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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25화 (125/172)

125화

여기서 뜬금없이 문제라니.

째깍-.

그 순간 어디선가 시계 소리가 들리더니, 실제로 팻말에 초침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법인가’

팻말 자체에 특이한 점은 없어 보이니 아마 그럴 거다.

팻말 위의 초침은 천천히 움직였는데 속도를 보니 한 바퀴를 도는 데 60초인 것 같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더욱 어처구니가 없어졌지만… 신수에 대해서라면 지난번 철혈공과의 대담에서 들은 게 있다.

배드니커가 사역하고 있는 신수는 총 다섯 마리며 각각 사슴, 쥐, 양, 개, 뱀이다.

즉 여기서 정답은 3번인 사슴이다.

공교롭게도 갈림길은 문제의 보기처럼 4개, 세 번째 길로 가면 된다는 뜻이겠지?

저벅-.

그리 생각하고 세 번째 길을 지난 순간.

[정답.]

[보상이 강화됩니다.]

인공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멈추시려면 우측으로 가십시오.]

토굴 내부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아하.’

즉 앞으로 쭉 가면 다음 문제를 풀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끝이라는 건가.

어떤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일단 직진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넓은 공간과 함께 팻말이 나타났다.

[2. 다음 중 설명에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2점)

- 대륙 4대 명검 중 하나.

- 흑요정 쿠세트가 다뤘던, 배드니커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보검.

- 4대 명검 중 구마驅魔에 가장 강한 적성을 지녔다.

① 미카엘 ② 가브리엘 ③ 우리엘 ④ 라파엘

현재 점수: 1점.

※주의사항※ 오답 시, 어금니 두 개.]

얻을 수 있는 점수가 늘었고, 현재 점수란 항목이 추가됐다.

그리고 또다시 초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문제를 다시 보았다.

“…으음.”

전혀 모르겠다.

배드니커에 보검이 한두 개가 아니고, 검명劍名 또한 내가 처음 듣는 것밖에 없다.

나름대로 가문의 보검을 갖다 판 나조차 처음 듣는 이름들이라니.

게다가 아까부터 이 주의사항은 뭘까?

“오답 시 어금니 두 개?”

뭐 생니라도 뽑겠다는 뜻인가?

누구 맘대로.

코웃음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아예 찍기엔 좀 그렇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순간.

[미카엘일세.]

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유물에도 지식이 있으셨군요?’

[저건 유물이 아니야. 이제는 잊힌 신명神名이지.]

‘무슨 뜻입니까?’

[별 뜻 없네. 그보다… 이 앞에선 굉장히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나는 첫 번째 길을 걸으며 말했다.

[정답.]

[보상이 강화됩니다.]

[여기서 멈추시려면 우측으로 가십시오.]

‘그럼 여기서 그만둘까요?’

제사장 때 겪었던 일 때문일까.

지금의 나는 무신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대사형에 대한 정보라면 아카데미에서 얻을 수 있고, 신수와의 계약도 꼭 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아니. 사악하긴 해도 당장 적의는 없는 것 같군.]

‘음.’

[일단 계속 가보세, 연자여. 나도 이 문제란 것에 호기심이 드는군. 위화감이 생기면 바로 말하겠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토굴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쉽게 깨닫기 힘든 사실이었으나, 이 토굴은 살짝 경사가 진 형태였다.

그러니까 문제를 많이 풀수록 점점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는 상태란 거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장소였지만, 이상하게 캄캄하지는 않았다.

어둡기는 해도 주변 사물 정도는 명확히 알 수 있는 정도랄까.

[3. 다음 중 과거엔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지성 종족의 대우를 받았으나, 현재로선 몬스터 취급받는 종족을 고르시오. (2점)

① 코볼트 ② 오크 ③ 리자드맨 ④ 놀

현재 점수: 3점.

※주의사항※ 오답 시, 귀 두 개.]

[4. 다음 중 과거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던 7종족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엔 그 수가 가장 적어 찾아보기 힘들어진 종족은? (1점)

① 거인 ② 용족 ③ 요정 ④ 익천족

현재 점수: 5점.

※주의사항※ 오답 시, 손가락 다섯.]

내가 아는 것도 있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리자드맨일세.]

[용족.]

무신이 올바른 답을 말해 줬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낸 이는 역사에 무척이나 해박한 듯하군.]

무신은 처음엔 감탄하며 말했으나, 여덟 번째 문제를 풀 때쯤엔 기색이 조금 바뀌었다.

[8. 오늘날 대륙 유일한 국가인 무명無名제국은 연방제에서 시작한 국가인데, 그렇다면 처음 연방을 설립했을 때의 구성국은 총 몇 개국인가? 다음 중 고르시오. (5점)

① 5개국 ② 7개국 ③ 10개국 ④ 15개국

현재 점수: 15점.

※주의사항※ 오답 시, 혓바닥.]

물론 나는 이번에도 답을 모르지만, 일단은 2번에 마음이 쏠리긴 했다.

일곱 종족을 규합한 무명왕 전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

가만히 무신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쩐지 쉽게 입을 열 기색이 없다.

‘무신님?’

[…4번. 15개국일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번째 토굴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정답을 축하한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방금 문제는 무려 5점짜리였다.

무신이 좀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의 시작점을 아는 이가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쉽게 알기 어려운 진실입니까?’

[그러하네. 그 시절이야말로 대륙의 역사 속에서도 한 손에 꼽을 격동기였지. 작은 행동이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억될지 몰랐기 때문에, 적대하는 모든 집단이 서로의 기록서를 없애기 위해 혈안이었네.]

‘음…….’

[고서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

[일단은 계속 가보세.]

나는 그 말대로 계속 걸었고, 다음 문제를 마주했다.

[9. 다음 중 가장 이질적인 마왕을 고르시오. (5점)

① 녹색 혀의 마왕 ② 검은 늪의 마왕 ③ 핏빛 달의 마왕 ④ 무채색의 마왕

현재 점수: 20점.

※주의사항※ 오답 시, 팔 한 개.]

이 시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토굴 너머를 노려봤다.

어쩐지 이 너머에 있는 존재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으음…….]

막힘없이 대꾸하던 무신도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이 문제는 이상하군. 이질적이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 주관적이야.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애매하단 뜻일세.]

‘…….’

[애초에 앙신이란 존재는 각각이 지옥의 군주이며, 태생적 초월자일세. 인간의 관점에선 마왕이란 분류로 묶었으나 실상 그들에겐 공통점이랄 게 거의 없어. 모두 제각각인 존재란 말일세.]

‘…….’

[…연자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제 팔에 원수진 녀석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요.’

나는 헛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한번 문제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난 벌써 마왕을 세 놈이나 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건, 무신의 말대로 그놈들에겐 딱히 공통점이랄 게 없단 점이다.

당장 아홉과 탕타타만 해도 생긴 것부터 분위기, 사용하는 능력까지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그 사실과 별개로, 가장 이질적인 마왕이 누군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무신의 말대로 이질적이라는 표현은 다소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아무리 마왕이 제각각인 존재라고 해도, 아예 이계異界 출신인 건 한 명밖에 없을 터.

저벅-.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네 번째 토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자여? 너무 섣부른-.]

[정답.]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말하자, 무신이 다소 무안한 태도로 입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잊힌 무신은 백노광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제자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애초에 제자를 거뒀다는 말을 듣고 대단히 놀라기도 했고.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승님은 갑자기 왜 제자를 거둔 걸까? 첫 번째로 거둔 게 대사형인 것엔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대사형이 파문당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난 스승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몇 번 문제까지 있는 거야?’

이쯤 되면 제법 지하 깊숙한 곳까지 내려온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다시 팻말이 나타났는데, 여태까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엔 토굴이 딱 두 개였다.

[10. 정답을 고르시오. (10점)

① 왼쪽 ② 오른쪽

현재 점수: 25점.

※주의사항※ 오답 시, 목숨.]

제정신인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냥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고르라고?

[…연자여.]

‘잠시만요.’

나는 무신의 말을 막았다.

이 너머에 있는 존재에게서 사악함이 느껴진다고 했던가?

사악하진 않더라도, 최소 멀쩡한 인물은 아닐 거다.

째깍-.

다시 문제를 본다.

틀리면 목숨, 리스크를 보니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주어진 단서는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포기할까?

왔던 길을 되돌아서 오른쪽 길로 빠지면 되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박학다식한 출제자가, 마지막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문제를 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언가 힌트가 있을 거다.

째깍-.

시계 소리를 무시하며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문제를 순차적으로 떠올리며 출제자의 성향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다.

주관과 편견이 잔뜩 섞이게 되겠지만 말이다.

‘박학다식하고 음침한 녀석. 사람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하며 잔인한 구석이 있다?’

종합하면 밥맛없는 새끼가 되겠지만……. 의외로 상벌이 확실하며, 정당한 성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멈출 기회를 몇 번이나 줬고, 문제를 풀수록 보상 또한 강화됐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마지막에 와서 이런 성의 없는 문제를 냈을까?’

최후의 순간에 나타난 부자연스러운 양자택일.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뜨겁게 달궜던 머리를 식혔다.

남은 시간은 아마 3초.

속으로 셌다.

‘셋, 둘, 하나.’

째깍-.

마침내 초침의 움직임이 멈췄고.

“…….”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다.

[정답.]

쿠르르…….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두 길 사이에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다.

쿠르르…….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음험한 새끼.”

추측이 맞았다.

여태까지와 달리 문제 설명에 ‘다음 중’이라는 사족이 없었다.

즉 정답은 보기 중 없었고,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뻔하다면 뻔한 함정이었지만… 앞서 제시된 9개의 문제를 풀며, 제한 시간에 압박감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형성했다.

나는 질린 표정을 하며, 갑자기 드러난 공간 너머를 보았다.

‘대체 뭐 하는 새끼인지.’

낯짝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냥 꼴도 보기 싫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지만.

나는 일단 중앙 토굴로 걸어갔다.

저벅.

유난히 어두운 토굴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정체불명의 액체가 전신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살짝 놀라긴 했지만, 곧 겪은 적 있는 감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사드에게 받은 반지로 공간이동을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때처럼 시야가 잠깐 꺼졌다가, 곧 내부의 모습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음.”

이걸 과연 도서관이라고 해야 하나?

도서관의 서적이란 보통 책장에 꽂혀 있을 테지만, 이곳의 책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책이 한데 뭉쳐 산처럼 치솟은 곳도 보였다.

철벅-.

심지어 땅엔 물까지 고여 있었는데, 신기한 건 둥둥 떠다니는 책이 조금도 젖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은 나아간다.

주변을 계속 확인하면서 걸어가니, 단순히 ‘도서관’이라고 부르기엔 불필요한 도구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각종 시약이 채워진 유리병과 비커, 뇌세포, 내장, 혹은 알 수 없는 괴물의 신체 일부, 해골 모양의 촛불…….

천장과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인형이나 박제된 짐승 따위가 걸려 있었고 정중앙의 탁자 위엔 영롱한 빛을 내는 수정구가 있었다.

그러나 방 내부의 물건 중 단연 내 시선을 이끄는 건 솥단지였다.

거무죽죽한 녹색 죽 같은 게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지팡이가 저 혼자 휘적거리며 내용물을 젓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니라 무슨 마녀의 공방 같네.’

사실 나는 마법사와 마녀의 차이도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슬쩍 둘러본 바로 딱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설마 주인은 외출이라도 한 상태인가?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놈이 열 문제를 모두 맞힐 줄은.”

그때 무언가에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귀가 맛이 간 게 아니라면 방 중심에 산처럼 쌓인 책, 그 아래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우르르…….

그 순간 쌓여 있던 서적이 들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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