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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35화 (135/172)

135화

‘그렇지 않을까요?’

왕의 무덤이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왕의 유해는 제도에 안치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무명왕의 유해다.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인지도 높고, 존경받는 왕 말이다.

제도가 아닌 고향에 묻어 줬을 확률도 없지는 않지만, 무명왕은 그 출신은커녕 본명조차 아직 수수께끼다.

기록에 의하면 전란의 시대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는데…….

다만 무명왕의 가장 유명한 무기인 칠죄검과 적왕갑赤王甲의 크기, 생김새에 대한 묘사로 인간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건 노을처럼 찬란하게 타오르는 적발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일추一樞의 조각이 있을 것일세.]

‘일추의 조각이라 하심은…….’

[칠죄검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일곱 조각 중 하나지.]

나는 입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칠죄검은 반파된 상태였다. 이 상태로도 상당히 쓸 만해서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 좋군. 이곳까지 온 김에 그걸 손에 넣음세.]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칠죄검을 복원한다고 해서 제게 이점은 없을 듯한데.’

[연자가 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성향인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일추의 조각을 손에 넣는다는 건 단순히 칠죄검이 강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그 말씀은?’

[칠죄검의 복원은 내 존재의 회복을 의미하네. 전에 말했듯 지금 상태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조차 제한이 있지만, 조각을 얻어 칠죄검을 복원할수록 그 제한이 옅어지겠지.]

‘그럼 스승님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러자 무신이 쓰게 웃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것까진 아직 지난한 일일세. 그래도 조각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알 수 있겠지.]

‘음…….’

사실 지금의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향은 많다.

철혈공도 있고, 리세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잊힌 시대에 대해 가장 깊게 알고 있는 건 잊힌 무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그 시대를 직접 목격했던 장본인이니까.

‘무명왕의 무덤이라…….’

물어볼 데가 있긴 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칸막이 문을 열고, 헥토르가 있는 곳으로 넘어갔다.

이 널찍한 칸을 차지한 건 헥토르와 세렌, 두 명뿐이었는데 안쪽엔 다소 웃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두 녀석은 서로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처럼 끝과 끝에 앉아 있던 것이다.

세렌은 창문에 이마를 붙인 채 따분한 표정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고.

헥토르는 책을 읽고 있는 듯했다.

“마차 안에서 책 읽으면 멀미 나.”

“…멀미엔 강한 편이라 괜찮다.”

탁, 헥토르가 책을 덮으며 나를 보았다.

“내게 볼일이라도 있나.”

“물어볼 게 있어서.”

난 곧장 헥토르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헥토르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골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명왕릉에 출입하고 싶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어려울 거다.”

“왜?”

“제국에서 건국왕이라 하면 대개 크시누스 1세를 꼽지만, 일각에선 무명왕이야말로 진정한 건국왕이라고도 말하지. 어쨌든 일곱 종족을 규합하여 제국이라는 존재를 성립시킨 건 무명왕의 업적이니까……. 때문에 무명왕릉은 황궁 장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그 말은…….”

“기본적으로 황족 이외엔 출입할 수 없단 거지.”

골 때리는군.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기본적이라는 건 예외 경우도 있단 거 아냐?”

“그렇다. 만약 황족과 동행할 수 있다면 출입할 수 있을 터.”

황족이라…….

평범한 국민에겐 구름 위의 달 같은 양반들이겠지만, 이럴 땐 또 배드니커란 신분이 도움이 됐다.

배드니커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막강한 권세를 가진 가문.

설령 황족이라고 해도 격에서 밀리진 않는다.

“혹시 형님이 끈을 좀 놓아 줄 수 있나?”

“네가 무명왕에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군.”

헥토르가 살짝 놀란 어조로 말하더니, 난감한 얼굴로 덧붙였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당장은 어렵다. 황실에서 나와 친분이 있는 건 랜터스 정도인데, 지금은 제도에 없을 테니.”

랜터스라면 4황자일 거다.

배드니커의 가호식에도 참가했던 녀석 말이다.

“흐음…….”

내가 고민하고 있자니, 헥토르가 말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마침 우리의 목적지가 아카데미니까.”

“무슨 뜻이야?”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는 황족이 두 분 있다.”

“오… 누군데?”

“3황자와 4황녀. 그 두 분과 친분을 튼다면 무명왕릉에도 들어갈 수 있겠지.”

헥토르가 살짝 난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 아카데미란 환경, 편입생이란 신분, 삼 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그분들과 교분을 트는 게 쉽지는 않을 터.”

“으음.”

“개인적으로 3황자인 글렌 님을 추천하마. 4황녀인 페리스트 님은 교류를 즐기지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오케이. 고마워.”

“…그래.”

그리고 헥토르가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헛기침하며 말했다.

“마, 막내 부탁이니 이 정도는 형님으로서-.”

“헥토르 님? 잠깐 괜찮습니까.”

그 순간 마부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무슨 일이지?”

“곧 아카데미에 도착하는데, 출입 전에 배드니커의 인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음… 알겠다.”

헥토르가 떨떠름한 얼굴로 먼저 나갔고, 나도 더는 볼일이 없어서 나가려는 순간이다.

“너.”

갑자기 세렌이 나를 붙잡았다.

“왜?”

“무명왕릉엔 무슨 볼일로 가는데?”

나는 세렌 특유의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를 보며 대꾸했다.

“내가 원래 무명왕에 좀 관심이 많아서. 제도에 오면 한번 들르는 게 꿈이었어.”

“그런 놈이 무명왕릉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

…날카로운데?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닫고 있자니, 세렌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황족에겐 함부로 접근하지 마.”

“뭐?”

“하여튼.”

세렌은 그 말만 하고 눈을 꾹 감았다.

“…….”

만약 다른 녀석이 같은 말을 했다면, 황족이란 고귀한 혈통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란 의미로 받아들였겠지만…….

세렌이 말하니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황족에게 뭔가 있는 건가?’

생각을 이을 틈은 없었다.

그 순간 마차가 멈추며,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텔 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 * *

제도를 가로지르는 ‘황혼강’의 줄기 중에서, 가장 넓은 강은 그 폭이 무려 5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카르텔 아카데미는 그 강 중앙에 있는 섬에 설립됐다.

섬은 아카데미의 부지로만 쓰기엔 아까울 만큼 넓었는데, 처음부터 이런 크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꾸준한 증축 공사를 통해 지금 정도의 넓이를 확보한 것이라고.

물론 강의 하류를 막을 수는 없으니, 세로로 길쭉한 형태가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섬의 유일한 출입구인 다리를 건넌 다음, 우리는 마침내 아카데미의 입구에 섰다.

“와아…….”

“미쳤다.”

카르텔 아카데미를 본 순간, 사방에서 다시 한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이걸 대체 무슨 건축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왕성 같기도 하고, 탑 같기도 하고, 신전 같기도 하다.

보통 한 채의 건물에서 다양한 느낌이 들면 난잡하기 마련인데, 지금은 딱히 그런 감상이 생기지는 않았다.

건축에 조예가 없는 나로선 그냥 ‘대단하다.’라는 감탄 말곤 할 게 없었다.

“귀한 손님들께서 드디어 도착했군.”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 좋게 패인 주름과 배꼽까지 오는 수염, 가느다란 안경과 인자한 미소까지…….

저기에 챙 넓은 모자와 고목으로 만든 지팡이까지 들게 하면, 내 편견으로 형성된 마법사와 똑 닮은 생김새일 텐데.

‘…어째 좀 감동이.’

살짝 코끝이 시큰거린다.

회귀 이후 만난 마법사란 작자들이 하도 불량하고 사악했던지라, 이런 클래식한 외견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다.

헥토르와 바터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학장님. 헥토르 배드니커입니다.”

“바터 굿스프링입니다.”

“허허. 제국의 미래를 둘이나 같이 보게 되다니. 영광이네.”

카르텔 아카데미의 학장.

그렇단 건 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는 노인이 바로 서열 7위 자색의 대마법사- 올더슨 마르브어란 뜻이다.

올더슨이 헥토르를 보며 말했다.

“아사드 님은 잘 지내시는가?”

“정정하십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배드니커의 은둔자이자 수호자인 아사드 또한 칠색의 마법사이다.

서열 4위인 녹색의 대마법사인 것.

당연히 같은 칠색의 마법사인 올더슨과도 어느 정도 교류가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인원이 더 많구먼. 굿스프링의 인원까지는 예상하지 못해서 좀 난감한데…….”

올더슨의 말대로, 증명식 쪽의 인원은 대충 봐도 스무 명이 넘었다.

우리 쪽 열 명과 합하면 총 삼십여 명.

총원 서른 명이라면 편입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숫자긴 하다.

헐헐 웃음을 터뜨린 올더슨이 수염을 쓰다듬더니, 어쩐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따라오게.”

우리는 우르르 올더슨의 뒤를 따랐고… 잘 닦인 도로와 가로등 사이를 지나 탑 형태의 건물에 도착했다.

“이곳은……?”

“카르텔 아카데미 명물 [수행의 탑]일세.”

까마득한 높이다.

‘대충… 200미터 정도 되려나?’

이 정도 스케일이면 마탑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겠는데.

올더슨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인원을 좀 줄일 필요가 있어 보여서 말이지. 편입시험이랄까……. 가장 높이 올라간 열다섯의 영도만 아카데미에 받도록 하겠네.”

“음… 혹시 등수에 들지 못한 인원은 어떻게 됩니까?”

“미안하지만 편입을 허락할 수 없네. 돌아가 주게나.”

그러자 굿스프링 쪽에서 즉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 그럴 수가.”

“얘기가 틀리잖습니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반면 우리 쪽 녀석들의 태도는 담담했는데, 다소 익숙한 흐름이라서 그렇다.

성적순으로 끊는 거라면 배드니커의 수련회에서 몇 번이고 겪었던 일이니까.

나는 다시 탑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높긴 하지만, 오르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뭔가…….’

수행의 탑이란 이름도 그렇고, 어쩐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헥토르도 같은 위화감을 느꼈는지 물었다.

“빨리 오르는 게 아니라, 높이 오르는 게 기준입니까?”

“그렇네.”

올더슨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이 탑의 높이는 약 217.1미터이며 층수는 5층이네. 내부엔 계단이 있어서 오르는 게 어렵진 않을 것이야.”

약 200미터.

높다면 높은 높이지만, 이곳에 있는 녀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높이다.

즉.

“…안에 뭔가 있는 겁니까?”

올더슨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부 설명해 주면 재미없겠지? 급할 건 없네. 탑 안에 들어가면 모두 알 수 있을 테니.”

“음…….”

“기간은 오늘 하루일세. 아, 그리고 이 탑 내부에서 얻은 전리품은 모두 자네들의 것이야.”

“전리품이라 하심은……?”

“단순하게 금화부터 해서 귀금속과 서적, 내가 직접 만든 마도구까지……. 다양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네.”

“……!”

그 말에 영도들이 다시금 웅성거렸다.

올더슨이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부디 놀이기구라 생각하고 재밌게 즐겨 주시게나. 허허허.”

그 말에 영도들이 앞다퉈서 탑으로 뛰어갔고, 나는 살짝 감탄했다.

역시 마법사라고 다 맛이 간 종자는 아닌 모양이다.

마법사에게 못된 편견을 가졌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 또한 영도들의 뒤를 따랐다.

* * *

영도들이 떠난 직후…….

올더슨이 있는 곳에 젊은 청년 한 명이 다가왔다.

카르텔 아카데미의 교수 중 한 명인 몰란드였다.

“장난이 과하십니다, 학장님.”

“음?”

“저들 중 절반은 1층조차 못 넘을 겁니다.”

그 말에 올더슨이 특유의 헐헐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지. 몰란드 교수, 젊은이들의 가능성을 얕보면 안 돼.”

“얕본 적 없습니다만…….”

몰란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뜻 보면 올더슨이 저 젊은 영도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카르텔 아카데미의 재학생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수행의 탑]이라고 불리는 저곳이 어떤 장소인지 말이다.

5층으로 구성된 탑의 각 구역엔, 올더슨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각종 문제나 퍼즐, 함정이 배치되어 있다.

물론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풍운의 꿈을 안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트라우마가 생기기엔 충분한 느낌이랄까.

“애초에 서로 나쁠 게 없지 않은가? 나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도전을 보며 자극을 받고, 저들 또한 위대한 도전에 걸맞은 보상을 얻을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 나는 항상 형평성을 중시한다네.”

“…….”

틀린 말은 아니다.

탑에 숨겨져 있는 건 그야말로 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물건들이다.

칠색의 마법사인 올더슨이 직접 제작한 마도구는 물론이고, 값비싼 돈을 치러서 겨우 손에 넣은 각종 수집품까지 보관되어 있다.

심지어 올란드가 가장 아끼는 ‘그 물건’까지.

하지만…….

‘형평성을 그리 좋아하시는 분이, 왜 보상은 죄다 4, 5층에 몰아넣으셨습니까…….’

몰란드는 알고 있다.

영도 중에서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3층보다 높이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단 것을.

당연하다.

4층은 아카데미의 교수 클래스조차 대부분 도중에 포기했으니까.

올더슨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이럴 틈이 없네. 빨리 관제실로 가세. 베티 교수의 홍차가 마시고 싶군. 에티끄 다과점의 쿠키가 남았으니, 같이 먹으면서 구경하면 최고일 게야.”

몰란드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가엾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부디 좌절하는 영도들의 수가 적길 바라며, 몰란드가 올더슨의 뒤를 따랐다.

* * *

탑의 내부로 들어온 우리를 팻말이 반겼다.

[무지개의 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첫 번째 규칙※]

[이 층수에선 대화가 금지됩니다.]

[어길 시, 페널티.]

…이거 어째 데자뷔가 드는 흐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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