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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42화 (142/172)

142화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올더슨이 한쪽 팔을 들었는데, 마치 손으로 반원을 그리듯 유려한 동작이었다.

올라가던 팔은 어깨높이에서 멈췄고.

그 순간 커튼이 내리듯, 팔 아래로 실이 후두둑 떨어졌다.

달칵…….

그리고 실에 묶인 인형도 나타났다.

전조조차 없던 갑작스러운 출현이었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마법이란 원래 이런 거니까.

“이것이 ‘정보’를 주입하기 전의 인형일세. 어떻게 보이는가?”

“그냥 목각으로 만든 관절 인형 같네요.”

인형은 옷도 입지 않았고, 이목구비도 없었다.

몸의 굴곡도 딱딱한 편이라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형태만 갖춘 목각 인형이었다.

저곳에 정보를 주입하면 방금 싸운 델락이나 레오네처럼 모습이 바뀌는 걸까?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기 힘들었을 거다.

“내가 제작한 인형은 제국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완성도가 높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네. 일단 정보를 가공하는 것부터가 일이지……. 방금 자네들과 싸웠던 두 인형 같은 경우엔, 그 과정에만 1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됐네.”

“비효율적이군요.”

“마법사답지 않은 일이었지.”

올더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주입한 정보가 인형의 육체와 파장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럼 인형의 몸은 그대로 붕괴해 버리지. 천신만고 끝에 성공해도 원본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겪었다시피 가호도 쓰지 못하고, 마나를 내장하는 형태라 마나 보유량에도 제한이 있다네. 그 운용력 또한 절반 이하고. 그나마 신체 능력만큼은 엇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지만…….”

“본론이 뭡니까?”

나는 조금 무례하게 올더슨의 말을 끊었지만. 말이 너무 길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올더슨은 딱히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탑 순위 1위의 레오네, 자네가 왔으니 이제는 2위지만. 하여튼 난 레오네가 탑을 오를 때 얻은 ‘정보’만을 인형에 주입했을 뿐이네. 그 과정에서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다고.”

어째 말이 좀 이상하다.

내가 살짝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요. 그 말씀은 설마-.”

올더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오네에겐 원래부터 악惡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네.”

허.

살짝 몸에서 힘이 풀렸다.

“레오네가 소교주였단 말씀입니까?”

“소교주의 존재까지 알다니, 자네는 암흑교단에 대단히 해박하군…….”

올더슨이 살짝 놀란 듯 말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교주와는 다르네. 레오네는… 그 점을 빼고도 아주 특별해.”

“…….”

“그러한 내력 때문일까, 레오네의 ‘정보’는 개성이 무척 강했다네. 대체적으로 인형에 정보를 주입한다고 실제 사람처럼 굴지는 않네. 입력한 정보만을 수행할 뿐이지. 레오네는 달랐어. 자의식이란 게 있었고, 심지어 대화까지 가능했지.”

나는 지금이 가장 궁금한 걸 물어볼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네는 대체 누굽니까?”

“모르네.”

“…네?”

올더슨이 말을 이었다.

“암흑교단과 지옥, 악마에 대해 해박하며, 소교주였다는 사실 빼고는 레오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

“정보를 얻으셨다면서요.”

“신체 정보를 말이지. 등반자를 보며 삶의 족적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네.”

“…….”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 소교주였단 것도 레오네가 말해 줘서 겨우 알게 된 거지.”

“말해 줘서 알게 됐다? 말씀이 좀 이상한데요.”

“그래. 이상하지. 말했잖은가. 레오네는 특별하다고.”

올더슨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레오네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네. 말하기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열지 않아.”

“…….”

놀라운 고백이다.

아마 올더슨의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닌, 그의 말대로 레오네가 특별해서인 듯한데…….

“…그럼 인형이 아닌 진짜 레오네를 찾아가면 되잖아요.”

“불가능하네.”

“어째서죠.”

“이미 죽었으니까.”

“…….”

나는 입을 닫았다.

올더슨이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철혈공 델락 C. 배드니커. 악마 사냥꾼이자 처형인, 황가의 검, 위대한 가문의 카리스마- 델락의 뒤에 붙은 대부분의 수식어는 악마를 죽이는 과정에서 생겨났지.”

“예. 그리고 학장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가주님께서, 악마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

“그 발언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내 말에 학장이 웃으며 말했다.

“책임은 질 수 없네. 그리고 내가 이 말을 했다고 철혈공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째서입니까.”

“지금의 철혈공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그제야 나는 올더슨 학장의 말을 이해했다.

당연하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한다.

그건 누구보다 한심한 삶을 살았던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러니 철혈공의 생각이 젊었을 적과 다른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철혈공이, 한때 악마와의 화합을 바랐다는 말이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철혈공은 대체 어떤 사건을 겪고, 변한 것일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말했네.”

그리 말하고 올더슨 학장은 눈을 감았다.

꼭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

이유야 어찌 됐건, 올더슨은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밝혔다.

힘으로 나를 제압해도 됐을 텐데, 진실을 실토한 채 내 선처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칠색의 대마법사.

카르텔 아카데미의 학장.

그러한 신분을 떼놓고 봐도, 족히 백 년은 살아온 노인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이 일로 나를 죽일 수는 없겠지.

이래 봬도 난 배드니커의 핏줄이니까.

‘하지만…….’

나는 올더슨 학장의 이런 태도에 호감이 갔다.

게다가 난 상대가 모든 걸 밝혔다면, 나 또한 어느 정도 속내를 밝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착한 악마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하네.”

“그렇다면 착한 마왕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뭐?”

올더슨이 황당한 듯이 나를 보았으나, 내 표정을 보더니 입을 닫았다.

“음.”

그리고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왕.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만, 실제로 그들은 신적인 존재일세. 심지어 신 중에서도 막강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최근 몇 번이고 들었던 사실이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제국의 국교인 72교는 일흔둘의 신을 믿는 다신교입니다. 이외에도 각 가문, 종족, 지역마다 믿는 신이 더 있는데, 그걸 다 합하면 족히 수백은 될 테지요.”

가호.

위대한 가문의 혈통에게 신이 하사하는 권능.

즉 단적으로 말하면, 존재하는 [가호의 수]만의 신이 존재한다.

제국과 인간에게 우호적인 신들이 말이다.

“반면에 앙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단 여섯. 고작 여섯의 신이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이 된 상황인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앙신 하나가 선한 신 수십과 동등한 힘을 가진 셈이지요.”

올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과거엔 13악신이라 불리는 악한 존재들이 대륙을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지만……. 단언하지. 현시대의 여섯 앙신이 고대 13악신보다 훨씬 강하고 무서운 존재일세.”

“13악신보다 훨씬 강한가 보군요.”

“단순히 지닌 힘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세. 앙신이 가장 두려운 건… 그들은 경외나 신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모든 신에겐 신자가 필요하네. 신앙이 없다면 신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지……. 세상에 ‘잊힌 신’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겠네.”

“음…….”

“그러한 전제에서 마왕만이 예외일세. 그들에게 신앙은 아무래도 좋을 것들이니까……. 설령 이 대륙에서 교단의 뿌리를 완전히 뽑는다고 해도, 그 끔찍한 존재들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테지.”

이건 내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듣고 보니 자연스레 납득이 가는 진실이었다.

아홉이나 탕타타.

그것들이 숭배자를 대하는 태도에 사랑이나 자비를 볼 수 있었나?

일단 난 찾지 못했다.

아홉은 자신의 신자와 적을 공평하게 핏물로 만들었고…….

탕타타 또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상대라면 그게 누구건 가리지 않았다.

즉 그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신자란 것들이 어떻게 되든 말이다.

‘그리고 대사형도.’

대사형의 강함은 그 자신이 온전히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누군가의 숭배, 신앙 따위에 영향을 받을 일은 없을 거다.

“착한 마왕이 존재하느냐고 물었지. 내 대답은 ‘아니오’일세. 애초에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마왕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

“하지만…….”

올더슨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모르지.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지도.”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가장 베일에 싸인 마왕을 알고 있는가?”

내가 대답했다.

“무채색의 마왕이 아닙니까?”

“그래. 고대에 나라 하나를 멸망시켰다지만, 이후로는 이렇다 할 재앙을 일으킨 적이 없네. 신도의 수 또한 교단에서 가장 적고……. 제사장 또한 단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지.”

“…….”

“무채색의 마왕이 멸망시킨 나라는 [세티투스]란 이름의 왕국이었네. 오늘날엔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나라지만, 몇몇 문헌에선 [악惡의 제국]이라 기록되어 있기도 하더군.”

“음.”

“물론, 그렇다고 수많은 생명을 지워 버린 죄가 사라지지는 않지. 설령 그 나라가 죄악의 제국이었다 할지라도 대학살을 긍정하기는 어렵네. 하지만 선악이란 원래 주관적이지 않은가?”

올더슨이 말을 이었다.

“죗값과 별개로, 그러한 행동에 뒷사정이 있다면 단순한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네. 혹시 모르지. 무채색의 마왕에게 우리가 공감할 만한 사연이 있을지도…….”

“…….”

사연.

그게 납득할 수 있는 사연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사연이란 놈을 대사형과 재회하기 전까지는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내가 대사형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음.”

그사이 올더슨은 손에 들린 목각 인형에 마나를 주입했다.

사아아아-.

희미한 안개 같은 게 목각 인형을 두르더니, 그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법 같은 광경이었다.

딱딱한 목각 인형이, 순식간에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는 건 마법이란 단어 이외엔 표현할 게 없었다.

레오네가 눈을 떴다.

붉은 눈동자가 몇 번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나를 향했다.

“오- 그대도 있었구나. 오랜만에 제법 재밌는 싸움이었다. 칭찬해 주지.”

나는 레오네의 거들먹거리는 인사를 무시한 채 올더슨에게 물었다.

“인형이 부서졌는데도 방금 그 일을 기억하고 있네요. 기억을 저장하는 그릇은 따로 있는 겁니까?”

“정확하네. 리치의 라이프 베슬에서 모티브를 따왔지.”

“아하.”

올더슨이 레오네를 불렀다.

“레오네, 눈앞의 소년은 철혈공의 아들이다.”

“오호…….”

“설명할 생각이 있는가?”

어떤 설명을 말하는 걸까.

올더슨의 밀어를 들은 레오네가 픽 웃더니 말했다.

“거절한다.”

그러자 올더슨이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휘적거렸다.

스으으- 레오네가 다시 목각 인형으로 돌아왔다.

“명령을 강제할 수 없나 보군요.”

“말했잖은가. 레오네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내키는 게 있을 때 듣는 시늉이나 하는 정도지.”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출신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텐데요.”

아카데미의 입학 요건은 까다로운 편이니까.

그러나 올더슨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네.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든 게 정체불명이야.”

“그게 뭔…….”

“아카데미엔 특별 전형이 있다네.”

“특별 전형이요?”

“수행의 탑을 끝까지 등반하는 것이지. 등반에 성공하면 종족이나 나이, 출신을 불문하고 입학을 받고 있다네. 졸업까지 학비도 일절 부담하지 않아도 되고.”

“아하.”

5층에 뭐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레오네와 잠깐 주먹을 맞댄 소감으로는, 이 위에 뭐가 있건 그 녀석의 등반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협박 같은 건 해보셨나요?”

“의미 없네. 통각을 느끼지 못하고, 작동이 멈추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으니까. 지난 10년 동안 숱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실 알아낸 게 많지는 않지. 솔직히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네.”

“음…….”

“레오네의 기분이 드물게 좋을 때가 있네. 그럴 땐 이쪽에서 묻지 않아도 교단의 비밀을 하나둘씩 말해 줬는데, 그 정보의 가치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였지.”

“예를 들면요.”

“제국이 교단의 소교주란 직책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레오네 덕분이었네.”

“아…….”

나는 단숨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럼 레오네의 존재를 72교나 태양교에서도 알고 있겠군요.”

“주교와 추기경 중에서도 극소수만 말이지.”

“음.”

“나 또한 악마와 달리, 교단은 반드시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짓고 있네. 그들의 사상은 너무 위험하니까…….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국면을 바꿀 존재가 바로 레오네일세.”

말을 할수록 저 검은 머리 소녀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이 났다.

올더슨이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네가 말하더군. 더 많은 걸 알고 싶다면 암흑교단의 또 다른 소교주를 데리고 오라고.”

음?

“터무니없는 요구 아닌가? 교단의 소교주란 그 악의 씨앗이 발아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심지어 본인조차 알 수 없네! 심지어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준 건 다름 아닌 레오네 자신이었는데……!”

나는 이를 갈 듯 소리치는 올더슨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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