의외로 카리스가 특히 기뻐하는 기색을 보여 줬다.

곰처럼 생긴 놈인데 생각보다 정이 많다.

그 밖에도 룸메이트였던 에반이나 미르, 팜에.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심지어는 샤를까지 내 생환을 축하해 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주변을 둘러봤다.

‘…많이 살아남았구나.’

어쩐지 나도 새삼스러운 기분이다.

넋이 나간 얼굴로 미르의 시체를 보던 샤를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고.

끝내 행방불명이 된 에반.

눈앞에서 핏물이 돼서 주저앉은 주니앙과 루크의 모습도 교차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미르! 고기만 먹지 말고 채소도 좀 먹으라니까요! 그리고 쥐방울만 한 게 술은 왜 마시는 거야?”

“괜한 참견이다! 열다섯이면 거인족에선 성인이다!”

“동갑이었다고……?”

지금 샤를은 소란을 부리는 미르의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고, 그 모습을 에반이 난처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달빛을 보며 연초를 피우는 주니앙의 모습도 보였다.

‘…….’

어쩐지 이 순간에서야 재앙을 막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살짝 감동이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영도들과 재회를 축하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물론 모든 녀석들이 내 생환을 기뻐해 준 건 아니다.

“어떻게 저런 녀석이 3위를…….”

“어마어마하게 운이 좋은 녀석이군.”

“혹시 모르지. 뭔가 수작질을 부린 걸지도.”

“놔둬. 어차피 헤로스에 입관해도 얼마 안 가서 죽을 테니까.”

딱히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내가 사라지기 전에 수련회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준 것도 아니고, 실종된 이후엔 나에 대해 잊은 녀석이 대다수겠지.

그런 놈이 갑자기 돌아와서 3위 자리를 꿰차면 저런 태도가 당연하다.

그것과 별개로 선을 넘으면 머리를 쥐어박겠지만, 오늘은 기쁜 날이니 마음도 좀 더 너그러워진 기분.

나는 대충 뒷담을 흘리며 영도 무리에서 빠져나왔고, 먹을 걸 찾아다녔다.

일단 본가에서 뭐를 좀 먹긴 했는데, 배를 채우기엔 한참이나 부족하다.

그러다 스테이크가 잔뜩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발견했다. 다른 테이블에 비해 특히 먹을 게 많이 남아 있었는데-.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있는 녀석을 보니 그럴 만하다.

물론 나는 상관없다.

한달음에 그곳까지 달려간 다음, 앉아 있는 녀석을 향해 물었다.

“이거 등심살이야?”

“안심.”

“굽기는?”

“레어.”

“난 바싹 익힌 게 좋던데.”

“어쩌라고.”

“말이 그렇단 거지.”

나는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봐도 까칠하시구만.”

“…….”

세렌이 어처구니없는 시선을 보내더니 말했다.

“너야말로 살아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내가 죽을 위기는 많이 겪어도, 명줄은 긴 것 같더라.”

“그러셔.”

말투를 보니 내가 알던 세렌이 맞다.

그럼 아까 그건?

내가 헛것이라도 본 걸까?

다름 아닌 이 배드니커에서?

세렌이 힐끗 나를 보았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의아함이 잔뜩 담긴 눈빛이었다.

“너 있잖아. 혹시…….”

“……?”

“그러니까……. 하아.”

잠깐 머뭇거리던 세렌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냐.”

어떻게 물을지 난감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배드니커의 핏줄한테 마왕 의식이니 제사장이니 언급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가 사라졌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는 상태랄까.

물론 나도 세렌에겐 궁금한 게 많다.

내가 지나가듯 물었다.

“아까 그건 뭔데?”

“그거라니?”

“해 질 녘 정원에서 잠깐 만났잖아.”

“뭔 소리야.”

세렌이 이상한 놈을 쳐다보듯 나를 흘겨봤다.

진짜 모르는 건지, 이것도 연기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너였는데.”

“잘못 봤겠지.”

“너같이 생긴 녀석을 잘못 볼 것 같냐?”

이 말엔 납득했는지 세렌이 입을 닫았다.

“그때 뭐 하고 있었는데?”

“옷 갈아입고, 잠깐 방에서 낮잠 잤……. 근데 내가 이런 걸 왜 말해야 하는데?”

“…….”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파악한 세렌이라는 인간은, 의외로 속내를 숨기는 데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치고 나는 세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전생에선 이 녀석의 죽음까지 보았지만, 세렌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회귀 전에 얻은 정보를 미끼로 좀 캐내 볼까?

가령 ‘난 네 본명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 뒤 반응을 관찰한다거나.

‘애매하네.’

이상하게 그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기고 있는 건 어차피 피차일반이고, 중요한 건 세렌이란 녀석의 본질인데……. 공교롭게도 난 이 녀석의 본질을 안다.

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부류다.

세간에선 그런 자를 보고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미안하다.

“유감이야.”

“뭐가?”

“내 난입만 아니었어도 네가 3위 안에 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됐거든. 꼴을 보니 저 두 녀석이 갑자기 미친 짓을 벌인 것도 네가 관여한 거지?”

세렌이 카론과 헥토르를 가리키며 말한다.

역시 눈치가 없지는 않다.

“맞아. 어떻게든 3위 안에 들어야 했거든.”

“그러셔.”

세렌은 코웃음을 치며 와인을 마셨다.

나는 잠깐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라플라스의 신서라고 했나?’

굿스프링에 있다는 예언서.

어쩐지 신경이 쓰인다.

세렌은 거기서부터 미래의 정보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 말은 과연 사실일까 아닐까.

나라면 그 진위를 알 수 있다.

이 대륙에서, 예언서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다.

내겐 부분적이긴 해도, 앞으로 10년간의 미래 지식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굿스프링에 있다는 건데…….’

그 가문이 여기만큼 폐쇄적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배드니커란 꼬리표를 달고 들어가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세렌의 친구라도 되면 저택에 발을 들일 순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 녀석도 가문에서의 대우가 좋은 건 아닌 것 같고.

난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넌 이제 어떡할 건데?”

“뭘 어떻게 해.”

“앞으로의 진로 말이야. 가문으로 돌아가나?”

“가문? 아-.”

세렌이 큭큭 냉소를 흘리며 손에 든 잔을 휘저었다.

적포도빛 액체가 출렁이더니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글세……. 거기 갈 바에 그냥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혼담이 부활하는 건가?”

세렌은 내 개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여기서 좀 머물다 곧장 아카데미에 갈까 싶어.”

“아카데미? 거긴 왜?”

“…뭐, 겸사겸사. 얻을 것도 좀 있고.”

그 순간 나는 회귀 전 세렌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그럼 생면부지의 녀석들을 구하려고 이곳에 발을 들인 거야?

- …겸사겸사지. 이 숲에선 얻을 것도 있으니까.

‘…….’

세렌은 미래를 안다.

아마 나보다 좀 더 확실하게.

과거의 나는 미래를 엿봤음에도 이번 수련회에 이만한 재앙이 터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즉 세렌의 경로는 주목할 가치가 있고.

이 녀석의 다음 행선지가 제국 아카데미로 향한다는 건, 그곳에서 또 모종의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마경에 대한 정보도 얻어야 하니, 일석이조인가.’

아카데미는 제도帝都에 있다.

사실 난 한 번도 제도에 간 적이 없다.

귀족이 수도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배드니커는 딱히 다른 가문과 교류가 깊지 않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곳.’

속된 말로 제국의 심장.

만약 그런 곳에도 교단의 마수가 뻗쳐 있다면…….

상황은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 * *

더부룩할 만큼 배를 채우고, 술까지 잔뜩 마셨다.

그러고 보니 회귀 이후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망나니 시절의 나는 술은 좋아했지만, 술자리는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열등감과 자격지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귀족 놈들의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란 주로 한심한 놈이었고.

당시의 나는 또래 중에서도 견줄 자가 없을 만큼 답이 없는 놈이었으니까.

어쨌든 알딸딸한 기분으로 방으로 가고 있는데, 기척도 없이 케이안이 갑자기 나타났다.

“도련님, 이쪽입니다.”

“으응?”

나는 케이안에 이끌려 본가가 아닌 다른 건물로 향했다.

소철당 말이다.

“…….”

이 압도적인 건물을 마주한 순간 잠이 조금 달아났다.

“앞으로 본가에 지내실 땐 이곳을 쓰시라는 가주님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무슨 엄명씩이나…….”

나는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부담스럽군.”

“차차 익숙해지실 겁니다.”

“으음…….”

어쨌든 거절하는 것도 애매했기 때문에, 소철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련님, 잠깐 확인하셨으면 하는 게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확인할 거? 금방 끝나?”

“물론입니다.”

“그러지 뭐.”

경험상 진탕 취한 상태로 퍼질러 자면 이튿날 아침이 괴롭다.

술도 좀 깰 겸, 케이안의 뒤를 따라 1층의 어느 방으로 이동했다.

철컥-.

다른 평범한 방과 다른 점이라면, 보안이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다는 점.

케이안은 몇 개나 되는 자물쇠를 푼 다음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그리 크지 않은 방 내부엔 커다란 상자 하나와 제법 큰 가죽 포대 한 자루가 있었다.

“뭐야?”

“직접 열어 보시겠습니까?”

케이안이 드물게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뜻밖이다.

이 진지한 사내가 이런 태도도 보일 수 있다니.

‘서프라이즈로 안에 뭐 시체가 있다거나?’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또 반대로 배드니커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살짝 긴장한 채 가죽 자루를 열었고…….

-자루를 꽉꽉 채운 금화 무더기를 발견했다.

“…….”

잠깐 눈가를 비빈 다음, 다시 안을 확인했다.

금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잠이 확 달아난 목소리로 물었다.

“케이안?”

“예.”

“이게 뭐야.”

“도련님의 재산입니다.”

“내 재산?”

“보석수의 사체, 잊었어?”

문득 끼어든 목소리는 칼자크였다.

어느새 문틀에 기댄 채로 서 있는 상태.

“그거 매각 값이야.”

보석수의 사체.

확실히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가졌다고는 했는데-.

“보석 산맥엔 교단이 있었잖습니까? 그놈들도 보석수를 노렸을 텐데.”

“산맥에 있던 교단 지부라면 델락이 파괴했다. 제사장은 아쉽게 놓쳤다더라.”

“아…….”

어딜 그렇게 바삐 싸돌아다니나 싶었는데, 산맥에 갔었던 거구만.

“지부 위치는 어떻게 알았대요. 전 안 가르쳐 줬는데.”

“난 델락보다 뛰어난 악마사냥꾼을 모른다. 녀석이 산맥에서 교인 한 놈만 생포한다면, 그놈에게서 모든 정보를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닐 거야.”

“음…….”

나도 바로 오늘 에인즈번의 처참한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 말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지부를 부순 다음엔 따로 사람을 시켜 사체를 회수했지.”

“가주님께서 전언이 있었습니다.”

케이안이 말했다.

“사체로 방치된 지 시간이 제법 흘러서 우선 급히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더군요.”

“가치가 시시각각 떨어지던 상황이었지. 그나마 겨울이었고 사파이어 스네이크 자체가 냉기를 품은 몬스터라 저거라도 건진 거야. 운이 좋았지.”

“좋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사체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어서, 내겐 나쁠 게 없었다.

- 곧 선물이 갈 거다.

헤어지기 직전 철혈공이 했던 말.

이걸 의미했던 거구만.

“이게 다 얼마죠?”

“세 보지는 않았는데 한 오륙천 골드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5,700골드입니다.”

케이안이 말을 받았다.

“아직 모두 매각되진 않았다고 하니, 좀 더 들어오겠지요.”

“휘유. 대박인데?”

“…….”

갑자기 생각이 멈추더니, 내 머리는 뜬금없이 셋째 사형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막내야, 너희 세상의 화폐 가치는 어느 정도냐? 골드랑 실버를 쓴다며.

- 화폐의 가치요? 음…….

- 잠깐. 내가 맞춰 볼게! 1골드가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 정도 맞지? 그치?

셋째 사형이 어쩐지 기대 섞인 눈으로 물었다.

- 그것까진 아니고요. 혼자서 그럭저럭 살 만한 정도예요.

- 아… 그럼 1골드당 200만 원 정도인가.

- 200만……? 사형 세상은 단위가 왜 그래요?

- 인플레이션 때문이지.

- 그럼 거기 사람들은 평소에도 동전을 몇십만 개씩 갖고 다녀요?

- 맞아. 그래서 고가의 물건을 거래할 때면 수백 명씩 인부를 고용했어. 그것뿐이겠냐? 거래가 끝난 이후에도 수억 개의 동전을 하나씩 세야 해서, 큰 거래를 하나 끝내려면 최소 몇 개월씩 걸렸단다.

- 세상에.

…나중에서야 사형의 말이 거짓말인 걸 깨달았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즉 5,700골드라면, 내가 최소 5,000개월 동안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단 뜻이다.

…….

…….

…이걸 어쩐담?

갑자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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