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나를 본 세렌의 고개가 15도 정도 기울어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던 세렌이 의외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왔네.”
어쩐지 많은 의미를 함축한 말로 느껴진다면 내 과대 해석일까.
‘용케 나보다 빨리 왔네.’처럼 들리기도 했고, 내가 3층까지 올 걸 예상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대놓고 물어봤다.
“무슨 뜻이야?”
“별 뜻 없어. 너라면 1층은 몰라도 2층에선 좀 막힐 거라 예상해서.”
“…….”
살짝 뜨끔하고 말았다.
확실히 무신이 없었다면 아직 2층에서 헤매고 있었을 테니.
나는 불편한 화제를 억지로 바꿨다.
“3층의 시련도 볼 셈이야?”
“그래.”
“몇 층까지 올라가려고.”
“글쎄…….”
세렌이 잠깐 고민하더니, 선선히 대꾸했다.
“…최소 4층은 아닐까 싶은데.”
오케이.
일단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4층으로 가기 위해선 내 뒤에 있는 세 개의 방에서 총합 150점을 획득해야 해. 방 하나당 백 점 만점이고.”
“그래?”
고개를 끄덕인 세렌이 나를 지나쳐 세 개의 방을 골똘히 보더니, 잠시 후 [순발력의 방]으로 향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건가?’
이 녀석의 속내는 여전히 모르지만, 아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렌이 따라오는 나를 보며 물었다.
“왜 따라와.”
“구경이나 하려고.”
“…….”
“안 돼?”
“…맘대로 하셔.”
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말해 줄 필요도 없이, 나는 항상 맘대로 살고 있다.
나는 세렌의 뒤를 따라 [순발력의 방]에 입장했다.
어디서, 어떤 투척물이 쏟아질지 알고 있으니 정확히 범위 바깥에 선 채 세렌의 행태를 구경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게 시련에 대해 안 묻는구나.
미리 정보를 들으면 도움이 될 텐데도 말이다.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시험인지 이미 알고 있는 걸까.
1층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세렌을 지켜본다.
[1단계를 시작합니다.]
투두둥-.
세렌은 날아오는 공을 어렵지 않게 피했고, 2단계의 화살 비도 여유롭게 통과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역시 3단계부터였는데…….
철컥-!
칼날이 달린 흉악한 원반을 본 순간, 세렌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대응을 고민하는 건가?’
머리 굴릴 여유는 없을 텐데.
“스읍-.”
그 순간 세렌이 호흡을 크게 들이켰다.
푸화아아악!
직후 긴 머리카락이 하얗게 휘날리더니, 세렌을 중심으로 냉기가 기파처럼 퍼져 나갔다.
쩌저적……! 날아오던 원반이 냉기에 닿은 순간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아.’
가호가 아니다.
체내에 있던 극음의 진기를 피부로 방출한 거다.
구조적인 면에선 보석 산맥의 사파이어 스네이크의 브레스와 비슷한 느낌.
‘마나에 속성을 부여했구나.’
살짝 놀랐다.
세렌이 보인 기예는 단순히 육체나 무기에 마나를 두르는 것 이상의 경지였다.
기에 고유의 속성을 곁들인 건 물론, 손이 아닌 피부로 마나를 방출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현재 세렌이 얼마나 강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기억하던 이 녀석보단 훨씬 강해진 것 같은데……. 그러니까 회귀 전의 세렌 말이다.
아마 숲에서 발견한 [잊힌 신의 제단]이 이 녀석에게 영감을 준 게 아닐까?
‘근데 저게 통하네.’
따지고 보면 저것도 방어 행위가 아닌가?
뭐 손에 닿지 않았으니 통과, 이런 이유라면 맨몸으로 싸우는 무인으로서 다소 억울하다.
어쨌든 저 기술이 있다면 4단계도 세렌에겐 큰 난관이 되지 못할 거다.
콰가가가가가각!
예상대로 세렌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병장기의 폭우 또한 모두 얼려 버렸다.
[축하합니다! 순발력의 방에 준비된 모든 시련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점수 산정 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
[점수 산정이 완료됐습니다.]
[NEW!] [1위. 세렌 굿스프링. 97점.]
“…….”
그리고 설마 했던 신기록.
철혈공은 물론이고, 졸지에 내 순위도 3위까지 떨어졌다.
“하아아아…….”
세렌이 차가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힐끗 순위표를 확인하더니 살짝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
누구의 이름을 보고 멈칫한 걸까.
눈동자를 보며 추측하는 사이, 세렌이 나를 지나쳐 다음 방으로 향했다.
물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속도의 방]
이곳의 측정 방식은 간단하다.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공간에서 단거리 달리기를 하면 되는 것.
거리는 약 50미터 정도로 짧은 편인데…….
1단계는 그냥 달리면 되고.
2단계엔 장애물이 생기며.
3단계에선 그에 더해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대망의 4단계.
우르르르……!
“…….”
갑자기 방 내부가 붕괴하더니, 달려야 하는 길이 턱없이 좁아졌다.
길이 아니라 동아줄 정도로 보일 정도.
좌우의 지면은 완전히 무너져 낭떠러지가 됐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저기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을 거다. 이것 또한 올더슨 학장의 연출이겠지.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의외로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준다.
저게 환각이건 뭐건, 속임수란 걸 알면서도 속게 되는 게 시각 정보다.
세렌도 살짝 긴장한 표정이 됐지만, 도전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고 신호와 함께 비쩍 마른 길을 내달렸다.
하지만 그 속도는 누가 봐도 크게 느린 상태였다.
[속도의 방: 71점.]
아싸. 이겼다.
이긴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완승이지.
내가 낄낄 웃으니 세렌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힐끗 순위를 보더니 살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97점……?”
“죽이지?”
“…….”
세렌은 내 너스레를 받지 않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힘의 방].
이 방은 [속도의 방]이나 [순발력의 방]처럼 딱히 큰 위협은 없다.
가장 단순한 시험이랄까?
1단계는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를 부수면 되고.
2단계는 커다란 바위를.
3단계는 갑옷.
마지막 4단계는 크고 새까만 방패를 깨면 된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내가 도전했을 때를 회상했다.
‘마지막 방패가 제법 단단했지.’
물론 일반적으로 그렇단 거고, 내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애초에 염화제일공과 백일식은 파괴력에 치중된 무공이라 그렇다.
‘이 녀석은 어떨까.’
내 개인적으로 세렌에게 가장 부족한 게 파괴력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한 대로였다.
허수아비와 바위는 손으로 부쉈지만, 갑옷은 살짝 우그러뜨리는 걸로 끝난 것.
세렌은 4단계를 도전할 자격조차 받지 못했다.
[힘의 방: 52점.]
“윽.”
살짝 충격적인 점수였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던 세렌이 다시 순위를 보더니, 앞보다 훨씬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 점수를 봤나 보군.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뿌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원래 힘이 좀 세.”
세렌은 드물게도 내 헛소리에 틱틱대지 않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더니 다소 뜻밖의 말을 꺼낸다.
“너…….”
“응?”
“진짜 강하네.”
완력이 세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요새 종종 듣는 말이지만, 세렌에게 들을 줄은 몰라서 살짝 놀랐다.
세렌은 어쩐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는데……. 어쨌든 이로써 이 녀석의 점수는 총합 220점.
순위권에 들 만큼 높지는 않지만, 4층에 도전할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
쿠구구…….
그러자 대기실 벽면이 움직이며, 그 너머에 숨어 있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저런 곳에 있었구나.
우리는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번엔 원형 계단이 아니라 목적지가 정확히 보였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길었지만 말이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세렌이 물었다.
“있잖아.”
“말해.”
“넌 정의로운 편이야?”
“뭐?”
이런 황당한 질문은 난생처음이라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무슨 농담을 하는가 싶어 바라봤는데, 세렌은 의외로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음. 적당히……?”
“그런가…….”
세렌이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혹시 아카데미에서 날 좀 도와줄 수 있어?”
“어떤 걸?”
“자세히 말하긴 어려워. 그래도… 무고한 사람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거야.”
“…….”
내가 대꾸하지 않으니 세렌이 다급히 덧붙였다.
“수상한 일은 절대 아니야. 내 목숨을 걸어도 좋아. 맹세할게.”
“…….”
갑자기 이 분위기 뭔데.
돌연 진지해진 분위기에 살짝 소름이 끼쳤다. 나란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많이 위험해?”
“죽을 수도 있어.”
세게 나오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지.”
이 녀석에겐 나름대로 빚도 졌고.
“그런데 지금처럼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못 도와줘. 네가 진짜 도움을 바란다면 사정을 밝히고, 확실히 설명해. 그게 기본이잖아.”
“…….”
내 정론에 세렌이 입을 닫더니, 갑자기 힐끗 주변을 살펴봤다.
엿듣는 사람이 없나 확인하는 걸까?
나도 기감을 펼쳐 봤는데, 딱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통신 수정도 마찬가지.
“아카데미가 위험할지도 몰라. 확실하진 않지만.”
“위험하다니. 뭐 때문에?”
“그건, 그것만큼은 아직 말하기 힘들어.”
“왜.”
“이 얘길 했다간 날 미친년 취급할 테니까.”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회귀 전 수련회에서 이 녀석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나중에 말해 줄게.
- 왜.
- 미친년 취급당하기 싫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됐나.
제사장 후안이 마각을 드러냈고, 에반은 소교주가 됐으며, 결국 마왕 강림까지 벌어졌다. 그 결과 참여한 영도 절반 이상이 죽었고 말이다.
그러자 세렌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만약 이 녀석이 그때 나를 향해 진실을 얘기했다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겠나.
배드니커 가문에 제사장이 잠입했고, 결국 마왕 소환까지 벌어진다는 허무맹랑한 소리 말이다.
‘미친년 취급했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 도와줄게.”
“……! 정말?”
세렌이 살짝 높아진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들뜬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반면 나는 조금 떨떠름한 심정이었다.
‘…이 녀석, 배드니커에선 끝까지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지.’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내 도움을 바라고 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내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그러니 답은 단순하다.
-조만간 아카데미에서, 배드니커 이상의 재앙이 벌어질 거다.
‘…여기서도 마왕과 관계된 뭔가가 터지겠구만.’
염병.
제국 꼴이 진짜 개판이다.
* * *
올더슨은 뚫어져라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다소 떠들썩하던 관제실의 분위기도 어느덧 조용해진 상태, 꼭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
4층에서부턴 등반자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주어지고.
그 보상이란 올더슨 학장이 피와 땀, 청춘을 바쳐서 모은 비장의 컬렉션이다.
올더슨은 짐짓 여유로운 척 찻잔을 들고 있지만, 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르겠지?’
4층부터 드나들 수 있는 [보물창고].
사실 말이 보물창고지, 그 층까지 다다른 영도가 거의 없기에 금고 대용으로 쓴 지는 좀 됐다.
귀중한 물건을 손에 넣을 때마다 안에 쑤셔 박았단 뜻.
보물창고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올더슨이 정성껏 모은, 문자 그대로 보물寶物이지만…….
당연히 그 보물의 값어치는 동일하지 않고.
마침 지금 보물창고엔 특별히 귀중한 물건이 있다.
얼마 전에 넣어 두고, 아직 꺼내지 않은 놈이 말이다.
‘설마, 설마, 설마. 그건 안 고르겠지.’
그래. 고를 리가 없다.
겉보기엔 허름하고, 별 쓸모도 없게 생겼으니까.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에야 그걸 고를 일은 없겠지.
하지만…….
‘…….’
올더슨의 초조한 시선이 다시 화면을 향했다.
막 4층에 입장한 두 영도의 모습이 보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배드니커…….’
그 성을 다시금 되새긴 순간, 어쩐지 팔뚝에서 소름이 돋았다.
* * *
세렌에게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사실 이 녀석이 아카데미행을 결정했을 때부터 좀 쎄하긴 했지만……. 그러한 예감이 이 순간이 돼서야 확실해진 느낌?
대체 제도에서도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인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터진다는 걸까.
궁금해서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자세한 건 탑 등반이 끝난 이후 물어보기로 했다.
[대련의 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 번째 규칙※]
[이 층수의 시련을 받기 위해선 최소 2인 이상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확인 중…….]
[도전 인원 두 명. 확인했습니다.]
[대련에 앞서 보상을 고르십시오.]
“보상?”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니 목소리가 이어졌다.
[4층에 이른 모든 도전자에겐 『보물창고』의 출입 자격이 주어집니다.]
[대련에 앞서 한 가지 보상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상을 주다니… 생각보다 통이 크네.”
내 혼잣말에 세렌이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통 크긴 개뿔이. 1층에서 3층까진 아무것도 안 줬잖아. 좀생이가 따로 없어.”
“…우리 목소리 다 듣고 있을걸?”
세렌이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들으라지.’ 하는 듯한 표정이다.
사실 나도 학장이 좀생이란 말에 동의하는 바라 입을 닫았다.
어쨌든 우리는 [보물창고]란 곳으로 입장했고.
파앗-!
“오…….”
밝은 광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반적으로 보물창고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처럼 금화와 보석, 값비싼 장신구가 산처럼 쌓여 있지는 않았지만…….
딱 봐도 귀해 보이는 무기나 갑옷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고.
그 밖에도 오래된 서적이나 영약, 골동품처럼 생긴 마도구도 보였다.
“이야… 신기한 거 진짜 많네. 이건 뭐야? 생긴 건 주전자인데.”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알아서 고르라는 걸까?
내가 구경하는 사이, 세렌은 주변을 대충 훑어보더니 말했다.
“난 이걸로 할게.”
뭔가 싶어 보니 목갑이었다.
“그게 뭔데?”
달칵-.
세렌이 대답 대신 목갑을 열었다.
내부에 놓인 건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얼음 구슬이었는데, 딱 봐도 생긴 게 영약이다.
“만년 결정이야. 이 정도로 큰 건 나도 처음 보네.”
영옥의 얼음 버전인가?
내 예상이 맞았는지, 세렌은 즉시 결정을 꺼낸 다음 입에 넣었다.
그리고 사탕을 녹이듯 입을 볼록거리며 결정을 굴렸다.
“맛있냐?”
“차가어.”
…차갑다고.
어쨌든 세렌이 당분간 말 걸지 말라는 듯이 노려봐서, 나도 시선을 거둔 다음 주변을 구경했다.
‘무기는 패스. 갑옷도 패스. 장신구? 이것도 좀.’
그럼 값비싼 보석이나 챙겨야 하나?
글쎄.
돈이야 많으면 좋긴 하지만, 당장 내가 쪼들리는 것도 아니다.
누가 뭐라든 난 5,000골드란 자산을 가진 부우자니까.
‘이것 참 난감하네.’
딱히 필요한 게 없으니 판을 깔아 줘도 뭘 고르기가 애매하다.
…하지만 괜찮다.
내겐 비장의 수단이 있으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한 다음 외쳤다.
‘무신이시여……!’
[…무엇인가?]
나의 살짝 과장된 부름에도, 무신은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이 보물창고에서 제일 값진 게 뭘까요?’
뭐가 뭔지 모르면, 일단 제일 비싼 걸 챙기는 게 장땡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